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64)
대륙황가 상단 행렬은 며칠 후 둔황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었다. 일행이 들어간 곳은 둔황에서 가장 큰 객잔이었다.
금장생의 짐작대로 낙타는 대기 중이었다.
“삼천오백 마리나 된대. 낙타 몰이꾼이 삼백, 호위 일백, 안내인이 열 명이래.”
상단을 둘러보고 온 태월령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서역을 정벌하러 가는 줄 알겠네요.”
상행의 규모는 삼대상단의 한 곳 출신인 금장생도 놀랄 정도였다.
“이 정도면 마적들도 많이 노리겠지?”
“그렇겠죠. 천산까지 가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우리가 있으니까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렇죠?”
태월령은 척사랑을 보았다.
“그, 그렇죠 뭐.”
척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금장생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행이 됐으니 자신을 위해서라도 싸우는 수밖에 없다.
‘공연한 일에 말려든 건가?’
척사랑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들이 객잔에 머무는 사이 낙타 몰이꾼들은 마차의 짐을 낙타에 옮겨 실었다. 짐을 옮겨 싣는 시간만 해도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리고 객잔에 머문 지 사흘째 되는 날 대륙황가 상단은 장도에 올랐다.
금장생 일행도 낙타를 따로 구했다.
그들이 구입한 낙타는 다섯 마리였다.
일인당 한 마리씩 타고 남은 낙타에는 물과 음식을 실었다. 각자의 낙타에도 물과 음식을 실었기 때문에 한 마리는 만일에 대비해 여분으로 준비한 것이다.
만우장은 상단을 다섯 조로 나눴다. 그리고 각 조에는 호위를 스무 명씩 배치했다.
“출발하라!”
“출발하라!”
“출발한다!”
“출발한다!”
“출발하라!”
출발 명령이 떨어지고 낙타가 앞으로 나아갔다.
맨 후미에 있던 금장생 일행이 출발한 건 한참 후였다.
처음엔 흙과 모래가 뒤섞인 땅이 이어지더니 어느 순간 모래로 바뀌었다.
“와!”
사막을 처음 본 척사랑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언덕 너머에 언덕이 있고 그 언덕 너머 또 다른 언덕이 서 있었다. 그 언덕들은 전부가 모래였다.
언뜻 보기에는 사막이 아니라 부드러운 비단을 펼쳐 놓은 것 같았다.
척사랑은 낙타에서 내려 신발을 벗고 사막을 걸어 보았다.
모래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웠다. 이런 부드러움 안에 죽음이 스며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맨발로 한참을 걷던 척사랑은 다시 낙타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전방을 보았다.
“길은 하나뿐인가요?”
“서역으로 가는 길은 세 개가 있습니다. 이 타클라마칸사막은, 북쪽에는 천산 산맥이 있고 남쪽에는 곤륜 산맥이 놓여 있습니다. 그 두 곳을 따라 비단길이 만들어졌는데 천산 산맥 쪽, 즉 사막 북쪽으로 가는 길을 서역북로라 하고 곤륜 산맥, 즉 사막 남쪽으로 가는 길을 서역남로라고 합니다. 천산 산맥 쪽으로 가는 서역북로는 천산 산맥을 중심으로 천산북로와 천산남로로 나뉘게 돼, 총 세 개의 길이 만들어진 겁니다.”
“저들은 어디로 가는 가죠?”
척사랑은 전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투루판으로 길을 잡은 걸 보면 서역북로로 가는 것 같습니다.”
“천산북로와 남로는 어디서 나뉘죠?”
“투루판에서 우루무치로 가면 천산북로로 가는 게 되고 쿠차로 가게 되면 천산남로가 될 겁니다.”
“그렇군요.”
척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이 처음인 그는 환수각의 각주라는 신분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 많았다.
참새처럼 쉬지 않고 조잘대던 그가 입을 닫은 건 둔황을 떠나고 닷새 후였다.
그의 눈은 퀭하니 파이고, 눈 바로 아래쪽에는 검은 그림자가 졌고 입술은 부르터 쩍쩍 갈라졌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곳이라고 하였던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가네.”
척사랑은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이런 고생은 무공을 익힐 때 겪고 처음이었다.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잘 수만 있다면 시키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오늘 저녁 무렵엔 천지에서 자게 될 겁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때는 거짓말이었지만 지금은 진짭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죠?”
“저들의 물을 보십시오.”
금장생은 앞서가는 상단 사람들의 낙타를 가리켰다.
그 낙타는 물을 싣고 있었는데, 양가죽으로 만든 물통이 하나씩만 남아 있었다.
“물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요.”
“저 물은 천지를 찾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서 가져가는 겁니다. 식수로 준비한 물이 거의 떨어졌다는 건 천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뜻합니다.”
“그렇군요.”
척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장생의 말대로였다.
대륙황가 상단은 저녁 무렵 천지에 도착했다. 천지는 사람과 낙타가 늘어서서 물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컸다.
천지에 도착하자 금장생은 짐을 실은 낙타에서 기다란 막대와 천을 내려 뭔가를 만들었다.
반 시진 후 완성된 그것은 사막 부족들이 기거하는 집인 게르였다.
“이런 것도 만들 줄 알아요?”
완성된 게르를 보고 척사랑은 깜짝 놀랐다.
“어쩌다 보니 익히게 됐습니다. 목욕을 하는 게 소원이라고 하더니 ,목욕 안 해요?”
금장생은 천지를 가리켰다.
대부분이 씻고 난 듯 천지는 한산했다.
“물이 너무 더러워요.”
척사랑은 고개를 저었다.
“풋! 귀하게 자란 모양이네요.”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쉰 냥 추가할게.”
“쉰 냥이라고요?”
금장생은 태월령을 돌아보았다.
“게르 안으로 물을 길어다 주는 값 말이야.”
“그럼 십만 쉰 냥이 되는 건가요.”
“응.”
태월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금장생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게르까지 물을 떠다 주는 값으로 쉰 냥이면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는 양가죽 물통 두 개를 들고 천지로 갔다.
천지 물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금장생은 옷을 입은 채로 천지 한가운데까지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물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리고 깨끗했다.
양가죽 두 개에 물을 가득 담아 밖으로 나왔다.
몸을 좌우로 흔들어 물기를 털어 냈다. 그러자 태극선의에 묻었던 물기와 먼지가 한꺼번에 떨어져 나갔다.
태극선의는 물에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뽀송뽀송하게 변했다. 태극선의를 수화불침이라 한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좋네.”
금장생은 싱긋 웃으며 양가죽 물통을 들고 게르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하는 게 나을까?”
태월령은 물었다.
나무 욕조라도 있으면 그 안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할 텐데 그런 것까지 챙겨 올 수는 없었다.
“옷을 벗고 이걸 머리 위로 들고 끼얹으면 되지 않을까요?”
금장생은 양가죽 물통을 가리켰다.
물을 채운 양가죽 물통은 머리가 없는 양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앞다리까지 그대로 있는데 물이 새지 않도록 줄로 묶은 네 다리 중 하나를 풀어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부으면, 목욕하기 좋을 정도로 물을 부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네가 해 줘.”
“네?”
“너는 내 알몸을 물리도록 봤잖아. 한 번 더 본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안 그래?”
“아무리 그랬다고 해도 보는 눈이 있는데…….”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아무튼 네가 부어 줘.”
태월령은 거침없이 옷을 벗어 던졌다.
“끄응!”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는 양가죽 물통의 앞발 중 하나의 줄을 풀었다. 그리고 태월령 뒤로 가 섰다.
“앞으로 와!”
“우린 아무래도 전생에 원수였나 봐요.”
금장생은 태월령 앞으로 갔다.
“머리부터 부어.”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시키는 대로 했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물이 전신을 적셨다.
“시원하고 좋네.”
태월령은 활짝 웃으며 손으로 온몸을 문질렀다.
“그런데…….”
그녀는 조두를 풀어 거품을 내며 금장생을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앞에 나온 건 봤다고 하던데.”
“사 형이 그러던가요?”
“응.”
“앞부분은 혈마가 남긴 게 아니라서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읽을 줄 안다는 거네?”
“그런 셈입니다.”
“뭐라고 적혔는데?”
태월령은 거품을 잔뜩 낸 조두로 온몸을 문질렀다.
바로 앞에 금장생이 서 있는데도 가슴은 물론이고 은밀한 부분까지 아무렇지 않게 손을 가져갔다.
“무공 명칭은 적신천사마공赤神天使魔功이었습니다.”
“천사天邪가 아니고 천사天使라고?”
“네.”
“혈마가 남긴 무공은 적신천사마공赤神天邪魔功이었어.”
“뒤편을 읽어 보지 않아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거 내가 들고 있을 테니까 등 좀 문질러 줘.”
태월령은 금장생이 들고 있는 물통을 빼앗듯 가져갔다.
금장생은 별수 없이 조두로 거품을 내서 태월령의 등을 문질렀다.
“지금부터 내가 구술하는 거 잘 들어.”
태월령은 나직하게 구결을 읊었다.
그녀가 읊는 구결은 바로 혈마가 창안한 적사천사마공이었다.
“제게 가르쳐 준다고 해서 값을 깎아 주지는 않을 거니까 그렇게 아십시오.”
적신천사마공 구결의 암송이 끝나자 금장생이 말했다.
“동전 한 문도 깎을 생각 없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 한 번 더 구술할 테니까 잘 들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없어?”
“네.”
“너 가르쳐 주려고 구술해 주는 거 아냐.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것과…….”
“구양절맥을 타고났다고 했잖습니까.”
“구양절맥?”
“구양절맥을 타고나면 수명은 짧아지지만 이건 엄청나게 좋아집니다.”
금장생은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
“천재가 된다는 거냐?”
“모든 부분에서 그렇다는 게 아니고, 암기력만 뛰어납니다.”
“그러니까 한 번밖에 구술해 주지 않았는데 다 암기했다는 거지?”
“네.”
“괴물 같은 자식.”
“암기력만 좋을 뿐, 다른 부분은 평범합니다.”
“됐어, 자식아. 그보다 어때?”
“두 무공의 차이점을 알고 싶다는 겁니까?”
“응.”
“가장 큰 차이는, 혈마는 날개를 만드는 부분을 빠트렸다는 겁니다.”
“어떤 날개?”
“등은 다 됐습니다. 이리 주십시오.”
금장생은 물통을 받았다. 그리고 태월령의 머리부터 끼얹어 주었다.
“날개에 대해서 말해 봐.”
태월령은 조두 거품을 씻어 내리며 말했다.
“제가 본 적신천사마공에서는 삼 성의 경지에 오르면 좌우측에 날개가 한 장씩 생겨나고, 육 성에 이르면 두 장씩, 구 성에 이르면 세 장씩, 십이 성에 이르면 네 장씩 생겨납니다.”
“날개는 어떤 역할을 하는데?”
“그것까지는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날 수 있어.
느닷없이 귓전으로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귀신이 말을 걸어온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주변엔 귀신이 없었다.
―천사는 하늘을 나는 종족이야.
‘누구지?’
금장생은 머릿속으로 물었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제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금장생은 얼굴을 찌푸렸다.
“날개니까 날 수 있지 않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날개는 어지간한 도검보다 강합니다. 날개를 펼친 채 적진을 향해 달려가면 좌우측에 있는 적의 몸통이나 혹은 목을 시원하게 잘라 낼 수 있습니다.”
“구결 불러 줘.”
“잘못하면 두 무공이 뒤섞여서 이도 저도 아닌 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일단 불러 줘.”
“알겠습니다.”
금장생은 그가 암기한 적신천사마공의 구결을 불러 주었다.
금장생과 달리 태월령은 스무 번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암기가 가능했다.
“고마워.”
“천만에요. 그것도 혈마탑에서 나온 건데요 뭐.”
“어떤 게 더 강해?”
“전반부에 있는 무공이 두 배 정도 강합니다.”
“정말?”
“제 말이 아니고 혈마의 말입니다.”
“그럼 네가 구술해 준 걸 익혀야겠네?”
“혈마도 완성하지 못해서 포기한 것 같은데…….”
―적신천사마공은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게 아냐.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자만이 익힐 수 있어.
‘어떤 믿음을 말하는 거지?’
―신에 대한 믿음.
‘그런데 넌 누구…….’
금장생은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