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83화 (83/524)

황금가 (83)

낙양엔 번화가가 여럿 있다.

각 번화가에는 많은 기루가 있고, 기루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건달들이 기생한다.

하락파의 두목 익거성도 그런 부류 중 한 명이었다.

익거성이 두목인 하락파의 활동 무대는 선착장 부근이었다. 그는 인력사人力社라는 가게를 내고 선착장 주변의 주루와 기루, 객잔 등에서 보호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받고 있다.

전욱이 인력사로 찾아간 건 금장생을 만난 이틀 후였다.

그가 이런저런 건달들을 후보로 올려놓고 고민을 하다가 익거성을 택한 이유는 익거성의 과거 때문이었다.

익거성은 과거 장래가 촉망되는 무림 후기지수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무공을 배운 곳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문파였다.

그랬던 그가 무림을 등지게 된 건 부상 때문이었다. 동기들과 비무를 하다가 단전을 크게 다치게 되었고, 그만 무공을 잃고 말았다.

대문파 수뇌들은 치료만 잘하면 나을 수 있을 거라고 위로했지만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단전을 다치고 일 년 만에 그곳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정착한 곳이 낙하 주변이었다.

비록 내공을 잃은 상태라고 하지만 그의 실력은 빼어났다. 빠르게 하락파를 장악해 나갔고, 머지않아 두목이 되었다.

쿵쿵쿵!

그는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인력사 내부 전경이 드러났다.

좌우측으로 탁자가 놓여 있고, 양쪽 탁자 끝부분 중앙에 커다란 탁자 하나가 놓였다.

각 탁자에는 척 보기에도 험상궂게 생긴 자들이 앉아 있었다. 무기를 손질하는 자도 있고, 손톱을 다듬는 자도 있었다.

가장 큰 탁자에 앉은 익거성은 얼굴은 수수했지만 덩치는 컸다. 드러난 팔뚝엔 용 문신이 새겨져 있었는데, 금세라도 승천할 것만 같았다.

“어떻게 왔소?”

문을 열어 준 자가 물었다.

“일을 맡기기 위해 왔습니다.”

“어떤 일이오?”

“그게…….”

전욱은 말끝을 흐렸다.

“모두 나가 있어라.”

익거성은 눈치가 빠른 자였다. 그는 큰 건이라는 느낌이 오자 곧바로 부하들을 물렸다.

“망치 넌 차 한 잔 가져오고.”

“알았소.”

건달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전욱과 익거성 앞에 차가 놓였다.

“이제 말해 보시오.”

익거성은 차를 마시며 말했다.

“나는 망산 근처에 있는 장상문의 총관 전욱입니다.”

전욱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장상문이면 장의사?”

“그렇습니다.”

“우리 문파에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장의사가 웬일이오?”

“청부를 하고 싶습니다.”

“청부?”

“네.”

“어떤 청부를 하고 싶은 거요?”

“망루 루주를 처리하고 싶습니다.”

“처리라……. 그자를 북망산에 묻어 달라는 거군.”

이번 질문에 전욱은 대답하지 않았다. 긍정의 표시였다.

“얼마 내겠소?”

익거성은 물었다.

“만 냥을 내겠습니다.”

“월급을 받던 처지에서 주는 입장으로 바뀌는데 만 냥이면 너무 적은 거 아니오? 더구나 내가 알기론 낙양에서 가장 알짜배기 사업이 장의사일 텐데.”

지금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전욱이 살인 청부를 하기 전까지 익거성은 낙양에 장의사가 있다는 것조차도 몰랐다. 보통 시골에서 그런 것처럼 이곳 사람들도 동네 사람들 중 누군가가 나서 장례를 치르는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청부를 하러 온 자가 만 냥을 내겠다고 하였다. 갑자기 장의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만 냥을 내겠습니다.”

‘그럼 그렇지.’

익거성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알았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준비한 건 이것뿐입니다.”

익거성은 이백 냥을 꺼내 익거성 앞에 놓았다.

“얼마요?”

익거성은 전표를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이백 냥입니다.”

“푼돈이군.”

“이번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 주시면…….”

“알았소.”

익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전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망루를 주시하고 있으시오. 일이 끝나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요.”

“알겠습니다.”

전욱은 밖으로 나갔다.

익거성은 전욱이 두고 간 전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세었다.

“먹물!”

돈을 품속으로 집어넣고 밖을 향해 소리쳤다.

“네.”

대답과 함께 키 작은 사내가 들어왔다.

이치곤이란 이름이 이 사내는 하락파 내에서는 공부를 제일 많이 해 먹물이라 불렸다.

“부르셨습니까.”

“북망산 근처에 있는 장의사에 대해 조사를 해 와.”

“어느 선까지……?”

“전부 다 해.”

“알겠습니다.”

이치곤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장의사에 대핸 조사 결과가 나온 건 닷새 후였다.

“말해 봐.”

익거성은 차를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매월 거래되는 금액은 오천 냥 정도고, 그중 순수익은 이천 냥입니다.”

“연간 육만 냥을 벌어들인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우리 조직의 일 년 예산이 얼마나 되지?”

“이만 냥입니다.”

“그런 업체를 하나 가지고 있으면 수입이 두 배로 늘게 되는구나.”

“우린 장의업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굳이 우리가 운영할 필요는 없지. 그쪽 분야를 잘 아는 자에게 시키면 되니까.”

“그럼 우린 월 삼천오백 냥을 벌어들이게 되겠군요.”

“그게 무슨 소리냐?”

“장상문과 같은 상황인 업체가 한 곳 더 있었습니다.”

“그게 어딘데?”

“천당사란 업쳅니다.”

“천당사도 사주가 죽었단 말이냐?”

“장상문 문주 이추혼과 비슷한 일을 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시체를 가져온 자는 망루의 주인 장생이고요.”

“이번에도 장생이야?”

“네.”

“혹시 그자가 둘을 죽인 거 아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업체의 사장이 한꺼번에 죽은 것도 이상한데 그들을 강시로 제강해 온 자가 경쟁 업체 사장이다. 그리고 죽은 두 사장은 유언으로 경쟁 업체 사장에게 자신들의 사업체를 넘겼다.

이건 아무리 좋게 봐준다고 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

“이추혼과 구육상은 무인이었거든요. 반면에 망루 사장은 무공을 익힌 적이 없고요.”

“흠! 그렇다 치고. 장상문과 천당사를 우리 걸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먼저 일하는 자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다음엔?”

“두 업체 총관을 나쁜 놈들로 만들고 망루의 주인을 없애는 겁니다. 그런 다음 망루 주인의 몸에서 나온 패를 가지고 두 업체로 가는 겁니다.”

“우리 대신 업체를 운영할 자는 누구로 세울 건데?”

“삼인자에게 주어야지요.”

“좋아, 바로 작업해.”

“알겠습니다, 두목.”

이치곤은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전욱과 양익을 몰아내기 위한 작업은 장상문과 천당사 일꾼들을 만나 술자리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자 전욱과 양익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그건 바로 두 사람이 문주와 사주 모르게 횡령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끙!”

전욱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그 말을 처음 들은 며칠 전이었다.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문도들의 말을 엿듣게 됐는데, 자신이 일 년에 수천 냥씩 횡령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뛰어나가 절대 아니라고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계속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문도들이 자리를 뜨자 비로소 밖으로 나왔다.

그 후로 숨어서 문도들을 살폈다.

그런데 그자들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다른 문도들 또한 모이기만 하면 횡령 이야기를 했다. 삼인자 장운보가 모함을 하는 게 분명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하지만 증거를 잡아내면 네놈은…….”

전욱은 주먹을 그러쥐었다.

―무슨 일이냐?

그때 전욱의 귓전으로 전음이 흘러들었다.

‘헉!’

전욱은 내심 헛바람을 들이켰다.

문주가 죽은 후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사자 방문 날짜를 깜빡하고 만 것이다.

‘빌어먹을!’

그는 고개를 돌렸다. 안쪽 장막 뒤편에 사자가 와 있었다.

“오셨습니까?”

그는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추혼이 죽었습니다.”

―그랬구나.

‘응?’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전욱의 눈이 살짝 커졌다.

사자의 말투에서 문주의 죽음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

“이추혼의 임종을 지켰던 자가 있습니다. 장생이란 잔데, 이추혼이 죽기 직전 그자에서 장상패를 넘긴 모양입니다.”

―그자에게 장상문을 넘겼단 말이냐?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우리 장상문뿐만 아니라 천당사 사주도 그자를 후계자로 택한 모양입니다.”

―만일 그자가 문주가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고 보느냐?

“현재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많은 지장을 받을 겁니다. 그럴 바엔 제가…….”

―네가 문주가 되는 게 더 낫다는 거냐?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단주께서는 문주가 되는 것보다 총관으로 있는 게 우리 일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셨다.

“이추혼이 살아 있다면 저도 문주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죽은 이상…….”

―문주 자리를 맡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우린 널 도와줄 수 없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다만…….”

―승인만 해 달라는 거냐?

“네.”

―청부를 할 참이냐?

“선착장에는 돈만 쥐여 주면 모든 일을 다 해 주는 해결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생 그자를 없애는 청부를 하겠다는 거냐?

“네.”

이미 청부를 했지만 굳이 보고하지 않았다.

―그런데 장생이란 이름이 귀에 익구나.

“문주와 함께 강시 운반 일을 맡았던 자들 중 한 명으로, 망루 루줍니다.”

―이추혼과 구육상은 죽었는데 그자만 살아왔다는 거냐?

“네.”

―…….

사자는 생각에 빠졌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전욱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모르는 뭔가를 사자는 알고 있는 눈치였다.

―보름 후에 물건이 들어온다.

“물건의 양은 얼마나 됩니까?”

―쉰 개다.

“많군요.”

―늘 그랬던 것처럼 최대한 은밀하게 처리해야 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욱은 고개를 숙였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어두운 밤, 열 대의 수레가 천천히 장상문으로 다가갔다. 각 수레의 마부석에는 방갓을 깊숙이 눌러쓴 자들이 타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장상문 후문이었다.

후문으로 들어간 수레는 허름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겉모습은 허름했지만 창고는 상당히 컸다. 열 대의 수레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남았다.

수레가 자리하자 방갓을 쓴 자들이 내렸다.

“수고들 했소.”

전욱은 마부들에게 인사를 했다.

“수고는 무슨……. 여기에 수결해 주십시오.”

방갓인은 종이를 내밀었다.

전욱은 바로 수결을 했다.

늘 있는 일인 듯, 뒤편 탁자 위에는 붓과 먹이 준비돼 있었다.

“그럼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수결받은 종이를 집어넣은 방갓인은 전욱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창고에서 나갔다.

“천수!”

전욱은 부하를 불렀다.

“네.”

커다란 덩치 사내가 전욱 앞으로 달려왔다.

“이 관들을 서쪽 사당으로 옮겨라.”

“알겠습니다.”

천수라고 하였던 사내는 안쪽에 있던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곧 수레는 창고를 떠나 북망산으로 향했다.

전욱은 수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수레 운반 건은 문주도 알고 있었다. 처음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언제부터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상부에서 조치를 취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문주에게 묻지 않았다. 하지만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진작 문주가 될 걸 그랬네.”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리고는 창고를 나섰다.

반 시진 후 그는 북망산 동편 오부 능선 지점에 당도했다.

관들이 쌓여 있는 곳은 낮은 언덕 앞 평지였다. 그곳엔 사당 한 채가 서 있었다.

먼저 온 자들은 관을 수레에서 내려 사당 안으로 옮겼다.

“끝났습니다.”

“경계 서는 자를 빼고 나머진 돌아간다.”

“돌아간다!”

천수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잠시 작업하던 자들은 수레를 끌고 돌아갔다.

그들을 지켜보던 전욱은 안으로 들어갔다.

사당 안에는 수십 개의 관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전욱의 시선이 안쪽으로 향했다. 조금 전 들여온 관이었다.

그는 관들 중 하나를 슬쩍 밀어 보았다. 안에 시체가 들어 있는 듯, 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 일은 여기까지지.”

이곳에 있는 관들의 내용물은 며칠 안에 감쪽같이 사라질 것이다.

그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수고해라.”

경계를 서는 자들을 향해 짤막하게 말하곤 바닥을 찼다.

그가 떠나고 한 식경 후였다.

퍽! 퍽퍽!

경계를 서던 자들의 수혈에서 미약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함! 갑자기 졸음이…….”

“그러게. 아함!”

경계를 서던 자들은 하품을 하더니 풀썩 쓰러져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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