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一章 진기이상(眞氣異常)(4)
벌떡!
방금까지 정신을 잃은 채 누워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직 안됩니다. 누워 계십시오.‘
곁에서 상처를 치료하던 의원이 재빨리 상체를 눌러서 눕히려고 했다.
“뭐야? 치워!”
총주는 의원을 거칠게 떠밀었다.
“조금 더 누워계셔야 합니다. 상처가 깊습니다.”
잡랑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상처가 깊어서 어쨌다고? 치워.”
총주는 잡랑의 손길도 뿌리쳤다.
“그럼 붕대라도. 정말 상처가 터집니다.”
의원이 간곡히 말했다.
총주는 고개를 숙여 배를 쳐다봤다.
등에서부터 배까지 구멍이 뻥 뚫렸다. 단청이 뚫고 나온 자리가 구덩이처럼 움푹 팼다.
“후후! 마귀 새끼.”
총주가 입술을 비틀이며 웃었다.
“야! 술이나 가져와!”
“술요? 술은 정말 안됩니다!”
의원이 펄쩍 뛰었다.
“야! 얘 좀 데리고 나가. 누군데 옆에 붙어 앉아서 앵앵거리고 있어. 술 안 가져와!”
잡랑이 거센 호통에 움찔거리면서 술을 가져왔다.
총주는 술독을 보자마자 한 손으로 움켜잡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카아! 흐흐! 흐흐흐!”
총주는 술을 마신 후, 다시 상처를 쳐다봤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반야호신공이 뚫렸다.
현 무림에서 반야호신공을 뚫을 수 있는 사람이나 무공은 몇 되지 않는다.
너무 극소수라서 손가락에 꼽을 수도 있다.
이제 호발귀가 그중 한 명이 되었다.
“마귀 새끼. 진작 죽이자니까.”
총주는 툴툴 웃으면서 술독을 들어 들이켰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호발귀는?”
“책사님께서 데려가셨습니다.”
“책사가?”
“네. 총주님께 일격을 가한 후에 놈도 피식 쓰러졌는데, 갑자기 책사님이 나타나서는……”
“흐흐! 흐흐흐! 계집애가 제 무덤을 팠군. 손대지 말아야 할 마물에 손을 댔어. 흐흐!”
총주가 웃었다.
총주에게 일격을 가한 자라면 천살단의 적이다. 이유야 어쨌든 진행은 그렇게 된다. 대항하지 말고 순순히 무릎을 꿇었어야 한다. 죽이면 죽고, 살려주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총주에게 일격을 가하고, 잡랑을 죽였다면 틀림없이 천살단 주적이 되는 거다.
책사 등여산은 그런 자를 데리고 갔다.
책사의 행동이 용납된다면, 앞으로 누군가가 천살단 무인을 죽였을 때도 같은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천살단을 죽인 자는 무조건 주적이 되는 게 아니라 왜 천살단 무인을 죽여야 했는지 이유를 따져야 하는 경우가 된다.
이런 일은 단주도 용납하지 않는다.
무조건, 이유 불문하고 천살단 무인을 죽인 자는 주적이다.
지금 같은 경우라면, 천살단주를 비롯한 그 누구도 책사 편에 서지 못한다.
책사가 묫자리를 팠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죽을 자리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왜 제 발로 기어들어 갔지? 내가 너무 파격적으로 움직였나? 아직 나를 모른다면 책사 자격이 없는 거지. 흐흐! 재미있게 됐군. 재미있게 됐어. 흐흐흐!”
총주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술을 들이켰다.
“손님이 왔습니다!”
밖에서 경계를 서던 잡랑이 큰 소리로 말했다.
“손님?”
총주는 고개를 들어 밖을 쳐다봤다.
밖에서 젊은 청년이 들어와 두 손 모아 읍했다.
“상처는 좀 어떻습니까?”
청년이 냉막하게 말했다.
검벽주 주치균이다. 그가 총주를 찾아왔다.
“야……! 이거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귀하신 분이 여긴 어쩐 일이신가?”
총주가 주치균을 쳐다보며 말했다.
주치균이 총주 앞에 가서 앉았다.
“이제야 찾아왔습니다. 상처는 좀 어떠십니까?”
“나야 좋지. 한잔 받아.”
총주는 주치균에게 술독을 내밀었다.
주치균은 술독을 받아들더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들이부었다.
“확실히 해가 서쪽에서 뜰 모양이군.”
총주가 입술을 비틀면서 웃었다.
검벽주 주치균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천살단에 큰 잔치가 벌어지거나, 누군가 상을 당해도 술 근처에는 일절 가지 않았다.
천살단에서 검벽주가 술 마시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
그런데 오늘은 술을 마신다.
주치균은 항상 싱그러운 웃음을 입가에 달고 산다. 세상에는 오직 신나는 일만 있다는 듯이 즐겁게 산다. 싸움할 때도 밝게 웃는 편이다.
오늘은 표정도 밝지 않다.
입가는 딱딱하게 굳었고, 눈은 인정머리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처럼 싸늘하게 굳어있다.
“무슨 일이야!”
총주가 얼굴을 바짝 붙이면서 물었다.
“이번에 호발귀를 공격하신 일, 천살단주님 명령을 받고 하신 일인지 알고 싶군요.”
주치균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걸 몰라서 묻나?”
총주가 뭐 그런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단독 행동입니까?”
“그게 궁금해서 온 거야?”
“부러워서요.”
“……?”
“천살단주님 명령을 정면에서 무시하실 수 있는 자신감이 부럽습니다.”
총주가 미간을 찡그렸다.
“내 얼굴에 금칠하자고 온 것은 아닐 테고, 뜸 들이지 말고 말해. 계집처럼 속으로 옹알대지 말고.”
총주가 술독을 들어서 술을 들이켰다.
벌컥! 벌컥!
값싸고 독한 화주(火酒)가 물처럼 넘어갔다.
주치균이 차분하게 말했다.
“호발귀를 죽여야겠습니다.”
“그래.”
총주는 짐작했다는 듯 놀라지 않았다.
“호발귀와 싸우셨는데, 실전에서 부딪쳐 본 느낌이 어땠는지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내가 싸울 때, 그 자리에 없었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멀리서 본 것하고 직접 경험하신 것 하고는 차이가 클 것 같아서요.”
“차이, 있지.”
총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손가락을 뺨을 그으며 말했다.
“그런데 호발귀와 부딪쳐 본 경험은 나보다 빠르잖아. 새삼 내게 물을 게 뭐지?”
“전 하수라서 형편없이 밀리기만 했습니다. 고수가 겪어본 호발귀 무공을 듣고 싶습니다.”
“후후! 돌려서 엿 먹이네.”
“……”
“그러니까 뭐야? 나도 호발귀에게 당했으니 같은 하수라는 말이잖아?”
“아니, 그런 뜻이……”
“농담, 농담. 농담이야, 농담.”
총주가 다시 술을 마셨다.
호발귀의 단창은 총주의 몸을 꿰뚫었다. 한데, 총주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인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적어도 서너 달은 누워있어야 할 중상인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술을 마신다.
탁!
총주가 술독을 내려놨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지극히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놈과 붙어본 느낌이 어떠냐 이거지? 알 것 없어. 대신 경고 하나 하지. 이건 안 돼. 호발귀 그놈, 내 먹이야. 내가 죽인다. 직접 놈을 죽이고 싶으면 나부터 죽이고 가. 만약, 네 놈이 먼저 놈을 죽이면 넌 내 손에 죽어.”
총주의 눈가에 광기가 일렁거렸다.
두 눈이 유막(油幕)을 씌워놓은 듯 번들거렸다. 얼음처럼 차디찬 눈에서 살기가 뿜어졌다.
총주는 헛말을 하지 않는다. 장난도 치지 않는다. 입에서 내뱉은 말이 곧 행동이 된다.
지금 총주가 하는 말, 진실이다.
총주의 경고를 무시하고 호발귀를 죽인다면 반드시 총주와 싸워야 한다.
총주가 말을 이었다.
“호발귀를 죽이겠다는 말, 진심이야?”
“그렇습니다.”
“그럼 힘 좀 보태.”
“……?”
“힘을 보태주는 방법은 알고 있잖아. 이번에 내 멋대로 움직였으니 그 노인네 길길이 날뛸 거 아냐. 마주 싸울 수는 없으니 비위 좀 맞춰줘야지.”
총주는 천살단주를 ‘노인네’라고 지칭했다.
“근신 백 일? 그 정도 예상하는데, 백 일 동안 죽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고. 당신 정보 좀 이용하지.”
“……”
주치균은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총주는 천살단 정보망을 이용하지 못한다. 이미 천살단주가 근신 명령을 내렸을 거다.
호발귀를 죽이지 말라는 게 공식 명령이다.
총주는 명령을 무시하고 직접 죽이러 왔으니 근신 정도면 많이 봐준 것이다.
천살단 정보망을 이용하지 못하면 호발귀를 추격하지 못한다. 귀무살 움직임도 알지 못한다. 근신하라는 말 그대로 가만히 앉아서 술만 마시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치균에게는 다른 정보망이 있다.
황군(皇軍), 백만대군.
천이백만 명에 달하는 관원(官員).
이들이 거둬들인 정보를 달라는 것인데, 그러려면 지금까지 소원했던 왕가와의 인연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
“왜? 어려워?”
“시간이 걸릴 겁니다. 불쑥 찾아가서 정보만 달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
“불쑥 찾아가서 달라고 해. 서너 달 기다릴 것 같으면 달라고 할 이유도 없잖아? 지금 당장! 놈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다시 붙으면 죽일 수 있겠어.”
총주가 히죽 웃었다.
“이거 일이 왜 이렇게 재밌게 돌아가지?”
총주가 웃었다.
그는 주치균을 믿지 않는다.
주치균은 순진한 편인가? 좀처럼 눈빛이나 표정, 행동을 숨기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직접 호발귀를 죽이려고 한다.
사람 속마음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 생각이 맞을 것이다.
총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벽주는 신중한 사내다. 또 천살단주에게는 목숨도 대신 내놓을 수 있는 매우 충성스러운 충견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점만은 의심하지 않는다.
천살단주가 이리로 가라고 하면 가고, 저리로 가라고 하면 저리로 간다.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이라도 한다. 아니, 주치균은 정말로 죽을 것이다.
검벽주는 절대로 천살단주 명을 어기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그 틀을 깨고 있다.
천살단주가 호발귀를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 죽이겠단다.
‘무슨 일이 있었지?’
의문이 자연스럽게 등여산을 향한다.
등여산이 호발귀를 낚아채 간 것과 주치균이 호발귀를 죽이겠다고 나선 게 일치한다.
연심(戀心)? 배신(背信)?
그럼 등여산이 호발귀와 짝짜꿍?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총주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등여산은 사내에게 관심이 없다.
주치균이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연정을 드러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주치균과 호발귀는 인물 차이가 크게 난다.
두 사내를 비교하면 단연 주치균이 앞선다.
호발귀보다 잘 생겼고, 다정하고, 강하고…… 어디 내놔도 빠짐없는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다.
사내를 택할 것 같으면 호발귀보다는 주치균이 낫다.
도대체 등여산과 호발귀 사이에 어떤 일이 있는 것일까? 주치균이 왜 저런 행동을 취할까? 분명한 것은 등여산에게서 아주 강한 자극을 받았다는 것이다.
“흐흐! 이거 책사가 아주 지독한 독과(毒菓)를 깨물었네. 책사만 죽일 독과인 줄 알았더니 검벽주까지 끌어들였어. 도대체 어떤 독과인지 궁금하잖아. 하하하!”
총주는 크게 웃었다.
“얘들 중에 미행 잘하는 놈이 몇이나 있지?”
“솜씨 좋은 놈만 추린다면 일곱, 여덟은 될 겁니다.”
“그놈들 전부 붙여.”
“검벽주에게요?”
꿀꺽! 꿀꺽!
총주는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듯 거칠게 술을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