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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188화 (188/408)

188화. 성장 (1)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목소리.

준혁의 등장에 가장 빠르게 반응을 보인 건 에이나르손이었다.

상대가 몰래 숨어든 걸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기에 놀라긴 했으나, 이곳은 그의 본거지.

에이나르손이 수결을 맺으며 공간대를 건드리자, 대전에 노란 문자들이 떠오르며 영기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공간대에선 부적들이 자유의지를 가진 것처럼 사방으로 퍼져, 마치 준혁이 도망가지 못하게 지키는 것처럼 펄럭거렸다.

“오호, 대인살상진(待人殺狀陳)을 변형시켜 놓았습니다? 안목이 트이는군요.”

준혁이 단번에 대전에 펼쳐진 수법을 눈치채자, 에이나르손이 흠칫하며 또 한 번 수결을 맺었다.

잠시 후 대전의 끝에서 푸르스름한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며 대전을 감싼 진법을 한층 강하게 만들었다.

이번엔 준혁도 그의 술법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하고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때 몸을 숨기고 있던 산들바람이 모습을 드러내며 코를 움켜잡았다.

“우엑. 어디서 시체 썩은 내가나!”

‘시체?’

산들바람이 말한 냄새는 푸른 연기에서 풍기고 있었다. 다만 준혁이 맡기엔 조금 텁텁하단 느낌 말고는 오히려 살짝 달콤한 향기였다.

한편, 에이나르손의 반응에 연기기 꼬마 여자아이를 뺀 다섯 명의 결단기 수사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분분히 법기를 꺼내 들었다.

경매장에선 전원이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갑자기 나타난 이가 누구인지 확신은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정황상 화목단을 팔았던 이라 의심하면서.

“누구신데 남의 집에 몰래 숨어드신 겁니까? 정체를 밝혀주십시오.”

“질문을 하려거든 살상진을 펼치기 전에 하셔야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흥! 그대가 누구이든 좋은 의도로 온 것은 아닐 터! 다시 묻겠으니,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장이라도 진법을 발동시켜 공격하겠다는 듯, 에이나르손이 양손을 합장하며 수결을 맺을 준비를 하자, 준혁은 가볍게 혀를 차며 말했다.

“쯧, 도둑놈이 성내는 꼴이라니.”

“뭣이?”

준혁의 말에 에이나르손의 이마가 구겨졌다.

그때, 다른 수사들과 마찬가지로 법기를 꺼내 전투를 대비하던 눈매가 날카로운 여인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 설마? 최준혁 선배님 되십니까?”

“지금 뭐라 하는 거요! 저자가 최준혁이라고?”

“세나! 그게 무슨 말이오?”

다른 수사들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세나라 불린 여인은 준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래전 축기기 때…. 스승님을 따라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최준혁 수사의 원영 응결식을 보러 갔고요. 멀리 있었기에 정확하진 않지만. 제가 그때 본 분이 틀림없습니다. 맞으신지요?”

여인의 목소리에 긴장이 가득하다는 걸 느낀 준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최가이지요.”

“헉…!”

준혁의 긍정에 질문한 여인과 나머지 네 명의 남수사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여인이 화들짝 놀라며 법기를 공간대에 집어넣고 물러나자, 나머지 네 명의 수사는 재빠르게 준혁을 포위하듯 둘러쌌다.

“저는 이 일에서 빠지겠습니다! 선배님이 관여된 줄 알았다면 절대 발을 들이밀지 않았을 겁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하셨습니까?”

여인이 사색이 되어 뒤로 물러나자 준혁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여인이 아닌 사내들에게서 나왔다.

“하하하, 이런 대박이! 운 좋게 단약을 얻은 놈인 줄 알고 혹시나 남은 게 있나 확인하려 했더니! 소문의 당사자였다니! 오늘 이거 횡재하는 거 아닙니까?”

“알아서 죽을 곳을 찾아오다니!”

“소문이 대단하던데 어디 부풀어진 소문을 확인 좀 해봐야겠습니다!”

화목단을 가지고 있던 수사를 털어 남은 화목단이 있나 확인함과 동시에 무상번을 나눠 갖기로 약속했던 수사들의 얼굴엔 득의한 표정이 만연했다.

우연히 화목단을 입수한 자가 아니라 울릉도 도주 본인이라면 더 많은 화목단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컸으니까.

게다가 남 수사들 중 두 명은 초팔을 가지기 위해 경쟁했던 자들. 그 둘은 그것마저 자신들의 것이 된 것처럼 행복한 상상을 펼치고 있었다.

준혁만이 현재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었다.

‘나를 직접 보지 못했더라도, 이런 반응은 새롭구나.’

원영기 수사인 안토니오를 죽임과 동시에 수십 명의 결단기 수사를 도륙한 후부터, 누구도 자신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정체를 몰랐다면 이해가 갔지만, 지금 상황은 조금 이상했다.

그때 준혁의 의문을 풀어주겠다는 듯, 에이나르손이 입을 열었다.

“수사, 정녕 그대가 최준혁 수사란 말입니까?”

“...”

“소문에 사쿠라와 도천 수사를 원영기에 오르게 한 방법이 있다고 하던데…. 정말입니까?”

상대방들이 기고만장한 게 설마 욕심에 눈이 멀어서 그런 것인가? 하고 의문을 가진 준혁이 대답을 하지 않고 있자, 에이나르손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살아서 돌아가긴 힘들 것입니다. 수사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왔지만, 이곳에 펼쳐진 제 역작을 감내하진 못할 테니까요!”

말을 마친 에이나르손이 재빠르게 수결과 수인을 번갈아 가며 맺고는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대전을 가두듯이 펼쳐져 있던 진법이 반투명한 색에서 붉게 변하며 사기(死氣)를 내뿜었다.

동시에 주위에 떠 있던 수십 장의 부적을 향해 푸르스름한 기운이 흘러 들어가더니, 부적이 일그러진 사람 형상으로 변하며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소형화된 인간 폭탄처럼 보였다.

‘아! 산들이 말한 게 이것이구나.’

조금 전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고 했던 말.

푸른 기운이 부적과 융합해 사람 형상으로 변하자, 코를 자극하는 시큼한 냄새를 풍겼다.

문득 준혁은 한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제이엘이 말한 시폭술(屍爆術)이군.’

죽은 수사의 몸을 특수한 비법으로 부패시킨 후, 거기서 모인 시기(屍氣)를 이용한 술법.

결단기 혹은 축기기 수사가 사용하더라도 술법만큼은 쉬이 보지 말라던 그녀의 충고가 떠올랐다.

“세나!!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지금 빠진다는 건 우릴 척지겠다는 것입니까? 합류하십시오!”

준혁이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에이나르손은 혼자 발을 뺀 여인을 향해 호통쳤다.

하지만 여인은 대전 구석으로 이동한 뒤 방어 법기를 꺼내 보호막 안에 숨어버렸다.

그러다 한쪽에 말똥말똥한 눈으로 준혁을 응시하고 있던 연기기 꼬마를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이동해 보호막으로 보호해 주었다.

여인의 행동에 코웃음을 친 에이나르손은 준혁을 포위하고 있던 다른 수사들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어디 소문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확인해 봅시다!”

***

전투의 시작은 에이나르손의 손짓이었다.

그의 손짓에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던 사람 형상의 부적들이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준혁을 향해 쇄도했다.

준혁은 순간 제이엘이 했던 말 때문에 호기심이 일어났지만, 경거망동하지 않고 귀원패로 전신을 보호하며 부적을 피했다.

그리고는 월광지력을 내뿜어 얼음으로 부적을 하나씩 감싸버렸다.

콰앙!!

하지만 폭발 능력까지 얼릴 순 없는지, 월광지력에 감싸인 부적은 굉음과 함께 터져나갔고, 준혁에게 피해를 주진 못했지만 엄청난 파동을 전달했다.

“제법입니다.”

“이 정도라니…. 뭣들 하십니까?! 전부 공격하세요!”

자신의 역작으로 준혁을 처리하진 못하겠지만, 큰 피해는 줄 수 있다고 여긴 에이나르손은 당황해 소리쳤다.

마찬가지로 에이나르손을 믿고 있던 수사들은 당황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제각각 법기를 발동시켰다.

그들의 얼굴엔 처음으로 ‘만약 패배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공포가 자라고 있었다.

반면 부적의 폭파 범위를 월광지력으로 상쇄시킨 준혁은 한 호흡 안에 도적 무리를 무력화 시킬 수 있음에도 손을 쓰지 않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 아이….’

결단기 수사들 틈에서 도드라지게 튀던 아이.

연기기 수행임에도 큰 표정 변화 없이 멀뚱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게 큰 괴리감과 함께 이질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연기기 수행이 틀림없었는데, 감각은 그게 아니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준혁은 에이나르손을 비롯한 수사들의 공격을 회피와 방어로 넘길 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준혁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산들바람.

준혁 입장에선 전투력도 너무 떨어지고 애처럼 보였지만, 그녀도 엄연히 원영기 수사.

모든 공격이 준혁에게 집중되는 사이, 그녀는 눈 녹듯 허공으로 스며들며 어느새 두 눈이 푹 팬 수사의 등 뒤로 이동해 있었다.

“이것들이! 감히 우릴 공격해! 다 죽었어!”

산들바람의 입에서 입김이 뿜어져 나오자 그녀의 주위로 하얀 그림자가 어렸다.

그림자는 여러 개의 꼬리를 가진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산들바람의 손짓에 꼬리를 흔들더니 눈앞 수사의 등을 향해 쇄도했다.

슈애액-

“이게 무슨!”

기세를 줄줄 흘리고 있긴 했지만, 준혁이 전부 차단해 주고 있었기에 수행이 드러나지 않았던 산들바람의 공격에 장내에는 순간 혼란이 찾아왔다.

약하고 힘없어 보이는 꼬마의 등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순간 자신들보다 더 높은 수행을 드러낸 것.

“원영기 수사!!”

눈이 팬 수사는 급하게 방어 법기를 발동해 사방으로 쇄도해 오는 꼬리 공격을 막았다.

“크억…!”

하지만 막는 것만으로도 충격이 작지 않았는지, 한 움큼의 피를 뱉어내고는 황급히 자리를 이탈했다.

“흥! 도망갈 수 있을 거 같아?!”

산들바람은 준혁이 말릴 새도 없이 도망가는 수사의 뒤를 쫓았다.

화아악-

하지만 곧이어 다른 수사가 거대한 종이로 접은 듯한 학을 날려 보내자, 순수한 신체의 힘만으로 공격을 분쇄하고는 멈춰 섰다.

“이것들이 비겁하게!”

산들바람은 합공에 열받았는지, 고개를 홱 홱 돌리며 장내를 살폈다. 그리고는 눈이 팬 수사는 내버려 두고 에이나르손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가만 안 둬!”

준혁은 산들바람이 결단기 수사들 사이로 뛰어들어 늑대들을 상대하는 호랑이처럼 움직이자, 보이지 않게 꽃잎을 날려 보내 합공으로 산들바람이 난처해지지 않게 도왔다.

동시에 꼬마의 동태를 살피며 신경을 집중했다.

여전히 꼬마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준혁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다 변화가 찾아온 건, 다른 수사들의 합공에도 불구하고 산들바람이 에이나르손의 목을 양손으로 움켜잡은 순간이었다.

회심의 부적 공격은 준혁으로 인해 전부 무력화되고, 법기를 사용한 공격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번번이 취소되는 것이 반복된 후.

결국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산들바람에게 죽을 위험에 처한 에이나르손이 소리쳤다.

“선배님!! 도와주십시오!”

‘선배님?’

에이나르손의 시선은 정확히 여인과 함께 보호막 안에 숨어있는 꼬마를 향해 있었다.

준혁은 선배라는 말에 기감을 유형화시켜 쏘아 보내고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정체에 긴장감을 올렸다.

‘수행이 전혀 읽히지 않는다니…. 설마? 저자도 나와 같은 체질인가?’

그러는 사이 산들바람은 한 손에 흰빛을 소환해, 날카로운 발톱처럼 만들고는 에이나르손의 아랫배에 쑤셔 넣었다.

쿠르르릉- 솨아악-

착-

하지만 손이 그의 배를 뚫어버리기 직전, 땅이 들썩거림과 동시에 흙이 솟구쳤고, 순식간에 기둥처럼 변하며 산들바람을 꿰뚫어 버릴 것처럼 움직였다.

그 모습에 준혁은 적마도를 발동해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산들바람과 함께 멀리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해하는 산들바람을 뒤로 숨기며, 준혁은 꼬마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본모습을 보여주실 수 있으신지요?”

준혁은 심한 이질감을 계속해 느끼고 있었다.

특히 산들바람을 죽이려고 했던 한 수는 절대 원영기 수준의 수사가 할 만한 공격이 아니었던 것.

그때 꼬마가 가볍게 입김을 내 불어 자신을 감싼 보호막을 풀어버리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윈드라스 가문에서 보았을 때보다 크게 성장했군요. 딱히 관심은 없었는데. 이제 관심이 생겼습니다.”

윈드라스 가문이라면 자신을 죽이려고 했기에 가주를 처리했던 자비에가 속한 가문. 준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상대를 쳐다보았다.

꼬마는 준혁의 표정은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도대체 무슨 방법을 쓴 겁니까? 도대체 무슨 방법을 썼길래…. 벌써 완영기에 오른 겁니까? 그것도 중기에.”

앳된 꼬마의 목소리에 준혁의 동공이 흔들렸다. 처음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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