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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66화 (266/408)

266화. 뜻밖의 이득 (1)

모든 거래가 끝났다고 여긴 것인지 전왕문주는 중괴에게 인사를 한 후,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가 성채 쪽이 아닌 면교만이 죽어 있는 방향을 향하자, 그걸 바라보고 있던 준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잠깐! 지금 뭘 하시려는 겁니까?"

"뭘 하다니?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하나, 영면에 들었는데 장례는 치러야 하지 않겠나?"

부연 설명을 덧붙이진 않았지만, 그러니 시체를 수거해가야 하지 않겠냐? 하는 말이었다.

전왕문주의 말에 준혁이 차갑게 웃더니, 중괴에게 허락을 받은 후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면교만이 팔목에 차고 있던 공간 팔찌와 허리의 요대, 그리고 주변에 떨어져 있던 흑색 판과 쇠꼬챙이가 준혁에게 날아들었다.

"산 자들은 모르겠지만, 죽은 자의 물건은 전리품이지 않겠습니까?"

"이익."

물건이 손안에 들어오자, 준혁은 전왕문주가 보란 듯이 모든 물건을 중괴에게 넘겼다.

잠시 후, 중괴가 억압하고 있던 두 명의 수사를 풀어주자, 전왕문주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을 내비치며 그들을 비행법기에 태운 후 하늘을 갈랐다.

"오늘 전왕문이 제대로 털렸구나."

그 모습에 중괴가 탄식인지 흥미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적마의 힘을 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거의 도적놈과 다를 게 없어."

준혁은 자신을 양아치 같았던 적마와 비교하는 악담을 들었지만, 감히 따지지 못하고 쓰게 웃기만 했다.

‘이 정도면 내가 당한 것에 대한 복수는 됐겠지.’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멀어져가는 전왕문주에게 재빨리 전음을 날렸다.

-문주, 한 가지 더 드릴 말이 있습니다.

-적당히 좀 하시게! 또 무얼 말하려는 것인가!

전왕문주는 신경증에 걸린 듯, 준혁의 목소리에 질색했다.

하지만 이번엔 준혁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말을 건 것이었기에, 혀를 한 번 차고는 자신이 아는 바를 알려주었다.

-이번엔 도움을 드리려는 겁니다.

-도움이라니! 네놈 따위가 뭘 돕는단 말이냐! 으드득.

-면교만이 제물로 바쳤던 12명의 화신기 수사 중 태백랑의 손자가 있었습니다. 저와 헤어지고 대황대륙으로 돌아갔으니….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아시겠지요?

그 순간 멀찍이 날아가던 전왕문의 비행법기가 우뚝 멈춰 섰다.

진심으로 놀랐는지, 얼굴이 사색이 되어있었고, 목소리에 감정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지, 진정 그, 그 말이 사실인가?

-거래가 끝났거늘, 제가 없는 얘길 만들겠습니까?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그 역시 면교만에게 지독한 복수심을 가지고 있었으니…. 아무튼,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고, 고맙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네!

전왕문주는 준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곳에 왔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굉음을 내며 떠나갔다.

사실, 조말랑이 복수를 하기 위해 백랑족의 고위수사들과 이곳을 찾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혈족으로 이루어진 영수족이 일반적으로 은원관계가 확실한 걸 생각하면, 그들이 방문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긴 했다.

잠시 후, 신기하단 듯 준혁을 바라보던 중괴는 자신이 전음을 엿들었다는 걸 전혀 감출 생각이 없는지 궁금함을 내비쳤다.

"애송아, 왜 그런 것이냐?"

"예? 무엇을 말입니까?"

거래를 주도할 땐 당당했던 준혁은 다시 몸을 낮추며 중괴 곁에 공손히 시립했다.

"네놈이 당한 일을 생각한다면 전왕문에 복수하고 싶은 게 당연한 일. 왜 백랑족 꼬맹이 얘길 꺼냈냔 말이다."

"면교만이 죽었고, 보상도 충분히 받지 않았습니까?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전왕문주 개인이라면 모르겠지만…. 다른 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횡액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좋지요."

준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전왕문주 한 명만 죽는다면 백랑족이 쳐들어오든 말든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백랑족이 쳐들어와 이곳과 흑석지부를 쑥대밭으로 만든다면, 수많은 수사와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모였던 상단 인물들. 거기다 다른 곳에 비해 많진 않았지만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범인들까지.

필요 없는 희생이 너무 많았기에 미리 피하라고 경고를 한 것이었다.

준혁의 말에 중괴는 또 한 번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봤고, 눈치채지 못하게 웃음 짓기까지 했다.

***

"자, 받거라."

전왕문주가 떠나자, 중괴는 자신이 받은 물건 중 초연단 한 알과 주먹만 한 구슬 하나를 건넸다.

자신이 전왕문주에게 뜯어낸 것에 비하면 작은 것이었지만, 준혁은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저까지 챙겨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어르신."

"전왕문주가 초연단을 이렇게나 많이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겁이 많은 자라 하더니, 초연신단을 만들려고 했나 보구만."

"초연신단이 무엇입니까?"

준혁에게 건넨 한 알을 제외한 나머지 초연단이 든 자기병을 흔들며 혼잣말을 내뱉던 중괴가 반문하는 준혁에게 혀를 찼다.

"설마 네놈은 초연단이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고 뜯어낸 것이냐?"

"몸을 회복하는 신단 아닙니까?"

"허…. 어처구니가 없구나."

"그럼 무엇입니까?"

이번에도 ‘뭐 이런 놈이 다 있지?’라는 표정으로 준혁을 바라보던 중괴는 애송이의 지식수준을 높여주고자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말을 잇기도 전.

"그놈이 사람을 보냈나 보군."

화신기 수사 한 명이 멀리서부터 인기척을 내며 빠르게, 하지만 조심스럽게 날아들었다.

평범한 외모의 남수사는 관으로 짐작되는 물건을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선사를 뵙습니다. 문주님의 명으로 왔습니다."

잠시 후, 남수사가 겁에 질린 듯 관을 놓기가 무섭게 허겁지겁 사라지자, 준혁은 안에 잠자듯 누워있는 태식 수사를 꺼냈다.

입에서 절로 욕설이 나오려는 걸 참아야 했다.

"어찌 사람을 이 지경으로."

전왕문주는 인질을 치료해줄 생각은 없었는지, 고문받던 그대로 보내주었고 태식은 기식이 엄엄한 상태였다.

말 그대로 딱 죽기 직전인 상태, 원영마저 존재감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태식 수사, 정신 차려보십시오! 제 말 들리십니까?"

영력을 주입해 깨워보려 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태식의 상태를 확인한 준혁은 고민도 없이 공간대에서 단약 하나를 꺼내 들었다.

조금 전 중괴에게 받은 그 단약을.

"잠깐!"

하지만 중괴의 저지에 잠시 멈칫해야 했다.

"설마 그 아이에게 초연단을 먹일 셈이냐?"

"그렇습니다."

"허어. 너는 초연단이 아무렇게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인 줄 아느냐?"

이어진 설명에 준혁도 조금은 놀라야 했다.

초연단은 초연신단이라는 물건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재료로, ‘위례’라는 고위 연단사의 제자들이 만드는 물건이었다.

위례는 제자들이 수십 년간 정련해 초연단을 만들면, 그것을 가지고 다시 수십 년 정련해 초연신단이라는 진정한 신단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단은 죽은 자도 살리고, 심지어 혼백이 떠나지만 않았다면 원영만 남아있어도 신체를 완벽하게 복구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네놈에게 준 위례지단도 그 위례가 만든 것이다. 수행 속도를 배는 높여준다고 알려진 영보급 물건이지."

"아…."

준혁이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먹는 것 같자, 중괴가 말을 이었다.

"전왕문주가 이토록 많은 초연단을 가지고 있었던 걸 보면 초연신단을 만들기 위해서였겠지. 일반적으로 초연단을 가지고 다니는 자들의 목적은 그것뿐이니까. 뭐, 간혹가다 위급한 상황에 대비해 소지하긴 하지만, 그렇게 쓰기엔 가치에 비해 너무 아까운 것이지."

‘그래서 대막리가 초연단을 넘겨주길 꺼렸구나. 그도 초연신단을 만들려는 것이었어.’

초연신단만 가지고 있다면 부활 권능을 예비로 둔 것이나 다름없으니, 중괴의 말마따나 엄청난 물건인 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초연신단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초연단이 한 알을 제작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린다면 왜 그토록 귀한 보물 대우를 받는지도 알 수 있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고, 거기다 공급원이 한정된 물건.

"그렇다 한들, 당장 태식 수사를 살릴 방법은 이것뿐이지 않습니까? 어르신이 제게 주신 것이니, 제 뜻으로 사용하겠습니다."

준혁은 중괴의 눈치를 살피며 그가 또 한 번 말리기 전에 재빨리 태식의 입에 단약을 집어넣었다.

"허어. 그 아이와 인연이 매우 짧다 들었다. 헌데도 그런 결정을 한단 말이냐? 네놈은 정말 특이한 놈이구나. 어떨 땐 닳고 닳은 상인처럼 능숙하게 처신하면서, 또 적마처럼 도둑놈으로 변하기도 하고. 이럴 땐 또…. 참나."

초연단이 태식의 몸속으로 들어가자 죽어가던 그의 모습이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의식이 없었기에, 준혁은 자신의 영력으로 초연단의 약효를 온몸으로 퍼트리며 그를 도왔다.

잠시 후, 원영의 손상이 위험한 지경까진 가지 않았는지, 태식의 숨결이 안정되자, 준혁은 중괴에 허릴 숙였다.

"어르신께서 초연단을 주셨기에 살릴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녕 아깝지 않으냐?"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중괴는 제대로 된 대답을 듣겠다는 듯 또 한 번 같은 말을 물었다.

"물론입니다. 애초에 그가 위험에 빠지게 된 원인이 저입니다. 하면 그 대가가 무엇이든 당연히 제가 원상태로 돌려놓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스승이라 부를 자도 없고, 가르침도 따로 받지는 못했지만, 저는 그것이 바른길이라 믿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사실, 그것이 전부는 아니긴 했다.

하계의 짧디짧은 인연이었던 오태식.

짧지만 강렬한 충격과 함께 ‘불의’에 대한 준혁의 태도를 정립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던 사람.

그의 환생은 아니라 해도 그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기에, 태식이 죽어가는 걸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그것이 중괴의 눈엔 어떻게 비칠지는 몰라도, 준혁은 계산 없이 그냥 그래야 하니 행하는 것뿐이었다.

"그래, 그렇게까지 생각한다면 나도 더는 말하지 않으마. 하지만 초연단을 더 내줄 생각은 없으니 그리 알아라."

"물론입니다. 어르신의 위세를 빌려 얻어낸 물건들인데 당연하지요."

준혁이 너무 당연하듯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일까?

그가 다시 태식의 상태를 돌보기 위해 신경을 집중하는 사이. 그 모습을 뚫어지라 쳐다보던 중괴는 결국 피식 웃더니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의 속내를 읽을 순 없었지만, 시선에 호감이 가득해진 걸 보면 흡족해하는 건 분명했다.

"옜다. 이건 필요 없을 것 같으니 네놈이 알아서 하거라."

준혁도 여전히 중괴를 신경 쓰고 있었기에, 재빨리 물건을 받아들고는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면교만의 물건들이구나.’

왜냐고 물을 필요도 없이 준혁은 허릴 넙죽 접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면교만의 공간팔찌를 비롯해 법기들, 그리고 전왕문주가 유적을 발동시키는 장치라고 말했던 불꽃이 화려하게 새겨진 목함이었다.

목함을 받아든 준혁은 관심 없다는 듯 내색하지 않고 그 물건을 공간대에 빠르게 수납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대번에 깨닫고 살짝 기대감이 서렸다.

‘면교만이 찾으려던 최종 유적! 천영보급 물건이 숨겨진 곳과 관련된 물건이구나!’

스치며 본 목함의 불꽃 문양, 그것은 사막에서 경험했던 화염 구덩이의 불꽃과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태식이 눈을 뜨며 놀란 목소리를 내뱉었다.

"여, 여기가 어디…. 헉, 최, 최 수, 아니 최 선배님 아니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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