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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104화 (104/500)

第二十一章 촉동(觸動) (4)

시간은 잡랑 편이다.

호발귀는 인적이 끊긴 십삼 리 우로(牛路)로 들어섰다.

관도라고 하기에는 좁고, 그렇다고 길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좁은 길이다.

그래도 소 한 마리 정도는 너끈히 걸어갈 수 있다.

좌우로는 높은 산이 펼쳐져 있다. 산이라고는 하지만 나무가 자라지 않는 척박한 바위산이다.

공격하기는 쉽고, 방어하기는 어려운 길이다.

호발귀는 죽이라는 명령이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질만 건드리라는 명령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호발귀가 얼마나 사나운 인간인지 알려주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려면 먼저 사람들이 싸움을 봐야 한다. 아무 때나 지켜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 호발귀가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고 있는 순간에 사람들이 지켜보아야만 한다.

“여기서 성질을 대여섯 번 정도 긁어놓자고.”

“그냥 공격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조금 획기적인 방법이 없나? 머리꼭지가 확 돌아야 하는데.”

“저기.”

말을 꺼낸 잡랑은 줄에 엮어 놓은 사람들 십여 명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호발귀 눈앞에서 사람들을 죽인다.

잔인하게 죽일수록 호발귀는 성정이 포악해진다. 잡랑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할 것이다.

잡랑은 정도 문파 소속이지만 싸움을 할 때는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오로지 상대를 죽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인의(仁義) 같은 것은 과감히 버린다.

잡랑은 오랜 세월 동안 혈천방과 싸워왔다.

혈천방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니, 잡랑도 그런 식으로 맞받아치게 되었다.

어느 쪽이 낫다 그르다 할 수가 없다.

“저 사람들을 이용하자? 좋아. 이용하지 뭐.”

잡랑들이 씩 웃었다.

“얘네, 재미있네.”

당홍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녀는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공기 냄새를 맡았다.

“재미있어.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그녀가 품에서 단환을 꺼내 잘게 으깼다. 그리고 부스러진 분말을 허공에 홱 뿌렸다.

하얀 분말이 분홍색으로 변했다.

“흠! 독은 없어. 술 취한 것처럼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정도인데, 환술을 쓰려나 봐. 해독단 필요한 사람?”

그녀가 단환을 꺼내 호발귀에게 건넸다.

호발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발귀는 해독단이 필요 없다.

허공에 떠다니는 분말은 오히려 독섬칠공을 키우는 양식이 된다. 그러잖아도 독섬칠공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끔 독을 복용해야 하는데, 지금 정도는 너무 약하다.

당홍이 도천패에게 단환을 내밀었다.

“맛이 좀 써. 눈 찔끔 감고 먹어.”

“직접 만든 거야?”

“그럼.”

“그럼 쓸 리 없지. 달아.”

도천패가 단환을 입에 넣고 인상을 확 구겼다. 하지만 곧 방긋 웃었다.

“저기 그거…… 해독단이라는 거 같이 좀 씁시다. 뭐 술에 취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아서. 우리가 멀쩡하게 있어 주는 것만 해도 저놈들이 함부로 덤비지 못할 테니까.”

“품앗이라면서요?”

“뭐 받는 게 있으면 줄 때도 있겠지. 우리라고 받아먹기만 하겠수? 모든 건 값어치라는 게 있으니까. 주기 싫다면 우린 이쯤에서 돌아가고.”

해자수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슬쩍 손을 내밀었다.

“당신, 독도 막아?”

홀리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게 있어.”

호발귀가 담담하게 말했다.

“옛날 혈마도 독을 막지는 못했는데, 어떻게 된 거야? 혈마 무공이 변했나?”

“많이 변했지. 혈마는 혈마후의 조정을 받는다고 했잖아? 난 조정 같은 것 안 받아.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게 변한 거고. 나머지 자잘한 거야 말할 것도 없고.”

“너무 장담하지 마. 내 손에 걸려들기만 하면 넌 내 거야.”

홀리의 말에 해자수가 화들짝 놀라서 옷소매를 잡아챘다.

“어이구, 아씨! 그런 말은 제발 좀 마음속에만 꾹 눌러놓고 계시라니까. 자꾸 그렇게 공갈 협박만 하니까 품앗이도 안 통하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안 통해. 이 남자 가슴에 다른 여자 있거든. 그렇지?”

홀리가 호발귀를 쳐다보며 생긋 웃었다. 다른 여자가 있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모습이었다.

도천패가 앞장서서 길을 뚫었다.

길을 걷는 게 아니다. 한 걸음씩 뚫으면서 나아가야 한다.

땅에 올무가 잔뜩 묻혀 있다.

발을 디디면 정강이까지 푹 빠진다. 그리고 땅에 숨겨놓은 올무가 발목을 탁 낚아챈다.

올무에 걸렸다고 해서 크게 위험한 것은 아니다. 깊은 산 같으면 나무 위로 쳐들어 올리기도 하지만, 비교적 큰길에서는 그럴 염려가 없다.

단지 올무를 푸는 동안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린다.

하지만 그 시간이면 화살 공격을 집중적으로 받기에는 충분하다. 올무에 걸리면 움직이는 공간에도 제약을 받기 때문에 화살을 피하기가 어렵다.

함정에는 걸려들지 않는 게 최선이다.

그래서 도천패가 대도를 땅을 쓸어내면서 걸었다. 빗질해서 낙엽을 쓸 듯이 땅을 쓴다.

탁!

대도가 올무 박힌 땅을 건드렸다. 순간적으로 올무가 대도를 확 움켜잡았다. 하지만 올무는 이내 끊겼다. 도천패가 손목을 살짝 비틀자 툭 끊어져 나갔다.

“이거 참 짜증 나네.”

도천패가 대도로 땅을 쓸면서 말했다.

아무도 없는 길을 매우 느리게 나아간다.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땅을 전부 쓸어보아야 한다.

“그걸 노리잖아.”

“우리가 느리게 간다고 해서 뭐 좋은 거라도 있어? 어차피 공격도 못 해오면서.”

“그게 궁금해. 공격도 하지 않을 거면서 왜 걸음을 늦추게 만드냐는 거지. 먼저 함정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호발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사람이 나무에 묶여 있다.

“또?”

도천패가 기가 막힌 듯 당홍을 쳐다봤다.

같은 수에 두 번 당하는 바보도 있나? 나무에 묶여 있으니까 뭐 어쩌라고? 또 가서 구해주라고? 가까이 다가가면 방패가 세워질 거고, 화살 공격을 퍼부으려고?

같은 기습을 몇 번이나 하는 거야!

“하지만 이번에는 좀 산뜻한데? 다른 게 있잖아. 나무에 완전히 묶여 있는 거.”

당홍이 나무에 묶인 사람을 살펴보며 말했다.

묶인 사람은 두 눈이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다. 완전히 앞을 보지 못하도록 막아놨다. 그래서 먼저처럼 발을 굴러서 밧줄을 당길 수가 없다

함정 같은 것은 없다고 은연중에 말하고 있다.

설혹 있다고 해도 저런 상태라면 제대로 밧줄을 잡아당길 수 없을 것이다. 호발귀 일행을 방패로 에워싸려면 시간차 공격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앞을 보지 못해서야.

도천패가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이 숨어있을 공간도 없다. 화살을 대량으로 쏟아부을 장소가 아니다.

“이게 뭐지? 뭐하지는 수작이야?”

도천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먼젓번 경험이 있어서 묶인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스읏! 슷!

묶인 사람을 쳐다보는 한편, 대도로 땅을 쓸어서 올무를 찾는다.

묶인 사람을 내버려 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생각인데, 아무래도 묶인 사람이 신경 쓰인다. 그때

탁!

땅에 묻힌 올무가 대도를 낚아챘다. 대도가 올무를 건드렸다.

도천패는 본능적으로 대도를 꽉 움켜잡았다. 그러자 올무가 대도에 싹둑 잘렸다.

다른 때와 다름없다. 올무 하나는 찾아냈고, 제거했다. 그런데,

슈웃!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올무가 싹둑 잘리자, 무엇인가가 탁 터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묶인 사람 근처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렸다. 아! 나무판이 불쑥 일어섰다. 그리고 나무에 묶인 사람을 여지없이 격타했다. 콱 틀어박혔다.

“아아아악!”

나무에 묶인 사람이 처절하게 비명을 토해냈다.

도천패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본의는 아니지만, 자신이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올무를 붙잡아 놓고 있었다면 나무 송판이 튀어 오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올무를 잘라버렸기 때문에 그 힘이 땅에 묻혀 있는 송판을 일으켜 세웠고, 묶인 자를 가격했다.

호발귀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리고 벌떡 일어선 나무판을 뜯어냈다.

나무판에는 두 뼘 길이의 대못이 가득 박혀 있었다.

대못 박힌 나무판이 묶인 사람의 몸통을 후려친 것이다. 심장, 폐, 간, 위장 등등 몸속 장기를 모조리 찢어놓았다. 사람을 뚫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뒤에 있는 나무까지 박혔다.

나무에 묶인 사람은 벌집이 되어서 절명했다.

호발귀는 죽은 자의 완맥을 움켜쥐고 진기를 살폈다.

모든 사람은 진기를 지닌다. 무인도 진기가 있고, 일반인도 진기가 있다. 무인은 진기를 양성하고, 보통 사람은 사용 방법을 모른다는 차이만 있다.

죽은 사람은 경맥이 원형 그대로다.

평생 진기를 양성해 본 적이 없다. 보통 사람이다.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이다.

“무인이라는 놈들이!”

호발귀는 화가 치솟았다.

상대가 잡랑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잡랑이 이래도 되나!

분노가 솟구쳤다.

이번에는 두 명이 묶여 있다. 좌측에 한 명, 우측에 한 명.

도천패는 사람이 묶여 있는 것을 보자 움직이지 못했다. 땅을 쓸던 행동이 뚝 멈췄다.

“또?”

당홍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 자식들 뭐 하는 수작이지! 이거 정말 너무 하잖아! 이놈들, 정도 맞아!”

도천패가 분노했다.

호발귀는 침착하게 허리에서 검을 풀어냈다. 그리고 검집째 땅을 쿡쿡 찍으면서 나아갔다.

“왼쪽을 살피게? 그럼 난 오른쪽을 볼까?”

“아니. 그냥 기분이 나빠. 한쪽씩 살펴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놈들, 똑같은 짓을 반복해서 하지 않잖아. 항상 뭔가를 더 숨겨놓고 있어.”

호발귀가 땅에 집중하며 말했다.

그는 길옆으로 비켜서서 움직였다.

땅을 확인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있어서 아예 길이 아닌 곳으로 내려서서 확인했다.

푹! 푹!

검이 땅을 확인했다.

만약에 올무가 있어서 검을 낚아채면 끊지 않고 힘줘서 붙잡을 생각이다.

올무는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호발귀도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이 자식들!”

호발귀 입에서 분노가 쏟아졌다.

왼쪽에 묶여 있는 사람은 송판 공격에 죽은 사람처럼 검은 천으로 눈이 가려져 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대못 박힌 송판이 네 곳에서 사내를 노렸다.

전면에 두 개, 좌우에 한 개씩 설치되어 있다. 어떤 작용만 하면 사내는 만신창이가 된다.

스읏!

호발귀가 손을 들어서 사람들을 불렀다.

네 명이 동시에 나무 송판을 잡아야 한다. 송판이 일어서지 못하게끔 목을 꺾어야 한다.

“하! 이 자식들 정말 악독하네.”

도천패가 하나를 잡았다. 당홍이 하나를 잡았고, 해자수가 다른 하나를 발로 밟았다.

송판 네 개가 정리되었다.

우직! 우지직!

도천패가 먼저 송판을 매단 나무 막대를 분질렀다.

해자수도 나무 막대를 분지른 후, 나무에 묶인 자를 풀어주기 위해 발을 내디뎠다. 그때,

슈웃!

갑자기 나무 위에서 단창이 뚝 떨어졌다.

“아악!”

정수리에 단창이 꽂힌 사내가 악을 쓰듯 비명을 토해냈다.

그는 사지를 바르르 떨었다. 머리에 창을 맞아서 정신을 잃었지만, 몸이 아직 발버둥친다.

슷! 푹!

호발귀가 검을 뽑아서 사내의 심장을 찔렀다.

고통을 줄여준다.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숨이 빨리 끊어지게 도와주어야 한다.

단창은 정확하게 묶인 자의 정수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나무 송판이 무력화되면, 자동으로 떨어지게끔 만들어 놨다.

“살단에 함정을 잘 파는 놈이 있네. 이건 보통 솜씨가 아냐. 아주 단단히 준비했어.”

당홍이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자식들이 정말! 왜 애먼 사람을 죽이고 지랄이야! 원하는 게 뭐야! 나와!”

도천패가 허공을 향해 벼락같이 고함질렀다.

물론 그런다고 나올 사람들이 아니다. 무엇을 노리는지 모르지만, 차근차근 사람을 죽인다. 너희가 무슨 짓을 해도 묶인 사람을 구할 수 없다고 조롱한다.

이놈들을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호발귀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눈은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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