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35화 (35/107)

35장. 불귀동-이별

다음날 새벽 용악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용악의 옆에는 이련이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었고, 그 옆에는 강백호가 누워 있었다. 어제 밤에 무리를 했는지 이련은 더욱 핼쑥해진 모습이었다. 용악은 다른 이들이 잠에서 깨지 않게 조용히 일어나 화장터로 향했다.

어제 밤에도 시체는 열심히 불에 탓을 때니 이제는 석관에 집어넣을 시간이다. 용악은 굴러다니는 아무 검이나 집어서 재를 끌어 담아 석관에 집어넣었다.

‘이 사람 이름이 뭐더라. 끝까지 살아남았다가 강백호에게 죽은 사람이다. 흠 기억이 안 나네. 이럴 리가 없는데.’

용악은 애써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내며 재를 다 담고 나서 석관을 들고 밖으로 나와 이미 납골당이라고도 부를 만큼 많이 쌓인 석관더미의 한 귀퉁이에 그 석관을 안치하고 석관 앞에는 검 한 자루를 박아 두었다.

다른 시체들도 마찬가지로 처리하고 다른 시체들을 다시 화장터에 집어넣고 그저께 바닷물에 절여 논 육포를 찾으러 갔다. 사람의 살도 고기니 육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체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미 칼을 대는 순간 훼손한 것이기 하지만 어쨌든- 크게 모양을 망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체를 이리저리 잘라놓은 고기 덩어리를 바닷물에 담가 불렸다가 화장터에서 나오는 연기와 재수 없는 비석 근처에서 구해온 덤불나무를 이용한 불, 그리고 내리쬐는 햇빛을 이용해 훈제 비슷하게 육포를 만들었다.

용악이 이것을 만든 지는 벌써 오래전 이었다.

예전에는 불귀동 안에서 먹을 것을 얻기 위해 하는 수 없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냥 만들었다. 사람 수도 늘었으니 오히려 더 많이 만들어야 했다.

‘하아.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지옥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도덕이니 인의니 하는 것은 우선 살고 나서 생각할 일이다. 용악은 칼로 살을 쪼개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일련의 식량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난 후에는 이제 수련을 할 시간이다.

조금 있으면 강백호도 깨어나니 그와 함께 하면 용악의 수련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아저씨가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배워두면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게 해가 떠오를 때 쯤 되어서 용악은 이련과 아저씨가 있는 천막으로 향했다.

아까 그대로였다. 아까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해가 뜨고 있었기에 좀 더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었다.

‘으음? 숨소리가 왜 하나 밖에...? 설마?’

용악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칼을 내려놓고는 이련에게 다가가 코에 손바닥을 대어 보았다.

‘아... 아무 느낌이 없다. 숨을 쉬지 않는 건가?’

용악은 황급히 이련의 옷을 벗기고는 심장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아무소리도 없다.

쿵쿵쿵 뛰는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저씨! 아저씨!”

용악은 곤히 자고 있는 아저씨를 발로 치며 깨웠다.

강백호는 뭔가 하며 일어났다가 이련의 모습과 용악의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고 상황을 알아챘는지 황급히 몸을 날려 이련의 맥을 잡고 눈꺼풀을 들어 눈동자를 살펴보고 심장을 살펴보고는 자리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아... 결국 죽은 건가? 이렇게 그냥? 허무하게? 이제야 좀 무언가 해보려 했는데 그 새를 못 참고 그냥 가버린 거야?’

용악은 털썩하고 주저 않고 말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서있을 수가 없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나온다.

그것도 잠시도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왜? 왜 슬픈 거지? 이련이 죽어서? 이련이 나에게 뭔데? 이련이 나에게 해준 것이 무엇인데? 이련이 나하고 무슨 관계인데? 하지만 대체 왜 이렇게 슬픈 거지? 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은 무엇이지!?’

“왜?...”

“글쎄다. 아마도 몸이 더 이상 견뎌 내지를 못했기 때문이겠지.”

아저씨는 주저앉아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아니. 아니 내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왜? 왜 내가 눈물을 흘리는 거죠? 지금 내가 슬퍼하는 건가요? 왜죠? 왜 제가 슬퍼해야 하는 거죠?”

강백호는 용악의 말을 듣고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이 아이는 대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온 것인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감정 아닌가! 그동안 같이 지내 온 시간은 모두 거짓이었나!’

“그건... 당연한 거다. 누구나 사람이 죽으면 슬퍼 하는 게 당연하지.”

“왜죠? 이련하고 저하고 무슨 관계인데요? 이제 만난 지 겨우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다구요. 그런데 무슨 관계가 생겼다는 거죠? 네? 제가 이련을 좋아 했던 건가요? 그래서 그런 거 에요?”

“아니.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문제가 아니란다. 사람이 죽으면 그 자체로 슬퍼해야 한단다.”

“하지만...”

‘아저씨는 왜 울지 않죠? 아저씨는 슬프지 않은 건가요? 아저씨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아저씨는 슬픔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 하지만 아저씨는 태연한 얼굴로 태연한 목소리로 사람을 죽였자나요!’

용악은 자신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아저씨에게 속마음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가만히 자신의 마음이 가라 않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그렇게 지났을까?

강백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련의 시체를 들고 화장터로 향했다. 용악은 그의 뒤를 말없이 따라갔다. 차마 이련의 시체까지 육포로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강백호는 이련의 옷을 벗긴 뒤에 소지품들을 꺼내고 바로 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지폈다.

불꽃을 넘실넘실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이련의 몸을 집어 삼켰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체가 타오르는 것을 보았지만 지금처럼 무언가 느껴지는 것을 처음 이었다. 그 붉고 검은 불꽃은 마치 악마의 유혹과도 같아서 용악은 자신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욕구를 억누르며 불꽃 속으로 뛰어들으려는 자신의 몸을 억제했다.

캬아......

하아.....

입에서 알 수 없는 탄성과 괴음이 삐져나온다.

‘뭐지? 대체 무엇이야? 왜 갑자기!? 내 몸은 왜 저 불속으로 뛰어들으려 하는 거지?’

용악은 자신의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하아... 안되겠어....’

용악은 이련의 마지막을 뒤로 하고 파도가 넘치는 절벽으로 가서 앉았다. 차가운 물방울이 그의 몸을 적신다. 마치 정신까지 물방울로 적셔지는 했다. 그제야 용악의 몸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뒤틀어진 욕망이 마치 용암처럼 솟아나오다가 차가운 바닷물에 식는 기분이었다.

알 수 없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지금까지 자신이 먹어온 시체의 원혼들이 자신을 그렇게 인도 했던 것일까? 아님 내 내면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잠들어 있던 것일까? 모르겠다. 모르겠어.’

용악은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 저편에서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는 4개의 기둥을 힐끔 바라보았다. 마치 이련의 죽음을 축하라도 하는 것처럼 그림자가 흔들리는 거 같은 환영이 보였다.

용악은 그 재수 없는 그 조각상과 기둥을 힐끔 바라보고 기분이 나빠졌는지 발로 땅을 차고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 하지 못한 체 그냥 천막으로 가서 누웠다.

‘한 숨 자고나면 나아질 거야.’

다음날이 아침이 되어서야 용악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걸 보니 하루 종일 잠을 잔 것 같았다. 저쪽에서 강백호가 먼저 일어나 석관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용악은 뻐근한 몸을 풀며 주위를 둘러보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불그스름한 무언가가 바위에 동그란 아니 물방울 모양으로 점점이 맺혀있었다.

핏자국이다.

그것도 입으로 토한 핏자국.

‘이련이 토한 것이 남아있던 것인가?’

용악은 좀 더 다가가 살펴보았다. 이련이 토했다고 보기에는 상당히 많은 양이였다. 그리고 용악은 코를 바닥에 대어 그 핏자국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 보았다. 피 특유의 비릿한 냄새와 더불어 다른 냄새도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군무관에서 배웠던 것 중 하나다.

바로 초목독의 특유의 비릿한 냄새.

‘독이라.’

설마 아저씨가? 용악은 칼을 들고 몸을 일으킨 후에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어제 그건 뭐였죠?”

“응? 뭐가?”

“아저씨 피 토했자나요, 아저씨도 병에 걸린 건가요?”

강백호는 흠칫하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할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대충 보니 초목독의 일종 같은데. 초목독은 먹어야 중독 되는게 대부분인데 어쩌다 그랬어요?”

아저씨의 얼굴은 더더욱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설마 그것까지 알 줄은 몰랐다는 뜻이거나, 아님 자신이 중독된 독이 무엇인지 몰랐을지도, 그래 몰랐을 수도 있겠다. 따로 배우지 않는 이상 자세히 알기는 힘드니까.’

“훗. 역시 내가 중독된 것이 맞기는 맞나보군. 혹시나 했는데...”

‘뭐야. 몰랐던 거야? 그럼 뭐에 중독 된지도 모르겠군. 해독약을 찾을 수도 없을테고. 그럼 자연치유력을 믿어야 하나. 그건 좀 살아날 확률이 적은데.’

“야! 독에 중독된 건 난데 왜 네가 더 죽을상이냐? 죽으려면 아직 멀었다. 빨리 와서 석관이나 만들어!”

강백호는 굳은 얼굴을 피며 웃으며 용악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용악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흐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이제 불귀동으로 다시 들어가는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 준비를 해야지.’

강백호가 워낙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기에 용악은 쉽게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그와 함께한 시간은 고작 2달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2달 동안의 아저씨와 함께한 수련은 용악이 혼자 했던 지난 1년의 수련성과를 뛰어 넘는 것이었다. 그러니 만약을 대비해 더욱 열심히 그의 가르침을 받아 수련을 해야 했다.

혼자서라도 상승의 수련을 할 수 있도록!

용악은 지금 화장터 앞에 우두커니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서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강백호였다. 그가 아픈 것을 숨겼는지 아니면 갑자기 독이 발작을 일으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준비할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였다.

마치 어젯밤의 꿈처럼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니 용악의 옆자리에는 강백호가 죽은 듯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예전 이련의 마지막 모습처럼.

죽은 후에야 역한 냄새와 함께 독에 중독된 증상이 몸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랬기에 용악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불에 태운 것이었다. 혹시나 그도 중독 될까하는 생각에 말이다.

용악은 자신을 두 달이나 돌봐준 사람인데 정작 혹시나 모를 중독의 위험성에 그를 가차 없이 태워버리는 자신을 스스로 돌이켜 보면 웃음만 나왔다.

‘결국 나는 이런 놈이다. 항상 자신은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죽음의 구덩이로 몰아넣는다. 큭큭.. 하지만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한다!

그것이 모든 이의 죽음을 부른다 해도!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목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 것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목표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약속이기도 하지. 큭큭큭.’

용악은 고개를 숙이고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죽여 웃었다. 또 다시 타오르는 불꽃은 이련을 태웠을 때와 마찬가지로 용악을 유혹했다.

자신에게 오라고.

이 지긋지긋한 삶을 던져버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라고!

그 저주받은 운명을 벗어버리고 자신에게 오라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 난 살아가는 자.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 자니까. 내가 이렇게 죽는다면 그동안 나를 위해 죽어간 자들이 너무 불쌍하잖아. 안 그래?’

용악은 마치 자신의 앞에 타오르는 불꽃에 대답을 구하듯 혼자서 물었다. 용악은 혼자 묻고 혼자 대답을 하며 타오르는 불꽃을 뒤로 하고 칼을 들고 절벽으로 갔다. 아무래도 칼을 휘둘러야 몸속에서 타오르는 무언가가 빠져 나올 것 같았다.

그게 분노든.

증오든.

자책감이든.

아니면 무력감이든지......

용악은 강백호에게 배웠던 모든 것들을 한칼에 담아 휘둘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하고는 비교도 없을 만큼 발전한 모습이었다. 그야 말로 하늘과 땅차이라고 할까......

‘아저씨 이것이 바로 아저씨가 제게 남긴 겁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하셨죠?

당신도 아버지와 똑같군요. 아. 곽철형도 똑같군요.

당신들은 당신들이 그렇게 행동하면 제가 행복할 줄. 감사 할 줄 알았습니까? 당신들에게 하나하나 배운 제 머릿속에 있는 지식들이 저를 옭아매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아십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저는 기쁘고 행복합니다. 당신들이 있었다는 것이. 아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 마음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용악은 바닷물을 은색으로 물들이며 빛나고 있는 푸르고 하얀 달을 보고 맹세를 하듯 칼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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