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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67화 (267/408)

267화. 뜻밖의 이득 (2)

"정신을 차렸는가?"

준혁의 따뜻한 목소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태식은 한참 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제가 왜 이곳에 있는 겁니까? 설마 절 구하러 오신 겁니까? 아니. 그럴 수 없을진대. 스승님이 철저하게 감시…."

"스승이라니? 자넨 아직도 그자를 스승이라 여기는가? 세상에 어떤 스승이 제자를 이렇게 만든단 말인가?!"

"그, 그건…."

온화한 표정을 짓던 준혁이 버럭 소릴 지르자, 태식은 잠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혼내기 위함이 아닌, 걱정이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준혁의 설명에 급기야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아! 저를 구하려고 위험을 무릅쓰시고,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내가 한 일이 무어 있겠나? 여기 어르신 덕분이니 인사를 하려거든 이분께 하시게나."

준혁은 자신의 공로를 전부 중괴에게 넘겼다.

그러자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듯, 중괴는 헛기침하며 두 사람을 외면해 버렸다.

"떼잉, 나이가 몇인데 사내놈이 눈물을. 해후가 끝나면 부르거라. 잠시 바람 좀 쐴 테니."

그리고는 스르륵 흩어지듯 허공을 가르며 모습을 감춰버렸다.

"어르신께서 쑥스러우신가 보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정식으로 감사하다 전해드리게."

‘장난기가 다분한 것 같다가도, 저런 모습을 보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성정은 되질 못하나 보구나.’

마선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생각한다면 일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준혁은 짧은 시간 중괴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고는 태식에게 조언과 함께 그의 몸 상태를 재점검했다.

"자네 몸은 어떤가? 공법을 일으켜 보게. 혹시 모를 금제가 있는지도 파악해보고."

"어라? 그러고 보니! 세상에나!"

몸 상태를 점검하던 태식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두 눈을 치켜떴다.

스스로 살아날 가능성이 없기에, 준혁이 함정에 걸리지 말기를 바라며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는데, 온몸이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자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설마 선배님께서?"

허공을 슬쩍 바라본 준혁은 이번에도 중괴에게 공을 넘겼다.

‘음흉한 노인네, 나들이는 무슨. 숨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면서.’

"어르신께서 자네를 치료하기 위해 초연단을 사용하셨네."

"예에에?! 초, 초연, 초연단을 말입니까?!"

자신이 구함 받은 것보다 더 놀라웠는지, 태식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반응에 중괴가 왜 그리 초연단의 가치를 거듭 강조했는지 느낄 수 있었기에, 준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그러니 나중에 어르신께 꼭 고맙다 말씀드리게나."

"무, 물론입니다! 그런 보물을 어찌."

잠시 후, 진정을 되찾은 태식에게 그가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는 것과 그의 사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이걸 받게. 지금은 힘들겠지만, 전왕문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서 다시 만나자며 자네 사제가 남긴 물건일세."

준혁에게서 주먹만 한 옥패를 건네받은 태식은 그것을 이마에 가져가 그 안의 내용을 천천히 음미했다.

그리고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눈물을 주르륵 흘리더니 품 안에 소중히 보관했다.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준혁은 시간이 지나자 헛기침과 함께 주변을 정리했다.

"그럼 이만 이곳을 떠나보도록 하세나. 혹시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가?"

그리고는 태식이 고민도 없이 고갤 젓자, 하늘을 향해 힘껏 외치며, 공간대에서 비행법기를 꺼내 그 위로 올라탔다.

"어르신. 이만 출발하겠습니다."

잠시 후, 허공이 갈라지며 머쓱한 표정의 중괴가 나타나자, 준혁의 조종 아래 비행법기는 미끄러지듯 하늘을 갈랐고, 전왕문의 성채를 넘어서 멀어져가는 동안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눈앞의 닥친 일을 해결한 준혁의 행보는 다음 목적지인 남운대륙을 향하기 시작했다.

***

전왕문이 자리하던 곳을 벗어난 준혁 일행.

하늘을 가르는 그들 앞엔 끝도 없는 푸른 숲 펼쳐져 있었다.

검은 암석 따위밖에 존재하지 않던 흑석대륙과 비교되게, 주운대륙은 황톳빛 땅이 가득했고, 그 위로 숲과 평원이 쉴 새 없이 이어져 있었다.

옆에서 조잘거리는 태식의 말에 의하면, 주운대륙은 선계의 중심이라 일컬어지는 천운대륙과 남운대륙을 제외하고 동식물이 가장 자라기 좋은 환경이라 했다.

그만큼 범인들의 도시와 마을이 가장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범인들과 수도자들이 따로 산단 말인가?"

"그렇진 않습니다. 다만 선인 중엔 범인을 가축보다 못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종종 있어서…. 그들을 피해 범인들만의 마을이 만들어진 것이죠."

"쯧, 자신들도 수행을 쌓기 전엔 크게 다를 것 없었을 텐데, 참으로 꼴사나운 생각을 하고 있구나."

"그런 것으로 심기가 불편하면, 혈수림에 간다면 피가 거꾸로 치솟겠어?"

태식과의 대화 중 중괴가 끼어들자, 준혁은 빠르게 그의 말에 반응했다.

"혈수림이 무엇입니까?"

"그것도 모르느냐? 너는 도대체 출신이 어디길래 이렇게 아는 게 없느냐? 저기 화신기 꼬마도 다 아는 것들을."

준혁이 비승 수사임을 밝힐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태식이 설명을 이어갔다.

"혈수림은 천운대륙과 남운대륙에 경계를 맞대고 있는 ‘중림(中林)’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교하자(嬌鰕子)라는 무리가 있는데…."

"있는데? 왜 설명을 멈추는 겐가?"

"크흠. 교하자 무리는 인육을 주로 먹는 종족으로 중림 곳곳에 범인들로만 이루어진 마을을…. 아니 가축소를 가지고 있다 들었습니다."

"뭐?!!"

준혁은 진심으로 놀라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인육을 대놓고 먹는 무리가 있고, 심지어 인족을 가축화해서 키우다니.

"그런 걸 그냥 보고 있단 말인가?!"

"그럼 뭘 어쩌란 말이냐?"

준혁의 반응에 중괴가 시큰둥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준혁이 발작할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네놈이 인족이라 그러나 본데, 어차피 모든 종족은 비슷하다. 그럼 인족은 어떠하느냐? 영수들을 잡아다 평생의 종으로 삼지 않느냐? 영혼까지 종속시키면서."

"아…."

잠시 혀를 차던 중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희 인족들은 다른 의미로 감사를 표해야 할지도 모르지."

"감사라니, 그건 무슨 말이십니까?"

"지금은 그곳을 다스리는 왕이 존재하기에 교하자 무리가 중림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지, 아주 오래전엔 남운대륙과 천운대륙에서도 교하자 무리를 보는 게 어렵지는 않았었다."

"아…."

"그땐 정말 살육의 시대였지."

이어지는 중괴에 설명에 준혁은 아찔함을 느껴야 했다.

지금은 혈수림처럼 특수 지역이 아니면 모든 종족이 대부분 화합하고 살고 있지만, 오래전엔 수많은 종족이 대륙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이어갔다 했다.

그중 가장 잔인한 종족이 마족이었고, 결국 마족과 나머지 종족들의 결전으로 전쟁의 양상이 옮겨가, 지금의 구도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사람의 목숨 따위는 파리똥보다 가치가 없었다고 하니, 얼마나 무지막지한 세상이었는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그런 모습을 마주치게 된다면. 나는 어찌 행동해야 하는가.’

설악산에서 인체실험을 하던 강명학과 그의 제자들에 분노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던 준혁.

그땐 그것이 사람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 여겼기에 마음에 작은 머뭇거림도 없었다.

하지만 선계에 사는 수많은 종족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특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혈수림이란 곳의 교하자는 악의를 가지고 인육을 먹는 것이 아닌, 사람이 돼지와 소를 먹듯 말 그대로 그들의 식성일 뿐이라는 중괴에 말에 준혁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렵구나…. 어려워. 수행만 쌓는 것도 답이 아니구나. 내 마음의 길을 정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이런 마음의 혼란이 심마가 되어 나를 멈춰 세우겠지? 하아.’

괜한 얘기를 들었다는 듯, 준혁의 시름이 깊어져 갔다.

그때, 준혁의 안색이 어두워지는 걸 본 중괴가 자기병 하나를 건네며 쓴소리를 했다.

"지놈이 뭐라고, 세상을 구원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참나. 세상 모든 생명은 각자 살아가는 이유가 있고, 살아가기 위해선 살생을 할 수밖에 없는 거다. 만약 혈수림의 인족들이 불쌍하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지."

뭐라고 할지 뻔했기에 준혁은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

"네놈이 중림의 왕을 저지하고 교하자 무리를 멸족시키면 될 일이지. 크흐흐."

‘내 고민이 결국 내 이기심이란 뜻이구나.’

준혁은 중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그에게 깊게 허리를 숙였다.

가르침에 감사하다는 표현이었다.

그리고는 그가 건넨 자기병을 받아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흥, 네놈이 공을 내게로 돌린 탓 아니냐? 이걸 주지 않으면, 네놈의 공을 빼앗아간 파렴치가 되는 것인데. 교활한 놈. 이걸 예상한 것이지?"

중괴가 건넨 자기병 속엔 초연단 한 알이 영롱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절대 그런 뜻으로."

"됐다. 이제 진짜 더는 내줄 생각이 없으니 그건 소중히 사용하거라."

이러나저러나 호감이 섞인 행동인 걸 알았기에, 준혁은 더는 대꾸하지 않고 감사함에 고개 숙였다.

그리고는 중괴가 ‘쳇’ 소리를 내며 비행법기의 선두로 이동해 자리하자, 태식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말을 전한 후, 영역을 최소한으로 만들어 주변을 차단해 버렸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 준혁은 중괴가 던진 화두를 떠올리며 자신의 지난 일을 되돌아보고, 한편으로 앞으로의 자신을 그려보며 시간을 보냈다.

***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그때 그놈에게 뭐라 했길래, 그렇게 사실을 순순히 말한 것이냐?"

비행법기로 대륙을 가로지른지 몇 달,

중괴와 태식 그리고 준혁은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어느 정도 친분이 형성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중괴가 예전 일을 꺼내자 준혁은 별것 아니란 듯 대답했다.

"면교만과 함께 나타났던 그자 말입니까? 별말 하지 않았습니다."

준혁은 그때 허공에 구속돼있던 위선경 수사에게 한 말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둘 중 하나만 살려줄 테니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뭐라?"

"어르신께서 버티고 있는데, 다른 위협이 필요하겠습니까? 그자는 이미 겁에 질린 상태였고 자신이 사실을 발설해도 전왕문주가 책망하지 않았을 것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제가 협박을 하지 않았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건 또 왜 그러느냐?"

준혁은 별것 아니란 듯 설명했다.

"전왕문주가 아무리 수행이 높다 해도, 문파의 기둥은 위선경 수사 셋입니다. 그중 면교만이 죽고, 또 한 명은 죽어가고 있었으니, 어찌 잘잘못을 따지겠습니까?"

준혁의 말이 끝나자 중괴가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준혁을 바라보았다.

"거기까지 생각했더냐? 적마처럼 무식하기만 한 건 아니었구나."

이번엔 준혁이 발끈했다.

"왜 저를 적마와 비교하시는 겁니까? 그자는…."

"왜라니? 쏙 빼닮지 않았느냐? 남의 보물을 깡그리 훔쳐 가는 것이, 크흐흐."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낄낄대던 중괴는 갑자기 표정이 급변했다.

그리고는 멀찌감치서 수련 중이던 태식을 힐끔 보고는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적마가 모아놓은 보물이 가히 경천동지할 정도일 텐데…. 혹 네놈은 그 장소를 알고 있더냐?"

준혁은 괜한 오해를 사기 싫었기에 반사적으로 고갤 저었다.

"처음 듣는 말입니다. 적마가 모아둔 보물이라니…. 설마?"

그러다 중괴의 눈빛에 서린 웃음기가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고는 자신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어르신께선 알고 계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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