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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89화 (189/408)

189화. 성장 (2)

준혁은 완영기라는 말에 잠시 마음의 동요가 일었지만, 이내 신색을 바로 했다.

지금껏 아무도 자신의 수행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에이나르손을 포함한 결단기 수사들과 산들바람이 더 호들갑을 떨었다.

“선배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완영기라니요?”

“완영기 수사가 존재한단 말입니까?!”

“큰둥아? 너….”

하지만 준혁은 다른 이들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오직 꼬마에게만 집중했다.

‘마치 나를 만난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 않는가? 도대체 누구지?’

“저를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윈드라스 가문이라면 프랑스에 위치한 영수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준혁의 질문에 꼬마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수사가 그곳에 쳐들어와 가주를 참살하고 떠나지 않았습니까?”

참살이라는 단어에 준혁이 이맛살을 구겼다. 엄밀히 말하면 함정에 빠져 살아나오기 위한 정당방위였으니까.

“다니엘 가주가 괴한에게 습격당해 죽었다고 소문이 자자하긴 했는데…. 그것이 저자가 한 짓이라니!”

에이나르손이 놀라 소리치는 사이, 준혁은 바닥에 내려서며 발끝으로 토율서를 소환해 냈다.

“그런 기억이 있는 것 같긴 합니다만…. 그 안에 수사에 대한 건 없군요.”

윈드라스 가문의 가주를 죽일 때 수많은 가원들이 멀리서 준혁을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 그들 틈에 있었다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했을 터.

다만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단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왜 가주를 죽일 때 말리지 않았단 말인가?

준혁은 상대의 수행이 전혀 읽히지 않는 걸로 보아 자신보다 윗줄일 거라 여겼다.

준혁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꼬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그때 왜 다니엘 가주를 돕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는 얼굴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그럼 윈드라스 가문 출신은 아니란 뜻인가? 도대체 누구?’

말을 하는 사이, 산들바람은 준혁 곁에 내려섰고, 에이나르손을 포함한 나머지는 꼬마의 등 뒤로 이동했다.

‘다들 친분이 있는 건 아니군.’

에이나르손을 제외하곤 나머지 네 명의 수사들 역시 꼬마가 진짜 연기기인 줄 알고 있었던 듯, 얼굴엔 의혹과 당황이 자리하고 있었다.

준혁은 그들의 행태를 살피다 은근히 기파를 퍼트리며 말을 꺼냈다.

“수사께서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제가 그자를 죽인 이유를 아시겠습니다.”

“흐….”

알 듯 모를 듯, 미묘하게 웃는 꼬마를 보며 준혁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곳에 온 건 제 물건을 찾아가기 위해서지요. 원래는 감히 제 물건에 손댄 놈을 가만두지 않으려 했으나…. 수사를 보아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양해를 구한 준혁은 에이나르손에게 시선을 옮겼다.

“에이나르손 수사. 내가 낙찰받은 그 물건. 돌려주시면 조용히 돌아가겠습니다.”

준혁의 말에 에이나르손은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하다가, 꼬마와 시선이 마주치더니 세차게 고갤 저었다.

“아닙니다! 도무지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경매에 물건을 출품한 건 사실이지만, 어찌 그것을 가져온단 말입니까? 선배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경매가 끝난 후, 선배님 곁을 떠난 적이 없는데!”

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준혁을 향해 있었다.

“그렇다고 합니다. 이 녀석이 감히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오히려 제가 제안하고 싶군요. 가지고 계신 무상번을 두고 가신다면 돌아가는 길, 막진 않겠습니다.”

초팔뿐 아니라, 적반하장으로 무상번까지 내놓으라고 하자, 준혁은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꼬마가 말을 이었다.

“사실 무상번은 제 것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걸 구해오라 이 녀석을 보냈더니, 엉뚱한 이에게 뺏기고 말았더군요.”

“선배님 그건…. 저는 제 본명 법보를 팔아서까지 무상번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다만 저자가 가진 보물이 너무 대단해…. 아무튼 제 노력을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꼬마는 에이나르손을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여준 후 다시 준혁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준혁이 코웃음을 쳤다.

“온통 도적놈들 천지구나. 경매에서 정당하게 물건을 낙찰받았거늘.”

어느새 준혁의 말투에선 존대가 사라진 상태였다. 꼬마는 그런 건 개의치 않는지 평온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차피 그대가 가져가 봐야 크게 효과를 보진 못할 겁니다. 애초에 그건 반쪽짜리에 불과해, 무상진술에 적힌 효능 중 절반도 사용하지 못할 테니까.”

‘절반? 아!’

준혁은 꼬마의 말에 깨달은 바가 있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티를 내진 않고 은밀히 산들바람에게 전음을 보냈다.

-산들아, 미안하지만 영수대에 들어가 있어야겠어.

영수대란 말에 산들바람의 인상이 한껏 구겨지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녀가 아무리 눈치가 없다 한들, 눈앞에 꼬마가 준혁보다 강자라는 건, 준혁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존재는 전투 중 보호해야 할, 거치적거리는 동료에 불과할 뿐이었으니까.

슈욱-

잠시 후, 준혁의 손짓과 함께 산들바람이 그의 허리띠 안으로 사라졌다.

“원영기 영수족과 함께하길래 혹시나 했더니…. 정말 영수로 키우고 있었나 봅니다?”

꼬마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준혁의 영수대를 응시했다.

한편, 자신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던 원영기 수사가 영수라는 말에 결단기 수사들은 어안이 벙벙했는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준혁은 그런 그들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인지경을 꺼내 허공에 띄웠다.

동시에 양손을 합장했다가 서서히 벌리자, 양손 사이에서 붉은 장검, 적마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꼬마는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한 걸음 앞으로 걸으며 입을 열었다.

“무상번만 주신다면 조용히 보내드리려 했거늘, 피를 봐야겠다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완영기급 원영이 필요했는데, 후훗….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보여주기식으로 적마도를 화려하게 소환한 준혁은 꼬마의 질문에 턱을 살짝 올렸다.

“무엇을 말입니까?”

꼬마는 한 걸음 더 다가오더니 비열하게 입가를 벌리며 말했다.

“자고로 옛말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선수!”

말을 하던 꼬마의 몸이 흐릿하게 변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허공에 그림자가 생겨나더니, 준혁과 똑같이 생긴 분신체가 나타나며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필승이라고 말입니까?”

준혁은 꼬마가 하려던 말을 대신해주었다. 어느새 꼬마는 온몸에 얼음이 낀 채로 한쪽 벽면에 처박혔다가, 주르륵 바닥으로 쓰러졌다.

***

토율서를 통해 분광소와 식검 거기다 월광지력까지 남모르게 움직였던 준혁은 방심한 상대에게 유의미한 공격이 들어가자,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몰아치기 위해 곧장 움직이려 했다.

상대의 수행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지금, 최소한 완영기 후기라는 전제를 깔고 행동해야 했고, 그렇다면 분신체와 동시에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

하지만 어떤 행동을 하기도 전, 꼬마를 날려버린 분신체가 준혁의 의도를 무시한 채 움직였다.

눈 깜짝할, 아니 눈꺼풀이 움직이려는 찰나의 순간, 에이나르손에게 다가간 분신체는 순식간에 그의 배를 뚫어버렸다.

푸욱-

잠시 후, 결단기 수사들이 경악으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이, 분신체는 에이나르손의 배에서 천천히 손을 꺼냈고, 그 손엔 단추 형태를 띠고 있는 마선이 잡혀있었다.

준혁은 순간적으로 분신체가 웃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파앗-

분신체는 기운을 방출하며 분광소와 식검, 그리고 월광지력의 결정체인 하얀 구슬로 변해버렸다.

준혁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황급히 손을 저어 분리된 것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하지만 하얀 구슬과 분광소가 회수된 것과 다르게, 식검은 제자리에 떠서 반항하듯 몸부림쳤다.

‘흡수하려는 거구나!’

분신체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에이나르손의 단(丹) 안에 숨어있던 마선을 잡아먹으려고 한 식검의 의지임을 깨달았다.

준혁이 억제하고 있었지만, 준혁의 몸을 벗어난 순간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스스로 움직여 버린 것.

그에 고민할 것도 없이 준혁은 식검을 억제하고 있던 의지를 풀어주었다.

‘그래, 그렇게 원한다면 먹거라.’

자신보다 강할지 모르는 상대를 앞에 두고 돌발변수를 만들 수는 없는 일. 차라리 빠르게 초팔을 흡수해버리고 전투에 전념하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그때 준혁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준혁이 억제하고 있던 기운을 회수하며 자유를 준 순간, 식검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이내 귀여운 바가지 머리의 꼬마로 변한 것.

‘저건! 식아!’

단 한 번뿐이지만 만통방에 접속했을 때 본 적이 있던 모습.

준혁의 눈이 의문으로 흔들릴 때, 바가지 머리의 꼬마로 변한 식검, 식아는 다른 이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초팔을 낚아채더니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과자를 먹듯 뽀각- 소리를 내며 법기를 깨물어 먹기 시작했다.

***

아그작- 아그작-

어느새 대전엔 법기가 아이의 입에 씹혀가는 소름 끼치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식검이 마선을 잡아먹을 때와는 달리 직접 모습을 드러내며, 말 그대로 식사하듯 마선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

그 모습에 준혁은 공간대에서 네모난 옥패를 꺼내 식아를 감싸 보호했다.

동시에 귀원패를 날려 보호 법기 위로 육각 타일로 만들어진 원형 보호막도 생성했다.

공법을 수련할 때 외부의 충격을 받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가능성이 컸고, 준혁은 식아도 지금 그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 것.

그때 한쪽 벽면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싶은 순간, 준혁은 기감으로 꼬마가 모습을 감추었다는 걸 파악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준혁이 서 있던 발밑이 들썩이더니, 황토색의 날카로운 창들이 솟구치며 올라왔다.

차자자장-

“신기한 법기를 가지고 있었군요! 법기현상이 실체처럼 모습을 드러내다니! 거기다 다른 법기를 흡수하기까지! 무상번뿐 아니라 저것도 내가 가져야겠습니다!”

창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꼬마는 씨익 웃더니 마치 물속을 수영하듯 바닥으로 풍덩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에 준혁은 빠르게 조금 떨어진 바닥으로 내려서며 발을 굴렀다.

쾅!

“할 수 있다면 해보시지요.”

준혁의 발돋움에 토율서가 움직이며 땅속에서 흙으로 만들어진 병사들이 소환됐다.

병사들은 마치 땅속이 지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움직이며 꼬마를 뒤쫓았다.

동시에 땅속 깊은 곳에 있던 잡초 뿌리들이 급속도로 자라나 꼬마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푸악-

결국 꼬마는 잡초 뿌리와 흙 병사를 피해 땅 위로 솟구치며 양손을 허공에서 한 바퀴 돌려 준혁을 가리켰다.

“인족 따위가 땅속에서 나를 방해해?!”

‘인족 따위?’

모습을 드러낸 꼬마의 손짓에 땅이 부르르 떨리더니 흙먼지가 일어났다.

흙먼지는 순식간에 대전을 가득 채웠고, 어느새 사람들의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아버렸다.

그리고 준혁 역시 기감을 제외하곤 한 치 앞도 못 보게 되는 상황에 처한 순간.

푸욱-

흙먼지가 기이하게 회오리쳐 뭉치더니, 준혁의 몸을 그대로 관통해 버렸다.

“어떠냐! 감히 내 앞에서 지력(地力)으로 대결하려 하다니! 어리석…. 어?”

꼬마가 의기양양하게 웃음 짓던 그때, 회오리 뭉치에 몸이 뚫린 준혁이 펑- 하며 수많은 꽃잎으로 변해 터져나갔고,

잠시 후, 꼬마의 등 뒤에서 사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주력은 지력이 아닙니다만?”

촤르륵-

꼬마가 당혹한 얼굴로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허공에 흩날리던 꽃잎 몇 장이 순식간에 크기를 부풀려 녹색 줄기로 변해 꼬마의 손발을 감싸버렸다.

동시에 모든 걸 얼려버릴 것 같은 한기가, 정확히 꼬마의 이마를 향해 내리꽂아졌다.

쾅!

이마와 주먹이 부딪친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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