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 연구회 (1) >
자기병 안의 단약은 축기기 초기에 먹는 강초단 이었다.
강초단 4병을 마동화 딸의 수련을 위해 그녀에게 주었거늘, 마동화를 죽인 차경수를 통해 다시 손에 들어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얼 위해 그리···.”
참혹한 인면수심의 차경수를 떠올리다 입을 찼다. 그리곤 자기병 뚜껑을 닫아 표식을 해놓고선 한쪽에 정리하고 옥간을 집어 들었다.
“광신체령투선공? 이걸 익히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그도 공법 시험을 통해 제자가 된 사람 중 하나였겠어.”
손안에 든 옥간엔 준혁이 공법 시험에서 본 적 있던 광신체령투선공 이라는 강체술 공법이 적혀있었다.
빠르게 내용을 확인한 준혁은 차 수사가 그토록 보기 드물다는 월령지체(月靈之體)라는걸 알게 되었다.
광신체령투선공은 바로 달빛을 흡수해 수련하는 강체술이었다. 익히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 바로 태어나면서부터 달의 기운이 스며든다는 월령지체였다.
“아! 혹시.”
준혁은 공간대에서 다른 옥간을 하나 꺼내 이마에 가져간 후 나직이 탄식을 터트렸다.
“역시! 월하현적체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구나!”
강만학이 보조용으로 익히라고 건네준 월하현적체공.
이것 역시 달빛 아래서 수련을 하는 강체술이었기에, 두 공법은 일정부분 비슷한 부분이 있었고, 효과마저도 상호 보완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월하현적체공은 월령지체가 아니라도 익힐 수 있었으니, 이걸 이용한다면 광신체령투선공까지도 익힐 방도를 마련할 수 있을지 몰랐다.
“시간을 내어 연구를 해봐, 아···. 익혀 할 것은 천지인데, 시간이라도 멈출 수 있으면 좋겠구나.”
당장은 혈단법을 익혀야 하기에 익힐 시간이 없었다. 추후 여유가 생겨야만 보조용으로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법까지 확인한 준혁은 잡다한 재료, 부적 뭉치와 함께 특색 없이 단단하기만 한 쌍칼 법기를 전부 공간대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차경수가 상자에 숨겨두었던 원반 법기들과 사람 모양의 인형, 옥간을 확인했다.
공간대에서 발견한 것까지 합쳐 사람 모양의 목각 인형이 두 개나 있었기에 우선 그것부터 살폈다.
하지만 영기를 주입하고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무엇에 쓰는 용도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인형은 공간대에 정리한 후 원반을 확인했다.
세 개의 원반은 각각이 하나의 진법 법기였는데, 준혁도 처음 보는 진법이라 이름만을 확인하는 데 그쳐야 했다.
“만월강하진(滿月江下陳), 대라멸진(大羅滅陳), 오성빙둔봉인진(五星氷遁封印陳)??”
세 가지다 중급 진법서에서도 본적이 없었다.
“할 수 없지. 언젠가는 쓰임을 알 수 있겠지.”
아마 차경수도 세 가지 진법 법기의 쓰임새를 몰랐기에 할 수 없이 대방음진 진법 법기 하나만을 가지고 다녔는지도 몰랐다.
무식하게 진법 법기를 발동시킨다면야 사용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그 쓰임새도 모른 채 무작정 사용했다간 어떤 작용을 할지 모르니 그럴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주변 일대를 폭파시킨다거나, 강렬한 봉인진법 같은 것이라면 사용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
절대 해서는 안 될 행위였다.
진법 법기마저 정리한 준혁은 이번엔 부채 모양의 법기를 집어 들었다.
“제법 매섭던데, 중급 이상이려나? 어?”
영기를 불어넣어 성능을 확인하던 준혁은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떠야 했다.
“법보?”
그랬다. 차경수가 사용하던 부채 형태의 무구는 다름 아닌 법보. 영기로 그 성능이 온전하게 단번에 파악되지 않는 걸 보면 분명 법보가 확실했다.
눈앞에 가져와 세심히 살펴보고는 다시 한번 영기를 불어 넣었다.
그렇게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부채 법보를 살피던 준혁은 고개를 절레 저으며 영기 유입을 멈춰야 했다.
“까다롭고 기이하구나. 이건 마치···. 고대의 법기처럼.”
일반적으로 법기를 운용하는 데는 영기를 주입하고 심상으로 다스리는 걸로 충분했다.
각 법기가 가지고 있는 급에 따라 필요한 영기만 충분하다면 위력을 끌어 올리는 게 가능한 것.
하지만 부채 법보는 그렇지 않았다.
영기라는 하나의 통합적인 개념이 아니라 법보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기운을 세분화해서 직접 조정해야 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편하게 영기라고 부르는 기운의 통칭이 아닌, 영기 속에 함유된 불의 기운, 물의 기운, 음과 양. 등과 같이 고유의 기운을 제각각 하나의 기운으로 분류해 조정해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요즘 경향이 아닌, 아주 오래전 상고시대의 법기 조정법이었다.
상고시대 때엔 지금보다 영기를 조정하고 다루는 게 수십 배는 어렵고 그만큼 수행을 올리는 것도 힘들다고 했었다.
다만 그 어려움에 비례해 지금의 수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가졌다는 얘기도 전해져 왔다.
“온전하게 다룰 수만 있다면, 엄청난 위력을 가지겠구나.”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었다. 이미 분광소와 적마도 같이 보물 중에서도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법보를 사용하고 있었으니, 괜히 어렵게 새로운 영기 조정법을 익히고 공부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
준혁은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부채마저 공간대에 저장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긴다면 그때.”
생각을 마치고 남은 물건을 정리하려던 준혁은 무언가 깨달음에 무릎을 '탁' 쳤다.
“아! 이것들 때문이었구나. 차경수 그자가 왜 그토록 보물에 집착하나 했더니.”
물론 모든 수사는 단약이나 보물 등에 목숨을 건다. 그건 더 높은 경지를 달성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으니 당연한 것.
하지만 차경수는 그 정도가 심했었다. 마치 사탕을 눈앞에 둔 어린아이처럼 보물의 존재를 알고선 안절부절못했었다.
게다가 그의 처소에서 보았던 보물 관련 이야기나 잡다한 지식이 담긴 옥간 들을 보며 보물에 대한 그의 욕심이 과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부채 법보를 보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부분의 수사는 평생 만져보지도 못한다는 법보, 거기다 그 가치를 알 수 없을듯한 진법 법기들까지.
아마 차경수는 어떤 유적에서 우연히 법보와 물건들을 얻게 되었을 테고, 그것으로 수행도 급상승하며 한 차원 강해졌을 터였다.
그렇게 보물 맛을 한번 보고 나니, 눈이 뒤집혀 그것만을 찾아 나선 것일 수도 있었다.
“쯧, 보물이 오히려 화가 되었구나.”
그렇다고 그가 안타깝게 여겨지진 않았다. 같은 상황에 처한다해도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는 건 아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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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물건을 정리한 준혁은 마지막 남은 옥간을 들어 이마에 가져다 댔다.
비밀 장소에 숨겨두었기에 공법이거나 그에 상응하는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이건!”
옥간 속 내용을 살피던 준혁은 공간대에서 사람 모양의 인형 두 개를 꺼내 들고는 자세히 살폈다.
그리곤 다시 옥간을 이마에 대며 정신을 집중했다.
한참 후 자세를 바로 하며 탄식을 흘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괴뢰 인형이었구나!”
괴뢰 인형.
흔히 꼭두각시 인형이라 불리는 이것은 영기를 주입하거나 영석을 이용해 움직일 수 있었는데,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움직이며 사용자의 명령을 수행했다.
보통 동물 모양의 인형들을 많이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관절이 많아지고 움직임이 복잡해질수록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또한 괴뢰라는 것 자체가 선계의 유적 같은 곳에서만 발견되는 것이지, 지구의 수사 중 제작에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질 않았다.
그 이유는 수많은 제작법이 유적을 통해 발견되긴 했지만, 괴뢰의 핵심부품이 된다는 오행석(五行石)이라는 것을 지구에선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
준혁은 한참 동안 옥간 속 내용을 확인하고는 작은 한숨과 함께 공간대에 전부 집어넣었다.
“후우. 결단기에 올라야만 사용할 수 있는 괴뢰라니. 이것 역시 평범한 것이 아니구나.”
괴뢰를 얻은 김에 가볍게라도 구동해볼 생각이었던 준혁은 사용 방법을 숙지하다 최소한 결단기에는 올라야 괴뢰를 움직이게 할 수 있던 걸 깨달았다.
물론 모든 괴뢰 인형이 그렇지는 않았다.
준혁이 얻은 물건이 특별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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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들을 정리한 준혁은 지금껏 타인의 공간대를 전부 태워버렸던 것과 달리, 차경수의 공간대는 없애버리지 않고 그 안에 강만학에게서 받은 진법 옥간들과 차경수의 처소에서 가지고 온 잡다한 정보들이 담긴 옥간들을 옮겨 담았다.
연구회를 통해 반영근에 대해 조사하고 난다면, 기회를 보아 설악산을 떠날 생각이었기에 물건들을 미리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내가 마 수사의 보물들을 이용해 차 수사를 쉽게 제압했다고 여기는 것이겠지?”
차경수의 죽음에 대해 조금의 궁금증도 내비치지 않은 강만학을 보면, 대충 예상하기에 궁금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었다.
만약 또 한 번 독대를 하게 된다면, 분광소를 마동탁의 보물로 포장해 바치고 상황을 넘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후엔, 안정적인 이곳에서 수련하고 떠나면 그뿐.
하지만 인지경에 이어, 분광소까지. 보기 드문 법보를 연속으로 바치게 된다면 과연 다른 의심을 하진 않을까?
더 많은 것을 숨기고 있다고 여기고는 준혁의 숨통을 조여올지 모를 일이었다.
제자로 받아들였다고는 하나, 수많은 보물과 저울질한다면 준혁 목숨의 값어치가 훨씬 쳐진다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
보물에 대한 권력자의 욕심은 청룡가에서도 충분히 겪었으니 그때처럼 무방비로 당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향후 일어날 일들을 예상하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방음진이 울리며 누군가의 방문을 알렸다.
준혁이 손을 가볍게 저어 방음진을 진정시킨 후 공간대를 챙기고는 동굴 밖으로 움직였다.
동굴 앞엔 넷째 사형인 류휘안이 온화한 미소로 준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 사제. 대사형이 부르시네. 함께 가세나.”
“연구회 때문입니까?”
“그렇네. 자네가 돕는다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가시지요.”
‘일손이 많이 부족했나 보구나. 이렇게 일찍 부르다니.’
류휘안이 비행 법기를 꺼내 서쪽 방향으로 날아가자 준혁도 하급 법기를 이용해 그 뒤를 따랐다.
이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산비탈 아래로 내려가자 기암괴석이 즐비한 곳에 유난히 많은 꽃이 피어있었다.
“이곳입니까?”
“눈치챘군? 맞네. 이곳이 진법의 입구가 있는 곳이네.”
대답을 마친 류휘안은 곧바로 진법을 해제하지 않고, 준혁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하실 말씀이라도?”
잠깐 망설이던 류휘안이 입을 뗐다.
“흠···. 최 사제. 자네 연구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전혀 모릅니다. 공법을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그때부터 연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얘기만 들었지 알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인체 실험을 하는 곳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혹시나 사제가 크게 놀랄까 봐 미리 얘기해 주려고 하네.”
“경청하겠습니다.”
류휘안은 준혁의 시선을 피하더니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사제도 이제 우리 식구가 되었으니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설악산엔 도율 사조께서 머물지 않으시네.”
“...”
“100여 년 전 대사백과 함께 떠나신 후, 행방이 묘연하시지···. 혹시 호랑이 없는 산에 여우가 왕 노릇한다는 얘길 들어본 적 있나?”
“아주 오래된 속담 아닙니까?”
류휘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맞네. 지금 설악산이 딱 그 꼴이지. 사조께서 대사백과 함께 사라진 후, 가라온 사백은 마치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네. 그저 그것뿐이었다면 누가 뭐라 했겠는가? 어차피 가장 윗사람인데.”
“,,,”
“한데 사조께서 사라지고 얼마 후부터 가라온 사백은 세력을 일구기 시작했네. 관문 제자라는 명목으로 산수들을 모으더니···. 마치 부하처럼 부리기 시작한 거지.”
“아. 그럼 지금처럼 세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게 가라온 사백님 때문이란 말입니까?”
“그렇네. 그전까진 이곳은 진정 산수의 땅이었지.”
준혁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류휘안은 계속해서 말했다.
“가라온 사백이 그렇게 세력을 만들기 시작하자 위화감을 가진 스승님과 도재학 사숙 역시 관문 제자를 받아들이고 세력을 만들었네. 그리고 경쟁하듯 수행을 올리는 데 열중하기 시작했지···. 연구회는 바로 그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네.”
“연구회가 정확히 무얼 하는 곳입니까?”
류휘안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수행을 올리기 위해선 수도자의 씨앗이나 다름없는 영근과 영기 흐름을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고···. 그 때문에 사람의 몸을 해부···. 아니 연구할 필요성이 생겨났어.”
“설마. 인체 실험을 말하시는 겁니까?”
류휘안은 대답하기 싫은 듯 한참 동안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처음엔 모두가 탐탁지 않게 생각했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사람의 몸을 연구한다는 게 꺼림칙했거든.”
“흐음.”
“나 역시도 익숙해지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어. 내가 왜 미리 이런 얘길 해주는지 알겠나?”
“혹시 그곳에서 잔혹한 장면을 보게 되더라도 흔들리지 말란 말씀 아니십니까?”
준혁의 대답에 류휘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처음엔 다소 견디기 힘들더라도···. 익숙해지면 별것 아니네. 게다가 생각을 달리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달리한다는 말은?”
“아주 오래전 의사들도 환자를 치료할 목적으로 인체를 해부했다지 않는가? 우리도 그와 다름없다고 생각하면 되네. 알겠는가?”
“네.”
“그럼 들어가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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