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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237화 (237/524)

황금가 (237)

“참! 다시 말해 줄게요. 내 이름은 금장생입니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 살라며 아버지께서 지어 준 이름인데, 벽에 똥칠하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부하로 거느리게 됐네요.”

불여하의 머리를 다 말린 금장생은 박수를 가볍게 치면서 물러났다.

탁자 앞으로 간 그는 마법 주머니 안에서 커다란 보자기 하나를 꺼내 그 위에 놓았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안에 있는 물건을 꺼냈다.

안에서 나온 건 종이 뭉치였다.

“혹시 지필묵 어디 있는지 아는 분 있어요?”

금장생은 팔장군 일행을 보며 물었다.

―혈왕.

염라는 머릿속으로 신무를 불렀다.

금장생이 들어오기 전 자신들이 대화를 나눌 때 붓을 찾아온 사람이 신무였던 것이다.

―나는 저 자식 부하가 되겠다고 한 적 없습니다.

―우리가 죽음의 의식을 거행하기 직전, 우리를 깨우는 사람에게 우리를 종으로 부려 적을 없애라는 유언을 남겼네. 그 사실을 잊었는가?

―그거야 우리가 정신을 잃었을 경우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만일 지금처럼 멀쩡한 상태가 됐다고 하면 절대 그런 유언을 남기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튼 우린 유언을 남겼고 주공은 우리를 깨웠네. 따라서 우린 주공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네.

―지금 주공이라고 하셨습니까?

―주공을 주공이라고 부르는 건데 잘못됐는가?

―끙!

신무는 얼굴을 찌푸렸다.

―자넨 싫은 모양이군.

―절대 못 합니다!

신무는 버럭 소리쳤다.

“내가 하겠습니다.”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붓과 먹을 찾아다녔다.

잠시 후 세필 한 자루와 먹을 가지고 탁자로 돌아왔다.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았다.

실내에 아홉 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 가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금장생은 먹을 다 갈고 나서 백지 위에 천천히 글을 적어 나갔다.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시장조사다.

시장조사는 시간을 충분히 두고 꼼꼼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유동 인구를 파악하고 상권을 분석하고, 소비 주체는 어떤 연령층인지까지도 파악돼야 한다.

그것들 파악이 끝났으면 어떤 사업을 어느 정도 규모로 할 건지를 선택해야 한다.

두 번째로 파악해야 할 건 사업체가 들어설 장소의 부동산 향후 가치다.

사업 이익은 물건을 팔아서 얻은 실제적 이익과 부동산 가치가 올라서 얻는 잠재적 이익 두 가지가 있다. 설사 새로운 사업의 성과가 좋지 않다고 해도 부동산 가치가 오른다면 좀 더 오랫동안 사업을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났는데 실제적 이익이 나지 않는다면 그 사업은 접는 게 낫다.

그 모든 준비가 끝났으면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라. 그리고 사업 계획서를 작성해라.

사업 계획서에서 가장 중요한 건 투자 금액과, 투자 금액 대비 이익률이다.

이익률을 따질 때는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즉, 네가 평가한 항목 중 가장 낮은 점수로 계산해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 해서 육 개월 혹은 일 년 후 이익이 난다고 생각하면 사업을 시작해도 된다.

금장생은 백지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가장 위쪽에 사업 계획서란 글을 썼다.

그 아래쪽에는 쓴 건 상호였다.

상호는 만인물성 그대로였다. 업종은 도매업으로 적었다.

“만인물성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비자의 편중이지.”

지난 열흘 동안 조사를 한 후 파악한 점이다.

만인물성은 시장에 소매를 하기도 하지만 수익의 구 할이 대규모 거래, 즉 상단과의 거래에서 나온다.

그 결과 서역으로 가는 상단이 많으면 장사가 잘돼 수익이 많아지지만, 계절적인 요인이나 황명에 의해 서역과의 무역에 제약을 받게 되면 수익은 떨어진다.

그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더 이상 발전은 불가능하다.

그걸 해결하는 방법은?

지점

금장생이 사업 계획서 마지막에 쓴 글이었다.

문득 누군가 쳐다보는 듯한 기분에 고개를 들었다. 팔장군들이 전부 탁자 근처까지 다가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요?”

금장생은 물었다.

하지만 팔장군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맞다, 말을 못 하죠. 이건 만인물성을 인수했을 경우 득실을 따지기 위한 평가서라고 보면 돼요. 인수 가격은 최하 칠십에서 최대 이백만 냥까지예요.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것 같은데, 주인을 만나 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네요. 이로서 만인물성에 대한 조사는 끝났어요.”

금장생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어?”

금장생은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어느새 밖이 환하게 밝아 있었다.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면서 밤을 꼬박 새운 것 같았다.

“나 잠 좀 잘게요.”

금장생은 하품을 하며 침대로 향했다.

지난 열흘 동안 제대로 잔 적이 하루도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인수에 대한 협상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잠이 급격하게 쏟아졌다.

그는 침대로 가 엎어졌다. 곧 그의 코에서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이 침대로 들어가자 암노왕 염라가 책상 앞으로 갔다. 그리고 금장생이 밤새도록 썼던 것들을 꼼꼼하게 읽었다.

종이 뭉치를 다 읽고 난 그는 일행을 향해 글을 썼다.

주공은 무인이 아니고 장사꾼이네.

적사월이 물었다.

무슨 장사꾼의 무공이 그리 강하단 말입니까?

낸들 알겠는가? 아무튼 주공은 장사꾼이고, 이곳에 온 이유는 만인물성인가 하는 곳을 인수하기 위해서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나 봅니다.

금웅은 허공에 글을 썼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염라가 물었다.

전쟁 중이 아니라면 장사꾼이 무공을 익힐 리가 없잖습니까?

내 생각도 화왕과 같습니다.

해노왕 혁장운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전쟁 중인데 사업체를 인수하러 온다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그리고 그이가, 아니 주공이 써 놓은 글을 보면 서역을 오가는 상단 어쩌고 하는 내용이 있어요. 수천 리 떨어진 곳을 오가며 무역을 한다는 뜻인데, 그건 전쟁 중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에요.

이번에 글을 쓴 사람은 불여하였다.

그럼 팔왕께서는 전쟁이 끝났다고 보십니까?

혁장운이 물었다.

네.

불여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혁장운은 다시 물었다.

우리가 승리하지 않았다면 중원인인 주공이 자신의 의지로 사업을 하겠다고 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우리가 승리했다는 말이군요.

제 생각은 그래요.

다행이군요.

그렇죠. 세상을 위해서는 정말 잘된 일이죠.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건…….

불여하는 붓을 멈췄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자신들이 죽음을 택했던 건 무기가 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전쟁이 중원인의 승리로 끝났다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일단은 주공을 따라다니며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세.

염라가 허공에 글을 썼다.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서 가부좌를 했다.

불여하가 간 곳은 금장생이 자고 있는 침대 옆이었다.

―왜 저러는 겁니까?

적사월은 염라에게 물었다. 이번 질문은 붓이 아닌 머릿속 언어로 했다.

―닮아서 그런 거네.

―누굴 닮았다는 건데요?

―남편 가부연이지 누구겠는가?

―결혼을 했습니까?

―결혼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식도 둘이나 있었네.

―자식까지 있는데도 죽음을 선택했다는 말입니까?

―그 자식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다고 하더구먼.

―역시 그녀가 팔왕이 된 이유가 있었군요.

적사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팔왕이 되기 위해서는 강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세상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버릴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그런 희생정신이 있었다.

그래서 선대 왕들이 그녀를 팔왕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슬픈 현실이지.

―그런데 많이 닮았나 보네요.

―나도 그 녀석을 아는데, 얼굴은 물론이고 키까지 꼭 같네. 둘의 생김새로 보면 같은 사람이거나 쌍둥이가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하네.

―그 정도로 닮은 겁니까?

―그러네.

―팔왕을 본 저 자식은 어땠습니까?

―저 자식?

―나는 절대 주공이라고 부르지 않을 겁니다.

―그럼 저 자식을, 아니 저분을 주공이라 부르는 사람은 나와 팔왕 둘뿐이구먼.

―두 분이 주공이라고 부르는 것도 전 반댑니다.

―나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네.

―아무튼 전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저 녀석이 팔왕을 알아보았습니까?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했네.

―모른 척한다는 말입니까?

―모른 척한 게 아니라 정말 모르는 것 같았네.

―그럴 수도 있습니까?

―내가 아는 한 그런 경우는 한 가지뿐이네.

―그게 뭡니까?

―부활이네.

―부활이라고요?

―신족과 마족에게는 부활 능력이 있었네.

신족은 상급, 하급 할 것 없이 모두 부활이 가능하지만 마족은 최상위 마족 중에서도 조건을 갖춘 일부만 가능했다.

―그러면 염왕께서는 저 녀석이 부활한 신족이나 마족일 거란 말씀이십니까?

―그것까진 모르겠네. 겉으로 보기엔 주공은 완벽한 중원인이네.

―어쩌면 출생에 어떤 비밀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좀 더 지켜보면 뭔가 알지 않을까 싶네.

―그렇군요.

적사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몸이나 추스르세.

―그러지요.

염라와 적사월은 눈을 감았다.

그때 불여하는 금장생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갈등의 기색이 역력했다.

남편 가부연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특징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고환 아래쪽 있는 다섯 개의 점이다.

그 점은 오각형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내부를 줄로 그으면 별 모양이 된다. 그 점을 발견한 건 관계를 갖고 나서 몸을 닦아 줄 때였다.

고환 아래를 닦으려고 성기를 들췄는데 그때 점이 나타났다. 오각형을 이루는 점이 너무 신기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가부연은 모르고 있는 듯했다. 나중에 말해 줘야지 했는데 끝까지 점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집을 떠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그걸 확인하고 싶어졌다.

불여하의 시선이 금장생의 하체로 향했다.

허공섭물 수법으로 들어 올리고 바지를 벗긴 다음 성기와 고환을 한꺼번에 위로 올리면 확인이 가능하다.

―팔왕!

그때 염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젠가 기회가 오겠죠.’

불여하는 금장생에게서 물러났다.

앞으로 계속해서 함께 있을 텐데 급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 후로도 금장생은 죽은 듯이 잤다.

그가 잠에서 깬 건 저녁 무렵이었다.

“난 나가 봐야 합니다.”

금장생은 팔장군 일행을 보며 말했다.

‘우리도 밖으로 나가고 싶어, 자식아!’

해노왕 혁장운이 내심 소리쳤다.

“여러분은 여기서…….”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잠시 팔장군을 쳐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무기 전부 주세요.”

―저 자식이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적사월이 불여하에게 물었다.

―우리를 데리고 나갈 모양이에요.

―밖으로 나가려면 더더욱 무기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생각이 있으니까 달라고 하는 거겠죠.

불여하가 가장 먼저 궁을 금장생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모두 무기를 맡겼다.

금장생은 무기를 마법 가방 안에 집어넣고 무혼과 바타르가 머무는 곳으로 갔다.

하지만 무혼은 자리에 없었다.

“어디 갔습니까?”

금장생은 바타르에게 물었다.

“무공 익힌다고 처박혔다.”

“거기서 얼마나 더 강해지려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 않느냐.”

“하긴 그렇긴 하죠.”

금장생은 어깨를 으쓱했다.

“또 나가는 거냐?”

“약속이 있어서요.”

“바쁘구나.”

“아버지 말이, 바쁘게 살지 않으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하셨거든요. 그럼.”

금장생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팔장군들은 금장생의 시선을 피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도 전쟁을 하고 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팔장군들이 전쟁이 끝났다는 걸 확신한 곳은 야시장에서였다.

길을 따라 한 식경 정도 가자 불야성이 나타났다. 화려한 등으로 어둠을 몰아낸 그곳은 만인물성의 명물 야시장이었다.

차가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야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전쟁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팔왕. 그리고 승자는 우립니다.

염라가 격동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응?’

장신구를 파는 보석상을 바라보던 불여하의 눈이 살짝 커졌다.

보석상 옆에는 작은 골목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왜소한 자가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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