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十一章 혈미훈천(血味熏天) (1)
장진 스님 앞에서 혈마무공을 펼쳐 보였다.
역천금령공이나 이령귀화에 의존하지 않은 순수한 혈마 무공 여섯 개를 펼쳐봤다.
혈마 진공을 사용하지 않고도 혈마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서가 붙는다.
혈마 진공을 사용하지 않고도 혈마 무공을 펼칠 수 있게끔 충분히 수련해야 한다. 혈마 육 공을 수련하는 게 아니다. 혈마 육 공은 이미 수련하지 않았나.
무공을 펼치면서 혈마 진공을 사용하지 않도록 내기 조절을 해야 한다.
쒜에에엑!
호발귀는 혈마 무공을 펼쳤다.
마영심도, 구뢰마권, 혈천도법, 무정삼절 등등 각종 무공이 검법으로 전환되어서 줄줄이 흘러나갔다.
진공인 이령귀화나 역천금령공을 사용하지 않아도 제대로 된 무공이 살을 가르고 뼈를 베었다.
‘충분해!’
호발귀는 마음껏 혈마 무공을 전개했다.
퍽!
“크윽!”
검을 휘두르면 어김없이 혈천방 무인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사실, 호발귀도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 알지 못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언제든지 혈기가 치솟을 수 있다. 그러면 당장 혈마의 길로 들어선다.
호발귀는 혈마무공을 통제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통제하려고 시도해봤지만, 지금은 아예 포기해버렸다. 그래서 처음부터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혈마 진공을 쓰지 않는데, 그래도 혈마가 될까?
쒸이익! 퍼억! 퍽!
“으윽!”
“커억!”
피가 튀고 사람이 죽어 나갔다. 그러자 갑자기 내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더 강하게 쳐! 더 빠르게 죽일 수 있어!’
역천금령공이 기어 나오려고 꿈틀거렸다.
‘으음!’
호발귀는 미간을 찌푸렸다.
역천금령공이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내기를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달라붙는 칼이 너무 많다. 혈천방 무인들이 쉴새 없이 공격해오는 바람에 한시도 검을 늦추지 못한다.
‘혈기가 너무 빨리 치솟아. 조금 천천히 가야 해!’
호발귀는 위험을 감지했다.
언제가 혈기가 일어날 것은 예상했지만, 싸우면 저절로 일어나는 흥분까지도 혈기를 자극할 줄은 몰랐다. 진기 사용만 혈기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감정 변화도 폭주에 간여한다.
‘웃!’
슈아아악!
어느 한순간, 역천금령공이 툭 튀어나왔다.
“크윽!”
혈천방 무인이 머리에 칼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호발귀는 칼을 놓아버리고, 혈천방 무인이 들고 있던 창을 취했다.
“후후후!”
호발귀의 입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혈마 무공이 펼쳐진다. 호발귀가 펼치는 무공이 아니다. 내면에 숨어 있는 혈마가 튀어나왔다. 호발귀와는 전혀 다른 인성을 지닌 자가 창을 쓴다.
“죽엇!”
전력을 다한 파괴력이 바깥세상으로 던져졌다.
그 속에 혈천도법이 섞여 있다. 구뢰마권이 포함되었다. 귀화미요공도 번뜩번뜩 튀어나왔다.
사실…… 혈마 무공이 필요 없다.
무공 같은 것은 하수나 사용하는 쓰레기다. 그보다 훨씬 강력한 생기가 있다.
호발귀는 생기를 무의식중에 이용한다.
생기가 저절로 사용된다. 그리고 이 정도의 싸움은 생기를 이용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싸울 수 있다.
상대방을 볼 수 있다.
생체, 살아있는 몸뚱이는 푸른 빛을 일으키기 때문에 아무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어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생기격타가 터진다.
호발귀는 쓰고 싶지 않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생기격타가 일어난다.
생기가 눌리면 몸을 쓰지 못한다.
마혈을 누른 것과 거의 비슷한 작용이 일어나서, 머리는 부지런히 움직여도 몸은 꿈쩍하지 않는다.
그 사이 창을 찌르면 된다.
생기격타로 강력한 타격을 일으킬 수도 있다.
생기로 진기를 북돋워 주었던 것과는 상반된 정반대 작용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기격타를 사용하면 오장육부가 발칵 뒤집힌다. 실질적으로 육체에 물리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미증유의 거력이 상대를 공격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호발귀에게도 극심한 타격을 안긴다.
자연의 질서를 어기는 방식으로 타격을 가하면 당장 혈마가 귓가에 속삭여 온다.
잘했어. 그렇게 하는 거야. 더해봐!
이때, 마도, 사도의 길이 열린다.
마인의 길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지금 행하고 있는 길을 쭉 따라가면 악의 길이다.
정도를 가려면 악마가 달콤한 말을 속삭여올 때 과감히 물리쳐야 한다. 지금 행하는 모든 생각과 움직임을 멈추고 전혀 다른 길로 가야 한다.
쭉 따라가면 악의 길이다.
방향을 바꾸면 정도다.
“크크큿! 크크크큿!”
호발귀는 기괴한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이제는 역천금령공을 억누를 생각도 하지 않는다. 혈마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도 잊었다.
부러진 창을 버리고 칼을 잡았다.
내면에서 뛰쳐나오는 성질 그대로 칼에 담아서 세상에 뿌렸다. 칼을 맞는 자는 사람이 아니다. 신경질을 돋우는 방해물일 뿐이다. 그러니 치워야 한다.
‘웃기는 소리! 당하면 안 돼!’
호발귀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깜빡 정신을 놓았다가 돌아왔을 때처럼, 조금 전에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많은 사람을 죽인 것만 어렴풋이 생각난다.
‘후욱!’
숨을 크게 들이쉬며 원정을 살폈다.
혈기를 눌러야 한다. 원정을 봉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혈기가 더욱 거세게 튀어나온다.
‘사람을 이렇게 많이 죽였으면서 무슨 개소리야? 정도? 지랄! 이게 정도야? 사람을 이렇게 개 패듯이 때려죽이면서 정도 운운하는 거야? 재수 없어.’
장진 스님 앞에서는 역천금령공을 펼쳐도 마음이 차분했다.
지금도 그럴 줄 알았다. 심상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기꺼이 이 싸움에 뛰어들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싸움 방식을 깨달은 것 같아서.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피! 죽음!
피가 솟구치고, 살이 찢기고, 뼈가 갈라진다. 사람이 펑펑 죽어서 쓰러진다.
이래서야 어떻게 차분해지나.
“후우우욱!”
호발귀는 거친 숨을 뿜어냈다.
전신이 온통 피투성이다. 자신이 흘린 피가 아니다. 혈천방 무인들이 쏟아낸 피다. 그들이 뿜어낸 피가 옷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폭우를 맞은 것처럼 핏물이 뚝뚝 떨어진다.
손이 미끄러워서 칼을 들고 있을 수도 없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핏물이 흐른다. 칼을 휘두르면 핏방울이 사방으로 튄다.
빗물에 흠뻑 젖었을 때처럼 피에 젖었다.
“으……!”
혈천방 무인들은 짙은 신음만 흘릴 뿐, 호발귀 앞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가까이 다가서면 어김없이 칼을 맞는다. 옆이나 뒤에서 달려들어도 마찬가지다. 호발귀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사람처럼 거침없이 칼을 휘두른다.
호발귀는 병기도 구애받지 않는다.
검도창편(劍刀槍鞭), 어떤 병기가 손에 잡히든 마치 그 병기만 전문적으로 수련한 무인처럼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리고 초식 또한 절묘하다.
검을 들면 검법 고수가 된다. 창을 들면 뛰어난 창수가 되고, 편을 들면 편공의 달인이 된다.
모든 병기에 능통하다.
호발귀는 분명히 그 많은 병기를 수련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몸에 붙어있는 팔을 휘두를 때처럼 자유롭게 구사한다. 하나같이 괴이 신랄해서 막을 수가 없다.
“마, 말도 안 돼!”
혈천방도는 주춤주춤 물러섰다.
“공격해!”
누군가가 소리쳤다.
호발귀가 악마라면 귀에 들린 음성 또한 지옥의 저주다.
호발귀는 검으로 죽이지만 소리는 잔인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지옥 불길이 상상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검을 들게 된다.
“이익!”
세 명이 이를 악물고 호발귀를 공격했다.
하지만 전면에서 공격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좌우, 그리고 뒤에서 공격한다.
그러자 앞쪽에서 무인 한 명이 불쑥 튀어나와 화살을 쏘았다. 활로 다른 무인들을 엄호한다. 최소한 신경을 활로 분산시키는 효과는 있다.
“킥킥!”
호발귀는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는 마치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던 사람처럼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냅다 던졌다.
쒜에에엑! 퍼억!
검이 날아가서 궁사(弓師)를 가격했다.
“커억!”
궁사는 외마디 단발마를 터트렸다.
검은 궁사의 이마를 꿰뚫었다.
검에 실린 힘이 궁사를 이끌고 날아가서 나무에 퍽! 박혔다.
궁사가 나무에 박혀서 흔들거렸다.
순간, 호발귀는 궁사가 쏜 화살을 잡았다. 그리고 장난처럼 가볍게 뒤쪽으로 던졌다.
퍼억!
“악!”
뒤에서 공격하던 자가 목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호발귀는 잠시도 쉬지 않고 바로 신형을 휘돌렸다. 동시에 왼손으로 탁! 귀화미요공을 터트렸다.
공격자 두 명이 일시 주춤거렸다.
우르르릉! 퍼억! 꽝!
구뢰마권이 턱을 가격했다. 뒤로 후려친 역권(逆拳)까지 안면에 틀어박혔다.
호발귀는 상대가 쓰러지는 것도 보지 않았다. 그가 들고 있던 검을 들어서 옆으로 휘돌렸다.
쒜에엑! 퍽!
왼쪽에서 다가오던 자는 검을 쳐내기 직전에 일격을 당했다.
검이 복부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곧바로 위로 올라온다. 배를 찢고, 가슴뼈까지 갈라낸다.
“꺼어어어억!”
혈천방 무인은 처절한 비명을 토해냈다.
* * *
“삼 당 손실이 큽니다.”
소귀가 보고했다.
“벌써? 투입된 지 얼마나 됐지?”
“반 시진입니다.”
“겨우 반 시진인데 보고하러 올 정도야? 도대체 타격이 얼마나 심한데 호들갑이야?”
“거의 육 할 이상이 죽었습니다.”
“……”
혈천방주는 놀란 눈으로 소귀를 쳐다봤다.
“지금 육 할이라고 했어?”
“네.”
“뭐야? 삼 당이 정면으로 부딪쳤나?”
“아닙니다. 말씀하신 대로 약만 올렸는데, 은신이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숨은 곳을 귀신처럼 알고 쫓아오는 데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음!”
혈천방주는 심음했다.
‘이건 예상보다 심한데?’
호발귀를 잡으려면 팔당 중 절반 이상이 죽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그것은 호발귀 주위에 도천패나 등여산 같은 고수들이 함께 붙어있을 때를 예상한 수치다.
주위를 떼어내면 이 할 내지 삼 할 정도만 손실을 보면 호발귀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벌써 육 할 이상이 소진되었다.
이 당 백 명 중 살아남은 자가 서른 명 남짓이다. 삼 당도 이대로 버려두면 전멸할 것이 뻔하다.
이백 명을 투입했는데, 한 시진도 안 되는 사이에 거의 백오십여 명이 죽었다.
혈마, 괴물이다!
“삼 당 빼고 사 당 투입해!”
“계속……”
소귀는 의견을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벌써 경고를 두 번 받았다. 이번에는 경고로 끝나지 않는다. 세 번째는 칼이 날아온다.
‘계속하면 몰살당합니다.’
소귀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즉시 교체하겠습니다.”
소귀는 읍을 한 후, 총총히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