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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222화 (222/500)

第五十五章 비등(飛騰) (2)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장진 스님이 갑자기 반야심경을 읊었다.

“이거 참 웃긴 말이지? 여기 있는 이 흙이 사실은 텅 빈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거야. 말이 돼? 빈 거는 빈 거고, 흙은 흙이지. 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것이 흙과 다르지 않대. 정말 말이 안 되지?”

“또 왜!”

호발귀가 버럭 언성을 높였다.

“또 왜? 저 좋으라고 기껏 발품 팔아서 왔는데 뭐? 또 왜? 그게 할 말이냐? 킥킥!”

장진 스님이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스님이 나타난 것을 보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아니, 가만…… 내가 죽지 않았나? 이런! 분명히 죽었는데, 그걸 살아난 거야?’

호발귀는 문득 정신을 잃기 전에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혈기가 있는 대로 치솟았다. 일반인을 마구잡이로 죽였다. 완전히 정신을 놓지는 않았지만, 곧 혈마가 될 참이다. 그래서 검을 분질러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허벅지를 찔렀다. 그것도 성이 차지 않아서 반 토막 난 검으로 심장을 찔렀다.

심장! 심장을 찔렀다!

그렇다면 죽어야 한다. 심장을 찔렀는데도 살아난다면 도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

“짜식이 저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투박이야. 잘 들어, 인마! 색불이공, 공불이색. 이 말로 안 되는 말이 사실은 부처님 말씀의 요체라 이거지. 공(空)을 텅 비었다, 없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니까 개죽이 되는 거야.”

장진 스님이 거칠게 말했다.

“부처님은 참 말씀을 쉽게 하셨는데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굉장히 어려워. 이 쉬운 말을 나 같은 돌팔이들이 더 어렵게 문자로 만들어 놨어.”

“난 지금 그런 말, 관심 없는데?”

“분해. 분해만 해보면 돼. 공을 물체를 깊숙이 뚫고 들어가서 분해해 보면 간단히 알 수 있어.”

“거참, 관심 없다니까.”

“육신을 분해해 보면 지수화풍(地水火風), 네 가지 요소로 되어 있다고 하잖아? 지수화풍으로 쪼개보면 없다, 공이 되는 거야. 지수화풍을 뭉쳐 놓으면 사람, 색(色)이 되는 거지. 이 말도 어렵나? 그럼 포기해야지 뭐.”

장진 스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왜 또 나왔어?”

“반갑지 않다는 투네?”

“반가울 리가 없지. 스님만 보면 자꾸 헷갈리거든. 금방 뭔가를 얻은 것 같은데, 해보면 아냐.”

“그건 네 문제고. 저 소리 들려?”

호발귀는 장진 스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피틴 투 키루 하……

“구혼음소?”

“맞아. 구혼음소야. 널 죽이는 소리. 나랑 이런 대화를 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 네가 이 세상에서 보는 마지막 얼굴이 나고. 그러니 이 못난 얼굴이라도 최대한 즐겨보라고.”

장진 스님이 웃었다.

‘구혼음소!’

호발귀는 당장 홀리를 떠올렸다.

그녀의 음성이 아주 먼 곳에서 어렴풋이 들려온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가늘게 들린다. 하지만 분명히 구혼음소다. 어떻게 구혼음소를 모를 수 있나.

가슴에 검을 찌른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후는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장진 스님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난데없이 구혼음소가 들려온다.

그런데 이 구혼음소, 음률이 다르다.

“내가 아는 구혼음소가 아닌데?”

“짜식! 방금 말하니까! 색불이공 공불이색! 분해! 그렇게 말해도 색에 집착하고 있어!”

장진 스님이 일갈을 내질렀다.

호발귀는 그제야 장진 스님이 ‘공불이색 색불이공’을 괜히 말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지나가는 말로 불법을 말한 게 아니다. 구혼음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놈아, 그만 생에 대한 집착을 버려. 구혼음소가 터진 이상, 넌 끝났어. 자, 꼴까닥 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우리 마지막으로 한 판 놀아보자고. 뭐하면서 놀까? 나는 말 나온 김에 반야심경을 한 번 읊어볼까 하는데.”

“후후! 마음대로.”

“인마! 너도 같이해야지. 너는 구혼음소를 읊어봐라. 가결(歌訣)은 자기 좋은 대로 하되, 음률은 저 소리에 맞추는 거야. 그래야 놀이가 되지. 킥킥!”

호발귀는 홀리의 구혼음소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음률이 상당히 다르다. 예전의 구혼음소가 자장가처럼 포근하다면 입 것은 칼로 찌르는 듯 날카롭다. 칼로 찌른 후, 피가 빠지면 축 늘어지는 상태…… 그 상태로 유도한다.

“자! 시작한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장진 스님이 먼저 선창했다.

본인이 말한 대로 가결은 반야심경이다. 하지만 음률은 홀리의 구혼음소에 맞췄다.

“타악 투 파 비투 쏘 추우 탄”

호발귀도 구혼음소를 읊었다.

장진 스님의 놀이 제안이 흥미로워서가 아니다. 새로운 음률로 토해지는 구혼음소에 흥미를 느꼈다.

홀리는 이 음률을 어디서 배웠을까?

예전부터 알고 있지는 않았다. 알았다면 벌써 알려주었을 것이다. 아무리 나쁜 것이라도 숨기지 않는다.

호발귀가 원하는 것은 죽음이다.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이 있나? 죽고 싶으면 죽으라고 알려준 것이 구혼음소다. 새삼스럽게 뭘 감추겠나. 그러면 왜 이런 음률로 구혼음소를 읊는 것일까?

반야심경이 홀리의 구혼음소를 따라가기 때문에 자신은 반야심경만 따라가면 된다.

- 티록 타 미 고토 고토

홀리의 구혼음소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티록 타 미 고토 고토”

홀리가 앞에서 이끌고, 장진 스님이 뒤를 잇고 마지막으로 호발귀가 따라간다.

세 명의 낭송이 아주 잘 어우러진다. 세 명이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같은 노래를 부른다.

‘확실히 내가 알던 구혼음소와는 달라.’

구혼음소, 반야심경, 구혼음소!

호발귀는 각 음절을 세 번씩 들었다.

장진 스님이 구혼음소 가결을 반야심경으로 바꿔서 불렀다. 하지만 경전 역시 호발귀 귀에는 구혼음소로 들렸다.

홀리가 원음으로 구혼음소를 부른다.

장진 스님이 반야심경으로 바꿔서 부를 때, 호발귀는 자신이 알던 구혼음소와 새로운 구혼음소를 비교해서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진 스님 말대로 각 음절이 분해되었다.

호발귀가 따라서 부르는 구혼음소는 완전히 분해되었다가 다시 조립된 구혼음소다.

음률은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달랐다.

홀리의 구혼음소는 이해할 수 없는 구혼음소였고, 자신이 부른 것은 완벽하게 녹아든 것이다.

- 가새 처마 이공산 차무

구혼음소가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다.

“가새 처마 이공산 차무”

호발귀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도 잊은 채 구혼음소를 따라서 읊조렸다. 그러던 한순간,

따악!

거대한 둔기가 뒤통수를 후려쳤다.

“억!”

호발귀는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눈앞에 어둠이 훅! 몰아쳤다. 장진 스님도 보이지 않는다. 빛 한 점 없다.

- 타마 하마 주누 사 으원 여 바타!

홀리가 마지막을 읊었다.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장진 스님도 반야심경을 맺었다.

“타마 하마 주누 사 으원 여 바타”

호발귀도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구혼음소를 읊었다.

정신이 깊은 절벽으로 아득히 떨어진다. 세상이 흐릿해진다. 모든 것이 정지한다.

‘드디어 죽네. 됐어. 홀리, 고마워. 후후! 한낱 소매치기가 잘살았지 뭐. 계속 살기에는 살겁이 너무 지나쳤어. 사람을 그 정도 죽였으면 반은 악마였던 거야. 동패, 왕소. 이제 이해해라. 더 어떻게 못 해. 사부도 못 구하네. 후후! 사부, 혼자 빠져나오쇼. 책사, 등여산, 여산……’

호발귀는 등여산을 떠올렸다. 그때,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귓가에 장진 스님이 읊는 반야심경 소리가 들렸다.

- 타악 투 파 비투 쏘 추우 탄 치

장진 스님의 반야심경이 구혼음소로 풀이되었다. 구혼음소의 음률로 읊고 있어서다.

“헉! 까아아아악!”

호발귀는 반야심경을 듣는 순간, 거친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문득, 뱃속에서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너무 비릿해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겨웠다.

“우욱! 커어억!”

호발귀는 입을 벌리고 토악질을 했다. 그러자 입에서 왈칵 핏물이 쏟아졌다.

피!

피를 보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혈기가 치솟았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혈마가 툭! 튀어나왔다.

‘아!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다. 혈마! 혈마가 되어 간다.’

호발귀는 장진 스님에게 극심한 살기를 느꼈다.

장진 스님이 죽어가는 자신을 일깨웠다. 뱃속에 꾹 눌러놨던 혈마를 깨우고 있다.

“죽어!”

쒜에에에엑! 구르르르릉!

주먹에서 뇌성벽력이 터졌다. 손을 들어서 스님을 향해 구뢰마권을 떨쳐냈다.

“얘가 미쳤나.!”

장진 스님이 허리를 숙여서 구뢰마권을 피해냈다.

그 모습이 매우 유연하다. 어떤 무인도 구뢰마권을 스님처럼 유연하게 피해내지는 못한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구뢰마권은 장진 스님이 가르쳐 준 것이다.

쒜에엑! 쒜에엑!

호발귀는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정말로 살기를 느꼈기 때문에 일절 사정을 두지 않았다.

혈천도법, 소요귀명도법, 무정삼절…… 무려 삼십여 초를 연속적으로 쏟아냈다.

혈마 무공의 정수가 고스란히 전개되었다.

퍼억! 퍽!

장진 스님이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격타당하는 순간이 늘어갔다.

“이놈, 미쳤네. 미쳤어.”

“크크큿! 크큿! 죽어!”

호발귀도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장진 스님만은 죽여야겠다. 계속해서 혈마를 자극하고 끄집어낸다. 도저히 이 사람만은 견디지 못하겠다.

“끄아아아악!”

호발귀는 괴성을 내질렀다.

‘죽인다! 죽인다! 죽어!’

“키키키! 키킥! 키키킥! 크카카칵!”

그는 ‘죽인다’라고 말했는데,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는 괴성이다.

쉐에에엑! 퍽!

팔십일수 천변마라수로 스님을 후려쳤다. 동시에 목을 잡았다. 두 손에 진기를 모아서 목뼈를 우두둑 분질렀다. 그리고 냅다 멀리 내던졌다.

장진 스님은 다시 살아났다.

일어나서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제 위치로 옮겨놓았다.

“이놈이 인제 보니 완전 살인마네. 에라이!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장진 스님이 계속해서 반야심경을 읊었다.

그 낭송이 호발귀에게는 구혼음소의 주문으로 들렸다. 장진 스님은 경전을 읊고 있지만, 호발귀의 귀에는 혈마를 일깨우는 고대 의식처럼 들렸다.

“무안이비설신의”

산 파라 가새!

“으아아악!”

고통이 엄습한다. 뱃속에 뒤틀린다. 원정이 뜨거운 불덩이가 되어서 전신을 태운다. 뱃속이 타들어 간다. 오장육부가 재가 되는 듯하고 피가 펄펄 끓어올랐다.

호발귀는 구혼음소가 들릴 때마다 사지를 비틀었다.

고통을 멈추는 방법은 장진 스님이 반야심경을 읊지 못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쒜에에엑! 타악!

손에서 귀화미요공이 터졌다. 하지만 스님은 어느새 등 뒤로 돌아가 있다.

쒜에에엑! 쒜엑! 쒜에에엑!

혈겁도, 혈신삼분, 혈흉개공…… 혈천도법이 쏟아져 나갔다.

장진 스님은 새처럼 표홀하게 허공으로 치솟더니 왼쪽으로 내려섰다.

쩍! 쩌쩍! 쩌쩌쩍!

마영심도 십칠 식이 연이어 터졌다.

장진 스님은 몸을 낮게 움츠리더니 강아지처럼 설설 기어서 옆으로 빠져나갔다.

호발귀는 마영귀적을 펼쳐서 쫓아갔다. 그리고 일지공으로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장진 스님이 몸을 납작 엎드리더니 옆으로 데구루루 굴렀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반야심경을 읊었다.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타마 하마 주누 사 으원!

그만! 그만! 그만!

“캐캐캑! 캐캑! 캐캑!”

호발귀의 음성은 사람 음성이 아니다.

지옥에서 귀신이 울부짖는 듯 괴기만 해도 소름이 오싹 끼치는 괴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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