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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09화 (409/500)

第九十二章 본격시동(本格始動) (5)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구경 잘하셨습니까?”

혈천방주가 말했다.

“음!”

음문촌장은 신음만 흘렸다.

천살단이 의외로 막강하다. 그중에서도 천살단주의 움직임은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저 정도로 사람이 움직이려면 뼈를 모두 부쉈다가 다시 이어 붙어야 한다. 그것도 매우 말랑말랑한 재질로 바꿔서 붙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단단하면 안 된다.

뼈가 뼈 구실을 하지 못한다.

어떻게 저런 몸을 만들 수 있었을까?

음문촌장은 옆에 있는 혈천방주도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혈천방주는 천살단주의 움직임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두려워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입가에 약간 미소를 짓고 ‘너 정도는’하는 표정으로 봤다.

혈천방주는 혈마가 된 호발귀에게 크게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사람이 천살단주의 모습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혈천방주도 숨겨진 무공이 있다.

틀림없다!

“이제야 의문이 풀렸군요. 혈마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을 혈마로 만드는 모양입니다.”

혈천방주가 말했다.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혈마가 자진하는 날, 혈마후와 혈의검 소휘뿐만이 아니라 악불사왕까지…… 혈마를 추종하던 모든 사람이 일시에 사라졌다.

일부는 숨어서 뿌리를 이어왔다.

음문촌이 대표적인 사례다.

음문촌은 혈마후가 남긴 뿌리다. 혈마후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니 직계 후손은 아니다. 아마도 친척, 혹은 본가 가족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혈마후는 그중 누군가에게 구혼음소를 알려주었다.

그것이 뿌리를 내려서 지금의 음문촌을 만들었다.

혈의검이 남긴 혈천방도 같다. 혈의검은 조직을 남겼다. 그리고 이 조직은 수장 한 명이 사라진다고 해서 곧 멸절되지는 않는다. 혈의검과 뜻이 같은 자는 은거했을 것이고, 뜻이 다른 자는 무림에 남아서 천살단과 자웅을 결했다.

정작, 궁금했던 점…… 혈마와 같이 움직였던 진짜 힘들이 왜 동시에 사라졌냐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혈마가 되었다면 이해하기 쉽다. 아니, 이백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일이 이해된다. 그들 모두 혈마와 함께 죽었을 공산이 크다.

전부 다 죽었다.

혈천방도 음문촌도 모두 진짜가 아니다. 진짜는 죽고 가짜만 남아서 명맥을 이어왔다.

지금 상황을 보면 딱 그렇다.

음문촌 사람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음문촌장은 물론이고 사납기 이를 데 없다는 다섯 명의 아들조차도 입을 꾹 다물었다.

음문촌이 단순하고 무식하게 구혼음소에 매달리는 동안 천살단과 혈천방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무공이나 방법(方法)에서 다른 문파는 감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올라섰다.

“따님을 죽이셔야 할 것 같은데.”

혈천방주가 말했다.

“이미 없는 자식입니다.”

음문촌장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래도 딸인데…… 살릴 수 있으면 살려야 하지 않을까요? 잘하면 살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

음문촌장은 혈천방주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혈천방주가 어떤 의미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대충 짐작하는데, 받아들일 수 없다.

“아직도 구혼음소를 풀어내지 못했습니까?”

“구혼음소는 버린 지 오랩니다.”

음문촌장이 차분하게 말했다.

“하하하! 그럴 리가요. 제 것까지 드리지 않았습니까? 아직 성과가 없다고 그렇게 말씀하실 것까지는 없는데. 하하하!”

혈천방주는 사력을 다해서 도주하는 마차를 지켜봤다.

저 안에 홀리가 타고 있다. 혈마가 되기 직전으로 알고 있다. 혈마가 되면…… 여자 혈마는 혈군(血君)이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남자 혈마에게 혈마후가 먹히듯이, 여자 혈마에게는 혈군을 붙이는 것이다.

죽음의 구혼음소는 오직 죽일 때만 필요하다.

그러니 음문촌이 알고 있는 구혼음소나 혈천방주가 아는 구혼음소는 아무짝에도 필요 없다.

오직 음문촌이 개발하고 변형시켜온 구혼음소, 귀식혼령대법이 필요하다.

홀리를 다른 사내가 취해야 한다.

오직 여자에게만 전수하던 구혼음소를 부랴부랴 자식들에게도 알려주었지만, 오빠가 동생을 취할 수는 없다. 아무리 배가 달라도 그것만은 안 된다.

등여산은 취할 수 있다.

홀리를 구하려면 구혼음소를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말해야 하는데, 그러면 당장 비밀이 새어나간다.

혈천방주가 말했다.

“음문촌 나족은 일처다부죠? 재미있는 말 하나 할까요? 서역(西域)에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하는 형사취수(兄死娶嫂)라는 게 있죠. 이 형사취수가 두 종류인데, 정식으로 아내로 맞이하는 경우와 관계만 맺어서 형의 대를 잇게 하는 씨내리 방식이 있다는 거예요. 들어봤습니까?”

“조금은……”

“하하! 그런데 이게 참 희한한 사람도 많구나 했는데, 몽골로 가니 더한 부족도 있더라는 거죠. 아버지가 죽으면 아버지의 처첩을 모두 아들이 취하는 수계혼(收繼婚). 물론 생모는 제외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 자식이 모두 거둬서 처첩으로 삼는다는 겁니다. 이색렬(以色列: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서는 이걸 레비라트? 레비라트라고 한다던데.”

“말씀이 혈군 쪽으로 흐르는 듯한데, 아무리 그래도 오라비가 동생을…… 동생의 혈군이 되지는 못합니다.”

“책사는 이미 혈마가 됐고, 촌장님의 칠녀는 혈마가 되어가는 중이고…… 아무래도 등여산보다는 칠녀 쪽이 우리가 원하는 혈마를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겠어요? 홀리를 동생으로 보지 말고 혈마로 보면 간단한 것 아닙니까? 하하하! 생각의 차이. 잠깐만 생각을 바꾸면 천하가 바뀝니다.”

음문촌장은 혈천방주의 뜻을 진작 알고 있었다.

홀리가 혈마가 되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은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다. 진정 놀랐는데…… 혈천방주가 하는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다. 홀리는 음문촌 혈마가 되기에 딱 적합하다.

음문촌에 자신이 피내리를 하지 않은 사촌이 있었다면 당장 홀리를 취하게 했을 것이다.

혈천방주는 숨기는 것이 많다. 모든 것을 터놓은 듯하지만 사실은 모든 걸 숨기고 있다.

그런 면에서는 음문촌장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촌장은 속내를 숨기고 말했다.

“모든 걸 고려해서 깊이 생각한 후에 상의 올리겠습니다. 한데, 제가 결심이 서면 홀리를 데려올 수는 있으신 건지? 천살단이 애먹는 것을 보니 그것도 만만치 않아 보여서.”

“하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 하루 이틀 사이에 결정을 내려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등여산이나 홀리나 매한가지가 될 테니,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둘 다 빼낼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여서요. 희생이 커서. 하하하! 그럼!”:

스스스슷!

혈천방주가 귀신이 소멸하듯 스르륵 사라졌다.

궁충이 활을 쏘고 있다. 뇌공일사라는 궁법을 사용한다. 상당히 잘 쏜다. 화살을 날릴 때마다 사람이 죽어 나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협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옛날 악불사왕 궁마는 백발백중이었다. 화를 쏘면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천살단 무인뿐만이 아니고, 강호에 내놓으라 하는 고수들도 펑펑 나가떨어졌다.

그들도 방패를 썼다. 궁마 앞에서 방패를 들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신법은 믿을 게 못 된다. 아무리 빠른 신법도 궁마의 화살보다는 느렸다.

그 정도의 무공이 있으니까 혈천방이 중원의 반을 일거에 쓸어버렸다.

그렇다. 혈마는 혈의검이나 혈마후에게만 생기를 터트렸던 게 아니다. 악불사왕도 건드렸다.

주치균에게 죽은 창파는 악불사왕 창마의 진전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하지만 생기는 전혀 알지 못했다. 혈마와 인연이 닿지 않았던 탓이다.

창파가 혈기까지 일으켰다면 오히려 죽는 사람은 주치균이었을 지도 모른다.

“혈마가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혈마로 만든다면 결국 전통적인 혈마가 되는 방법은 혈마록을 통하는 수밖에 없다는 건데…… 난감하군. 혈마록을 통하면 호발귀가 되고, 현재 호발귀도 완전한 상태가 아니고……”

음문촌장이 중얼거렸다.

혈마록을 통하면 호발귀가 된다. 혈마로 접어든 호발귀가 어떻게 변할지는 더 지켜봐야 안다.

사람들은 한 가지 사실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

혈마록이 혈천방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혈천방주의 수중에 있었다.

혈마록같이 소중한 보물이 겨우 십육비자 따위에게 탈취당했다는 것이 믿어지나? 아무리 해독하지 못하는 물건이라지만 그런 식으로 내버려 뒀겠나?

혈천방이 혈마록을 해독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해독 과정에서 수많은 추론을 끌어냈다. 많은 이론이 나왔고, 많은 것이 시험 되었다.

혈마록은 혈천방에는 쓸모가 없는 물건이다. 맞다. 그러나 혈마록에서 혈마에 대한 단서가 수없이 튀어나왔다는 걸 알아야 한다. 혈마록을 연구하다 보면 기상천외한 방안들이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온다.

혈천방은 혈마록을 해독하지 못했으면서도 혈마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알아냈다.

그런 혈마록을 천살단에 내줬다. 그리고 천살단이 혈마록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연구하는지 보고자 했다.

천살단은 분명히 혈마록과 그동안 천살단에서 연구한 자료를 합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후 과정만 잘 지켜보면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천살단은 이백 년 동안 무공을 발전시켰다.

혈마 자체에 관한 연구는 일절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혈마가 나타나면 잡는 방법에 대해서는 수없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천살단은 인간은 생기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혈기는 즉 인간이 생기를 사용하는 문제는 혈마를 잡은 후부터 연구를 시작할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혈마가 나타나면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천살단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방법을 찾아낸 것 같다. 등여산을 제압함으로써 증명해 냈다.

혈천방은 조금 다르다. 생기 자체를 연구했다.

이번에 회마(灰魔), 죽은 불씨처럼 꺼지지 못하고 살아남은 목숨이라는 뜻의 혈마를 내보냈는데, 이놈의 혈마는 생기를 쓰지도 못하는 창파나 궁충에게까지 쓰러졌다.

일반 무인에게는 위협적이지만 조금만 무공이 강해져도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도 이런 자들을 계속 양성하는 것은 회마 한 명이 귀무살 열 명 몫을 할 수 있어서다.

무공도 강하지만 말도 잘 듣고 딴생각도 하지 않고 오직 시키는 일만 무조건 한다.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물불 가리지 않고 무조건 뛰어든다.

양성하는 기간도 짧고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귀무살 한 명을 키우는데 들어가는 돈이 얼마인 줄 아나? 그들은 사망대장정을 통해서 탄생하는데, 그때까지 백 명에게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가르치는 값이 천문학적이다.

매우 불합리한 구조다.

혈마 중에서 가장 쓸모없는 회마가 귀무살보다 낫다.

이 모든 것이 혈마록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내줬다는 것은 혈천방주도 이제는 승부를 벌일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는 거다.

혈마록을 연구해서 더는 나올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기꺼이 내준 것이다.

이제는 너희가 해봐라!

그것을 호발귀가 가로챌 줄은 미처 몰랐지만…… 그래서 세상은 참 요지경인 거다.

그 모든 자료가 혈천방주에게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호발귀를 보니 상당 부분이 어긋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추론으로 알게 된 것과 실제로 혈마가 알려준 것은 너무 많이 달랐다.

일단, 호발귀는 혈마록에 기재된 여덟 가지 무공을 알려주었다.

이령귀화 역천금령공, 귀화미요공, 구뢰마권, 혈천도법, 마영심도, 소요귀명검법, 무정삼절.

혈마록에 기재된 무공이 이런 것들일 줄은 전혀 몰랐다.

이 무공들은 강맹하고, 살벌하다. 하지만 천살단이나 혈천방을 위협하지는 못한다.

호발귀가 직접 혈마록을 말해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무공을 보고 알아냈다. 이 무공들을 모두 알아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방도가 희생된 줄 알기나 아나.

귀문이 세 개나 무너졌다.

혈천방 본방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혈천방이 파악한 혈마무공은 모두 아홉 개다. 그중 여덟 개를 찾아냈고…… 한 가지, 지법 한 가지만은 어떤 무공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혈마무공 중 귀화미요공과 무정삼절도 절전 되어서 찾지 못했다. 하지만 무공을 알고 있으니 언젠가는 찾아낼 것이다. 설마 혈마록을 해독하는 것보다 어렵겠나.

이것이 호발귀가 사용하는 혈마 무공인데…… 그런데 이 무공들은 혈마가 창안한 무공이 아니다. 혈마 이전에 세상에 존재했던 무공이다.

혈천방이 미쳤다고 정예 무인이 팔백 명이나 죽도록 내버려 뒀겠나. 그게 단지 혈마를 잡겠다고 한 짓이었겠나. 잡을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지만, 혈천방은 지금까지 손해를 본 것이 하나도 없다.

본방이 붕괴되었다고?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본방 따위는 얼마든지 버려도 된다. 귀무살들이 펑펑 나가떨어지는 걸 봤지 않나.

혈마 한 명만 만들어내면 이 세상은 끝장이다. 문제는 통제권인데 저걸 어떻게 통제하나?

혈천방주는 호발귀를 잡을 생각이 없다.

적어도 지금은 없다. 지금은 잡는 것보다 지켜봐야 할 때다. 하지만 이제 막 만들어진 혈마, 등여산과 홀리는 혈천방 전력을 동원해서라도 잡을 생각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혈천방주가 음문촌에 묻는다.

너희는 어떻게 할래? 구혼음소를 써서 도와줄래, 아니면 너희 배 속만 채울래? 등여산과 홀리를 내게 줄래,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하는 척 뒤로 빠질래.

“으음!”

음문촌장은 침음했다.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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