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70화 (70/524)

황금가 (70)

“우리가 아니고 너지. 사 소협과 나는 네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태월령은 힐난하듯 말했다.

“지금 누구 책임이냐 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다 없애고 가기엔 너무 많지 않아?”

“다 없애지 않으면 우리를 죽이려고 할걸요.”

금장생은 헌원중천을 보았다.

“잘 아는구나.”

헌원중천은 차갑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처음 보는데 전에 우리 만난 적 있습니까? 혹시 그때 제가 큰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나도 널 처음 본다.”

“그런데 왜…….”

“처음엔 강시만 회수하고 말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다. 네놈이 도망…….”

“실례지만 백사가 당신 겁니까?”

“백사?”

“이 녀석 이름입니다.”

금장생은 백사를 가리켰다.

“강시에게 이름을 짓다니, 미쳤구나.”

“아직 제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습니다.”

“무슨 질문 말이냐?”

“당신이 백사의 소유주냐고 물었습니다.”

“맞다. 그 강시의 주인은 우리다.”

“소유주라면 백사에 대해 잘 알겠군요.”

“…….”

이번 질문엔 헌원중천은 대답하지 못했다.

“백사의 가장 큰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아니, 이 녀석이 몇 살인지 아십니까?”

금장생은 백사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번에도 역시 헌원중천은 대답을 못 했다.

“아무리 강함이 곧 선이라고 하는 곳이 무림이라지만 자기 물건도 아닌 걸 내놓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하는 자들이라니…… 너무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하면 그 강시가 네 물건이냐?”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헌원중천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물론 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게 이 일을 맡긴 고객께서는 강시가 있는 장소를 정확하게 말했고, 그분이 말한 곳에는 강시가 있었습니다.”

“그 장소는 우리도 알고 있었다.”

“지금 말한 게 억지 주장이라는 건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겁니다. 결국 귀하들은 투루판에서 상단을 공격하다 몰살을 당한 마적 떼나 다름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힘없는 제가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만 그렇다는 것뿐이지요.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우리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산적이나 강도와는 절대 협상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한번 협상을 해서 돈을 주게 되면 그들은 계속해서 요구하고, 갈수록 많은 돈을 요구한다고 말입니다.”

“오냐, 나도 애초에 협상 같은 거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네놈이 죽는 이유는 그 강시 때문이 아니라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 때문이다.”

“이런 걸 두고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하지요. 하지만 쉽진 않을 겁니다.”

“강시만 두고 전부 죽여라!”

헌원중천은 버럭 소리쳤다.

파앗! 파앗! 파앗!

그러자 헌원중천 주위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당신들은 이 녀석을 모릅니다. 물론 나도 완전히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요.”

금장생은 백사 뒤로 갔다. 그리고 이마에 붙은 부적을 떼어 냈다.

“캬아아아!”

순간 백사의 입에서 광포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백사는 앞에서 달려오는 자들을 향해 쏘아져 갔다. 달려가면서 손을 어깨 위로 올려 암흑창을 뽑아 들었다.

손잡이를 잡고 힘을 주자 양쪽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차앗!”

“타하!”

“이얍!”

화가 무인들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퍽! 퍽퍽!

그들의 공격은 백사의 몸에 격중했다.

하지만 백사는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달려가는 속도 또한 느려지지 않았다.

사내들 앞에 선 백사는 암흑창을 노를 젓는 것처럼 휘둘렀다.

서걱! 서걱! 서걱!

“커억!”

“크윽!”

“으윽!”

백사를 향해 달려들었던 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세 명을 베어 내고도 백사는 쉬지 않았다. 곧바로, 쓰러진 자들 뒤에서 달려오는 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창! 창창!

슈캉! 슈캉! 슈캉!

“크악!”

“아악!”

“악!”

또다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캬우우!”

백사는 늑대처럼 괴성을 내지르며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저도 가겠습니다!”

금장생은 백사를 쫓아 달렸다.

“우리도 함께 가자.”

태월령과 척사랑도 금장생 옆에 바싹 달라붙었다.

어느새 태월령의 손에는 일월쌍비가 들렸다.

“타하!”

화가 무인 한 명이 비호처럼 쏘아졌다.

태월령을 향해 몸을 날려 가는 검수의 검에는 뿌연 광채가 맺혀 있었다. 뿌연 광채가 맺혔다는 건 막 검강 초입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흥!”

태월령의 입에서 코웃음이 흘러나왔다.

파앗!

이어 그녀의 신형이 튕겼다.

순식간에 사내 앞에 선 그녀는 왼팔을 들어 올렸다.

창!

월음비가 적의 검을 막아 냈다.

그 순간 오른손의 일양비가 사내의 왼편 목으로 파고들었다.

푹!

“컥!”

사내의 입에서 짤막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파앗!

태월령은 일양비를 뽑아냄과 동시에 다리를 좌우로 한껏 벌렸다.

다리가 좌우로 펴지고 엉덩이가 바닥에 닿는 순간, 살기를 머금은 검 한 자루가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휙!

태월령은 일양비를 살짝 던져 올려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오른편을 향해 사정없이 찔렀다.

푸욱!

일양비는 그녀를 공격한 자의 단전으로 파고들어 갔다.

“크악!”

사내의 비명을 들으며 손목을 꺾으면서 일양비를 뽑았다. 그리고 상체를 뒤로 숙였다.

또다시 검 한 자루가 심장을 향해 쏘아져 왔다.

활짝 폈던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상체가 쑥 올라갔다. 그 상태에서 왼팔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어림없다, 계집. 날 잡기엔 네년의 비수는 너무 짧다.”

태월령을 공격하던 자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떠올랐다.

“천만에!”

태월령은 나직하게 속삭였다.

슉!

그 순간 월음비 끝에서 달빛 광채가 쏘아져 나갔다.

월음비의 끝에서 쏘아진 달빛 형태의 반투명한 기운은 검강이었다. 검강은 곧바로 사내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컥!”

사내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내 게 더 길어.”

태월령은 옆으로 재주를 넘어 척사랑 곁으로 갔다.

척사랑이 지나온 곳에도 시체들이 즐비했다. 그녀가 적을 없애는 무기는 지풍이었다.

손가락이 오므렸다 펴질 때마다 각각 네 줄기의 지풍이 쏘아졌고, 그 지풍은 어김없이 적의 몸통을 뚫었다.

무림십패의 일인답게 그녀의 무공은 가공했다. 검이 아니라 지풍을 쏘는데도 막아 낸 자가 없었다.

적을 없애고 있는 셋 중 그가 가장 여유로웠다. 그는 큰 움직임도 없이 손가락만으로 적을 없앴다.

백사와 금장생, 태월령, 척사랑은 달려드는 적을 없애면서 전진했다.

“저자들을 갈라놔야 하오, 대천좌!”

서천마부 주윤보가 보다 못해 소리쳤다.

적은 약간 강한 자들이 아니었다. 강신술사를 뺀 나머지는 초극 고수라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특히 지풍을 쏘는 자의 무공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인원수로 밀어붙여서 될 일이 아니었다.

“많은 수라면 모를까 네 명이 전부인데 무슨 수로 갈라놓는단 말이오!”

헌원중천의 얼굴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역시 생각해 보지 않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적은 대원들이 일 초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그런 고수들은 마음대로 갈라놓을 수가 없다.

“그래도 해야 하오! 그러지 않으면 우린 저들을 잡을 수 없소이다!”

주윤보가 더욱 크게 소리쳤다.

“천좌!”

헌원중천은 제갈영우를 불렀다.

“네, 대천좌!”

“저들을 갈라놔라!”

헌원중천은 척사랑과 태월령을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제갈영우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척사랑과 태월령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나를 따르라!”

“차앗!”

“타하!”

“하아!”

제갈영우를 따라 이십여 명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헌원중천이 오기 전 강시를 회수하기 위해 나왔던 자들이었다.

그들이 헌원중천의 계속된 무시에도 아무 말 못 했던 건 월아천 패배 때문이었다. 그동안 명예를 회복할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몸을 날려 가는 그들의 공통된 생각은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거였다.

특히 책임자였던 찰미하, 소라, 최곤, 막시후는 그런 마음이 더욱 절실했다.

순식간에 척사랑 앞을 막아선 그들은 일제히 양팔을 내밀이었다.

제갈영우를 비롯한 이십여 명이 동시에 장력을 발출하자 그 위력은 가공했다. 장력의 위력이 정점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바닥이 푹푹 패었다.

“끙!”

척사랑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무림십패의 일인이라고 해도 이런 공격은 정면으로 받아칠 수가 없다.

“어디서 이런 자들이…….”

그는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저렇게 강한 자들을 거느린 단체는 그가 알기엔 춘추오패뿐이다. 하지만 저들은 절대 춘추오패에 소속된 자들이 아니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자들이 나타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파앗!

그는 바닥을 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양팔을 번갈아 내밀었다.

슉! 슉슉슉! 슉슉!

각각 네 줄기씩 여덟 개의 지풍이 쏘아졌다.

“차앗!”

“타하!”

“이얍!”

제갈영우 일행은 기합과 함께 전력을 다해 자신들의 무기를 휘둘렀다.

캉! 캉캉! 캉캉캉!

“커억!”

“크윽!”

제갈영우를 비롯한 수뇌급에 해당하는 이들은 간신히 지풍을 막아 냈지만 다른 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척사랑의 지풍을 그대로 허용했다.

‘그나저나!’

그의 시선이 백사 쪽으로 향했다.

‘저 사람?’

그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어렸다.

그는 금장생이 잔뜩 겁을 먹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우였다.

백사 뒤에 있는 금장생의 오른손에는 검처럼 생긴 무기가 들려 있었다. 제강을 할 때 사용한다는 칠성검이었다.

“크아악!”

금장생의 검이 허공을 가르는 듯하더니 피가 튀고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살상이 가능할지 몰랐……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

금장생을 걱정하는 자신의 모습에 척사랑은 화들짝 놀랐다.

“끙!”

얼굴을 찌푸린 그는 양팔을 신경질적으로 내뻗었다.

지풍의 목표는 전면에서 쏘아져 오는 세 명이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자들과 달리 그들의 몸에서는 상당히 강한 기운이 풍겨 나왔다.

척사랑은 다가오는 자들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캉! 캉캉캉! 캉!

그의 예상대로였다. 세 명은 어렵지 않게 지풍을 방어했다.

척!

척척!

척사랑과 세 사람은 바닥으로 내려섰다.

척사랑을 향해 쏘아져 왔던 세 사람은 서천마부 주윤보, 회의사신 독고랑, 흑사 파극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바라보았다.

“으음!”

세 사람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신음이 흘러나왔다. 자신들의 무기에 손가락 두께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만일 지풍이 더 강했다면, 아니 여덟 개가 아니고 네 개였다면 무기와 함께 몸에 구멍이 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절로 몸이 떨렸다.

“귀하는 누구요?”

서천마부 주윤보가 물었다. 이런 강자면 강호에 이름이 나 있는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을 알면 지금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건…….”

주윤보는 할 말이 없었다.

콰앙!

“크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커다란 덩어리 하나가 강물로 날아갔다. 한 덩어리가 돼 있는 그것은 백사와 금장생이었다.

풍덩!

백사와 금장생은 곧 강물로 떨어졌다.

꽉!

척사랑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왼편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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