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28)
금장생 일행을 태운 마차는 서쪽으로 달렸다.
쉬지 않고 내달린 마차는 거대한 산을 마주하는 곳에 멈췄다.
“이제 내리면 돼요.”
수어린의 말에 금장생과 청명진인은 마차에서 내렸다.
“엉덩이 아파서 죽는 줄 알았네.”
금장생은 자신의 엉덩이를 주무르며 인상을 썼다.
다른 건 몰라도 마차 여행은 다시는 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여긴…… 티베트!”
주위를 둘러보던 청명진인의 눈이 커졌다.
“티베트라고요?”
금장생 또한 다르지 않았다.
거의 한 달 가까이 달려왔지만 설마 서장이라 부르는 티베트까지 왔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맞아요?”
금장생은 수어린을 보며 물었다.
“나도 여긴 처음이에요.”
수어린은 고개를 저었다.
“맞다.”
대답을 해 준 사람은 카밀이었다.
“혹시 우리 목적지가 저 산인가요?”
금장생은 멀리 정상이 눈에 덮인 산을 가리켰다.
“맞다.”
“가만…….”
금장생은 산 주위를 꼼꼼하게 살폈다.
“맞네.”
그러다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는 건 무슨 뜻이냐?”
카밀은 금장생을 쏘아보며 물었다.
“눈빛이 아니고 창이네요.”
금장생은 부르르 떠는 시늉을 했다.
사실 장난처럼 몸을 떨기는 했지만 카밀의 눈빛은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렬했다.
“이곳 지형이 총관이 준 지도와 일치한다는 말입니다.”
“지도를 읽어 냈단 말이냐?”
금장생의 말에 놀란 듯 카밀의 목소리가 약간 커졌다.
사실 금장생을 비롯한 세 명에게 준 지도는 특수한 장치가 돼 있어, 안내인이 더 이상 안내를 할 상황이 아닌 이상 읽어 낼 수 없다.
그건 아무리 독도법에 능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
절대 지도를 읽지 못한다.
그런데 금장생이 읽어 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도를 읽는 것 정도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닌가요?”
“지도도 없는데 어떻게 읽는다는 거냐?”
“그런 걸 귀찮게 들고 다닐 필요는 없잖아요.”
“하면?”
“여기에 넣고 다녀야죠.”
금장생은 검지로 자기 머리를 툭툭 쳤다.
“그, 그걸 전부 암기했다는 거냐?”
“지도를 암기하는 게 어려운 건가요?”
“그 지도에 선이 몇 개나 나와 있는지 아느냐?”
“삼천 개 정도 있는 것 같던데요?”
“사, 삼천 개라고?”
“정확하게는 삼천이백일흔두 개가 있더군요.”
“맙소사.”
카밀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설마 금장생이 그 지도를 통으로 암기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놀랄 일도 아니구먼. 그건 그렇고 저 산 이름은 뭡니까?”
금장생은 가장 높은 산을 가리켰다.
“가곤륜假崑崙이다.”
카밀은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런 산 이름 들어 본 적 있습니까?”
“곤륜산崑崙山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네.”
“저게 곤륜산이라고요?”
“전에 와 본 적이 있어서 잘 아는데 곤륜산이 맞네.”
“그러니까 중원에서 가장 신령스러운 산이 저거라고요?”
“그러네.”
“곤륜산은 귀신 천지라고 하던데 맞아요?”
“글쎄. 신선이 많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귀신이 많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네.”
“정말 저 귀신 쓰인 산을 오를 겁니까?”
금장생은 수어린을 보며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수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
금장생은 곤륜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시장을 봐야겠군요.”
“그래서 이곳으로 온 거다.”
이번에는 카밀이 대답했다.
“산행은 며칠 정도를 예상하십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최소 기간이 한 달이다.”
“그럼 한 달 동안 먹을 식량에다 노숙할 준비까지 완벽하게 해야겠군요.”
금장생은 수어린을 보았다.
“장 보러 가자는 건가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대두화상과 저는 장을 봐야겠습니다.”
“나도 필요해요. 가요.”
결국 일행은 전부 시장으로 향했다.
티베트는 중원과 완전히 달랐다. 우선 사람들의 생김새가 중원인보다는 서역인에 더 가까웠다.
금장생이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서점이었다.
“여기 왜…….”
수어린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그사이 금장생은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책 세 권을 들고 수어린 곁으로 왔다.
“석 냥이랍니다.”
“뭐가 석 냥이라는 거죠?”
“이 책값 말입니다.”
“그 책은…….”
“포박자, 회남자, 산해경 중 곤륜산에 대해 나온 것만 샀습니다.”
“그러니까…….”
“모르는 지역의 정보를 아는데 책만 한 게 없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책값을 왜 내가 내죠?”
“여행 중에 필요한 돈을 여행 경비라고 하는데 경비는 그쪽에서 대야 하거든요.”
“문주가 받은 이천 냥 중에 경비가 포함돼 있는 게 아닌가요?”
“우리 사람만 간다면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이자 사장인 제가 경비를 대야 하겠지만, 지금 대두화상과 저는 따라가는 입장입니다. 즉 명령을 받는 입장이라는 거죠. 이 바닥에서 명령을 받는 자가 경비를 대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 알았어요.”
금장생의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수어린은 돈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돈을 받아 든 금장생은 주인에게로 갔다.
“책이 너무 낡은 것 같은데 사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야 이십 년이 넘었으니까.”
“이 책이 들어온 지 이십 년이 넘었다고 하셨습니까?”
“그게…….”
“그러니까 내가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녀석을 치워 주는 셈이군요. 이 오래되고 낡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책이 얼마라고 하셨지요?”
“석…….”
“다시 가져다 놔야겠네요.”
“두 냥, 아니 한 냥만 주십시오.”
주인은 쫓기듯 말했다.
“거기에다 곤륜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찬 책 한 권 더 어때요?”
“가져가십시오.”
“추천할 만한 책 있습니까?”
“저쪽에 보면 곤륜경이란 게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 돈 있습니다.”
금장생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한 냥을 내려놓은 후 책장으로 가서 곤륜경이란 제목의 책을 뽑아 왔다. 그리고 휘파람을 불며 서점을 나갔다.
“남은 돈은 안 주세요?”
수어린은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석 냥을 가져가서 한 냥을 책값으로 지불하고 두 냥이 남았다. 그런데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이 노력해서 얻은 걸 위협해서 빼앗는 걸 강탈이라고 하고, 손에 어떤 물건을 들면 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돈은…….”
“저는 이 돈을 벌기 위해 온갖 머리를 다 짜내서 주인을 설득했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 같았으면 절대로 깎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 돈을 벌기 위해…….”
“알았어요. 그만 가요.”
수어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걸음을 옮겼다.
금장생에게서 돈을 빼앗으려고 하다가는 어쩌면 등에 차고 있는 검을 뽑아 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을 떠난 일행은 가장 먼저 건포를 파는 곳으로 갔다.
거기서 콩, 보리, 쌀, 귀리 등 여러 가지 곡물을 섞어 빻은 가루와 과일 말린 것 그리고 소고기와 양고기 육포를 샀다. 일인당 한 달을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식량 장만이 끝나자 이번에는 모피 파는 곳으로 갔다.
초여름이긴 하지만 곤륜산 같은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추위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다.
일행은 각자 모피 옷을 한 벌씩 장만했다.
이번에도 가격을 깎는 데 금장생이 많은 기여를 했지만 수어린이 미리 돈을 내놓지 않아, 금장생은 금전적인 이익은 얻지 못했다.
아무튼 털옷과 털장갑 그리고 털신을 구입하고는 객잔으로 향했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 산을 오를 수가 없었다.
객잔으로 들어가 곧바로 음식을 시켰다.
티베트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은 양고기였다.
그들이 주문한 음식에는 양갈비가 포함되어 있었다. 한 달 동안 음식다운 음식을 먹지 못할 것에 대비하여 최고의 음식을 먹기로 했다.
잠시 후 요리가 나왔다.
금장생은 가장 먼저 양갈비를 집어 들었다.
간을 강하게 한 듯, 갈비는 짙은 갈색을 띠었다.
먼저 차를 한 잔 하고 양갈비를 뜯었다.
‘완전 예술이네.’
그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얹혔다.
양갈비는 생각보다 좋았다. 어지간한 소갈비보다 훨씬 부드럽고 간이 잘돼 있었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도 없었다.
“아무래도 저 오늘 과식할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웃으며 말했다.
“공짜라서?”
청명진인이 금장생을 빤히 바라보며 이죽댔다.
“공짜라서가 아니고 너무 맛있어서 그럽니다. 동영, 조선을 다 돌면서 음식을 먹어 보았는데 여기보다 맛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금장생은 엄지손가락을 추어올렸다.
“양갈비 좀 더 드릴까요?”
바로 그때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고개를 돌렸다. 주방장이 뿌듯한 얼굴을 한 채 서 있었다.
“이 맛있는 양갈비를 더 주신단 말씀이십니까?”
“동영, 조선, 중원 음식 중 최고라는 극찬을 해 주셨는데 더 드려야지요. 마음 같아서는 음식값을 공짜로 해 주고 싶지만 장사를 하는 입장이라…….”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양갈비를 더 주신다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금장생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손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주방장은 헤벌쭉 웃고는 자리를 떴다.
“정말 맛있는가?”
청명진인은 물었다.
물론 갈비가 맛있기는 하다. 하지만 삼국을 통틀어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한 중원에만 해도 이것보다 맛있는 음식이 열 가지가 넘는다.
“대두화상은 그다지 맛이 없나 봅니다?”
“맛있기는 한데 삼국을 통틀어 맛있다는 건…….”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그거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가 어떤 건지 평가하는 걸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방금 사장 자넨…….”
“선물을 준 것도 아니고 돈을 준 것도 아닙니다. 단지 몇 마디 말로 인해 주방장도 저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그거면 되지 굳이 맛이 어쩌니 하고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맛있기도 하고요.”
“돈이 들어가지 않는 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는 거구먼.”
“그렇게 비꼬기를 좋아하면 인생도 뒤틀리는 겁니다. 모든 걸 긍정적으로 보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떠났던 오복이 다시 돌아올 겁니다.”
“천야에게 듣자 하니 사장 자넨 멍텅구리 밴가를 타고 노예처럼 일했다고 하던데. 그 뒤에는 조선으로 가서 인삼을 뽑고.”
“그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겁니다.”
“그렇군.”
청명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주방장 호의인 추가 양갈비가 나왔다.
금장생은 목구멍이 다 찰 때까지 먹고 또 먹었다. 그리고 더 이상 들어갈 데가 없자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면서 책을 펼쳤다.
먼저 펼친 책은 포박자였다.
그는 앞에서부터 천천히 읽었다.
곤륜산에는 신선이 산다. 최고의 신은 옥황상제이며 여신인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다.
총 사백마흔 개의 문과 다섯 개의 성이 있고 열두 개의 누각이 있다.
사람은 그곳을 갈 수 없지만 신선은 들어갈 수가 있다.
“흠! 재미있네.”
금장생은 히죽 웃었다.
약간은 허무맹랑한 이런 종류의 책을 그는 좋아했다.
“사실이다.”
느닷없이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장생은 고개를 들었다. 카밀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그 책에 나와 있는 내용 중 구 할은 사실이고 일 할만이 각색된 거다.”
“일 할이 사실이 아니고 구 할이 사실이라고요?”
“그렇다.”
카밀은 고개를 끄덕였다.
“……!”
금장생은 할 말이 없었다.
카밀의 말투가 너무 진지해서 농담을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정말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금장생은 포박자를 들어 보이며 다시 물었다.
“그 책뿐만 아니라 회남자나 산해경에 나온 내용도 구 할 이상은 사실이다. 다만 등장인물의 명칭만 달라졌을 뿐이다.”
“이 책에는 보통 사람은 곤륜산에 오를 수 없다고 돼 있던데, 그럼 저긴 어떻게 가죠?”
금장생은 창밖으로 보이는 곤륜산을 가리켰다.
“거기에 나온 곤륜은 저 산이 아니다. 저건 중원인들이 만들어 낸 가짜고 진짜 곤륜산은 따로 있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재한다고요?”
“그렇다. 곤륜은 실제 존재하는 산이다.”
카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아까 가곤륜이라고 했던 거군요.”
금장생은 멍한 얼굴로 카밀을 보았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듣고 있던 수어린과 청명진인, 북궁창 또한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멍한 것보다는 황당하다는 쪽에 더 가까운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