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82)
그 남자의 과거
들어갈 때 찍었던 발자국을 더듬어 밖으로 나왔다.
동굴에서는 이추혼과 구육상의 영혼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 떠났습니까?’
금장생은 이추혼의 영혼을 보며 물었다.
―자네를 잡으러 온 자들을 말하는 건가?
‘그들도 있고, 나와 함께 다녔던 일행도 있거든요.’
―모두 다 떠나고 이곳엔 아무도 없네.
‘잘됐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몸은 어디 있습니까?’
―계단 위 동굴에 있네.
‘가시죠.’
금장생은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 자네 무공을 익혔구먼.
그제야 금장생이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이추혼이 말했다.
‘어쩌다가 익히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감쪽같이 속였구먼.
‘제가 무공을 익혔다는 건 황상 총관도 모릅니다.’
―앞으로도 계속 속일 셈인가?
‘강시를 운구하는 데에는 굳이 무공이 필요 없으니까요.’
―그렇긴 하지. 저기 있네.
이추혼의 영혼은 자신의 시체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곳으로 간 금장생은 이추혼과 구육상의 옷을 벗기고 강시로 제강한 후 이혼대법을 펼쳐 이추혼과 구육상의 영혼이 자리 잡을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제 가 볼까요?’
―고맙네.
―고맙네.
이추혼과 구육상의 영혼은 감사의 인사를 했다.
‘천만에요. 제 일인데요, 뭐.’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천산에서 낙양까지는 강시를 데리고 가는 길은 멀었다.
금장생이 낙양에 도착했을 때는 초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초여름에 망루를 나섰으니까 거의 삼 개월 만에 돌아온 셈이었다.
낙양은 떠나기 전과 다름없었다. 내부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겉모습은 그랬다.
대장간에 들러 도刀를 맡기고 곧바로 북망산으로 향했다.
“그것도 집이라고…….”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사실 망루는 그리 오래 머물렀던 곳도 아니다. 정을 붙이기도 전에 일을 맡아 변황에 다녀왔다.
그런데 망루를 보자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갑시다.”
금장생은 혈종을 흔들며 걸음을 재촉했다.
낙양과 마찬가지로 망루도 달라진 게 없었다.
쿵쿵쿵!
문 앞에 선 금장생은 힘껏 두들겼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천야가 나왔다.
“사장님!”
천야는 반갑게 금장생을 불렀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금장생은 방긋 웃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천야는 황급히 문을 열었다.
금장생은 이추혼과 구육상의 강시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도착하신 겁니까?”
금장생을 따르며 천야가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곧 안으로 들어갔다.
“차 드시겠습니까?”
“네.”
금장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천야는 차를 내왔다.
“일은 무사히 마치신 겁니까?”
그리고 금장생 건너편으로 앉으며 물었다.
“계약했던 일은 잘 마무리됐습니다.”
“그럼 밖에 있는 강시들이…….”
“그들은 계약 건과는 상관없습니다.”
“강시들의 얼굴이 눈에 익던데, 혹시 제가 아는 사람입니까?”
“장상문의 문주 이추혼과 천당사의 사주 구육상입니다.”
“저, 정말 그들입니까?”
천야는 깜짝 놀라 물었다.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어쩌다가…….”
“이번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일을 시킨 자들이 살인멸구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럼 사장님은?”
“저도 죽을 뻔했는데 어찌어찌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이추혼 대협과 구육상 대협이 북망산에 묻히고 싶다고 해서 제강하여 데려온 거고요.”
“북망산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면, 두 분의 임종을 지키신 겁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흠!”
천야는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그는 입을 열었다.
“혹시 시체를 장상문과 천당사로 운구해 줄 겁니까?”
“두 사람이 남긴 유언도 집행해야 하니까, 데려다줘야겠지요.”
“유언요?”
“만일 총관이 장상문 총관이라면 어느 날 갑자기 경쟁사의 사장이 강시가 된 문주를 데려와서는 ‘당신 문주가 죽기 전에 장상문을 내게 넘겼소.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여기 주인이오.’라고 하면 ‘네 그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그게…….”
천야는 말끝을 흐렸다.
“무리겠죠?”
“정말로 그분들이 사장님께 모든 걸 넘기겠다고 했습니까?”
“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 같은 건…….”
“문주를 나타내는 물건을 가져가라고 해서 받기는 했는데, 그것들을 내놓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 같아서요.”
“사장님을 살인자로 볼 수도 있다는 겁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럴 겁니다.”
“그렇다고 두 분이 내게 넘긴 걸 포기할 수도 없잖습니까?”
“두 분이 지니고 있던 것 말고 좀 더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천야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총관도 제가 의심스러운 모양이네요.”
“한 곳도 아니고 두 곳을 전부 사장님께 맡겼다는 게…….”
“그게, 귀신을 만났기 때문에…….”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귀신을 본다는 사실을 천야가 이해할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네?”
천야의 눈이 커졌다.
“아, 아닙니다.”
“저, 정말 귀신을 보십니까?”
천야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게…….”
“사실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맞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제 눈에는 귀신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 대협과 구 대협의 입종을 지킨 게 아니라 영혼에게 부탁을 받아서 강시로 제강해 데려온 겁니다. 그 과정에서 장상문과 천당사를 제게 주기로 했고요.”
“그러니까 사장님은 귀신과 계약을 한 거군요.”
“정확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그분들에겐 가족이 없습니까?”
“없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그분들, 그러니까 귀신들과 대화가 가능합니까?”
“총관 좌우측에 앉아 있습니다.”
“끙!”
천야는 얼굴을 찌푸렸다.
―일단 총관을 여기로 부르게.
―먼저 총관을 부르게.
이추혼과 구육상의 영혼이 동시에 말했다.
“불러서는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총관과 우리만 알고 있는 비밀을 알려 주겠네.
“그런 게 있으면 지금 말해 주십시오.”
―알았네. 그러니까…….
이추혼과 구육상의 영혼은 그와 총관만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상세하게 말해 주었다.
“알았습니다.”
두 영혼의 이야기를 듣고 난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야를 보았다.
“내일 저녁에 장상문 총관을 불러 주십시오.”
“따로 만나시겠습니까?”
“그래야지요.”
“알겠습니다.”
천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망루 대문 앞에 선 전욱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망루 주인이 자신을 청한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만나 보면 알겠지.”
그는 대문을 힘껏 두들겼다.
그로부터 일각 후 전욱은 접객실에서 금장생과 마주 보며 앉았다.
“상주께서 나를 부른 용건이 뭡니까?”
이곳이 황상이라는 걸 알고 있는 전욱은 금장생을 상주라고 불렀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하시니까 나도 바로 대답하겠습니다. 이추혼 문주께서 장상문을 내게 넘기셨습니다.”
“……!”
전욱은 두꺼비처럼 눈을 껌뻑껌뻑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추혼 문주께서 장상문을 내게 넘겼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상주가 우리 장상문의 문주가 됐다는 말씀이십니까?”
“쉽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우리 문주께서는 돌아가셨겠군요.”
“그렇습니다.”
“상주께 유언을 남기셨고요.”
“이걸 주셨습니다.”
금장생은 장상문의 문주를 나타내는 패를 탁자 위로 올려놓았다.
“이걸 내놓으면 내가 순순히 문주로 인정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것 같았으면 장상문으로 바로 쳐들어갔겠지요.”
“하면 내가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아시겠군요.”
“그래서 직접 모시고 왔습니다.”
금장생은 혈종을 흔들어 이추혼을 불렀다.
“세상에.”
강시가 된 이추혼을 본 전욱의 입이 쩍 벌어졌다.
조금 전 죽었냐고 했을 때 금장생이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믿지 않았다. 그런데 문주가 정말로 시체가 돼 나타난 것이다.
“저, 정말 죽었군요.”
“죽기 직전 강시로 제강해서 여기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문주님의 사인은 뭡니까?”
“여길 보십시오.”
금장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추혼의 옷을 젖혔다. 그러자 피에 젖은 가슴이 나타났다.
“심장을 찔렸군요.”
“단숨에 찔렸습니다.”
“누가 그랬는지는 아십니까?”
“우린 강시를 데리고 천산으로 갔습니다. 문주가 변을 당한 곳은 우리의 목적지였던 천산입니다.”
“일을 시킨 자들이 살해했다는 말 같은데 맞습니까?”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살인멸구를 했다는 건데, 상주께서는…….”
“나는 가장 늦게 천산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두 강시는 있는데 이 문주와 구 사주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나름대로 준비를 했습니다.”
“살인멸구를 피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좋습니다. 상황은 대충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가 없습니다.”
“뭘 못 믿는다는 겁니까?”
“상주가 임종을 지켰다는 걸 믿지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문주께서는 상주를 만나기 전에 이미 돌아가셨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전 총관은 내가 죽은 시체에서 이 패를 꺼낸 후 장상문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겁니까?”
“그렇다고 단정하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전 총관 사타구니 안쪽에 손톱 크기의 점이 있고 그 점에 털 네 개가 나 있다는 것 말입니다. 이 문주께서 말씀하시길 전 총관은 그 털을 무척 소중하게 여기는데, 원래는 다섯 개였는데 잘못해서 하나가 빠져 네 개가 됐다고요.”
“그, 그건…….”
전욱의 눈이 커졌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문주와 자신 그리고 부인뿐이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망루의 주인이 알고 있었다.
그것까지 알고 있다면 이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가 전부 가지겠다는 건 아닙니다. 일하시는 분들을 내쫓을 생각도 없고요. 그리고…….”
금장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나직하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했다.
그로부터 반 시진 후, 전욱은 활짝 웃으며 일어났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상주님.”
“상주가 아니라 회장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전욱은 허리를 구십 도로 꺾었다.
“잘해 주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전욱은 다시 인사를 하고 방에서 나갔다.
그가 나가고 나자 천야가 안으로 들어왔다.
“전 총관이 활짝 웃으며 나가던데, 일이 잘 풀린 겁니까?”
천야는 물었다.
“앞으로는 전 총관이라고 하지 말고 전 사장이라고 부르십시오.”
“전 사장요?”
“장상문의 총지분 중 삼 할을 가졌으면 사장이라고 불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전 총관에게 이익의 삼 할을 주기로 하셨습니까?”
“네.”
“합의를 본 거군요.”
“이익의 삼 할과 장상문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이면, 크게 손해나는 건 아니지요.”
“그렇군요.”
천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고개만 끄덕였을 뿐 얼굴엔 미덥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내일은 천당사 총관을 만나겠습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요?”
“천당사 총관은 양익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괜찮은 사람 같군요.”
금장생은 싱긋 웃었다.
다음 날 저녁 그는 양익을 만났다. 양익에게도 전욱과 같은 조건을 제시하였고, 그는 만족해하며 돌아갔다.
‘어렵지 않게 끝났네요?’
금장생은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곳엔 이추혼과 구육상의 영혼이 있었다.
―그들을 믿지 않는군.
이추혼의 영혼이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 친구들과 협상을 하기 전에 나는 자네에게 금고 위치를 말해 주었네. 그런데 자넨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네.
‘이런 협상에 돈이 끼게 되면 복잡해지거든요. 없던 욕심이 생겨날 수도 있고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는 건가?
구육상의 영혼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그 둘을 믿지 않는 건 무엇 때문인가?
‘두 분 때문입니다.’
―우리?
‘전욱과 양익은 다른 곳도 아니고 장의사에서 근무하는 자들이며 총책임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시체는 밥줄입니다. 경외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길가의 돌멩이 취급해서도 안 되는 겁니다. 하물며 십 년 넘게 모신 주인의 시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그런데 그 둘은 두 분의 시신을 어찌할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사고를 가진 자들이었다면 장례 절차를 먼저 논의했을 거라는 건가?
이추혼이 물었다.
‘그렇죠.’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건 곧 두 사람의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들어차 있다는 걸 뜻합니다. 이를테면, 어떻게 하면 장상문이나 천당사를 자신의 걸로 만들 수 있을지 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런 자들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되지요.
금장생은 서늘하게 웃으며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