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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章 승사부일체(僧師父一體) (4/43)

第四章 승사부일체(僧師父一體)

  승사부일체(僧師父一體)

  - 승려와 사부는 하나다

  어선방.

  황궁의 황족과 문무 대신들의 음식을 만드는 어선방은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담당 관리 외에는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많다.

  어선방은 내어선방과 외어선방으로 나뉘는데, 그 중 외어선방은 연회에 참석한 대신들이나 당직을 서는 관리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곳이다.

  봄이면 꽃이 활짝 피어 화사한 꽃길이겠지만 곧 겨울이 다가오는 때인지라 외어선방으로 가는 길은 다소 쓸쓸해보였다.

  “허. 네가 일하는 곳이 외어선방이었더냐?”

  송현은 소강의 근무지가 외어선방이라는 사실에 크게 놀란 모양이었다.

  “이곳 방선께서 동해루에 자주 들르셨나 봐요. 저를 보면서 ‘네 만두를 황제께서도 칭찬하셨다’ 고 했거든요.”

  소강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송현은 고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정할 것은 해야만 했다. 동해루가 유명해진 것은 애비의 음식 솜씨도 있었지만 어린 소강의 만두맛이라는 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뭐 하겠느냐. 이제 네 녀석은 남녀 간의 운우지정을 모르고 평생을 살아야 할 터인데. 모질구나, 모질어.’

  송현은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잡념을 떨쳐냈다.

  소강의 손에 이끌려 외어선방에 들어서니 도마 위에서 칼이 춤추는 소리와 고소한 기름 속에서 음식 재료가 볶아지는 맛난 소리가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우와! 이리도 컸다는 말인가?”

  어선방을 처음 구경하는 송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직염국도 크다고 생각했던 송현에게 수백 명의 숙수들이 음식을 만드는 광경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참 내, 그럼 그 많은 황궁 사람들의 식사를 겨우 몇 명이서 만들 거라고 생각하셨단 말입니까요?”

  소강의 핀잔에 송현은 머쓱해졌다.

  “요 녀석이 아주 나를 가르치려 드는구나!”

  송현이 짐짓 무서운 표정을 하자 소강도 그제야 뜨끔하여 서둘러 자신의 선방으로 향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소강이 숙수로 있는 선방에 들어서니 나이 많은 숙수들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자, 연례에 맞추려면 서두릅시다.”

  소강이 제법 의젓한 모습으로 손뼉을 치자 만두를 만드는 선방도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주방에서는 학사가 해야 할 일이 당연히 없었다. 천덕꾸러기처럼 송현은 어색하게 서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나마도 숙수들이 조리 때문에 이리저리 오고가는 길에 걸리적거리는 장애물로 전락하며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저기 뒤뜰에 나가서 기다리세요. 음식을 진상할 때가 되면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래.”

  소강이 송현을 구해 주자 얼른 반색하며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휴, 고 녀석 이제 보니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벌써 사내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잖아.”

  송현은 어느덧 늦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선방의 뒤뜰을 거닐며 낙엽을 밟았다.

  홀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학사로서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이 세상에 마음 맞는 친구가 있다면 하늘 끝도 이웃처럼 가까우리라. 인생이란 의기(意氣)로 통한, 장구한 천지(天障地久)는 다할 날 있겠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이 그칠 날 있으리...... 응?”

  당시선의 한 구절을 읊조리던 송현의 눈에 기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뭐지?”

  뭔가 시커먼 것이 선방의 창틀에 매달려 있는데 그 모양이 꼭 도둑고양이처럼 보였다.

  휙!

  송현이 던진 돌멩이가 시커먼 것을 정확하게 맞추었다.

  “윽!”

  “윽?”

  짐승의 놀란 소리를 기대했던 송현은 사람의 비명 소리가 나오자 화들짝 놀랐다.

  “사람이었나?”

  얼른 돌멩이를 던진 손을 뒤로 감추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자 그 정체불명의 것이 나는 듯이 다가왔다.

  “#$%@@#%$%!”

  무슨 돼지 멱따는 듯한 소리가 나오자 송현은 귀를 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뭐 저리 생긴 사람이 다 있지?”

  오 척 단구의 작은 키에 새카맣게 그을린 피부, 거기에 말총 같은 머리를 묶어서 승려들이 입는 가사 안으로 구겨 넣은 모습은 마치 짐승이 인간의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는 돌이 깨지는 소음보다 더 지독했다.

  “크으! 제발 그만! 도대체 뭐라고 떠드는 거야?”

  송현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자 갑자기 사위가 조용해졌다.

  귀를 막고 눈을 감았던 송현이 슬그머니 눈을 뜨자 난쟁이 노인이 자신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노인이 떠드는 것을 멈추자 조금 여유가 생긴 송현도 상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내린 결론은 볼품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뭐 이렇게 생긴 사람이 다 있을까?’

  이국의 승려라고는 하지만 너무 말라서 뼈가 앙상하게 보이고 툭 불거진 눈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양 귀에 매달린 커다란 고리 모양의 귀걸이가 확실히 그가 중원인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목에 걸린 염주를 보고 그가 이번 천국 사절단 중에 하나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소강 이 녀석아, 뭐가 우리랑 다르지 않다는 거냐? 내 눈에는 꼭 강시 같아 보인다.’

  송현이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 역시 턱을 손으로 매만지며 위아래로 흩어 보았다.

  송현은 매우 실망했다.

  그가 원하는 천축인을 만났지만 자신이 상상하던 고승과 난쟁이 노인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였다. 그러니 나오는 것은 한숨이요 느는 것은 주름뿐이었다.

  “저기...... 그러니까...... 혹시 저희 말 아십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송현이 손짓, 발짓해 보았지만 상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상을 썼다.

  “휴, 그럼 그렇지!”

  단단히 실망하여 돌아서는 송현의 등 뒤에서 어눌하지만 분명한 중원의 말이 들려왔다.

  “너 뭐 하는 놈이냐?”

  송현의 놀라움이 얼마나 컸는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몸을 돌려 뒤돌아선 송현의 표정은 마치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 광경을 본 사람 같았다.

  난데없이 중원말로 시비 걸듯이 따지던 천축의 승려는 다짜고짜 송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으헉!”

  걷어차인 정강이를 움켜쥐고 깡충깡충 뛰는 송현은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정강이에서 머리까지 치밀어 오르는 고통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끔찍한 것이었다.

  “으......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오!”

  송현이 악을 쓰자 천축의 승려는 혀를 찼다.

  “쯧쯧쯧, 나같이 연약한 노인에게 무지막지하게도 커다란 바위 덩어리를 던진 네 녀석이야말로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지 못했느냐?”

  점점 한어가 능숙해지는 천축 승려의 수다는 둑 터진 방죽으로 물이 밀려 나오듯이 쉴 새  없이 퍼부어졌다.

  “죄,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송현이 아픔을 참고 애써 사과했지만 그의 표정은 결코 풀어질 줄 몰랐다.

  “말로만?”

  “네? 그럼 뭘 어떻게?”

  종잡을 수 없는 태도 때문에 뜨악해진 송현이 어리둥절해하자 천축 승려는 꽤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배고파!”

  “뭐라고요?”  “이 자식이, 너희 나라 말로 하는데도 못 알아 듣냐? 배가 고프다고!”

  억지를 부려도 이 정도면 무림 고수 수준이었다. 송현은 더 이상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네 이놈! 감히 황제의 사절단에게 무례를 범하고 도망을 치려하다니. 네놈의 만행을 고해야겠다!”

  “헉!”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 송현은 자신의 뒤에 있는 천축 승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바로 마귀였다. 황궁 사람들에게 소마(小魔)로 알려진 송현이 제대로 임자를 만난 날이었다.

  “아하하하,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미련하여 스님께 무례를 범하게 되었으나 미진한 소인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 돼!”

  팔짱을 끼고 고개를 좌우로 강하게 흔드는 천축의 노승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송현이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자 노승은 선반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따라서 매부리코를 벌름거렸다.

  “배가 고프시다면 음식을 접대해 드리면 될까요?”

  송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노승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해결책을 찾은 송현은 얼른 선방으로 들어갔다. 소강에게 배가 고파 그러니 어서 먹을 것을 내달라고 떼를 써서 만두를 한 접시를 내어왔다.

  “자, 이거라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지 않아도 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음식이라고는...... 허! 세상에!”

  송현은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허겁지겁 접시 위의 만두를 먹어 치웠다. 송현의 눈에는 마치 접시 위의 만두가 사라지는 요술처럼 보였다.

  “그 많은 것을 단숨에 해치우다니. 괴물이다.”

  혀를 내두르는 송현의 감탄에 노승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배를 두드리며 만족해했다.

  “그럼 저는 이만!”

  송현이 재빨리 도망치려 했지만 노승이 더 빨랐다.

  “안 돼!”

  “윽!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송현은 재빨리 도망치려 했지만 천축의 노승에게 뒷덜미를 잡혀 꼼짝도 하지 못했다. 키가 작은 노승은 선방 지주를 딛고 서서 송현의 뒷머리를 낚아챘다. 송현이 제아무리 용을 써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너 앞으로 내 밥 담당이다.”

  억지를 부리는 노승에게 화가 난 송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선비를 이렇게 구박하다니 당신네 천축에서는 이런 무례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단 말이오?”

  송현이 거세게 항의한 것이 먹혀들었는지 노승이 송현을 놓아주었다.

  콰당!

  잔뜩 몸에 힘을 주고 몸부림치던 송현은 갑자기 몸을 압박하던 힘이 사라지자 제풀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아까 차인 정강이에 다시 고통이 밀려왔다. 다친 곳을 잡고 버둥거리는 송현을 보고 노승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입만 살은 녀석!”

  노승의 투덜거림에 정신이 번쩍 든 송현은 벌떡 일어나 풍보를 펼쳤다. 108개의 발걸음이 펼쳐지자 송현의 몸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손오공처럼 재빠르게 사라졌다. 그걸 본 노인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송현은 주변의 사물이 휙! 휙! 지나간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사력을 다해서 달렸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노승의 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잠시 뒤로 고개를 돌려 본 송현은 숨넘어가는 비명을 토해냈다.

  언제 따라붙었는지 천축의 노승이 뒤에 바싹 붙어서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송현은 두 다리에 더 힘을 싣고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송현은 금의위라고 적힌 문으로 뛰어들었다.

  “어이쿠!”

  벽에 부딪힌 듯 뒤로 튕겨나가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 송현을 억센 팔들이 일으켜 세웠다.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무슨 큰일 났기에 이리 뛰어다니는 게요?”

  막여위가 한심하다는 듯이 송현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양명은 아예 이마에 손을 짚고 고개를 숙였다.

  “하아, 하아, 내가 아주 무서운 악귀에 쫓기다 보니 그럴 겨를이 없었소.”

  숨을 헐떡이는 송현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던 영호인은 막 위사들의 훈련을 마치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그러기에 내가 무공에 관심을 두지 말고...... 모두 비켜!”

  송현에게 평소처럼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던 영호인의 표정이 갑자기 창백해지더니 큰소리를 지르며 검을 뽑고 달려 나왔다.

  어리둥절한 송현과 두 교위를 한쪽으로 밀어붙인 영호인은 검을 앞으로 쭈욱 내밀며 몸을 날렸다. 그 유명한 무당파의 발도술이었다.

  카캉!

  가가각!

  요란한 금속음과 함께 영호인의 몸이 뒤로 크게 튕겨 나갔다. 낭패한 표정의 영호인은 이를 악물며 자세를 바로 세웠다.

  “웬 놈이냐?”

  정면을 보며 으르렁거리는 영호인 곁으로 막여위와 양명 또한 검을 뽑아 들고 기운을 끌어 올렸다. 그러나 송현은 세 명의 교관을 긴장시킨 상대를 발견하자 비명을 질렀다.

  “헉! 저 땡중이 어떻게?”  자신이 아는 최고의 무림 고수인 영호인을 긴장시키는 인물이 바로 노인이었다는 사실에 송현은 아연실색하였다. 그런 송현을 보고 노승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마치 ‘넌 내 밥이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송현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천축에서 온 정체불명의 노승은 ‘끌끌!’ 하며 혀를 찼다. 그리고 마치 어린아이를 어르듯 손가락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흉측하게 긴 손톱으로 입술을 문지르는 모습은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영호인의 검을 쳐 낸 것이 바로 저 기형적으로 긴 손톱이었다. 어떻게 저리 길어졌고 또한 쇠로 만든 검을 쳐냈는지 불가사의하기만 했다.

  “네 녀석들은 비켜라! 난 저 비리비리한 놈에게 볼일이 있다.”

  그러나 세 교관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특히나 영호인의 목소리에는 강한 적개심이 실려 있었다.

  “이곳은 대명 황실을 지키는 금의위다. 허락도 없이 난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말 그대로 금의위 위사들이 침입자에게 결코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다.

  “금의위? 그게 뭐든 간에 난 저 녀석을 데려가야겠다!”

  노인이 앞으로 나서자 세 교위 역시 기세를 노인에게 내뿜었다. 세 교위의 장포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호1 이빨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 거로군. 역시 대명 황실이야, 고수들이 도처에 숨어 있구나. 정말 재미있어!”

  내력을 끌어 올리며 싸울 준비를 하는 세 교위를 보며 노승은 즐거운 표정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양손의 손톱은 더욱 길어졌다. 무릎을 살짝 굽히고 양손을 어깨 넓이로 늘이니 그 모양새가 꼭 독거미 같아 보였다.

  “중원행이 생각보다 즐거워지겠어.”

  가래 끓는 웃음소리를 토해내자 눈빛이 차가워졌다.

  “내가 갈까? 아니면 너희들이 오겠느냐?”

  명백한 도발이었다. 세 사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지면을 박차고 날았다.

  하지만 성격 급한 막여위가 한발 빨랐다. 얼굴을 뒤덮은 수염이 떨릴 정도로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두터운 전신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막여위가 커다란 기합을 내지르며 오른손 장을 내쳤다.

  퍽!

  대단한 신력이었다.

  송현은 처음 보는 막여위의 신위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막여위는 괄괄한 성격만큼 큰 체격 때문에 어려서부터 외공을 연마했다.

  회심의 일격이 적중하자 막여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지만 뒤이어 뛰어든 양명은 비명을 질렀다.

  “막가야, 조심해라!”

  그제야 손바닥에 걸리는 느낌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낀 막여위는 가슴 어림에 강한 충격을 느끼며 십여 장 뒤로 튕겨나 버렸다.

  쿠당!

  “쿨럭!”

  검붉은 피를 한 움큼 게워내는 막여위에게 달려간 송현의 눈에 핏발이 섰다.

  “제길, 송 학사 앞에서 이게 무슨 개망신이람. 우욱!”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놓은 막여위를 송현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부축했다.

  “이 마귀 같은 영감탱이, 어디 이것도 막아 봐라!”

  막여위의 뒤를 이어 벼락같이 뛰어든 양명은 황룡단참(黃龍斷慘)이라는 일초를 휘둘렀다. 본래 적을 양단 내는 극한의 검술이지만 막여위가 냥패를 당하는 광경 때문에 조급했다. 그 바람에 내력이 제대로 실리지 못한 양명의 검은 왜소한 노인의 머리가 아니라 가슴어림을  노리게 되었다.

  가가각!

  그러나 노인의 손톱에 검로가 막히자 양명은 크게 당황했다.

  “빌어먹을!”

  노인의 미소를 보고 양명이 내뱉은 말이었다.

  송현은 막여위를 돌보는 와중에 뒤가 서늘하여 돌아보다가 크게 놀랐다. 양명 역시 형편없는 몰골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기 때문이었다.

  “양명!”

  송현은 막여위 곁을 떠나 양명을 보살폈다.

  “괜찮소?”

  하얗게 질린 양명의 볼살이 마구 떨렸다.

  “이게 괜찮아 보이오?”

  마지막까지 농을 하던 양명도 눈동자가 돌아가며 혼절하였다.

  송현은 두 교관이 노인에게 일초지적도 되지 않자 크게 당황하였다.

  “이토록 무서운 것이 무공이었나?”

  송현은 처음 느껴 보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피하지는 않았다. 아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송현은 고개를 들어 영호인과 천축 노승의 대결을 똑바로 지켜보았다.

  천축의 노승은 막여위와 양명을 물리친 후 영호인과 어지럽게 싸우기 시작했다.

  영호인은 노승과 대결에서 황실무공을 배제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당에서 배운 무공을 사용했다. 그러자 신법이 민활하게 변하면서 일초 일식이 교묘하게 펼쳐졌다.

  노승의 손발이 어지러워지더니 영호인에게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하며 낭패를 당했다.

  “큭! 요놈봐라. 도사 놈이었나?”  찢어진 가사를 흘깃 쳐다본 노승에게서 막대한 내력이 느껴졌다.

  영호인이 긴장을 하며 자세를 잡는 순간 노승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천축 노승의 주먹질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파공성이 일었고 흉측한 손톱에는 스치기만 해도 죽음에 이를 것같은 살기를 품고 있었다. 그의 공세는 모두 다 영호인의 몸 주위의 몇 치쯤 되는 곳을 후려치고 있었다.

  송현의 두 사람의 대결을 보며 몸을 떨었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충격이었고 격정이었다.

  무극무해를 공부하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애매했던 문구들이 뇌리 속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한바탕 드잡이를 하더니 신명이 났는지 노승이 갑자기 금의위 현판이 걸린 문에 뛰어올라 발을 굴렀다.

  우지끈!

  꽝! 하는 소리와 동시에 문이 부서졌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노인은 앙천광소를 했다. 영호인의 그런 노인의 내력에 기겁을 했다.

  ‘맙소사! 내 상대가 아니로구나! 저런 절세고수가 어디서 나타난 걸까?’

  영호인은 오늘 자신이 운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잘못하면 이 자리가 오늘 자신의 무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영호인은 입술을 깨문 뒤 천천히 왼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며 검을 곧추세웠다.

  ‘하지만 무당 제자로서 이름을 가벼이 할 수는 없다.’

  각오를 다진 영호인의 기수식에 노승이 웃음을 멈췄다.

  “무당 칠성검(七星劍)!”

  노승의 음성에는 놀람보다는 왠지 추억을 보는 듯한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그는 영호인의 검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내려섰다.

  춤을 추듯 흔들리는 영호인의 검은 느리게 움직였다.

  “좋구나!”

  영호인의 검세 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하면서도 노승은 연신 감탄을 했다.

  ‘이건 마치 검로를 알고 있는 사람과 대련을 하는 느낌이다!’

  오히려 공격하는 영호인이 크게 당황했다.

  ‘안 되겠어! 수를 달리해야겠다.’

  막다른 벽에 부딪힌 영호인이 뒤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검을 휘둘렀다.

  “응? 영호인의 검세가 크게 변했는 걸. 좀 전의 검은 유려하면서도 화려했지만 그 속에 숨은 힘은 대단했다. 그런데 지금의 검은 뭐랄까? 거대한 파도처럼 강하고 번개처럼 재빠르구나!”

  송현은 영호인의 검이 변하는 걸 놓치지 않고 흐름을 쫓고 있었다.

  “태을현문검!”

  쉬지 않고 이어지는 강맹한 검세에 노승의 표정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수다스럽게 떠들어 대던 말수도 적어졌다.

  “천축 승려의 말수가 적어졌다.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뜻이겠지. 단순히 검이 빨라진 것만 아니라 검자체가 변했다. 처음 것이 부드러운 봄바람이었다면 지금의 검은 겨울의 삭풍처럼 매섭구나!”

  송현은 크게 감탄했다.

  “애송이라는 말 취소하마. 어느 놈의 직전제자냐? 무자 배분이냐? 아니면 송자 배분이냐?”

  노승의 질문이 크게 불쾌한지 영호인은 악을 썼다.

  “닥쳐라! 감히 그 더러운 입으로 무당의 이름을 들먹이다니. 죽음으로 죄값을 받아 내겠다.”

  “흥! 도사 놈들 주제에 자존심은!”

  노승의 표정이 싸늘해지는 것을 발견한 송현은 크게 긴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깡충깡충 뒤로 튕기며 물러선 노승의 몸이 꿈틀거리더니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돌연 노승의 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 환각이 일어났다. 노승은 영호인과의 공간을 뛰어넘어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영 교관 왼쪽으로!”

  송현의 고함에 영호인의 몸이 절로 반응했다.

  사각!

  영호인의 장포가 반이나 잘려 나갔다.

  “허억!”

  공격을 한 노인이나 가까스로 피한 영호인이나 놀란 얼굴로 송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노승은 바로 표정을 회복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어디, 운이었는지 실력이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볼까?”

  또다시 기이한 뼈 소리가 나는 동시에 노승의 몸이 주욱 늘어났다.

  “오른쪽으로 이 보! 왼쪽으로 돌아!”

  이번에도 영호인은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송현의 말대로 신법을 펼쳤고 마찬가지로 아슬아슬하게 노인의 살수에서 벗어났다. 간담이 서늘해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영호인은 노승의 공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송현의 도움이 아니라면 이미 자신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극도로 긴장한 영호인과 달리 노승은 이 싸움에 흥미를 잃었는지 내력을 거두었다. 그와 동시에 소란을 듣고 달려온 수십 명의 금의위 위사들이 검을 꺼내들고 주변을 둘러쌌다.

  위사들은 큰 소리로 노인을 위협하며 검을 들이댔다.

  그러나 송현은 금의위 위사들이 노승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다급하게 외쳤다.

  “모두 싸우지 마시오. 검을 물리시오!”

  송현이 앞으로 뛰어들어 소리를 지르니 위사들은 어리둥절하였다. 송현은 사력을 다해 이 사태가 커지지 않도록 하려고 위사들을 만류했다.

  그러나 노승은 금의위 위사들의 출현을 오히려 반기고 있었다.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송현은 필사적으로 위사들의 난입을 막아섰다. 

  노승은 그런 송현이 마뜩치 않아 콧방귀를 끼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도 보람 없이 발길질로 땅바닥에 떨어진 검을 차올린 영호인이 노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퍽!

  사람의 뱃가죽에 검 꽂히는 소리가 몸서리쳐지도록 섬뜩했다.

  송현은 크게 놀랐다. 설마하니 영호인이 비겁한 암수를 사용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피를 토하며 뒤로 쓰러지는 것은 노승이 아니라 영호인이었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위사들은 앞뒤 볼 것도 없이 노승을 공격했다. 노인과 금의위 위사들의 싸움으로 주변이 아수라장이 되자 그 틈을 타고 한달음에 달려간 송현은 영호인을 살폈다.

  “왜 이리도 무모한 짓을 하였소?”

  송현이 눈믈을 흘리며 책망하자 영호인은 처연하게 웃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오. 내가 저 노인보다 약하다는 것을. 아니면 송현 당신 앞에서 영웅이고 싶었던지......”

  힘이 다했는지 말을 다하지 못하는 영호인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리석은 사람!”

  송현은 영호인의 굽히지 않는 고집을 좋아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무모함이 못내 싫었다. 송현은 무릇 남자란 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송현이 아직 무인들의 생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해였다.

  “크아악!”

  “으악!”

  위사들이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손목을 움켜쥐고 뒤로 비칠거리며 물러서는 위사들의 표정에는 불신으로 가득했다.

  “이...... 이......”

  송현은 알지 못할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런 송현을 보며 노승은 껄껄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자, 어떻게 하겠느냐? 이놈들이 모두 죽어야 내 말을 듣겠느냐?”

  오만하기까지 한 노인의 말에 송현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대명황실을 기만하고 금의위에서 패악을 부렸으니 당신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송현이 일침을 가했지만 노인은 태연자약했다.

  “과연 그럴까? 오히려 황실의 중요한 사절단을 핍박하여 황실의 명예를 더럽혔으니 너희들은 모두 참수를 면치 못할 텐데?”

  “그런 억지가 어디 있소?”

  노승의 억지에 송현이 발끈했지만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없는 죄도 만들어내는 곳이 황궁이었다. 더구나 자신을 노리고 있는 환관 사례감 왕유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를 주는 셈이었다. 아직은 죽을 수 없기에 송현은 참아야 했다.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겁니까?”

  송현이 조금 수그러드는 기색이 보이자 노승은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큭큭큭, 진즉에 그럴 것이지. 네 녀석이 고집을 부리는 통에 일이 커지지 않았느냐?”

  마치 이 일의 모든 책임이 송현에게 있다는 투로 말하는 노인 때문에 송현은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말로써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송현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후후후, 머리도 있어 보이고 자제심도 있고 여러모로 훌륭한 자질이라 이거지?’

  푸줏간의 고기를 살피듯 송현을 살피는 노승의 눈길이 몸에 닿을 때마다 송현은 몸을 떨었다.

  ‘이 노인네 설마하니?’

  송현이 불길한 생각을 하는 순간 노승에게서 불호령이 터져 나왔다.

  “떽! 나를 어찌 보고. 그런 일은 없으니 상상도 하지 마라! 꽃 같은 여인들이 널렸거늘 너같이 비리비리한 놈에게 관심을 둘 리가 없지 않느냐?”

  워낙 남색이 유행하는지라 잠시 무서운 상상을 했던 송현은 노승의 말에 적이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뒤에 이어진 노승의 말에 송현은 다리에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제부터 너는 내 밥 담당인 동시에 내 제자다!”

  “헉!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망발입니까? 저는 학사고 노인장은 승려가 아닙니까? 절대 불가합니다.”

  송현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 지르자 노승은 험악한 표정으로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시끄러워! 입 닥치고 꿇어!”

  “네?”

  어이가 없어 하는 송현의 무릎을 향해 노승은 손가락을 튕겼다.

  “윽!”

  무릎 어림에 강한 충격을 느끼며 송현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 노인 앞에 엎드리는 꼴이 되었다.

  “잘 들어라! 스승과 승려는 하나다!”

  “으...... 으...... 사제지간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송현이 물러서지 않고 버티자 노승의 손톱이 흉측하게 늘어났다.

  “다시 한 번 대답해 보겠느냐?”

  “안 되......”

  서걱!

  혼절한 채 누워 있는 영호인의 심장 부근에 노인의 손톱이 멈추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영호인의 심장은 더 이상 고동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걸 본 송현의 얼굴은 귀신을 본 사람처럼 하얗게 질려 버렸다.

  “아, 아닙니다. 스승과 승려는 하나이니 노인장이 곧 내 스승이오.”

  겁에 질린 송현이 손사래를 치며 다급하게 외치자 노승은 반강제로 구배지례를 시켰다.

  아홉 번의 절이 끝나자 비로소 안심을 했는지 노승은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승사부일체(僧士夫一體)니라! 기억해 두거라.”

  뒷짐을 지고 어기적거리며 금의위를 나서는 노인은 힘없는 보통의 노인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참, 내가 묵고 있는 곳은 자하원이다. 늦지 않도록 해라, 밥 담당!”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 노승은 금의위 현판을 밟고 사라졌다.

  허망하게 노승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송현은 넋두리하듯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눈앞에 펼쳐진 엉망이 된 풍경을 보면서도 송현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현실인지 꿈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날 밤 월궁항아처럼 밝은 달이 중천에 이르렀을 때 사례감 왕유의 처소로 은밀하게 움직이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몸이 가볍고 날렵한 몸놀림. 다들 상당한 수준의 무공을 소유한 자들이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밤의 그림자를 의지해 조용하게 숨어든 이들은 보료 위에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즐기고 있는 왕유 앞에서 멈추었다.

  “공공, 보고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가느다란 목소리가 귀를 간질이자 사례감 왕유의 눈꺼풀이 천천히 떠졌다.

  “무슨 일이더냐?”

  담배 연기를 뱉어 낸 왕유에게 그림자 하나가 두루마리를 건넸다. 피던 곰방대를 들어 두루마리를 펼쳐 읽어 내려간 왕유는 키득거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래,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왕유는 보고가 마음에 들었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큰소리로 웃어 보였다.

  “송현, 그놈이 무공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공공!”

  휘파람을 불 듯 연기를 내뿜은 왕유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허공을 응시했다.

  왕유가 말이 없어지니 그림자들도 침묵했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굳어 있을 듯했던 왕유의 입에서 담배 연기가 새어 나왔다.

  “훌훌훌, 이번 기회에 불충한 무리를 모두 찍어 내야겠구나. 호태감을 불러들여라!”

  “복명!”

  얼마 전 자신의 처소에 들러 정치적 불안을 걱정하던 충복 호태감을 불러들이는 사례감 왕유의 머릿속에는 어느덧 새로운 국정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천하의 주인이 바뀔지 모르니 집안을 깨끗이 청소를 해 두는 것도 새 주인에 대한 예의겠지. 송현, 그리고 눈엣가시 같은 교두 임충까지 말이야!”

  팔에 강한 힘이 들어가자 곰방대가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다. 먹이를 노리는 야수처럼 사례감 왕유의 눈이 번뜩였다.

  날이 밝자 사형장에 끌려가는 죄수처럼 송현은 느릿느릿 흐느적거리며 자하원을 향해 내키지 않는 걸음을 했다. 그의 곁에는 왕백이 등청도 하지 않고 송현을 부축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왕백이 울먹이자 송현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지 않으면 어쩌겠느냐? 내 어린 시절 철없이 웃어른들을 놀린 댓가를 톡톡히 치르는 셈이로구나.”

  송현의 자조 어린 한탄에 왕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한림원 대학사 출신이 중이 되다니요. 이건 정말 말도 안 됩니다.”

  “주, 중이 되다니?”

  화들짝 놀라는 송현을 보며 왕백은 혀를 찼다.

  “중의 제자가 중이지 뭡니까?”

  “그, 그건!”

  비약이 심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구배지례를 올리지 않았는가?

  승려들이 어떻게 도제 관계를 맺는지 모르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잠시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헛바람을 들이키며 뭔가를 부정하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승려가 되어 삭발한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안 될 말이야. 암!”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었던 송현은 자하원 앞에 도착하자 아까의 기세는 금세 사라지고 풀이 죽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입구에서 몇 번이나 망설이던 송현은 결국 왕백에게 등을 떠밀려 자하원으로 들어섰다.

  운치 있는 정원으로 들어서니 어디선가 맑고 청명한 독경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천축의 독경이라 뜻을 알 수는 없었지만 불안했던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낀 송현은 용기를 내어 자하원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미리 언질이 되어 있었는지 송현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도 막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대여섯 개의 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니 결코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고막을 자극했다.

  “##$$%# @#$%[email protected]!”

  뭐가 그리도 아침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지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담을 넘어 들려왔다.

  “송현입니다.”

  독경 소리 덕분인지 마음이 진정된 송현의 담담한 목소리에 노승은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온 듯 맨발로 뛰어나와 반겼다.

  “아하하하, 왔느냐?”

  전후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보면 숨겨둔 아들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반색을 하는 노승의 태도가 부담스러웠다.

  “오라고 했으니 왔을 뿐입니다.”

  부담스러운 노승의 환대에 송현은 까칠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노승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뭐 아무렴 어떠냐? 자 내 아침부터 해결해 다오.”

  노승이 송현을 보자마자 재촉을 했다. 그러나 송현은 이미 다른 승려들이 자리한 식탁에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또한 천축의 승려들은 그런 노승의 태도에 어찌할 바를 몰라 좌불안석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조찬이 차려져 있는데 밥이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네 눈에는 저것이 사람이 먹을 음식으로 보이냐? 저건 그냥 풀일 뿐이다. 풀! 염소나 양이 먹는 풀 말이다.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한다. 고기!”

  송현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식탐을 밝히는 노승에게 질린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불제자에게 고기라니 저는 못하겠습니다.”

  송현이 도저히 안 되겠다며 거절하자 노승이 송현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내 음식 문제를 해결해 주면, 난 네 문제를 도와주마.”

  “제 문제라니, 뭘 말입니까?”

  송현이 의뭉스러워 하자 노승은 예의 그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극무해!”

  송현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나며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런 송현을 보며 노승은 싱긋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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