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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226화 (226/408)

226화. 도착 그리고 마선경

“그런데 구형께선 지금 저 마선경의 눈이 무얼 찾고 있는지 짐작하십니까?”

마선경의 눈동자가 하늘에 나타난 후, 황금빛 기둥을 보고 날아들던 수사들의 관심 역시 그곳으로 쏠렸다. 덕분에 두 사람은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산맥을 벗어나고 있었다.

“쉽게 생각하면 답이 보이는 법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우리가 보물이라 여겼던 것을 찾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겠지요.”

“제 말은 그것이 무엇이냐 하는….”

어리숙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야금야금 원하는 바를 알아내려는 독고진의 행동에 구로반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마선들의 능력 중 마선경의 권능은 널리 알려졌지요. 혹 모르십니까?”

“들은 바는 있습니다. 다른 마선들을 감시할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평소엔 마음의 거울을 만들어 다른 마선을 볼 수 있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저런 모습으로 실체를 드러낸 경우엔….”

“경우엔?”

“그곳에 마선이 존재할 때뿐이고 말입니다.”

즉, 구로반이 하고자 하는 말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두 사람이 보물이 나타났다고 여겼던 징조는 마선이 탄생했거나 나타난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

그때 하늘에 떠 있던 눈동자가 충혈된 듯 더욱더 붉게 변하더니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점점 희미해지더니 옅어지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눈동자를 둘러싸고 있던 타원형의 기류 역시 천천히 흩어졌다.

“눈동자가 사라집니다!”

“원하는 바를 얻었나 봅니다. 아니면 포기했거나….”

두 사람은 붉은 눈동자가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서봉산맥 북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

흑석대륙 북쪽에 위치한 장소로 빠르게 날아가던 구로반은 검은 돌을 제외하곤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평야에 들어서자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그리고는 허공을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

“누구신데 저희를 따라오십니까?”

구로반의 갑작스러운 혼잣말에 독고진이 화들짝 놀라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구형! 누굴 보고 하시는 말입니까?”

그때, 상공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가시처럼 앙상한 날개를 단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르륵-

공간을 가르는 듯 나타난 위압적인 모습과 달리 사내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였다.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은 푸르다 못해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쓰러지기 직전인 모습이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랬다면 미리 모습을 보일걸, 괜한 오해만 사게 했습니다.”

사내는 공격 의사가 없었던지 나타나자마자 날개를 회수하더니 저급 비행법기를 꺼내 그 위에 간신히 몸을 세웠다.

누가 보아도 환자의 모습 같았지만, 두 사람은 새로 나타난 사내를 향해 기세를 내뿜은 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상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 준혁은 다시 한번 양손을 흔들어 공격 의사가 없음을 표현하며 입을 열었다.

“이곳을 벗어나던 중 우연히 두 분이 하는 얘길 듣게 되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준혁이 보랏빛 입술을 움직여 힘겹게 말을 꺼내자, 구로반이 기감을 퍼트리며 말했다.

“흥,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몰래 숨어 따라와서, 이제야 우리의 의사를 묻는단 말입니까?”

상대방의 상태가 어떻든, 몰래 몸을 숨긴 채 따라온 그를 구로반은 탐탁지 않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어딜 가는 줄 알고 함께 하시겠단 말입니까?”

“안전하게 수련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간다 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근방에서 수련을 하던 중 암흑기에 오래 노출되어 몸 상태가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그래서 잠시 몸을 의탁하려는 것입니다.”

준혁이 난처한 듯 간절함을 담았다. 하지만 구로반은 단번에 거절 의사를 표했다.

“그럼 다른 곳을 알아보십시오. 제가 가려는 곳은 선배님들이 계시는 은신처라 모르는 이를 함부로 데려가기가 힘드니.”

구로반의 대답에 준혁이 시선을 서봉산맥으로 옮겼다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눈빛엔 ‘너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잖아?’라고 적혀있는 것만 같았다.

“평소였다면 제가 신세를 지려 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이곳이 지금….”

“상황은 알겠지만 안 될 말입니다. 그럼.”

구로반은 냉정하게 거절하더니 몸을 돌렸고, 독고진은 결정권이 없었기에 아무 말 없이 대기하다 그를 따랐다.

그때, 준혁이 급하게 그를 불렀다.

“아까 들으니, 저분께서도 의뢰를 맡겼다 말씀하시던데?”

“…언제부터 숨어있었던 겁니까?”

구로반은 상대가 모습을 감추고 접근하자마자 발견했다고 여겼다가,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재차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준혁을 노려보다 그가 손에든 물건을 바라보고는 노여움이 호기심으로 변해버렸다.

“흐음?”

준혁은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 손안에 든 자기병을 빠르게 던졌다.

“제가 가지고 있는 최고급 영단인 화목단이란 물건입니다. 저에게도 피난처를 제공해 주신다면 도착하는 대로 한 병을 더 드리겠습니다.”

구로반은 여태껏 냉랭한 모습과 달리 화색이 짙은 얼굴로 자기병의 마개를 열어 내부의 향을 맡았다.

그리고는 황홀한 듯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수도자원이 지구보다 훨씬 많음에도 선계에선 영단을 찾아보기 힘들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구나.’

선계라 부르는 중천(中天)은 지구보다 수배, 어떤 지역은 수십 배 짙은 영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에 비례해 더 많은 약초와 수도자원들이 존재했다.

기본적으로 지구의 수도자들이 수도자원의 기본으로 생각하는 영석조차, 중천의 영석에 비한다면 최하급품에도 미치지 못하는 돌멩이 취급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수도자원의 질이 더 높고 해마다 발견되는 숫자도 많음에도 기본적으로 수도자의 숫자가 지구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많았기에 언제나 자원 부족에 허덕인다 했다.

하물며 수행이 올라갈수록 영단 하나에 들어가는 자원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니, 자원 부족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물론 수도자들이 삶을 영위해가는 대륙이 아닌, 대륙 바깥의 위험지역에 가면 손쉽게 수도자원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만큼 위험했기에 그건 다른 문제였다.

구로반의 표정을 확인한 준혁이 손끝을 까닥 움직이자, 자기병에 줄이 달린 듯 그의 손으로 끌려왔다.

준혁은 손바닥 위로 자기병을 세운 채 할 말을 이어갔다.

“어떠십니까? 제 제안이?”

상대방의 수행을 완벽히 읽을 수는 없었지만, 자신과 비교해 크게 차이가 나진 않았다,

그 말인즉 연형기 후기에서 화신기 초기 사이일 거란 의미였고, 그런 그에게도 1품 화목단은 욕심나는 물건이 틀림없었다.

역시나 구로반이 반색하며 입을 열었다.

“하하, 남의 어려움을 쉬이 넘기지 말라 배우며 자랐지요.”

상대의 반응에 준혁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럼 저도 안전한 수련처로 안내해 주시는 겁니까?”

하지만 기대와 달리 구로반은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는 고개를 저으며 간사하게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

“헌데…. 두 병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는데….”

“평생을 모은 것입니다. 암흑기로 몸을 단련한 후 복용하려고 남겨둔 것인데, 지금 몸 상태가 위중해 넘기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귀한 영단을 내밀겠습니까? 이것이 부족하다 말씀하신다면 저 역시 할 말이 없습니다. 위험하더라도 제 갈 길 가겠습니다.”

공간대 안에 수십 병이 넘게 쌓여있었고, 정제된 지유목도 가득하였지만, 준혁은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구로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말을 하며 두 사람에게 보란 듯 기를 방출하자, 평소 접하기 힘든 무거운 기운이 퍼져 나왔다.

“이것이 암흑기!”

독고진이 감탄하듯 당황한 듯 움찔거리자, 곁에 있던 구로반은 코를 연신 벌렁거리며 숨을 들이켜 무거운 기운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로 암흑기로 수련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려.”

“말하지 않았습니까? 몸을 단련하던 중 암흑기에 침식당해 이리 상태가 나빠졌다고.”

미심쩍은 눈빛으로 준혁의 눈과 자기병을 번갈아 바라보던 구로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마음이 바뀐 건 영단 때문이 아닌, 수사의 사정이 딱해 보여서이니 오해는 말아주시고 말입니다.”

구차해 보이는 말이었지만, 준혁은 고맙다는 듯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는 손에 쥔 화목단 한 병을 건네자 구로반은 다시 한번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곳에도 수사처럼 암흑기 때문에 몸을 추스르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물론 만나 뵙기는 힘들 테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운이 좋다면 암흑기를 다루는 요령 정도는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는 사이, 세 사람의 신형은 서봉산맥에서 점차 멀어져 북쪽으로 사라져갔다.

***

끝도 없이 펼쳐진 구름.

대기의 영향도 받지 않는 듯,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은 구름 땅 중심엔 송곳처럼 솟아오른 산봉우리가 있었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새 지저귀는 소리나 풀벌레 소리하나 들을 수 없는 조용한 그곳엔 오랜만에 시끄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전히 지랄 같구먼. 왜 이런 곳에 사는 거야 도대체?”

송곳처럼 구름을 뚫고 나온 산봉우리에 찾아온 손님은 양쪽 어깨에 말의 갈퀴 같은 것을 달고 있는 미남자였다.

준혁이 보았다면 매우 놀랐을 외관을 갖춘 상대였다.

“또 거주지가 바뀐 건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어? 저기구먼?”

미남자는 누구를 찾는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산봉우리의 뒷면으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허공에 대고 입을 비죽였다.

“아우가 찾아왔는데 나와보지도 않습니까?”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제야 허공이 갈라지며 그곳에서 두 눈이 거울처럼 반짝이는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는 한없이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은색의 눈동자가 시시때때로 붉게 변하며 섬뜩함을 안겨줬다.

잠시 후, 갈퀴를 단 미남자를 쳐다보던 사내는 섬뜩한 눈동자만큼이나 소름 돋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목소리라고 하기보단 무언가 긁히는 소리였다.

“웬일이지? 우리 사이에?”

못마땅한 기색이 가득한 사내의 표정에 미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닌 듯, 무표정하며 섬뜩한 사내를 향해 친근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느끼셨겠지요?”

“…….”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하게 지칭하지 않으며, 갈퀴를 단 미남자, 괴조가 입술을 비죽였다.

“흐흐, 어찌 된 일인지, 존재는 느껴지는데 소리가 닿지 않더군요. 혹시 마찬가집니까? 그렇습니까?”

백팔마선경, 보통 마선경이라 불리는 눈앞의 사내는 마선을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는 능력자.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능력의 소유자 괴조는 얼마 전 새로운 마선의 기운이 느껴져 말을 걸었다가, 벽에 막힌 것처럼 목소리가 닿지 않자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갖춘 마선경을 찾아온 것이었다.

헤죽거리는 괴조의 표정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마선경은 못마땅한 듯 혀를 차더니 다시 허공으로 숨어버렸다.

“어? 어? 대답도 안 하고 사라지는 거요?”

그가 말없이 사라지자 괴조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가 허공의 한점을 향해 인상을 구겼다.

그러자 그곳에서 마선경의 목소리로 짐작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흑석대륙 서봉산맥 대원산에서 모습을 드러냈더군. 강직하게 생긴 인족이었어. 무슨 수를 쓴 건지 숨어버렸지만 말이야.

‘흑석대륙의 서봉산맥이면…. 예전 구지대륙과의 경계가 아닌가?’

마선경의 대답에 괴조는 빠르게 생각을 거듭하다가 주변에서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숨다니요? 에잉! 말을 끝까지 해주고 가야 하지 않습니까?”

-돌아가라. 네가 모시는 자가 좋아하지 않을 테니.

뒷얘기가 궁금했던 괴조는 죄 없는 땅을 쿵쿵 찍으며 불만을 표현했다.

“암튼 맘에 안 든다니깐. 그럼 한 가지만 더 알려주쇼! 정말 내가 느낀 게 맞는 겁니까? 느껴지는 기운을 보자니 마선이 한두 명이 아니던데? 한동안 안 보이던 것들이 약속한 듯 동시에 모습을 드러낼 리도 없고, 설마 한 놈이 전부와 동시 계약을 한 거요?”

한참 뒤 자신 없는 목소리가 괴조의 귀에 닿았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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