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36)
봉파륵
―멈춰요!
마노왕 적사월의 손이 금장생 머리 바로 위쪽에 왔을 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손을 멈춘 적사월은 문으로 시선을 주었다.
불여하가 이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나이가 예순두 살입니다, 팔왕. 그런데 이놈은…….
―적야를 씻어 주고 있는 거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심령을 지배하고 있는 건 이놈입니다. 즉, 이놈을 없애면 우린 금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만일 금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거죠? 아니, 우리 목숨이 그자와 이어져 있다면?
―이놈을 죽이는 순간 우리도 함께 죽을 수 있다는 겁니까?
―그럴 수 있다는 거지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
―끙!
적사월은 주먹을 펴고 팔을 들었다. 처음 금장생이 요구한 자세였다.
“다 됐습니다. 이제 팔을 내려도 됩니다.”
자신이 저승 문턱까지 다녀왔다는 걸 알 리 없는 금장생은 깨끗해진 적사월의 몸을 보고 흡족하게 웃었다.
그리고 바가지로 깨끗한 물을 떠서 적사월 머리부터 부었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서 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었다.
수건으로 몸의 물기는 제거했지만 머리는 완전히 말릴 수가 없었다.
“머리는 조금 있다가 말려 드릴게요. 옷 입고 나가세요.”
적사월은 옷을 입고 욕실에서 나갔다.
다음으로 몸을 씻은 사람은 화노왕 금웅이었다.
금웅 또한 적사월과 다르지 않았다. 금장생이 성기를 씻을 때는 주먹을 틀어쥐고 광분했다.
하지만 끝내 내려치지 않았다.
금웅에 이어 해노왕 혁장운, 전노왕 묵천야, 혈노왕 신무, 철노왕 고태백을 씻겼다.
사내들 중 마지막으로 씻긴 이는 암노왕 염라였다.
―이 녀석은 나와 같은 부륩니다.
염라는 여전히 문 앞에 서 있는 불여하에게 말했다.
―염야와 같은 부류라는 건 무슨 뜻이죠?
―얼굴이 너무 익어서 줄곧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녀석이 강신술사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나서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녀석의 직업은 장의삽니다.
―그이는 시체 다루는 것과는 상관없는 사람이에요.
―네?
염라는 의아한 눈으로 불여하를 보았다.
―염야는 부연을 알지 않나요?
―부연이라면…… 맙소사!
염라의 눈이 커졌다.
그제야 부연이란 이름이 떠올랐다.
가부연. 그는 불여하의 남편이었다.
녀석의 얼굴이 눈에 익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같은 부류라서가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염야의 눈에 익었던 거예요.
―그럼 부연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날 알아보지 못해요.
―정말입니까?
―네. 시선까지 몇 번 부딪쳤는데 그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어요.
―…….
염라는 말없이 불여하를 보았다.
그는 불여하가 얼마나 가부연을 그리워했는지 잘 알고 있다. 전장에서도 불여하는 가부연이 보고 싶어 몸부림쳤다.
그런 사람이 남편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을 터였다.
―혹시 그도 우리처럼 제압당한 걸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염라는 고개를 저었다.
―왜요?
―우리를 깨운 사람이 팔왕의 부군입니다. 그도 제압당했다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다 됐습니다. 옷 입고 나가세요.”
금장생의 말이 들려오자 염라는 자신의 옷을 입고 욕실에서 나갔다.
금장생은 욕조의 물을 전부 뺐다. 그러고는 통 하나를 가져와 자신 앞에 놓았다.
“사노왕은 들어오세요.”
그리고 불여하를 불렀다.
불여하는 욕실 안으로 들어와 금장생 앞에 섰다.
“옷을 벗으세요.”
금장생은 물통을 가리켰다.
한 명인데 물이 많이 있어야 하는 욕조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불여하는 옷을 벗었다.
곧 그녀의 나신이 드러났다.
그녀는 조마조마했다. 알몸을 보면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자신의 몸 중 남편이 좋아하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특히 듬성듬성한 음모를 좋아했다.
특이하게도 그녀는 다른 여자들처럼 풍성한 음모를 갖지 못했다. 마치 성긴 풀 한 포기를 보는 듯했다.
젊을 때는 그게 가장 큰 부끄러움이었고, 남들과 함께 목욕도 못 했다.
그런데 남편은 그걸 가장 좋아해 주었다. 자기 부인이 부끄러워하는 게 안타까워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는 정말로 소중한 꽃을 다루듯이 애지중지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곳을 보면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전과 단전 아래쪽에 심하게 얼룩이 져 있으니까 씻기다 보면 볼 수밖에 없다.
“저기로 들어가세요.”
금장생은 물통을 가리켰다.
불여하는 바로 물통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몸에 묻은 얼룩이 불리길 기다리며 빨래를 했다. 옷을 다 빨고 삼매진화로 말려 걸어 놓고 불여하의 머리를 감겨 주었다.
머리를 행구고 나서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런 다음 조두를 풀어 거품을 냈다.
거품이 풍성해지자 손을 내밀었다.
먼저 목을 꼼꼼하게 문질렀다. 체온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피부는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목을 다 문지르고 아래로 내려가려던 손이 우뚝 멈췄다.
보통 중원 여자들과 달리 불여하의 가슴은 쇄골 아래쪽에서부터 급격하게 부풀어 올랐다.
손을 내리면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가슴을 주물러 버리게 되는 셈이었다.
“여자를 씻기는 건 별론데.”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우세요.”
금장생은 한 걸음 물러나며 말했다.
불여하는 바로 누웠다.
드러누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가슴은 거의 형태를 잃지 않았다.
“나는 지금부터 염을 한다. 여기 누워 있는 건 시체다. 나는 시체에 묻은 오물을 씻는 중이다.”
금장생은 나직하게 중얼거리고는 불여하의 가슴을 문질렀다.
힘을 가하자 적당하니 일그러졌다. 그 상태에서 살살 문질렀다.
“끙!”
금장생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얼룩이 생각보다 쉽게 지지 않았다. 별수 없이 가슴을 움켜쥐고 빡빡 문질렀다.
멍이 들 정도로 틀어쥐고 빡빡 문지르자 비로소 닦였다.
“어?”
금장생의 눈이 커졌다. 불여하의 가슴에서 특이한 걸 발견한 탓이었다.
가슴 중앙, 즉 유두에 작은 고리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황금색 고리였는데, 옆으로 누워 있었던 탓에 가슴을 몇 번이나 보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왜 힘이 느껴지는 거지?’
금장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황금색 고리에서 힘이 느껴졌는데, 그건 다름 아닌 마력이었다.
그는 불여하를 보았다. 눈을 감고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내 고개를 숙이고 다시 가슴을 닦았다. 고리를 잡아당기지 않도록 조심했다.
가슴을 다 닦고 나서 배로 손을 옮겼다. 그리고 단전으로 향했다.
단전은 가슴보다 더 엉망이었다.
거의 검은색으로 변한 단전과 아래쪽을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혼자 씻으면 안 될까요?”
금장생은 물었다.
그러자 불여하는 손을 아래로 내려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만!”
금장생은 버럭 소리쳤다.
다른 곳은 몰라도 아래쪽은 씻으라고 할 게 아니었다. 얼룩을 씻는다며 문지르는 모습이 더 선정적이었다.
금장생은 제 손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조두를 듬뿍 받아 물에 적셔 거품을 잔뜩 냈다. 그리고 단전을 사정없이 문질렀다.
단전을 물들인 얼룩은 가슴보다 더 진득했다. 한참을 문지르자 비로소 살색이 드러났다.
그의 손은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풋!”
어느 순간 그의 입에서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중요한 곳 바로 위에 나 있는 풀 한 포기를 발견한 탓이었다.
대지 상태가 좋지 않은 듯, 풀은 손가락 한마디 정도로 짧았다.
피식 웃는 금장생과 달리 불여하는 긴장했다.
자신의 몸에서 가장 특이한 곳이고 남편 가부연이 좋아했던 곳이다. 그 특이한 음모라면 남편의 기억을 되살릴 거라고 믿었다.
“시체도 때론 염하는 사람을 즐겁게 해 주기도 하네요.”
금장생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그의 손길은 거침없었다. 정말로 시체라고 생각하는 듯, 중요 부위마저도 거칠게 문질렀다.
그곳을 씻는 데 한 식경이 걸렸다.
그곳에 이어 다리까지 씻기고 나서 일으킨 후 등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머리부터 물을 끼얹었다.
몇 번에 걸쳐 물로 헹군 다음 수건으로 닦았다.
“옷 입으세요.”
금장생은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후다닥!
그가 나가자 문 앞에 있던 팔장군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그들은 언제 문 앞에서 욕실 안을 훔쳐보았느냐는 듯 딴청을 했다.
금장생은 팔장군들을 찌르듯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팔장군들이 변한 것 같은데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한 데를 씻겨 주고 났더니 너무 예민해진 모양이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한편으로 가 섰다.
그리고 팔장군을 보며 말했다.
“일렬로 서세요.”
그의 말이 떨어지자 팔장군들은 재빨리 움직여 횡대로 섰다.
“모두 그 자리에 앉으세요.”
척! 척척!
팔장군들은 거의 동시에 자리에 앉았다.
그사이 들어온 불여하가 맨 마지막에 앉았다.
―알아보던가요?
염라가 불여하에게 물었다.
―아뇨.
불여하는 금장생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전혀?
―네.
―거참! 얼굴은 분명히 내게 쥐어 터진 가부연 그녀석이 맞는데…….
―그이를 때렸어요?
―험! 두 분이 결혼하기 전이었습니다. 팔왕께 뭘 해 드릴 거냐고 물었는데 녀석이 하는 말이 글쎄 ‘나는 불알 두 쪽 말고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하잖습니까? 그래도 나도 모르게 그만…….
―염야 성격상 한 번으로 끝나진 않았을 테고, 많이 때렸나요?
―정신을 차려 보니 기절한 채 구석에 찌그러져 있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요?
―치료해 줬지요 뭐.
―흥!
불여하는 염라를 흘겨보았다.
―그런데 정말 못 알아보던가요?
―네.
―그럼 닮은 사람 아닐까요?
―닮아도 저렇게 닮으면 문제 있는 거잖아요.
―그러지 말고 직접 물어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조금만 더 상황을 지켜보고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설사 가부연이 아니라고 해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우리 옷을 다 빨아 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은 머리까지 말려 주고 있잖습니까.
염라는 턱으로 금장생을 가리켰다.
금장생은 약한 바람을 이용해서 팔장군들의 머리를 말려 주고 있었다.
철노왕 고태백의 머리를 말려 준 금장생은 염라 뒤에 섰다.
“아무래도 당신은 나와 같은 과 같습니다.”
‘내 생각도 너와 같다.’
염라는 내심 말했다.
“나는 죽은 자를 강시로 제강하는 일을 합니다.”
‘강시라고?’
염라는 깜짝 놀랐다.
강시라는 말을 지어낸 사람이 바로 자신이다.
강시는 술법으로 만들어 낸 죽지 않는 자, 즉 술법으로 만든 언데드라는 개념까지만 잡았다.
하지만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해 사장시키고 말았다.
그런데 뒤에 있는 자가 강시라는 말을 한 것이다.
‘가만, 혹시 우리에게도…….’
문득 든 생각이었다.
“맞습니다. 당신들도 지금 강시 상탭니다. 오늘 몸에서 흘러나온 건 강시의 마지막 단계인 인시로 가기 위한 탈피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환골탈태를 하게 되면 껍질이 남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치 염라의 내심을 읽은 것처럼 금장생은 팔장군의 몸 상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강시가 뭔지 아십니까?
염라는 불여하에게 물었다.
―처음 들어요.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염라는 다른 이들에게 강시가 뭔지 물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나중에 창안된 방법인 모양입니다.
―나중이란 건 무슨 뜻이죠?
―그때 우리 암가에서는 죽지 않는 자들보다 만들어 내기 쉬우면서도 더 강한 어떤 존재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심했습니다.
―언데드와 싸울 수 있는 전사를 만들 생각이었군요.
―그렇습니다. 그 존재의 이름을 강시라고 지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시도는 다 실패했고, 강시 창조 계획은 사장됐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강시라는 말을 언급한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팔왕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자는 가부연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럼 누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