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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33화 (133/250)

제133화

제133화

“읏…….”

나려타곤까지 펼쳤지만, 모두 피해 낼 순 없었다. 최심장이 스쳐 지나간 흔적은 무시무시했다.

찌지직!

가슴 앞섶이 풀어 헤쳐졌고, 상의가 갈기갈기 찢긴 소화진이었다.

심지어는 땅바닥을 구르면서 긴 장발을 단정하게 묶고 있던 머리 끈마저 풀리며 산발이 되었다.

“어지간히도 맞기 싫었나 봐.”

천연덕스러운 천무린의 말에 소화진이 두 눈을 번뜩였다.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더없이 철부지 같은 모습을 한 녀석이다. 근데 그런 녀석에게.

내가 패한다고.

고작 저런 놈한테?

그럴 리가 없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거늘.

천재의 범주에 속하는 재능이라며 누구에게나 인정받아 왔고, 노력이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검을 휘둘러 왔다.

즐기는 이보다 더욱 열심히 검에 집중하였고, 그 누구라도 자신보다 위에 있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그런데.

자신보다 훨씬 어린 배분에게 이토록 수모를 당한단 말인가.

“왜? 억울해?”

꽈드득.

소화진의 손에 검이 굳게 잡히더니, 푸르스름했던 검기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처럼 한 곳으로 뭉쳐 진득하게 검 끝까지 퍼져 나온 묵색의 검기는 불길한 느낌을 주었다.

“청운적하검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청운적하검이 8성에 다다르면 검게 물든 검기를 펼칠 수 있다고 했다.”

처억.

그러곤 검을 들어 중단세를 취하는 소화진이었다.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머릿결을 정돈하지 않고 겁화(劫火)를 눈에 가득 담아 천무린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그러나.

“어쩌라고? 칭찬이라도 해 주리? 싸우는데 웬 말이 그리 많아.”

천연덕스러운 대꾸, 청운적하검이 몇 성이 되었건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

타앗!

소화진은 대번에 땅을 박찼다. 저놈에게 말을 길게 하여 무엇하리. 당장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게 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으리라고 굳게 다짐했다.

“죽어어엇!”

소화진에게 왜 검귀라는 별호가 붙었는지 알 수 있었다. 황태에게서도 독기를 느꼈고, 진량에게서도 끈질김과 독심을 느꼈지만.

요혈을 바라보며 파고들어 오는 검 끝에 고민 따윈 없어 보였다.

청성파 특유의 기질 때문이었을까. 훨씬 깊고 진했다.

“쓸 만하네.”

단순한 감상이었다. 그 말에 소화진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콰가가강!

검을 맞대고 장법을 펼치는 동안, 꽤 많은 공방전이 오갔다. 확실히 검에 살검(殺劍)의 묘리가 가득했다.

지독하게 간결하고 지독하게 악독하다.

청운적하검이라는 밝고 정파다운 이름에 걸맞지 않게 너무도 실전적이다. 특히 도가의 것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검이었으니.

그러나.

‘아, 살수 문파 출신이었지.’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본디 자객들과 살수들이 조상으로 있던 청성파의 무공이다.

무릇 살수들이란 무엇인가. 요인 암살과 납치에 특화된 녀석들이다 보니, 은밀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생각해 보면 너 같은 녀석도 필요해.”

“뭐?”

“여기에 있는 놈들은 아직까지 너무 착해 빠졌거든. 고작해야 진량이나 황태 같은 녀석들이 그나마 나으려나. 물론 써먹으려면 더 굴려야 하고.”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군.”

그 말에 피식 웃는 천무린이었다.

당연히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네놈 들으라고 꺼낸 말이 아니니까. 천무린 자신한테 한 말이었다.

힐끗.

8기수 생도들이 보였다. 훈련시켜서 열심히 써먹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그러나 문제는 훈련의 양이 아니고 노력이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

누구나 다 검을 들고 수련한다. 쉬지 않고 훈련에 매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공 수련도 빼먹지 않고 한다. 무인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다.

푸줏간의 주인은 매일같이 고기를 다듬고.

마구간의 주인은 하루도 빠짐없이 말을 보살피고.

상단과 표국은 늘 돈이라는 실리를 염두에 두는 것처럼.

무인이란 한평생 자신의 무공을 갈고닦는 데 바쳐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훈련과 노력을 통하여 갈고닦은 것을 성장시키고 경지를 높이는 것이 바로 무인들의 목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어떤 때를 꼽을 수 있을까.

‘전쟁 그리고 전쟁이 벌어지는 전장.’

정작 전쟁에 돌입하면 경지의 차이는 무색해진다. 절정과 일류급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이지 않느냐고?

물론 그렇다. 어디까지나 운이 좋다는 전제하에.

절정급 고수는 일류급의 고수 열과 싸워도 능히 버텨 낼 터였다. 하지만 그게 전장이라면?

피아(彼我)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시야가 좁아지고 오로지 피바람만 부는 곳에서 절정 고수라고 해서 눈먼 칼에 맞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더욱이 그런 전장에 익숙하다 못해 제집처럼 뛰어노는 녀석들이 바로 마교였다.

그런 살귀들과 어울려 한바탕 싸워야 하는 이들이건만.

지금 당장 이 녀석들 중에 전장에 투입되면 아마 제 실력의 반도 꺼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터였다.

채채채챙!

“나를 두고 한눈을 파는 것이냐!”

저릿. 저릿.

제갈벽도.

파평도.

모두 절정급에 다다른 고수였지만, 이 녀석처럼 오로지 급소와 간결한 호흡으로 살검을 뻗는 놈은 간만이었다.

“필요하겠네.”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이냐!”

“너, 무림맹에 가지 마라.”

“……지금 무슨 헛소릴!”

코웃음을 치며 천무린이 씨익 웃는다. 그 모습에 소화진은 황당함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검격을 보고서도, 그것도 평범한 검격도 아닌 절정급 고수가 흩뿌리고 있는 검기를 보면서도 어찌 저리 태평한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잠깐이나마 흠칫거린 사이에.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녀석의 생글거리는 말투가 들려왔다. 그 말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얼굴을 향해 곧장 찔러 오는 소화진의 청운적하검을 바라보며 천무린이 낭창하게 입가를 비틀었다.

“내가 이기면 무림맹에 가지 않는 걸로! 아니! 세 초식 안에 이기면 날 따라오는 걸로! 만약 못 꺾으면 내 패배로 인정하지.”

세 초식.

세 초식이라면 고작 세 번의 손짓 안에 자신을 꺾겠다는 말이었다.

분명 여유 넘치는 모습은 인정하나, 소화진의 몸 상태는 여전히 최상이었다. 본격적으로 청운적하검을 펼친 이상, 삼초 안에 무너질 리 없다고 여겼다.

“흥! 어리석구나. 고작 세 초식 안에 날 꺾겠다고!”

“왜? 버틸 자신 없어?”

만약 격장지계(激將之計)라고 한다면, 소화진은 이미 몇 번이나 넘어간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그만큼 녀석의 입담은 상대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충분했으니까.

“후우, 죽으면 입만 둥둥 뜰 녀석이로군. 좋다. 자신이 있으면 해 봐라. 단, 내가 세 초식을 버텨 낸다면 어쩔 셈이냐?”

“호오? 역제안을 하는 건가? 재밌는데.”

흐뭇하게 웃는 천무린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송무를 바라봤다.

“이 녀석이 무림맹 어디로 들어간댔지?”

“……어? 처, 청룡검대!”

“아아, 청룡 뭐시기. 좋아. 그곳보다 좋은 곳이 천성검대였지? 그리로 들어가게 해 줄게.”

그 말에 모두가 당혹스러워했다. 지금 누가 누굴 무림맹에 넣어 준다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작 18살이 된 1학년 생도가 무림맹에 넣어 주겠단다.

악교운마저 황당한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네 녀석, 끝까지 날 놀릴 셈이더냐?”

“아아, 안 믿기나 보네.”

하여간 요즘 애새X들은 믿음이 없어요, 믿음이.

“이래 봬도 지금 섬서무관과 산동무관으로 가는 거 당백진 그 양반이 말 꺼내서 가는 거야. 그렇단 건 뭐야. 결국 내가 돌아가면 받을 게 분명 있겠지? 만약 네가 이기면 그 보상으로 널 천성검대에 넣어 주겠단 소리야.”

그 말에 소화진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반응처럼 다른 생도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드디어 미쳤구나. 저 새X가.”

“예. 미쳤네요. 대놓고 비리……. 아니, 입맹 비리라고 해야 하나. 가장 공명정대해야 할 인사 문제를 저렇게 대놓고?”

“원래 또라이인 건 알았지만, 저걸 내걸고 내기를 하네.”

“아니지. 원래 세상은 권력이 전부랬어. 나라도……!”

떠드는 생도들의 말에 소화진은 눈매를 좁혔다. 대놓고 입맹 비리를 저지르겠다는 소리를 저리 잘도…….

하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천성검대(天聖劍隊).

무림맹에서 가장 빛나는 무력 단체 중 하나.

거기다 그 천성검대를 이끄는 이가 다름 아닌 천성검협(天聖劍俠) 하후성이었다.

다음 차기 무림맹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탁월한 무공 실력과 따뜻한 인품, 정마대전을 비롯해 수많은 전장에서 쌓아 올린 실적과 공적까지.

삼대 무관 비무대회에서 한 번 본 이후로 본 적이 없었지만, 그의 옆에서 빛나는 별이 되고 싶은 소화진이었다.

그런데 고작 삼초만 견뎌 낸다면 그 하후성이 있는 천성검대로 보내 준다고…….

“근데 말이야. 그건 네가 버티고 나서 할 말이지. 뭔 걱정을 미리 하고 있냐?”

감상에 젖어 있던 소화진의 상념을 깨운 건 다름 아닌 천무린의 양손이었다. 왼손마저 검게 물든 기운으로 양손 모두 최심장을 펼쳐 내고 있는 천무린이었다.

그러고는.

까딱, 까딱.

“안 들어오고 뭐 해?”

까딱거리는 손끝에 소화진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천성검대고 나발이고 지금 무엇이 중요할까.

‘으득, 그 무엇이 되었든 후순위다. 일단은 세 초식을 막고 나서 생각한다.’

지금 당장 저 녀석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오늘 밤은 분해서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이다.

처억, 검 손잡이를 부서져라 꽉 쥔 소화진의 두 눈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러고는.

타앗!

땅을 박차는 소화진의 검결에 청운적하검 8성임을 다시 한번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검게 물든 검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고는 내려치는 검격이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애매한 높이에서 천무린을 압박하고 있었다.

보통은 정수리를 쪼개려 들거나 혹은 명치나 급소를 노리기 마련이건만, 소화진이 펼치는 청운적하검에는 그러한 것이 없었다.

그저 보이는 빈틈을 향해 뻗어 갈 뿐.

그 모습에 천무린은 눈에 이채를 띠며 뻗어 오는 검면을 오른손으로 강하게 후려쳤다.

“멍청하긴! 대번에 손이 잘려 나갈 것이다!”

콰가가강!

찌르는 검의 검면을 친다는 것은 대단한 자신감이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방어법이었다. 검면을 쳤을 때 완벽하게 쳐 내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공격을 허용해야 하고, 또한 검에 둘러싸인 검기를 감당해 낼 만한 내력 역시 충분해야 했다.

소화진은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내력을 불어넣었다. 거기다 청운적하검의 검결이다.

자신을 절정급의 반열까지 올려놓은 그 검결이다.

그런데.

꽈앙!

으응……?

꽈앙이라고?

왜 그런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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