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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23화 (223/500)

第五十五章 비등(飛騰) (3)

“후우!”

홀리는 암송을 마치고 호발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구혼음소를 마쳤다. 이제 호발귀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갔다. 이승을 떠났다. 그런데,

쿵!

심장이 뛴다.

호발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어서 심장 뛰는 소리를 더 똑똑히 들었다.

쿵! 쿵!

심장이 다소 빠르지만, 규칙적으로 뛴다.

호발귀가 아직 죽지 않았다. 구혼음소 사결을 읊었는데도 생명이 붙어 있다.

‘이게?’

홀리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고개를 번쩍 들어 호발귀를 쳐다봤다. 그때,

“웃!”

홀리는 너무 깜짝 놀라서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호발귀가 눈을 뜬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 호발귀의 눈빛이…… 매우 섬뜩하다.

새빨간 눈!

호발귀의 눈빛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완전히 새빨갰다. 흰자위가 사라지고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붉은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혈안(血眼)이다.

그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후우! 깜짝 놀랐잖아. 그래도 가는 마당에 얼굴은 보고 가려고 눈을 뜬 거야? 고맙네.”

홀리는 손을 들어서 호발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죽는 거야? 잘 가. 편히. 나도 곧 따라갈게.’

홀리는 호발귀를 보고 생긋 웃었다. 그녀가 보일 수 있는 가장 맑은 웃음을 흘렸다. 죽음은 별 것 아니라는 말을 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혈안? 새빨갛게 핏빛으로 물든 눈은 신경 쓰지 않았다.

혈기가 머리로 치솟으면, 열기가 올라오면, 눈에 열기가 모이면 당연히 새빨갛게 변한다.

눈에서 실핏줄이 터지면 피로 물든 듯 새빨개진다.

겉보기에는 섬뜩하지만, 사실은 별것 아니다. 누구나 이런 눈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며칠만 지나면 원상으로 회복된다. 그런데,

“끄으으…… 끄으……!”

호발귀가 괴성을 흘리면서 일어나려고 꿈틀거렸다.

“엇!”

홀리는 비로소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발귀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핏빛으로 물든 눈과 짐승이나 흘릴 법한 괴상한 소리는 딱 혈마를 연상시킨다.

‘호, 혹시! 아냐!’

홀리가 사태 파악을 하기 위해 주춤거렸다.

한데 그사이에 호발귀는 안간힘을 쓰더니 손에 묶인 쇠사슬을 뚝 끊어냈다.

“앗!”

홀리는 깜짝 놀라서 침상에서 뛰어내렸다. 정확히 말하면 호발귀에게서 비켜섰다.

“크크큭! 크큭!”

호발귀는 괴성을 지르면서 왼손 쇠사슬도 끊어냈다. 그리고 발에 묶인 사슬도 끊어버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쇠사슬을 끊은 것이 아니라 침상에 박아놓은 고정된 쇠판을 힘으로 뜯어냈다.

“크크큭!”

휘이이잉!

호발귀는 괴소를 흘리면서 다짜고짜 쇠사슬을 휘둘렀다.

쒜엑! 퍼억! 퍽! 퍽!

쇠사슬이 벽을 칠 때마다 빨간 불똥이 튀었다.

석실 안에는 거친 광풍이 휘몰아쳤다. 단지 옷깃을 여미면 되는 광풍이 아니다. 나무를 뿌리째 뽑아서 휘날리고 바위를 집어 던지는 미친 바람이다.

홀리는 이토록 사나운 무공을 본 적이 없다.

홀리도 하수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보는 광풍은 감히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하다.

호발귀의 무공은 강하지만 정교한 편이었다.

혈마 무공을 상대할 때도 초식을 정교하게 사용했다.

지금은 무지막지하다. 도천패가 휘두르는 대력도강도 호발귀가 무심히 내리찍는 쇠사슬은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

쩌엉!

쇠사슬이 석벽을 후려치자 금이 쩍! 갔다.

꽝! 꽝!

사방에서 화약이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호발귀는 그녀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사내가 아니다. 전혀 다른 사내다. 정신을 잃고 눈에 핏발이 곤두선 채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부수는 광인(狂人)이다.

호발귀는 미친 듯이 날뛰고 있다.

“아!”

홀리는 탄식했다.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바들바들 떨었다.

그토록 염려했던 일, 호발귀가 혈마가 됐다.

더 살필 필요도 없다. 딱 지금 모습만 봐도 혈마다. 혈마가 아니라면 지금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미친 황소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리저리 들이받고 있다.

‘어떡하지?’

홀리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어떻게 사태를 수습해야 할지 방법을 찾았다.

일단, 호발귀를 이대로 세상에 내보낼 수는 없다.

호발귀는 완전히 미쳤다!

쒜에에엑!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쇠사슬이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웃!”

홀리는 급히 허리를 숙였다.

쒜에엑! 꽈앙!

쇠사슬이 그녀의 등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기대고 있던 석벽을 거칠게 후려쳤다.

부서진 돌가루가 후드득 그녀를 덮쳤다.

호발귀는 그녀를 노리고 쇠사슬을 후려친 게 아니다. 무지막지 발광하던 끝에 우연히 쳐온 것일 뿐이다.

‘굉장한 힘!’

홀리는 부서진 석벽을 보면서 입을 쩍 벌렸다.

그녀가 어찌 호발귀의 무공을 모를까. 호발귀가 쳐내는 검력(劍力)을 모른다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지금 석벽을 친 힘은 전에 보던 힘이 아니다.

누구라도 병기를 들고 상대할 수 없다. 아니, 아예 싸울 생각을 접게 만든다.

‘이건 너무 강해! 아!’

홀리는 퍼뜩 구혼음소를 떠올렸다.

지금 호발귀를 진정시키거나 죽일 수 있는 것은 구혼음소밖에 없다. 병기로는 싸우지 못한다. 검을 들고 싸우려고 하면 당장 짓이겨진다.

“타악 투 파 비투 쏘 추우 탄 치 미탕 호 아 피우”

홀리는 진기를 돋워 구혼음소를 읊었다.

이번에는 호발귀를 살릴 방법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죽일 생각만 한다. 지금 눈앞에서 날뛰는 것은 호발귀가 아니다. 사람이 아니다. 혈마다.

“크크! 끼아아악!”

호발귀가 괴성을 내질렀다. 역시 인간의 음성이 아니다.

홀리는 호발귀의 괴성을 듣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호발귀를 사랑했나? 사랑했다. 눈앞에 있는 자를 사랑하나? 아니, 아니다. 저자는 무섭다. 두렵다.

만약 지금 그녀에게 호발귀를 조정할 수 방법과 죽이는 방법이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죽일 것이다. 절대로 조정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쒜에에엑! 퍼억! 퍽퍽퍽퍽! 퍽퍽퍽!

쇠사슬이 석벽을 마구 후려쳤다.

마영심도 십칠 식이다.

마영심도 역시 예전에 호발귀가 필치던 것과 비교하면 전혀 다르다. 위력이 무려 열 배쯤 급증했다.

변화가 빠르고, 위력이 강하다.

누가 이 쇠사슬을 상대할 것인가? 귀검? 어림도 없다. 촌장? 일격에 나가떨어진다.

호발귀는 혈마 무공이 극성에 이르렀다.

호발귀가 혈마가 됐으니 혈마 무공을 극성으로 펼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쒜에에엑!

쇠사슬이 또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그녀는 재빨리 옆으로 신형을 뽑아냈다. 호발귀의 시선을 피해서 다른 구석으로 숨었다.

파파파팟! 퍽퍽! 퍼어억!

그녀가 숨어 있던 자리가 움푹 팼다.

단단한 돌바닥이 두부처럼 푹푹 패이고 있다.

석실은 난장이 되었다. 석벽은 너무 많이 얻어맞아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만약 석실이 지하에 세워진 것이 아니고 지상에 건립된 것이었다면 벌써 무너졌을 것이다.

홀리는 차라리 석실이 무너지기를 바랐다.

석실이 무너지고, 흙더미가 덮치면 일단 죽을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라도 혈마를 이 안에 가둬놓을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다. 자신이 죽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피틴 투 키루 하 기루차”

홀리는 계속 구혼음소를 읊었다.

음성에 진기를 싣자 그녀의 음성은 창날이 되어서 호발귀의 귀에 꽂혔다.

사결을 모두 읊었다.

그래도 호발귀가 펄펄 날뛰자 혹시나 해서 일 단계, 이 단계, 삼 단계의 진결도 모두 읊었다.

하지만 구혼음소를 읊을수록 호발귀는 더 미쳐갔다.

‘어떡해! 어떡해야 해?’

홀리는 두려움 반, 안타까움 반인 심정으로 호발귀를 쳐다봤다.

그때, 호발귀가 움직임을 멈췄다.

일순 석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홀리가 피워놓은 귀색무와 호발귀가 난장을 피우면서 만들어 놓은 돌가루가 뿌옇게 일어났다.

호발귀의 모습이 연기와 돌가루에 가려져 뿌옇게 보였다.

“크크크! 크큿!”

호발귀가 괴소를 흘리면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

“타마 하마 주누 사 으원 여 바타.”

홀리는 일 단계 구혼음소를 마쳤다.

음성에 진기를 실었기 때문일까? 호발귀가 그녀의 존재를 눈치챈 것 같다.

호발귀의 새빨간 눈이 그녀를 향했다.

‘아!’

홀리는 겁에 질려서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는 호랑이와 마주치고도 떨지 않았다. 어떤 자와 부딪쳐도 웃었다. 하지만 호발귀의 눈빛을 보고는 떨지 않을 수 없다. 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간다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할까? 구혼음소를 계속 읊어? 효과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조용히 숨죽여?

‘홀리, 너 뭐야! 호발귀가 저 지경이 됐는데, 넌 살겠다는 거야? 목숨을 생각해?’

“호호호!”

홀리는 일부러 소리 내 웃었다.

혈마가 쳐다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혈마가 자신을 보면 틀림없이 죽이겠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타악 투 파 비투 쏘 추우 탄 치 미탕.”

홀리는 다시 구혼음소를 읊었다.

이번에는 사결이다. 먼저처럼 음성에 진기를 실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서 전신 진기를 모두 실었다.

석실 안에 구혼음소가 쩌렁쩌렁 울렸다.

“크크큿! 크큿!”

호발귀가 그녀를 쳐다보며 괴소를 흘렸다.

‘틀렸어!’

홀리는 자포자기했다. 하지만 구혼음소는 계속 읊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사실, 그녀는 구혼음소가 효과 없다는 사실을 안다.

호발귀를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혈마로 만들어 버렸다. 혈마를 죽이는 구혼음소가 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을까? 아니, 구혼음소를 들은 혈마는 왜 더 강해지나?

혈마가 자신을 죽여달라면서 구혼음소를 혈마후에게 주었다. 그러니 구혼음소는 혈마를 죽일 수 있는 진결이 맞다. 올바른 진결인데 통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딱 하나, 자신이 구혼음소를 잘못 외웠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사결이나 삼 단계 구혼음소나 진결은 같다. 단지 음높이로 죽음과 조정을 가른다. 그러니 음높이를 잘못 외웠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사결을 잘못 외운 거 같아. 미안. 차라리 귀색혼령대법을 펼쳤다면 이렇게까지 미치지는 않았을 텐데. 그것도 미안.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해? 기회 닿으면 벼락이라도 맞아서 죽어. 오래 버티지 말고.’

홀리는 호발귀를 보면서 바들바들 떨었다.

이상하다. 머릿속에는 온통 호발귀에 대한 염려뿐인데,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크크큿!”

호발귀가 괴소를 지르면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스읏!

호발귀가 손을 내밀어 그녀의 목을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위로 들어 올렸다.

그녀의 허리가 펴졌다. 무릎도 펴졌다. 호발귀는 더 높이 손을 들어 올렸다. 이윽고 그녀의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컥! 컥컥!”

흘리는 숨이 막혀서 발버둥 쳤다.

엉겁결에 두 손으로 호발귀의 손을 잡았다. 목 잡은 손을 떼어내거나 밀어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호발귀의 악력이 엄청나다.

마치 쇠집게로 목을 꽉 쪼인 느낌이다.

“컥컥컥! 컥!”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때, 호발귀 입에서 믿기 힘든 소리가 흘러나왔다.

“호오오…… 올…… 리이이……”

홀리는 눈을 번쩍 떴다.

호발귀가 자신을 알아봤다. 하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목을 잡은 손이 너무 억세다.

“컥컥! 컥!”

홀리는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그러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바둥거림을 멈춘 순간, 호발귀에 손을 잡고 있던 두 손도 밑으로 툭! 떨어졌다.

의식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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