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무신, 무림학관을 제패하다-129화 (129/250)

제129화

제129화

“……그래, 효능은 보았느냐?”

“생각보다 나쁘진 않더라고요.”

당백진의 표정이 대번에 구겨졌다.

적독단과 귀구의 알, 이 두 가지의 영단을 합쳐 개량한 영단은 그 어떤 영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효능을 자랑했다.

사천당가가 자랑하는 최고의 의원들과 독의 대가들이 직접 투입되어 만든 결과물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효능을 점검하고 확인하여 최고급 상태로 뽑힌 것들만 전달했는데.

고작 한다는 말이 뭐?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당백진으로서는 그야말로 복장이 뒤집히는 소리를 잘도 하는 천무린이었다.

“뭐, 어차피 저 아니었으면 귀구의 알은 생각지도 못했을 건데. 평생의 은인에게 감사는 못 할망정 표정이나 구기고 있고 말이야. 쯧.”

끄르륵.

저도 모르게 피가래가 끓는 느낌이다.

언젠가부터 천무린이 하는 행동이 당백진을 쇠약하게 만드는 듯한 기분까지 들 정도였으니.

그러나.

또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이 없었다.

천무린이 아니었으면 귀구라는 존재의 효용 가치를 생각할 수도 없을뿐더러 적독단과의 배합 역시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으니.

어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어린 녀석에게 자꾸만 말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본인뿐 아니라 사천무관 전체가 말이다.

“……그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예요?”

보검이라도 챙겨 주려고 그러나.

하긴 기특한 짓을 내가 좀 많이 했어야지.

생각해 보면 모든 공이 천무린보다 당백진에게 간 셈이었다.

비무대회 우승은 곧 사천무관의 명예로 직결되지, 마공서 회수도 제일 빨리해, 쓰잘머리 없던 장로들도 내쳐 줘.

이거 뭐, 밥상을 차리다 못해 숟가락으로 떠서 먹여 준 꼴이 아닌가.

당백진, 너 이 새X.

운 좋은 줄 알아라. 나 아니었으면 이렇게 못 했을 텐데.

그렇게 득의양양한 미소로 배까지 내밀고 있는 모습에 당백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네놈 징계 건 때문인데.”

으응?

“세 교관은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정작 문제를 일으킨 네 녀석이 아무런 징계 없이 넘어가는 게 문제가 없다고 보느냐?”

……그게 무슨?

천무린이 뭐라 입을 열려고 하자, 당백진이 씨익 웃는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되지 않겠느냐. 공은 공이다. 나는 네 녀석이 비무대회에서 우승하면 달라는 적독단을 무려 오십여 개 이상 지급했다. 나는 약속한 대로 실제로 행했지.”

반박할 수도 없게 만든다.

“그간 네가 세운 공이 있고, 실적으로 보여 주어 교관 이상의 만행……. 아니, 기행을 저질렀어도 그냥 이해하고 넘어갔으나, 벌은 또 다른 문제다. 너에 대한 징계를 아무런 조치 없이 넘어간다면 무관의 근간 자체가 흔들린다.”

이 역시 맞는 말이다.

천무린의 표정이 절로 구겨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잘한 거지. 그 장로 놈들이랑 정치질을 하더니, 아주 입담만 는 거 같은데.

부글부글 끓는 천무린의 얼굴을 바라보는 당백진의 입가가 씨익 올라가더니,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리하여, 섬서무관과 산동무관에 다녀와야 할 것 같구나.”

와락.

다시금 종잇장처럼 구겨진 천무린의 표정에 당백진의 어깨가 으쓱했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으응?

뭐지, 대체 저 웃음은?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했거든. 시킬 일은 차고 넘치니 말이다. 언제든 말만 해 다오. 싫으면 싫다고.”

하아, 이 새X가 정말 죽이고 싶…….

부들거리던 천무린은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물론 지금 당장 죽이고 싶다고 해도 죽일 수 없었다. 당백진은 장로들 따위랑은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정파 무림의 최고수 중 하나다.

오죽하면 정마대전 때 자신을 막으려고 보낸, 정파에서 차출된 고수 중 하나로 꼽혔겠는가.

천무린, 성격 다 죽었다. 다 죽었어.

어쩔 수 있나. 힘이 약한 걸 탓해야지.

에휴, 내 인생아.

“그냥 다녀오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것은 아니다. 다만.”

“다만?”

“제갈벽을 기억하느냐?”

제갈벽!

섬서무관의 총교관이자 혈마공을 익히고 천무린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

혈마공의 부작용 중 하나로 과도한 내력을 끌어올림으로써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인간이 아니던가.

천무린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해졌다.

“알죠. 그 양반, 사라졌다면서요?”

“그렇다. 제갈벽뿐만 아니라, 섬서무관과 산동무관에서의 교관들 몇몇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더구나.”

……사라져?

사라진다는 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제갈벽처럼 마공의 부작용으로 사라질 수도.

혹은.

납치나 영문 모를 사건 사고에 휘말린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게 혹여 마공을 익힌 자들이 사라진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

심지어.

‘생각해 보면 쥐 소굴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한 지 제법 시간이 지났다. 별 소식이 없어도 꼬박꼬박 연락책이 찾아오던 것과 다르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은 확실하군.’

천무린으로서는 움직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다녀오죠. 근데 이거 징계 이상인 거 알죠?”

“응? 무슨 말이냐?”

“아니, 어떤 양반이 징계랍시고 밖으로 내보내서 일을 시켜! 그것도 간단한 일도 아니고 어쩌면 생사가 걸린 일을?”

“그러니까 너를 보내는 것이건만.”

으응?

천무린은 저도 모르게 황당한 시선으로 당백진을 바라봤다.

“어디에 던져 놔도 살아 돌아올 녀석이지 않느냐.”

그건 그렇…….

아니, 이 양반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버럭 소리치려는 찰나,

“사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더구나.”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당백진이었다.

“사파가 또 왜요? 마공서는 이미 다 회수됐는데.”

그 인간들은 심심하면 움직이네.

“이번에는 녹림채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었던 모양인데, 아무래도 그때보다 더욱 주도면밀하더군. 그래서 차출할 수 있는 인원이 많지 않구나. 대부분의 전력을 각 문파들과 협력하여 재차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쏟아야 하다 보니.”

당백진의 눈이 깊어졌다. 이처럼 잦은 움직임을 보인 적이 많지 않았던 녹림채라서 더욱 시름이 깊어진 것이다.

거기다 녹림채는 사도칠강(邪道七剛) 중 하나다. 난잡하게 각자도생을 하던 녹림칠십이채가 벽력왕 금태도를 주축으로 하나의 세력으로 굳건히 세워졌을 때, 칠강 중 손꼽히는 세력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그놈 대가리들은 뭐 금강석 대가리라도 되나 보죠?”

“……응?”

“다 깨부수면 그만이지 뭘 고민해요?”

정마대전 당시, 사파의 개입은 없었다.

아마 있었더라면 천무린 본인에게 다 개박살이 났을 텐데.

사파는 정마대전 때 그저 관망만 했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는 신경 쓰지 못하는 두 세력을 뒤로하고 야금야금 세력을 넓히는 것이 더욱 꿀맛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중원 무림은 딱히 구축해 놓은 세력이 없는 중도 세력을 제외하고는 딱 삼분지계(三分之計)로 나뉜다.

그중 두 세력이 지들끼리 싸우고 난리를 친다. 그럼 남은 다른 세력은?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가만히 있으면 지들 세력에 신경도 못 쓰고 있는데, 얼마나 좋겠는가.

그때, 녹림채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은 벽력왕 금태도는 녹림의 산채를 확연히 넓혔고, 수룡왕 파건량 역시 장강수로채의 세력을 확장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파의 사도칠강의 세력들 역시 각자 자신의 영역을 확장했다.

물론 그 당시, 마교로서는 당연히 그리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사파는 정파 무림의 무림맹처럼 구심점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라도 각개격파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허나, 정파 무림은 가지는 부러져도 근간은 흔들리지 않았다. 깊이 박힌 뿌리를 뽑아내기란 쉽지 않았으니까.

“걱정 마세요. 돌아와서 그 새X들 대가리 다 부숴 줄 테니까.”

안 그래도 잘됐어.

정파 무림의 대가리는 좀 부숴 봤는데, 정작 사파 대가리는 부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천무린의 말에 당백진이 고개를 떨궜다.

입 아프게 더 말해 무엇하랴.

“아무튼 몇몇 이들을 더 데리고 가려무나.”

“귀찮아요. 혼자 다녀오면 되죠.”

“길은 알고?”

……어, 길?

그냥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섬서무관과 산동무관을 한 번이라도 가 봤을 리 없을 텐데.”

하기야 두 무관이 어디에 있는지 듣도 보도 못했다. 내가 살던 전생엔 없었으니까.

“그냥 길잡이만 한 명 붙여 줘요.”

“산동이라면 아주 잘 알고 있는 인물이 하나 있지. 들어오게!”

당백진의 말과 함께,

쑤욱!

“뭐야. 쥐새끼가 숨어 있다는 건 느끼고 있었지만…….”

빠직.

“쥐새끼?”

이마에 힘줄이 돋은 표정으로 악교운이 험상궂게 노려보고 있었다.

“아아, 그렇게 바라보지 마요. 어차피 3개월간 총교관도 아니잖아요?”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 천무린이었다.

등장하자마자 천무린에게 살인 욕구가 일어나는 악교운이었다. 어떻게 된 인간이 볼 때마다 살의를 느끼게 만드는지.

“후후. 악 교관, 아니. 악 대주라고 해야 하나.”

3개월간 호위대의 대주 자리를 맡게 된 악교운이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천무린 생도와 함께 산동무관과 섬서무관을 다녀오게.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가면서 듣고.”

그 말에 악교운이 물끄러미 당백진을 마주 본다.

“……안 가는가?”

“저 혼자 이놈을 상대하란 말씀이십니까?”

으응?

당백진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천무린과 악교운을 동시에 바라봤다.

그게 무슨.

“당 관주님이 생각해 보십시오. 섬서무관과 산동무관, 두 곳을 다녀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립니다. 하루에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이 녀석과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생각을 좀 해 보십시오.”

그 말에 당백진이 천무린을 힐끗 쳐다보자, 천무린 역시 마주 바라보았다.

“후후후.”

음흉하게 미소 짓고 있는 천무린을 보아하니…….

음. 끔찍하군.

당백진이 쩝, 하고 소리를 냈다.

“하긴, 너무했나.”

“예. 말도 안 되는 처사입니다. 이건 징계를 두 번 내리는 심한 처사가 아닙니까.”

저리도 심하게 반발하니 어쩔 수가 없군.

“그렇다면 한 명 더…….”

“적어도 다섯은 데리고 가야 합니다.”

으응?

당백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다섯이라니, 무슨.

“저 녀석이랑 같이 움직여 보셨습니까?”

“그게 무슨…….”

“끼니때마다 혼자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주 상전입니다. 상전! 일하는 사람 따로 있고, 밥 먹는 사람 따로 있다고요. 아주 난리도 아니지요! 으으!”

이토록 열 받은 악교운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는데, 제법 많은 고생을 한 듯싶었다.

정말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은데, 정작 당사자는…….

“음, 내가 그렇게만 했나? 하긴, 내가 좀 착해지긴 했지.”

저러고 있으니.

읍읍!

악교운의 발작이 시작되었지만, 그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게 중요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