소설리스트

황금가-250화 (250/524)

황금가 (250)

“뭐 해요!”

턱!

봉란은 버럭 소리치며 금장생을 잡아당겼다.

퍼억!

순간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정령 머리 두 개가 박혀 들었다.

“없앨 수 없습니까?”

금장생은 전면과 좌우를 살피며 물었다.

“저 녀석은 물이고, 저 녀석은 불, 그리고 저 녀석은 바람이에요. 물, 불, 바람을 죽일 방법이 있으면 좀 가르쳐 주세요.”

“안 된다는 말이네요?”

“하지만 피할 수는 있어요.”

봉란은 계속해서 달렸다.

십여 마리의 정령은 봉란과 금장생을 노리고 계속해서 공격을 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빗나갔다.

척!

백여 장을 내달린 봉란이 그 자리에 멈췄다. 널따란 발판 앞이었다.

“왜……?”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봉란을 보았다.

“내가 와 본 곳은 여기까지예요.”

“더 이상 가지 못했단 말인가요?”

“네. 그리고 저 벌판을 건너지 않으면 이곳을 왜 황가의 성지라고 부르는지, 이곳에 왜 저런 괴물들이 있는지 영원히 알아낼 수 없어요.”

“저 벌판 너머에 비밀을 풀 열쇠가 있다는 말이군요.”

“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왜…….”

푸아악! 푸아악! 푸아악!

츄아악! 츄아악!

휘익! 휘이익! 휘이익!

거친 소성과 함께 벌판 곳곳에서 물과 불과 바람의 정령이 튀어나왔다.

이번에 나온 정령은 지금까지 겪었던 정령들보다 더 무시무시했다. 키는 이십 장 정도고 두께는 어른 몸통 정도였다.

게다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가 많았다.

“저게 다…….”

“저것들이 전부가 아니에요.”

봉란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럼 더 있어요?”

금장생의 말이 떨어진 순간 정령들이 솟구친 지면이 파도처럼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건?”

금장생은 멍한 얼굴로 전면을 바라보았다.

바다처럼 출렁거리는 지면과 그 속에서 해초처럼 흐느적거리는 수천 마리의 정령들.

봉란이 더 이상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수천 마리 정령이 두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광경은 단순한 공포심을 유발하는 게 아니었다. 영혼마저 소멸하고 말 것 같은 근원적인 공포가 온몸을 잠식해 들었다.

여긴 지옥보다 더 무서운 곳이었다.

쿠어어어억! 쿠어어어억!

출렁거리던 바닥의 곳곳이 쩍 벌어지며 괴성이 터져 나왔다.

캬아아아! 크아아아아! 캬우우우우! 크아아아아!

이어 허공으로 솟구쳐 있던 수천 마리의 정령들이 일제히 괴성을 내질렀다.

금장생은 팔을 슥슥 문질렀다.

알몸이긴 하지만 추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으슬으슬했다.

“저 벌판 너머에 정확하게 뭐가 있죠?”

금장생은 전면을 가리켰다.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하지만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이곳의 비밀을 풀면 천하제일인이 되는 건 물론이고 천하제일가문이 된다고 돼 있어요.”

“그 천하제일이란 말 때문에 이곳이 황가의 성지가 된 거군요.”

“네.”

“그럼 천하제일이 되는 방법이 어떤 건지 확인해 볼까요?”

금장생은 벌판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들어서자 땅이 무섭게 요동쳐다.

“어떻게 하려고요?”

봉란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잘해야지요.”

금장생은 싱긋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쿠어억! 캬아아아아! 크아아!

그가 들어서자 정령들이 무섭게 날뛰었다.

갑자기 땅이 갈라지며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금장생과 봉란이 서 있는 발밑이었다.

“악!”

“헉!”

금장생과 봉란은 아래로 추락했다.

구덩이는 상당히 깊었다. 오 장여를 추락하던 금장생은 오른팔로 봉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허공에 멈춰 섰다.

봉란은 금장생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녀의 가슴이 이지러지며 아우성쳤다.

“우리가 아무리 친해진다고 해도 절대 결혼 같은 건 안 할 겁니다.”

금장생은 오른팔 상박으로 흘끔 시선을 주며 말했다.

“지금 그런 말을 하고 싶어요?”

봉란은 금장생을 흘겨보며 소리쳤다.

“다른 건 몰라도 결혼 문제하고 돈 문제는 확실하게 해 두어야 하거든요.”

쿠어억!

괴성과 함께 흙이 파도처럼 두 사람을 덮쳤다.

“아, 알았으니까 저거나 어떻게 좀 해 봐요!”

봉란은 전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허공답보 신법 못 펼쳐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요.”

“그렇군요. 그럼 내가 펼치는 허공답보 신법을 잘 보세요.”

금장생은 뒤로 이동했다.

턱!

하지만 반 장도 이동하지 못하고 벽에 가로막혔다.

흙의 파도는 앞에서만 다가오는 게 아니었다. 뒤편에서도 다가와 금장생과 봉란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이런!”

금장생의 얼굴이 슬쩍 찌푸려졌다.

퍼억!

그 순간 앞쪽에서 밀려온 흙의 파도가 두 사람을 덮쳤다.

흙은 빠르게 본래 상태로 굳어졌다. 물결처럼 출렁이던 바닥은 평평해졌고, 정령들이 뿜어내던 광기도 조금씩 사그라졌다.

푸아아악!

바로 그때였다. 흙더미 하나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봉란을 꼭 껴안은 금장생이었다.

쿠어억!

캬아아아아! 크아아아아! 캬캬캬캬!

정령들이 다시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리고 정령 수십 마리가 금장생과 봉란을 향해 나아갔다.

금장생과 봉란을 향해 나아가는 정령들은 땅에서 솟구친 촉수 같았다.

‘적안이 정령들에게 통할까요?’

금장생은 라에게 물었다.

―당연히 통한다.

‘소멸시키는 것도 가능해요?’

―정령의 땅에서는 정령을 소멸시키지 못한다.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 봐야겠군요.’

“파이어!”

금장생은 왼팔을 앞으로 내밀며 강하게 소리쳤다.

슈아악! 스아악!

악마수에서 붉은 광채 수십 개가 폭사되었다.

원반 형태의 붉은 광채는 나선형을 그리며 정령들을 향해 날아갔다.

크아아아아!

캬우우우!

크아앙!

정령들은 적안을 물어뜯기 위해 입을 쩍 벌렸다.

스악! 스악! 스악!

적안은 정령들의 몸통을 뎅겅뎅겅 잘랐다.

정령들은 고통스러운 괴성을 내질렀다. 윗부분을 잃은 정령은 특이한 액체를 뿜어내며 몸부림쳤다.

“가요.”

금장생은 오른팔로 봉란의 허리를 안고 몸을 날렸다.

봉란은 두 팔로 금장생의 목을 안았다. 그리고 금장생이 최대한 활동하기 편하게 해 주었다.

쿠어어억! 크아아아아앙! 캬아아아!

정령들은 더욱 거칠게 날뛰었다.

위에서 머리를 내리찍는 정령이 있는가 하면 횡으로 찔러 오는 정령도 있었다.

각각 방향은 달랐지만 검 형태로 변한 머리는 동일했다.

“파이어!”

금장생의 입에서 두 번째 외침이 터져 나왔다.

또다시 시뻘건 원반 수십 개가 쏘아졌다.

허공을 가른 원반은 정령의 몸통을 뎅겅뎅겅 잘랐다.

몸통이 잘린 정령은 체액을 쏟아 내며 몸부림치다가 자신이 나온 구덩이 안으로 사라졌다.

“확인하세요.”

금장생은 봉란에게 말했다.

“뭘 확인하라는 거죠?”

“구덩이 안으로 사라진 놈들이 다시 살아나는지 그걸 확인하라는 말입니다.”

“알았어요.”

봉란은 조금 전 금장에게 잘린 정령이 사라진 구멍을 지켜보았다.

상당히 오랫동안 지켜보았지만 구덩이 안으로 사라진 정령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게 천적인가…….”

푸아악!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금 전 사라졌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살아났어요.”

“세기는 어때요?”

금장생은 물었다.

“조금 약해진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무서운 곳인 건 맞네요.”

슈아악!

“이크!”

금장생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정령 한 마리가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오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더 높이 솟구쳤다.

카아아아!

몇 마리 정령이 괴성을 내지르며 금장생을 향해 쏘아져 왔다.

정령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차앗! 파이어!”

금장생은 기합과 함께 악마수를 펼쳤다.

어느새 그의 팔은 검게 변해 있었다. 악마수로 펼치는 두 번째 초식인 흑안이었다.

검은 원반이 빠른 속도로 허공을 유영했다.

수십 마리의 정령이 뎅겅뎅겅 잘려 나갔다.

하지만 정령의 수는 너무 많았다. 엄청난 수가 잘려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줄어든 것 같지가 않았다.

“촉수가 분화하고 있어요!”

봉란이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어른 허리통 두께였던 정령들은 팔목 두께로 가늘어지면서 수십 개로 늘어났다. 길이 또한 본래보다 더 길어져 삼십 장에 육박했다.

길어진 촉수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금장생은 사방으로 흑안을 날렸다.

흑안은 곧바로 촉수를 잘라 냈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금장생은 봉란을 안은 채 사방으로 움직여 다니며 촉수의 공격을 피했다.

파앗!

느닷없이 바닥에서 검은 물체가 솟구쳤다.

봉란과 금장생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구친 그것은 땅의 정령이었다.

금장생은 공중제비를 넘어 땅의 정령을 피했다. 그리고 오른발로 강하게 찼다.

퍼억!

흙이 사방으로 날렸다.

“차하!”

금장생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츄악! 슈아악! 휘이익! 화악!

물과 바람과 흙과 불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금장생은 주먹을 내지르고, 발로 차고, 몸통으로 부딪치고, 악마수를 펼치면서 전진했다.

휙!

금장생의 공격을 뚫고 들어온 촉수 하나가 두 사람을 감아 돌았다.

“차앗!”

봉란은 금장생의 목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풀어 아래로 내리쳤다.

순간 그녀의 오른손 손바닥이 강기로 휩싸였다. 칼날처럼 변한 손이 정령을 후려쳤다.

카앙!

날카로운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억!”

봉란은 깜짝 놀랐다.

손이 절반 정도 파고든 상태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막혀 버린 것이다.

금장생이 펼친 원반 형태의 무기가 정령을 뎅겅뎅겅 잘라 내기에 그녀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녀는 손을 빼내기 위해 힘을 주었다.

캬아아아!

정령도 고통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비명과 함께 감고 있던 몸을 풀고 물러났다.

“악!”

이어 봉란의 입에서도 비명이 흘러나왔다.

손이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령이 빠르게 물러나자 그녀도 함께 끌려가 버린 것이다.

슈아악! 슈아악! 슈아악!

먹잇감을 발견한 배고픈 맹수들처럼 정령들이 봉란을 향해 쏘아져 갔다.

“차앗!”

놀람도 잠시, 봉란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정령의 몸통으로 파고들어 간 오른손을 뽑아내며 왼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둔탁한 소성이 정령의 몸통에서 터져 나왔다. 꼼짝도 하지 않던 오른팔이 그제야 빠져나왔다.

슈슈슈! 슈슈슈! 슈슈슈! 슈슈슈!

그사이 수십 마리의 정령이 뱀처럼 봉란을 감아 돌았다.

“타하!”

봉란은 양팔을 거칠게 휘두르며 방금 공격했던 정령의 몸통을 차고 회전했다.

캉! 캉캉캉캉! 캉캉캉!

가느다란 정령이 뎅겅뎅겅 잘려 나갔다.

하지만 한 번의 공격으로 정령을 모두 잘라 낸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의 공격에 잘리지 않는 정령이 뱀처럼 친친 감아 돌았다.

순식간에 봉란은 정령에 포박되고 말았다. 정령들은 봉란을 강하게 조였다.

“차아!”

봉란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전력을 다해 양팔을 내뻗었다. 그러자 그녀를 감아 돌았던 정령들이 느슨해지며 약간의 틈이 생겼다.

“타하!”

그녀의 전신에서 강기의 폭풍이 일었다.

전력을 다한 봉란의 무공은 대단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간 강기는 정령들을 가루로 만들었다.

그러자 약 반 장가량의 공간이 생겨났다.

슈슈슈! 슈슈슈슈! 슈슈슈!

하지만 그 공간은 금세 메워졌다. 수십 마리의 정령이 다시 봉란을 감아 돌았다.

“헉!”

두 번째 공격을 쳐 내려던 봉란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정령 중 하나가 허벅지 안쪽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올라오는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봉란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다급히 고개를 숙여 정령을 잡아챘다.

그녀가 잡은 정령은 가루로 변했지만 다른 정령들에게 공격 기회를 허용하고 말았다.

정령들은 빠르게 봉란을 감아 돌았다.

잠시 후 그녀는 정령들에게 둘러싸여 번데기처럼 변하고 말았다.

봉란은 정령들로 친친 감겨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향해 거대한 두께의 정령 하나가 쏘아져 갔다. 사람 얼굴 형태였던 정령은 앞으로 나아가면서 모양이 변하더니 검 형태가 되었다.

정령이 나아가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크아아아아!

검 형태의 옆면이 입처럼 쩍 갈라지며 괴성이 터져 나왔다.

“헉!”

정령들 사이로 밖을 바라보고 있던 봉란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현재 그녀는 온몸을 옥죄고 있는 정령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태였다. 앞에서 달려드는 검 모양을 한 정령을 막을 경황이 없었다.

“어디 있어요?”

봉란은 금장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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