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63화 (363/408)

363화. 진 대라멸진 (2)

‘진 대라멸진 오의?’

시체에서 목소리가 전해진 직후.

원형으로 공동에 자리하고 있던 기둥들의 기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준혁은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 받아들인 대라멸진이 원래 자신이 알던 것보다 곱절 이상은 위력이 강했기에, 진산문의 문주가 그걸 위해 이곳에 칩거했다고 여겼던 것.

하지만 실상은 하계에서 얻은 대라멸진 자체가 원래 위력이 약한 것이었고, 진산문 문주가 이곳에서 준비한 건 이제 시작하려는 진 대라멸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36방 대라멸진의 지식을 전해 받으며 기진맥진해진 준혁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지금보다 얼마나?’

만약 34방에서 35방으로, 35방에서 36방으로 발전하며 강해진 위력 정도면 어떻게든 쥐어짜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력적으로 변한다면?

‘힘들다.’

준혁은 시시각각 기운이 응집해가는 기둥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재빠르게 수결을 짚어 마족의 전영을 불러냈다.

전영으로 전신을 보호한 후엔 귀원패로 그 위를 덮고, 곧이어 새까만 창을 꺼내 머리 위에 대기시켰다.

진 대라멸진의 지식을 전해 받기 위해선 얼마나 강력한 기운을 버텨내야 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피하는 순간 마지막 오의는 날려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어떻게든 버텨볼 작정으로 곧이어 16명의 분신마저 소환했다.

“으음…. 무린가?”

하지만 여러 차례 분신들을 대거 동원해 영력을 소비했기 때문인지, 영력이 텅 비어가는 느낌에 급하게 분신들을 소환 해제해야만 했다.

그러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혀를 차고는 새까만 창까지 회수했다.

사막에서 얻은 천영보 흑룡.

일정 지역을 보호하는 데엔 전함만큼 대단한 물건이었지만, 방어만 생각하다 보니 흑룡의 진짜 기능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기둥에서 전해오는 기운을 공격으로 인식이라도 하는 날엔 천영보가 자동으로 반격에 나설 테니 혹여라도 기둥이 파괴되며 노인이 만든 안배가 깨질 걸 염려한 것이다.

대신 준혁은 삼지행을 일으켜 등 뒤로 거인을 소환했다.

직후 거인이 가진 삼지행의 기운을 치유에 특화된 성광지력으로 치환한 채 대기시켰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순간.

쉬리릭-

36개의 기둥에서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선명한 연기 뭉치가 흘러나왔고,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고대 문자로 변하며 준혁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준혁은 발끝으로 서른여섯 가닥의 금빛 실을 사방으로 날려 보낸 후, 한 손을 들며 공동이 흔들릴 정도의 파동을 퍼트렸다.

투웅-

그리고 그에 응답하듯 성광지력으로 이루어진 거인이 급속도로 작아지더니 준혁의 몸속을 스며들어 사라졌다.

그 순간 준혁의 몸이 별빛처럼 빛나며 눈부신 광채를 흘렸다.

***

6개월 후.

여전히 파괴의 흔적만 가득한 혈수림.

생명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그곳엔 두 명의 여인이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폐허가 돼버린 곳, 유난히 눈에 띄는 백색 바위 근처에 자리한 두 사람은 바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불안한 듯 손끝을 만지작거렸다.

두 여인은 준혁과 함께 혈수림을 찾아온 소화여와 조호랑.

백색 바위를 통해 사라져버린 준혁이 금방이라도 모습을 보일 것 같은 느낌에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는 중이었다.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아무렴요. 그분이 어떤 분이신데요.”

초조해하는 조호랑의 혼잣말에 소화여는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응대했다.

그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조호랑은 소화여를 슬쩍 흘겼다. 하지만 한마디 쏘아붙이려다가 차분해 보이는 소화여의 손끝이 쉼 없이 허벅지를 두드리는 모습을 보고는 한숨과 함께 고갤 저었다.

불안해하는 건 그녀뿐 아니라 소화여도 마찬가지였던 것.

당연하게도 준혁의 수행에 유적이나 비경을 탐사하는 게 위험할 가능성은 극도로 낮았다.

그런 그가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두문불출했으니 어쩌면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오래 걸리시면 소식이라도 전해주시지….”

결국 조호랑은 자신도 모르게 투정이 섞인 말을 뱉어냈고.

“미안하오.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소.”

투정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허공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공!”

목소리는 그토록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던 사람. 조호랑은 번개처럼 튀어 나가 준혁을 껴안았다.

와락-

잠시 후 소화여도 화사해진 얼굴로 다가와 준혁을 살피고는 다행이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하실 줄 알았어요. 가신 일은 잘되셨나요?”

“걱정해주어서 고맙소. 난관이 있긴 했지만…. 목표한 바는 이룬 것 같소이다.”

준혁은 조호랑에 이어 소화여도 가볍게 토닥여 주고는 자신이 겪은 일을 간략하게 전해주었다.

진산문의 전대 문주를 만나, 대라멸진을 전해 받을 일부터, 마지막엔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긴박했던 상황까지.

사실 노인이 만들어놓은 안배를 준혁이 소화하는 데는 며칠 걸리지도 않았다.

순화된 대라멸진을 이겨내면서 그 안에 담긴 지식을 받아들이면 그만이었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심각한 부상이 생겼고, 그걸 치료하다 보니 생각보다 긴 시간이 흐른 것뿐이었다.

‘성광지력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

준혁은 마지막 진 대라멸진을 경험하며 온몸이 녹아내리는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예전 소화여가 태양지력에 녹아내리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어째서 지식을 한꺼번에 전해주지 않고 1방부터 시작해 36방까지 순차적으로. 그다음에 최종오의인 진 대라멸진을 전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저 지식전달 수준이라 생각했던 일련의 단계는 사실은 대라멸진에 대한 이해도와 경험을 사용자가 직접 체험하게 도와주는 수단이었고, 그 덕에 엄청난 속도로 진법에 대한 이해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마지막 최종오의를 힘겹게나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중간에 포기했다면 모든 게 사라졌을 테고.’

모든 게 끝난 후에야 36단계의 안배는 사실 지식전달 수단임과 동시에 시험인 것도 깨달았다.

애초에 36방까지 견딜 수 없다면 진 대라멸진은 전해줄 필요조차 없다는 기문학의 뜻이 담긴 안배였던 것이다.

준혁은 여인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며 자신이 겪었던 일을 한 번 더 떠올리고는 마음 한편이 경건해 짐을 느꼈다.

기문학은 자신이 이뤄낸 성과에 만족하면서도 마지막에 ‘숙제’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 이유가 있었기 때문.

‘자격이 없는 자, 하늘을 부릴 수 없다는 것이겠지.’

진산문의 시조가 천기를 읽고, 후대가 그 지식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대라멸진.

그 최종오의는 하늘을 부릴 수 있었고, 그만큼의 자격이 필요했다.

아직 준혁에겐 까마득히 먼, 어쩌면 모든 수사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능력이.

‘그래서 최종오의를 완성하고도 진산문에 돌아가지 않은 걸지도….’

진실은 모르지만, 준혁은 기문학이 이곳에 잠들었던 이유가, 자신이 완성한 진 대라멸진이 불완전하게 사용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진 대라멸진을 불완전하게 사용하려 한다면 그걸 행하는 수사의 목숨도 위험했지만, 무엇보다 천기 자체가 어그러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대화와 상념에 빠져있던 준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다음으로 향해야 할 곳을 입에 담았다.

“이곳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 것 같으니 빠르게 움직입시다.”

“그래요. 이제 그곳으로 가나요? 공천귀라는 마선의 흔적이 남은 그곳으로?”

준혁이 비행법기를 꺼내지도 않고 이동할 준비를 하자, 의문에 찬 조호랑의 물음이 이어졌다.

“갈 곳이 한 곳 남았습니다.”

“어디?”

대라멸진을 얻었으니 다음으로 가야 할 곳?

그곳은 중괴가 찾아놓은 적마의 창고였다.

***

백색 바위를 떠나온 일행은 곧장 남쪽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괴가 표시한 곳에 도착한 준혁은 그가 말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파악했다.

‘이곳이구나.’

중괴가 말한 장소는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숲터,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곳곳이 파괴된 흔적이 가득한 곳이었다.

다만 그의 말대로 미약한 마선기의 흔적이 남아있었는데, 작정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느낄 수 없을 만큼 매우 미약했다.

‘어르신은 이걸 적마의 표식이라 여기신 거군.’

적마가 자주 들렀던 곳에 마선기의 표식이 남아있다?

적마의 창고라 판단한 중괴의 의심은 일견 타당해 보였다.

“여긴 무슨 일인가요?”

그때 준혁을 따라 장소를 옮겨온 조호랑과 소화여가 질문을 던졌고, 준혁은 중괴의 전언을 전해주었다.

“네? 적마의 창고요? 세상에나!”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적마가 훔쳐 간 보물의 행방을 궁금해했는지 알기에 두 여인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두 눈에 어린 감정은 욕심까지는 아니어도 궁금증을 가득 담고 있었다.

“저희도 같이 갈 수 있나요?”

잠시 후, 적마의 창고에 대해 기대하던 두 여인은 준혁이 대라멸진을 가지러 사라졌던 시간을 기억해내며 함께하길 원했다.

두 여인의 그렁그렁한 눈빛에 준혁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힘듭니다. 그리고 어르신의 예측이지 정말 적마의 창고인지도 모르고.”

“하지만….”

“다만, 꼭 함께하고 싶다면 우선, 제가 먼저 확인 후 불러들이도록 하지요.”

“정말이죠?!”

두 여인이 어떤 마음으로 함께하길 원하는지 알기에 무리하지 않는 선이라면 그녀들을 막을 생각이 없던 준혁.

그는 기뻐하는 여인들을 뒤로한 채 바닥을 향해 손을 가볍게 흩뿌렸다.

그러자 손끝에서 흘러나온 마선기가 바닥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미약한 마선기가 정확히 어디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거기군.’

그리고 그 순간.

파앗-

준혁이 가볍게 한 걸음을 걸었고, 그의 몸이 공간을 찢듯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남은 두 여인만이 사라진 준혁을 보며 기대감에 들뜰 뿐이었다.

***

파앗-

적마의 창고로 의심되는 공간에 위험 요소가 없음을 확인한 준혁은 적마의 권능으로 간단하게 이동해 왔다.

하지만 간단하게 도착한 것과 달리, 도착한 후엔 마음의 동요가 찾아오고 말았다.

아니,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여긴…?”

적마의 창고.

그곳은 원형 공동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텅 빈 공동엔 작은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곳엔 세 개의 법기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리고 천장에서 흘러나오는 별빛이 은은하게 공동의 중앙을 비추며 고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설마? 신비경이었단 말인가?”

그랬다. 준혁이 도착한 적마의 창고로 의심했던 장소.

그곳은 하계에서 몇 번이나 마주했던,

마선들이 봉인되어있던 신비경의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준혁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먼저 기감으로 공동 안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역시, 맞다.”

그리고 나서야, 공동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이 경험했던 신비경과 똑같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주변 파악을 끝낸 준혁은 공동 중앙에 그려진 진법을 확인하고는 제사용 단상 위에 놓인 법기들마저 확인을 마쳤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세 개의 법기를 회수했다.

쿠우웅-

그러자 예상대로 작은 진동과 함께 중앙의 진법이 발동되며 그곳에 마선으로 짐작되는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세?”

하지만 예상과 다른 것이 하나 있었으니.

봉인 진법에 모습을 드러낸 마선은 적마처럼 비아냥거리지도, 그렇다고 말을 걸어오지도 않고 법기 형태로 그저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봉인 진법 안 마선.

그는 가위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적매가 말하길 공간에 작은 상처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제외하곤 보잘것없다고 말했던 마선. 106번째로 태어난 마선이었다.

“설마 자아를 잃은 것인가?”

다만 그는 죽은 것처럼 아무런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호수 안에서 발견했던 화괴와 수괴처럼.

완전히 잠든 것처럼 마선기를 제외하곤 어떤 기운도 감지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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