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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62화 (362/408)

362화. 진 대라멸진 (1)

‘적마의 창고가 정말 이곳에 있었단 말인가?’

준혁이 새삼 놀라는 사이, 중괴는 거만한 태도로 설명했다.

“이곳으로 남쪽으로 조금만 움직이면 너도 느낄 수 있을 것이야. 옅은 마선기로 만들어놓은 무언가를. 내 예상이 맞다면 분명 그곳이 적마의 창고다.”

황금빛 격자 세상은 정보전달을 위한 비술이지, 대화가 가능한 것이 아니었기에 중괴는 혼잣말을 이어갔다.

“물론 내가 직접 확인해볼 수는 없었지만 틀림없을 것이다. 위치를 남겨두니 네놈은 반드시 그곳을 확인해야 한다.”

중괴의 설명이 이어지던 순간, 준혁은 눈동자에 실선이 생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실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황금빛 격자로 이뤄진 시야 속, 남쪽에 있는 한곳의 위치가 유난히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놈들이 자꾸 이상하게 쳐다보니 더는 말을 남기기 곤란하구나. 대라멸진에 이어 적마의 창고까지 털어먹으면 네놈이 얼마나 발전할지 벌써 기대가 돼. 흐흐. 그럼 훗날 만나자꾸나. 아 참 그리고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스르륵-

중괴는 다른 마선들의 시선 때문에 비술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 건지, 급하게 말을 끊으며 사라져갔다.

마지막에 언급한 아이가 누굴 말하고 있는지 알기에 그의 배려가 고마웠다.

“가만히 뭘 보고 계신 건가요?”

그때, 주변을 탐색하는 조호랑과 달리, 준혁 곁에 대기하고 있던 소화여가 말을 붙였고, 준혁은 고개를 흔들며 황금빛 격자를 지워버렸다.

황금빛 격자 세상은 중괴의 눈을 흡수한 준혁에게만 보이는 것이었기에, 남들 눈엔 혼자 멍하니 있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아니오.”

잠시 후, 준혁은 소화여에게 한쪽으로 비켜달라는 말을 건넨 후 백색 바위 앞으로 다가갔다.

“진법을 펼쳐야 하니, 범위 밖으로 물러나 주시구려.”

그리고는 한 손을 백색 바위에 올렸다.

36방 대라멸진이 보관돼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 그곳에 출입하기 위한 조건은 하나.

바로 대라멸진을 발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준혁은 오래전 하계에서 익힌 대라멸진을 펼쳤고, 이내 그의 손을 따라 흘러간 영력이 백색 바위를 자극했다.

화아악-

직후, 백색 바위에서 하얀빛이 터져 나왔고, 빛이 사그라들자 준혁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

깊고 어두운 동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듯 동굴의 내부는 울퉁불퉁했고 종유석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지하인가?”

백색 바위를 대라멸진으로 발동하면 특수한 공간이 나타날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준혁은 마치 전송진을 통해 이동되듯 전혀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

어둡고 음습한 동굴은 얼마나 깊은 지하에 있는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로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어둠과 호흡 따위는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기에, 기감으로 주변을 완벽하게 파악한 그는 한쪽으로 이어진 동굴을 천천히 이동했다.

저벅저벅-

그러길 한참, 지하로 의심되는 공간임에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공동을 마주할 수 있었다.

“허어. 이런 곳이.”

공동은 직경이 수백 미터는 넘을 듯했는데, 진득한 영기로 가득 찬 신비한 공간이었다.

“평범한 곳에 있진 않다 이건가?”

공동에 들어선 준혁은 호흡을 통해 폐부 깊이 들어온 영기를 만끽하다가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박- 차박-

공동 내부가 동굴 천장에서 떨어진 물로 인해 곳곳에 물이 차 있었기에, 발소리가 기묘하게 주변을 울렸다.

잠시 후, 공동 중앙에 도착한 준혁은 좌정한 채 죽음을 맞이한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이미 기감으로 전부 확인한 일이었기에 놀라거나 하진 않았지만, 노인이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에 깊은 관심이 갔다.

“진산문의 수사인가?”

고문성에서 만났던 일곱 종문.

노인은 그때 만났던 이들 중 한 명과 비슷한 행색을 하고 있었다.

“설마….”

대라멸진을 만들었다는 진산문의 수사와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진산문의 최종오의라는 36방 대라멸진이 소실되었다는 건 전해 들었었다.

후일 알아본 바에 의하면 당시 진산문의 문주가 어떤 깨달음을 얻어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사라졌고, 그때 36방 대라멸진도 함께 소실되었다고 했다.

“그때 사라졌다는 문주인가?”

잠시 후, 자신이 알게 된 사실들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며 어느 정도 상황을 유추해본 준혁은 노인의 시체와 이어진 주변의 기운을 읽으며 조심스럽게 노인에게 다가갔다.

“왜 이리 이곳의 영기가 짙은가 했더니, 모두 진법 때문이었어.”

그리고는 노인을 발견했을 때처럼 또 한 번 의외의 상황에 놀라야 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노인과 공동 곳곳에 연결된 기운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총 36개의 선이 노인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형상이었다.

기이한 건 이미 노인은 죽어 생기라곤 전혀 없었는데, 36개의 선은 아주 미약하게나마 계속해서 주변 영기를 빨아들여 응축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노인은 죽었어도, 그가 펼쳐둔 진법은 살아있다는 듯이.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예상이 갔기에, 준혁은 내심 마음의 준비를 하며 당장이라도 의지를 움직일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는 그때.

쉬리릭-

노인의 시체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던 준혁이 우뚝 멈춰 서며 양손을 재빨리 펼쳤다.

“어딜!!”

파앙-

그 순간 희미한 무언가가 소리 없이 터져나갔고, 그와 동시에 시체인 줄 알았던 노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눈을 뜬 노인은 살아있는 건 아닌지, 강렬한 빛을 내뿜다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이곳에 왔다면, 진산문의 일원이겠지. 후인은 의심치 말고 내가 남긴 모든 걸 받아들이거라.

그리고는 명령을 내리고는 처음의 시체 모습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준혁이 노인의 음성에 잠시 생각에 빠지려는 찰나,

쉬리릭-

소멸시켰다고 생각한 무언가가 또다시 생성되더니 준혁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준혁은 다시금 그것을 처리하려다가 의지를 움직여 주변의 기운을 완벽하게 조종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다가오던 기운의 정체를 파악하고 침음을 흘렸다.

“흐음…. 그런 거였나.”

희미한 연기 뭉치처럼 보였던 무언가.

그건 대라멸진이 발동된 후 남은 결계의 흔적 같은 것이었고, 노인은 옥간이나 다른 수단이 아닌, 진법 자체에 자신의 의지를 담아두었다.

그 의지가 준혁을 발견하고 반응한 것이었다.

즉, 그것은 진산문의 문주였던 노인이 후인을 위해 남겨 놓은 대라멸진의 비술의 압축판이었다.

***

결계의 흔적을 파괴하지도, 그렇다고 받아들이지도 않고 허공에 멈춰 서게 만들어둔 준혁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결정을 내렸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노인이 남겨 놓은 안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빈손으로 나가야 했기에 결국 결계의 흔적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다만 위험해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미 죽은 자와 연결된 진법이라고는 하지만, 대라멸진이라는 이름을 무시할 순 없었으니 말이다.

잠시 후, 결정을 내린 준혁은 희미한 연기 뭉치를 막아서던 의지를 거둬들였고,

슈르륵-

그 순간 연기 뭉치는 기다렸다는 듯 준혁을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그리고는 준혁 앞에 이르러 희미한 모습이 점차 선명한 모습을 갖추었고, 순식간에 문자의 형태로 변해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오, 이런 것이었군.’

연기가 문자로 변해 완전히 스며들고 나자, 준혁은 노인이 준비해 둔 일련의 상황이 어떤 건지 명확히 깨달았고, 마음을 어느 정도 놓을 수 있었다.

스며들었던 연기는 하나의 진식을 형성하며 준혁의 뇌리에 박혀 들었고, 그것은 이미 그가 익힌 가장 기초적인 1방 대라멸진과 거의 동일한 것이었다.

다만 그가 익힌 것과 살짝 다른 점이 있었는데, 위력이 곱절 이상은 되었고, 다룰 수 있는 최소 조건도 훨씬 더 상향돼 있다는 것이었다.

“상위 술법인가.”

그제야 준혁은 노인이 이곳에서 무엇을 준비했는지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 진산문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대라멸진을 더 발전시키려 시도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게 분명했다.

지이잉-

그때, 노인을 중심으로 공동의 끝머리 부분에서 서른여섯 개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기둥은 준혁이 사용했던 대라멸진 원반의 기둥들과도 비슷했는데,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품고 있었다.

“시작인가?”

연기 뭉치가 가장 기초적인 1방 대라멸진을 심어주는 용도였기에, 이후 어떻게 진행될지 대충 예상하던 준혁은 의지를 일으켜 정신을 보호했다.

그리고는 전신으로 영기파동을 퍼트리며 공동이 터져나갈 듯 자신 있게 외쳤다.

“오라!!”

쉬리릭-

그 순간 서른여섯 개의 기둥 중 두 개의 기둥에서 희미한 연기 뭉치가 동시에 흘러나왔고, 준혁을 향해 쇄도하게 시작했다.

***

두 개를 시작으로, 다음엔 세 개. 그다음은 넷.

노인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빙 둘려 있던 기둥들은 하나씩 숫자를 늘려가며 연기 뭉치를 흘려보냈고,

순차적으로 그것들을 흡수할 때마다 준혁은 상위 대라멸진을 뇌리에 각인할 수 있었다.

그 희열감이란 말로 다 하기 힘든 것이었는데, 당장 뇌리에 박힌 모든 걸 소화해 낼 수만 있다면 동급 수사는 당연했고, 상위 수사도 간단히 제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서른여섯 방위를 뜻하는 36방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수행으론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쉽지 않구나.’

노인이 준비한 안배를 수월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던 준혁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제대로 발동된 대라멸진이 아닌,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한 죽은 진법이 이토록 위력적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준혁은 곁에 있는 노인의 시체가 왠지 비웃음을 흘리고 있다고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지!”

그리고는 연달아 수결을 맺은 후, 발을 구르며 영기 파동을 퍼트렸다.

파앙-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노인이 준비한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물러날 수도 있었다. 생각보다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그렇게 하는 게 나은 판단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걸 끝으로 더는 대라멸진을 익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준혁은 느끼는 중이었다.

그가 공동에 들어서며 느꼈던 진득한 영기.

그건 후인이 방문했을 때 진법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려 했던, 노인이 준비해 둔 진식의 일부였던 것이다.

만약 준혁이 여기서 멈추어 선다면, 다시 진식을 발동할 만큼 진득한 영기가 모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기도 하고 말이다.

***

콰르릉-

서른다섯 번째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굉음이 동굴을 울렸고, 준혁은 열여섯 분신을 전부 방출해 진법의 기운을 차단한 상태였다.

그 상태로 버티고 버틴 준혁은 진법의 기운이 약해지는 틈을 타 노인이 준비한 마지막 결계의 흔적을 흡수해낼 수 있었다.

“휴…. 끝인가.”

열여섯 번째 대라멸진의 흔적부터는 하나하나가 전투와 같았고, 시간도 점점 오래 걸렸기에 그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특히 마지막 35방과 36방을 버틸 때는 말 그대로 몸이 녹아내리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다만 녹초가 된 준혁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흡족한 상태였다.

정식이 아닌, 대라멸진의 흔적을 전해 받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할 정도면, 제대로 된 진법을 사용한다면 그 위력은 감히 상상되질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맺힌 만족이 채 사라지기도 전.

쿠우웅-

묵직한 진동과 함께 지금껏 죽은 듯 자리하고 있던 노인의 시체가 다시금 빛을 내며 눈을 떴다.

그리고는 위엄과 자부심이 가득한 목소리를 내었다.

-이제 마지막이다! 후인은 받아들일 준비를 마치거라! 나 기문학(奇雯鶴)! 평생의 숙원을 담은 숙제를 이곳에 남겼다!

이어지는 말엔 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전신의 영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려야만 했다.

-진(眞) 대라멸진! 진정 대라를 멸할 최종오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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