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71화 (71/524)

황금가 (71)

“응?”

서천마부의 눈이 커졌다.

상대가 강한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검을 뽑아 들자 조금 전 평가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는 강한 자가 아니라 강한 걸 넘어선 절대자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주윤보뿐만이 아니었다. 독고랑 또한 같은 생각을 했다.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독고랑은 주윤보에게 전음을 보냈다.

―우리 앞에서 저 정도 기세를 뿜어낼 수 있는 무인은 무림십패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오.

주윤보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하면 저자는…….

―생김새로 보아 척사랑이 분명하오.

주윤보는 단언하듯 말했다.

마가의 서천장 적지영의 남편인 주윤보의 직위는 대외사였다. 대외사는 가문 외부 일을 담당하고, 외부 일 중에는 중원을 살피는 것도 포함돼 있다.

임무가 그렇다 보니 중원 무인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검의 한 명인 천사란 말이오?

독고랑은 깜짝 놀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그렇소.

―나도 그자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데…….

독고랑은 척사랑의 얼굴을 살폈다.

그가 과거에 본 척사랑의 얼굴은 갸름하면서도 강인했다. 몸매 또한 당당했다.

그런데 앞에 있는 자는 여자처럼 머리를 풀었을 뿐 아니라 몸매도 왜소하다. 저런 자가 척사랑이란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머리를 틀어 올려 묶고 몸을 부풀려 보시오. 그럼 척사랑의 모습이 보일 거요.

독고랑은 주윤보가 말한 대로 했다.

‘맙소사!’

그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해졌다.

주윤보 말대로 하자 정말로 척사랑의 모습이 나왔다.

물론 완전하게 일치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저런 절대 강자는 천사 척사랑뿐이었다.

―저자가 왜?

―저자가 왜 여기 있는지 하는 건 문제가 아니오.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거요?

―저 정도 위치에 있는 자는 절대 혼자 다니지 않는다는 게 문제요.

―그럼?

“크악!”

“아악!”

“으아악!”

느닷없이 후미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저, 적입니…… 아악!”

“타하!”

그리고 척사랑의 입에서도 기합이 터져 나왔다.

척사랑은 오른발을 내밀어 디디면서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와 주윤보 일행과의 거리는 삼 장이었다.

스아악!

검탄강기 세 개가 세 사람을 향해 밀려갔다.

엷은 푸른색을 띤 검탄강기는 어떻게 보면 커다란 낫 형태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거대한 발톱 모양 같기도 했다.

그다지 특이할 게 없는 것 같은 검탄강기였지만 내재된 힘은 가공했다.

검탄강기가 쏘아져 가는 아래쪽 땅에는 두 자 깊이의 자국이 남았다. 마치 거대한 괴물이 발톱으로 긁어 버린 듯한 자국이었다.

“고, 공룡조恐龍爪!”

주윤보는 비명처럼 소리쳤다.

바닥에 깊은 자국이 남는 검법은 공룡이 발로 긁어 버린 것 같다고 하여 공룡조란 특이한 이름을 얻었는데, 천사 척사랑의 무공이었다.

‘저, 전력을 다해야 한다!’

주윤보는 전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최강 무공을 펼쳤다.

다른 두 명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전력을 다했다.

척사랑과 주윤보 일행이 펼친 무공이 중간 지점에서 맞닥뜨렸다.

콰앙! 콰앙! 콰앙!

마치 벽력탄이 터지는 듯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크윽!”

“커억!”

“으윽!”

뿌연 흙먼지 속에서 나직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곧 흙먼지가 걷히고 장내 상황이 드러났다.

주윤보 일행은 무릎을 꿇고 피를 토하고 있는 반면 척사랑은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세 사람의 합공에도 불구하고 척사랑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타하!”

“차하!”

“이얍!”

그 기회를 틈타 세 사람의 부하 중 몇 명이 척사랑을 향해 몸을 날렸다.

“비열한!”

척사랑의 눈초리가 사정없이 치켜 올라갔다.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상관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은 경우엔 끼어들지 않는 게 강호 불문율이다.

그 불문율을 어기고 몸을 날려 오는 자들을 보자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쥔 검이 몸을 날려 오는 사내들을 가리켰다.

우뚝!

빠르게 나아가던 사내들의 몸이 뭔가에 막힌 것처럼 허공에서 멈췄다.

퍽! 퍽퍽! 퍽퍽퍽! 퍽퍽퍽!

그리고 화탄을 삼킨 것처럼 폭발했다.

허공에서 폭발한 자들은 비명도 내지르지 못했다.

“물러나라! 공격하지 마라!”

주윤보는 뒤편으로 물러나며 고함을 내질렀다.

척사랑이라는 게 확실해진 이상 공격하는 건 자살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악연을 맺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 목표는 강신술사와 강시다. 임무에 집중하라!”

그가 다시 소리치자 칠왕가 무인들은 빠르게 물러났다.

“올 때는 너희 의지로 왔을지 모르지만 가는 건 안 된다!”

차갑게 소리친 척사랑이 몸을 날렸다.

곧이어 그의 검에서 가공할 기운이 쏟아져 나갔다. 그 기운은 곧 거대한 발톱 모양이 돼 칠왕가 무인들을 휩쓸었다.

퍽! 퍽퍽퍽! 퍽퍽!

“크악!”

“악!”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죽여라!”

“없애라!”

“아악!”

“으아악!”

“크아아악!”

비명은 척사랑이 있는 곳에서만 나는 게 아니었다. 칠왕가 후미, 즉 천산 방향에서도 비명이 쉬지 않고 들려왔다.

칠왕가 무인들을 없애고 있는 자들은 척사랑을 호위해 온 호위대였다.

중간에 낀 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우리가 맡는 수밖에 없을 것 같소.”

주윤보가 독고랑과 파극을 보며 말했다.

“대천좌는 어디 간 거요?”

독고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헌원중천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강신술사와 강시를 쫓아갔겠지요.”

“그렇군요.”

독고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힘껏 그러쥐었다.

“너희 세 명이 날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척사랑은 차갑게 말하며 세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무림십패가 중원 최강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주윤보는 전 내공을 끌어 올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네놈들이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릴 수 있는 그런 무인들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파앗!

천천히 걷던 척사랑의 속도가 느닷없이 빨라졌다.

“타하!”

순식간에 일 장 거리를 두고 선 척사랑은 검을 걷어 올렸다.

쿠쿠쿠쿠!

땅이 깊게 파이면서 흙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차아!”

“타하!”

“이얍!”

세 사람은 동시에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양측의 공세는 곧 부딪쳤다.

“헉!”

“억!”

주윤보와 독고랑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강한 힘에 의해 무기가 튕겨야 정상인데 물을 벤 것처럼 쑥 파고들어 간 것이다.

“허, 허초!”

“허초!”

두 사람은 동시에 부르짖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파극에게로 향했다.

콰앙!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파극의 신형이 훨훨 날아갔다.

털썩!

거칠게 떨어진 파극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파, 파 대협!”

하지만 두 사람은 파극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척사랑의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되었고, 가공할 기운이 두 사람을 향해 밀려왔다.

파극의 죽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태만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전 내공을 끌어 올려 무기에 주입했다.

우웅!

검이 부르르 떨리더니 검강이 솟구쳤다.

“타하!”

“차하!”

검강이 정점에 이르자 오른발로 바닥을 찍으며 강하게 내리그었다.

두 사람의 검강과 척사랑의 공룡조가 맞닥뜨렸다.

쿠쿠쿠! 쿠쿠쿠쿵!

둔탁한 소성과 함께 바닥이 푹푹 파였다.

“커억!”

“크윽!”

전력은 다했지만 주윤보와 독고랑의 실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아니, 무림십패의 벽이 두 사람에게는 너무 높았다.

두 사람은 정신없이 물러났다.

“차앗!”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척사랑은 바닥을 찼다.

그의 신형이 일 장 높이로 떠오른 순간 발 아래쪽으로 붉은색과 흰색 광채가 쏘아져 갔다.

“컥!”

“큭!”

주윤보와 독고랑의 입에서 나직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시선을 내렸다. 커다란 구멍이 뚫린 심장에서 피가 벌컥벌컥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누가…….”

두 사람은 고개를 들었다.

“너희만 합공하라는 법은 없잖아.”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사람은 태월령이었다.

그녀는 되돌아온 일양비와 월음비를 잡아채 허리에 꽂았다.

“괜찮아요?”

바닥으로 내려선 척사랑이 물었다.

태월령의 전신은 피로 범벅이었다.

“몇 군데 긁히긴 했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에요.”

태월령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다행이네요.”

척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녀석은 어디로 간 거죠?”

태월령은 전면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금장생이 물로 뛰어든 것까지는 보았다. 하지만 그 후로는 어떻게 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기 가는 자들을 쫓아가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척사랑은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자들을 가리켰다.

“서두르자고요.”

태월령은 곧바로 바닥을 찼다.

사실 그녀는 척사랑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갑자가 나타나 도움을 주었던 무인들. 그들은 절대 흑지 무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태월령 부하일 수밖에 없다. 그런 강한 자들을 거느린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말해 줄 것 같으면 가만있어도 알려 줄 거란 생각에서였다.

두 사람은 빠르게 몸을 날렸다.

* * *

“없습니다.”

제갈영우는 헌원중천에게 보고를 했다. 그런데 보고하는 제갈영우의 가슴은 온통 피에 젖어 있었다.

그가 이렇게 심한 부상을 입은 건 척사랑의 공격을 방어하고 난 후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태월령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방어를 했지만 내상은 피할 수 없었다.

만일 강시가 물속으로 뛰어드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강시와 금장생이 강으로 뛰어들자 헌원중천은 전음으로 제갈영우를 불렀고, 곧바로 물러나 금장생과 강시를 쫓았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처음 싸웠던 곳에서 오백 장 정도를 이동한 상황이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강 속을 수색했지만 금장생과 강시는 아직 찾지 못했다.

“우리보다 빠를 거라 생각하느냐?”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갈영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 안 어딘가에 있다는 말이구나.”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전부 들여보내라!”

“알겠습니다.”

제갈영우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강 좌우측에 있던 대원들에게 헌원중천의 명령을 하달했다.

“물이 너무 차오, 대천좌.”

무영사 구라다가 헌원중천 옆으로 가며 말했다.

“차다는 건 무슨 뜻이오?”

헌원중천은 물었다.

“이곳 물은 천산의 만년설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물이오.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괜찮겠지만 여긴 천산 바로 아래요. 보통 물보다 두 배 이상 차갑소이다.”

“대원들이 견디기 힘들 거란 말이오?”

“대원들 모두가 최적의 몸 상태가 아니니까요.”

“설사 그렇다고 해도 수색을 멈출 수가 없소. 만일 여기서 놓치면 놈은 천산으로 들어갈 테고, 천산에는 그가 있을 거요.”

“해왕이 이곳으로 와 있을 거라고 보시오?”

“놈이 처음엔 중원으로 향하다가 천산으로 방향을 틀었소. 그건 곧 강시를 받을 사람이 이곳으로 왔다는 걸 뜻하오.”

“그렇군요.”

“그리고 설사 해왕이 오지 않았다고 해도 우린 놈을 반드시 잡아야 하오. 그래야 우리 명예를 지킬 수 있소.”

“알았소이다.”

구라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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