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제15화
열양장이라.
새외삼궁을 격파할 때도 마주했던 강력한 무공 중 하나이긴 했다. 익히 알고 있는 무공이면서도 애먹을 수밖에 없는 열기와 무서우리만치 강한 양기로 인해 온 혈관이 잠식되는 듯하여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남해태양궁의 열양장이라는 강력한 무공은 분명 나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단.
그건 남해태양궁주에 한해서.
그 외엔 별로?
극성의 열양장은 손바닥에 닿는 어지간한 것들은 죄다 녹여 버릴 정도로 후끈하다.
근데 눈앞에 보이는 이건.
피식.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화산에 흐르는 용암을 보다 잠깐 담뱃불을 본 듯한 느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남해태양궁주의 일수에 적중당한 바위는 통째로 녹아내렸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처럼 손에 거치적거리는 것들은 모조리 태워 버릴 정도였다.
그때, 그랬던 태양궁주도 결국 내게 고개를 숙였는데.
눈앞의 이놈은.
호부견자인지, 아직 정신머리를 덜 키운 건지 모르겠다만.
지금의 내가 상대하기엔 아주 적당했다.
뚜둑.
투박하기 그지없는 관절을 돌리며 몸을 푸는 내 몸에 금빛 서기가 전신을 순환했다가 사라졌다.
역근경이었다.
금빛 서기가 지나간 자리엔 청명함이 내 몸속을 달궜고 이내 충만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맑은 기운이 요소요소에 가득 찬 느낌과 그간 익힌 것을 몸소 확인할 차례였다.
타닥!
때마침 디딤발을 찬 남사익이 달아오른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왔다.
“제법.”
황태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 한 호흡 만에 지척에 다가서는 그의 양 손바닥은 불그스름하다 못해 주황빛이 감돌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동일하게 손바닥을 마주했다.
은은하게 금빛 서기가 담긴 부처의 손바닥으로.
장법을 펼치기 위한 도움닫기 동작 하나 없이 마주 손바닥을 펼치는 나를 보고 남사익은 코웃음을 쳤다.
“광오한 자세! 그따위 무공으로 열양장과 부딪치다니, 양 손바닥이 당장 화상에 입을 터!”
X랄.
화상이고 나발이고.
이 손바닥과 마주하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걸.
왜냐고?
정말 부처의 손바닥을 빼다 박았거든.
중원 무림에는 천마라는 위대한 교주를 그 자체로 교리를 삼는 곳이 있는가 하면, 도교의 교리를 따라가는 무당과 곤륜 등이 존재했고, 소림처럼 부처를 믿으며 정신 수양을 하는 곳도 있다.
말이 부처지, 실제로 이 소림 무공의 토대를 닦은 이는 신승 달마와 육조 혜능이라는 위대한 승려들이었다.
그들의 이름값은 천마신교의 초대 천마, 무당파의 창시자로 일컫는 장삼봉과 비교해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았다.
즉.
이놈이 맞이하고 있는 내 손바닥은 최상승의 절기인 셈이다. 열양장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콰앙!
두 손바닥이 부딪치면서 뜨거운 열기가 확 올랐다. 마치 차가운 냉기에 부딪힌 열기처럼 연기가 훅 하고 주변을 감쌌다.
화아악!
“이, 이게 무슨!”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저릿한 반탄력에 팔꿈치가 절로 꺾이는 남사익이었다.
‘내 열양장이 무너졌다고?’
흔들리는 놈의 동공을 본 나는 더 이상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어림없지. 어딜 도망가려고?”
팔꿈치가 꺾인 놈이 황급히 뒤로 빠지려는 모습에 금나수(擒拿手)의 수법으로 그 녀석의 손목을 낚아채 흡자결(吸字訣)의 묘리로 당겼다.
그 충격으로 인해 양손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었던 남사익은 그대로 내게 끌려왔고, 마주했던 두 손을 회수하며 놈의 관자놀이, 목, 명치, 양 옆구리를 두드렸다.
퍼억! 퍽! 퍽퍽퍽!
이것 역시 부처님의 힘으로.
푸드드득.
물론 놈 역시 그저 맞아 주지만은 않았다.
양손을 어지러이 움직이며 열양장을 계속해서 뻗어 왔다.
황태와 같이 멍청한 놈보다는 확실히 수준이 높았지만…….
그게 뭐.
역근경의 금빛 서기가 순식간에 감돌았고, 반항하는 놈의 열기가 내 몸을 자꾸만 침투하려는 것을 틈틈이 막았다.
동시에 나는 반발력에 의해 주르륵 밀려났다.
쳇.
화끈한 열기가 두 손에 침투한 것이 느껴지자, 역근경의 기운으로 재차 몰아냈다.
입으로만 떠드는 놈인 줄 알았는데, 제법인걸.
그러나.
내 손바닥은 다섯 가지의 동작으로 무수히 변화하며 놈의 급소만을 노렸다.
눈, 턱, 목젖, 겨드랑이 할 것 없이 거침없이 노리는 내 움직임에 남사익의 입에서는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미, 미친 새끼……. 어떻게 정파라는 인간이 이런 잔인한 손속을!”
단 한 번도 생사투(生死鬪), 즉 목숨을 걸고 누군가와 겨뤄 본 적이 없는 남사익의 입장에서는 까딱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내 급소 공격에 순간 정신이 나갔는지도 모른다.
물론 사천무관에서도 그렇게 가르쳤다. 정도(正道)의 길을 걷는 이들이니까.
근데.
“커억!”
“잔인? X랄하네. 내가 먼저 적을 안 죽이면 내가 죽어. 싸움이라는 게 말이지.”
피를 토하며 떨어져 나가는 남사익은 목젖에 박힌 주먹 때문에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누가 죽인댔냐……는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한 채 남사익은 천천히 주춤주춤 물러났다.
“뭐, 뭐야. 이 연기는! 어떻게 된 건데!”
송무의 말처럼 연기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 다수의 후보생들이 대련 장면을 보지 못한 눈치였다.
답답함을 해소하고 빨리 보고 싶은 이들은 발을 동동 굴렸다.
단 한 번의 충돌, 그리고 재차 공수를 주고받는 소음도, 소리도 금방 흩어졌기에 들은 이가 몇이나 되었을까.
손바닥뿐 아니라 팔꿈치와 무릎 등이 모두 화끈거렸다.
“후.”
가벼운 숨을 불었다.
온몸을 털어 내듯 가볍게 있는 나완 달리 사방에선 궁금하기 짝이 없는 모양이다.
봐서 뭐해.
“누구야, 누군데?”
“당연히 남사익이 이겼겠지. 아직 천무린이 그 정도 급은 아니잖아?”
“혹시 모르지!”
벌써 승부가 판가름이 났음을 깨달았고.
대체 누굴까.
누가 압도적으로 한쪽을 무력화시킨 건지 다들 궁금해했다.
쏴아아.
연기가 한 꺼풀씩 사라지자.
척 맞아떨어지게.
남사익이 무릎 한쪽을 꿇은 채, 피를 한 움큼 토해 내고 있었다.
“커억.”
“어……?”
뜻밖의 상황에 모두 벙찐 표정을 짓는데, 그 적막감을 깬 사람은 다름 아닌.
털썩.
한 사발의 피를 토해 내고 난 뒤 바닥에 쓰러진 남사익이었다.
* * *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
큰 충돌 후 반탄력에 의해 튕겨 나가는 남사익에게 바짝 따라붙어 총 5번의 권격을 펼쳤다.
쏟아지는 소림오권(少林五拳).
용권(龍拳)으로 후두부를.
호권(虎拳)으로 목울대를.
표권(豹拳)으로 명치를.
사권(蛇拳)으로 양 옆구리를.
학권(鶴拳)으로 복근을.
짧은 시간에 무려 5곳을 후려치며 남사익의 다음 동작이 이어질 수 없도록 했다.
마냥 당하지만 않았던 남사익의 열양장에 견뎌 내느라 온몸이 화끈거렸지만, 역근경을 끌어올려 화기가 몸속에 침투하려는 것을 재빨리 막았다.
소림 72절예와 역근경의 조합은 모든 소림의 무공에 최적화되어 있다.
몸을 단련함과 동시에 익힐 수 있는 소림의 무공에 대해 구결을 체득하고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약해빠졌어. 고작 열양장의 기운 따위에 침투나 당하고 말이지.”
후.
혼자 불만족스러워하고 있는 와중에.
“우와아아아!”
“남사익도? 황태에 이어서?”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8기 후보생들은 황태 사건 이후 새롭게 일어난 사건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남사익이라는 존재는 후보생들에겐 상당한 버거운 존재였다.
다른 누구처럼 나서서 괴롭히거나 남을 헐뜯지는 않을지언정 그가 갖고 있는 뒷배경과 세간에 알려진 무공 실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척 부담스러웠으니까.
그런데 출신도, 배경도 뚜렷하지 않은.
미천하기 짝이 없는 천무린이 다시금 기득권을 깨부수는 위용을 선보였으니.
“그것도 단 한 수에?”
“X랄, 설마?”
“아니, 근데 충돌음 뒤에 주고받는 소리가 전혀 없었는데?”
“연기 때문에…… 안 보인 거겠지.”
후보생들의 선망 어린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반짝이는 시선, 시샘 어린 시선, 호기심 어린 시선.
다양한 생각들이 드러난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꽂혔다.
그 과정이 어떻든 간에.
당연히 환호가 따를 수밖에.
하지만 그런 환호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부교관들은 9번 후보생을 당의원에 데려가도록.”
악교운이 나섰다. 그가 보기에도 내가 펼친 손속이 꽤나 무자비했다고 느낀 걸까.
행동은 신속하게 뒤처리를 하면서도 눈초리는 자꾸만 날 향해 있었다.
칫.
사실 그 연기 속에서 교관들을 제외하고 내 동작을 파악할 수 있었던 놈이 몇이나 될까.
한눈에 봐도 여기서 배운 무공은 아니니까, 내 딴에는 조금 찔리는 점도 있긴 하다.
근데 어쩔 거야.
중원 무림이라는 곳이 원래 신비한 곳이다.
기연이라는 것이 절대 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평생 동떨어지기만 한 인연도 아닌 것이다.
의심을 할 수는 있지만, 심증에 불과할 뿐.
깊게 파고들지는 못하는 불가침의 영역에 가깝다.
거기다.
“결과는 나온 것 같군. 17번 후보생이 조장이 되었다. 그 어떤 이견도 받지 않겠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부교관 한 명이 다가와 내 팔뚝에 조장을 상징하는 노란색 띠를 걸어 주었다.
“축하한다. 넌…… 참.”
부교관 한 명이 날 바라보다가 혀를 차곤 뒤로 빠졌다.
나 뭐? 왜?
왜 말을 하다가 마는지 모르겠다.
“결과가 어찌 됐건 누구 때문에 칠 주야(七晝夜)나 교육과정이 밀린 덕분에 상당히 빡빡하게 일정이 진행될 것이다.”
누구 때문에? 나 때문이란 거야, 지금?
후보생 따위가 말한 것에 재밌겠단 표정으로 수긍한 게 대체 누군데! 이런 씨X.
황당한 표정으로 악교운을 바라보는데, 악교운은 내 시선 따윈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당장 내일부터 조별 과제를 시작할 것이다.”
단호한 말에 곳곳에서 한숨이 터져 나오는데, 한 후보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다소곳한 자태에 눈가에 점이 인상적인 여후보생이었는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저기…… 교관님!”
조심스러운 태도에도 불구하고 악교운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뭔가, 33번 후보생?”
“9번 후보생이 조장인데, 당의원에서 치료를 받느라 내일 참가를 못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배려라도 해 달란 소리인가? 아님 교육과정을 또 미뤄 달라고 애원하는 건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울먹이는 후보생의 모습에 악교운은 고개를 저었다.
“착각하는 모양인데, 굳이 조를 구성한 이유가 무엇일 것 같은가? 제멋대로 날뛰다가 다쳐서 제 조원들에게 이렇게 해를 끼칠 때마다 서로 책임을 분담해서 나누어 짊어지란 소리다. 거기에 대해 적절한 소통과 이야기를 나누라고 조원과 조장이 있는 거고. 너희는 그것을 못 했다. 그럼 그 책임은 누가 지는 거지?”
그냥 애를 주먹으로 패지, 말로 패고 앉아 있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저렇게 훈육 아닌 훈육으로 두드려 패는 게 더 아플 거 같은데.
삽시간에 분위기는 냉랭하게 얼어붙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