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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295화 (295/316)

295화 진실

그러고 보니 의아했다.

인형혈삼. 그것은 마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약이었다. 마기가 응축되고 응축되면 그런 영약이 탄생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지금까지는 인형혈삼이 발견되지 않았고, 이름조차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과거에 인형혈삼은 중원을 뒤흔들었다.

황극린이 207호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그 영약을 차지하기 위해 이제껏 쌓아 온 모든 살수로서의 수완을 이용했다. 변장하고, 다른 사람을 연기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인형혈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물론, 깨진 단전은 회복되지 않았었지만 말이다.

‘그런 영약을 내가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의아한 일이다. 황극린이 생각하기에 별 의미 없어 보이는 회생비록을 찾아다니는 절대고수들. 그들이 과연 인형혈삼을 가만히 두었을까? 황극린이 특급 살수에 가까웠다고는 하나 당시의 황극린과 지금의 황극린은 전혀 다르다.

혈마교주가 아니라 부교주가 왔어도 황극린은 정면에서는 절대 이기지 못했으리라. 더군다나 단전이 깨진 상태였다.

‘그렇구나.’

사실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었으니까. 당시 황극린에겐 살아남는 게 중요하였지, 영약을 얻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되돌아보지 않았다.

‘남궁운혜는 어쩌면 내 심장을 찌른 것으로,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군.’

그러고 보니 남궁운혜가 황극린을 마주했을 때, 묘한 기류가 흘렀었다. 분명 처음 보았음에도 황극린에게 살의를 내뿜은 적도 있다. 물론, 여러 사건을 겪고 이제는 황극린을 은인으로 모시긴 했지만 말이다.

황극린은 기억 그대로를 가지고 과거로 돌아왔다.

그것에 비해서 남궁운혜가 꿈에서 과거의 일을 본다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꿈은 계속 꾸고 있소?”

남궁운혜가 고개를 젓는다.

“아뇨. 이 아이가 조금 자라고 나서는 왜인지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그게 다행이라는 듯이 말하는 남궁운혜다.

황극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더 기억해 봤자 그녀에겐 좋지 않은 기억이리라. 아버지가 죽고, 복수귀가 되어 황극린을 쫓았던 과거. 황극린이 무림맹 척살단에 치를 떤 만큼, 그녀 또한 황극린에 치를 떨었으리라.

“참, 꿈에서 본 내용 중에…….”

남궁운혜가 답지 않게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아, 아닙니다.”

“가 봐야 할 곳이 있소. 만약 더 생각나는 게 있으면 말해 주시오.”

“네? 아, 네! 가 보셔도 됩니다.”

황극린이 떠나가자 남궁운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는 많은 꿈을 꾸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게 예지몽인지 개꿈인지 잘 모르겠다. 그녀가 꾸었던 꿈들 중에서 적중했던 것도 꽤 있다. 하지만 완전히 틀린 것도 있었다.

‘황 공자님이 남궁세가의 데릴사위가 된다니. 말도 안 되지.’

아마도 이 꿈은…….

‘내가 이리 야심이 많았던가.’

황극린과의 혼인이라면 뭐 상상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명실상부 중원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호걸이었으니까. 남궁운혜는 사내를 싫어했지만, 황극린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감정까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 황극린이 데릴사위라니?

- 뀨우?

남궁운혜가 품고 있던 인면지주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과거 흑주보다 훨씬 작고, 털이 복슬복슬했다. 남궁운혜가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이제 정신 차려야지.”

꿈에서 미래를 보았다는 건, 황극린에게만 말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황극린에게 비밀을 다 털어놓으니 답답했던 마음이 개운해진다.

* * *

황극린은 솔직히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이지만, 어머니를 기억한다고.

그녀의 곁에는 항시 한기가 맴돌았다. 어린 황극린에겐 불을 땔 장작이 없어서, 집이 낡아서 추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건 단순히 날씨가 추워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방출하는 냉기가 집 안에 흘렀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어린 황극린을 안아 줄 땐, 따스함을 느꼈다.

빙궁도들이 타고난 체질이 얼마나 악독한지 알고 있다. 아마 황극린을 안을 때마다 한소연은 혈맥과 기맥이 찢어졌을 것이다.

점차 한소연의 안색은 안 좋아졌고.

결국, 황극린은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기억 하나하나를 말해 주니 한소연은 턱을 덜덜 떨며 눈물을 흘렸다.

“미안해요. 제가…….”

황극린이 고개를 젓는다.

“사람에겐 다 사정이 있는 법이지요.”

황극린도 그러했다. 그 또한 사정이 있다는 핑계로 다른 이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뭐, 그런 말들은 한소연에게 더한 상처가 될 터이니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아버지에게도 사연이 있었을 것이며, 어머니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 또한 그렇고요.”

“…….”

“전 어머니가 제 곁에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저는…….”

“이걸 취하면 내부의 마기를 잠재울 수 있을 겁니다.”

“정말 황 공자께선 선경이신 건가요?”

저걸 먹으면 살 수 있다는 생각보다.

황극린이 선경이라면 처할 위험에 더 격앙하는 한소연이다. 당연하다. 그가 선경이 맞다면? 사흑련의 괴물들뿐 아니라 어쩌면 괴물 천화련주까지도 황극린을 노릴 수도 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남들은 가지지 못한 능력을 타고난 건 확실합니다.”

“받을 수 없습니다.”

한소연이 의외로 단호하게 거부했다.

저들은 선경을 찾고 있다. 만약 황극린이 마기를 정화할 힘이 있다면? 더군다나 월영문과 같은 수준의 마기를 품은 자들도 아니다. 북해빙궁주의 피를 이어받은 부궁주의 마기가 정화된다면 황극린은 무조건 공공의 적이 된다.

그렇기에 한소연은 받을 수가 없다.

“피 냄새가 나는군요.”

“…….”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죽더라도 그건 받을 수 없어요.”

대가가 없는 건 없다.

설령 황극린이 가져온 혈석이 효과가 있다고 치더라도, 황극린에겐 아무런 영향도 없을까? 아마 저것을 만드는 데 꽤 많은 심력과 내력을 소모했을 것이다.

“제가 다른 이들에게 노려지는 것을 걱정하시는 겁니까?”

정곡을 찔렀다.

그러나 한소연은 그렇다고 긍정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걸 취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와 함께 싸워 주십시오.”

“…….”

“곁에 어머니가 계셨으면 합니다.”

“저는…….”

“취하지 않으신다면 전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흡사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것 같다. 그런 게 오히려 한소연의 마음을 자극했다. 아이의 치기. 어린 시절 황극린은 투정을 부린 적이 없다. 최소한 한소연이 중원에서 살았을 당시에는 말이다.

착한 아이라며 눈물을 흘렸던 어느 밤이 떠오른다.

“다시 어머니를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루만…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한소연의 말에 황극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네, 그럼…….”

“…….”

“……?”

한소연은 황극린이 방을 나설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조금 전의 발언처럼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황극린의 아버지 황용철이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기묘한 대치가 시작되었다.

* * *

“네가 황씨 가문의 아이인가.”

“그, 그렇습니다.”

개과천선(?)한 황보휘. 황극린과의 격을 차이를 느끼고, 그는 찬란하고 오만했던 꿈을 버렸다. 무림인으로서 아무리 노력해도 황극린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황극린과 같은 괴물이 눈앞에 있다.

최소한 황보휘의 눈에는 천화련주가 괴물처럼 보였다.

“으음.”

“……!”

그의 시선 하나하나가 몸서리칠 만큼 두려웠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다. 마치 천 근에 눌린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대체 이 사람은 뭐지? 눈빛만으로 사람의 심령이라도 제압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용황신가의 피를 이어받긴 했군. 그러나 미약해.”

“……!”

용황신가라면 지긋지긋했다.

미명에 사로잡혀서 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을 걷어차곤 한다. 그러나 천화련주의 앞에서는 그 어떤 말도 내뱉지 못했다.

“일어나라.”

“예?”

“너와 갈 곳이 있다.”

항거할 수 없는 명령.

조용히 살고 싶었던 황보휘였지만, 천화련주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천화련주와 황보휘가 무림맹에서 떠나갔다.

은근히 많은 간자를 심어 둔 혈마교에도 그 소식은 금방 전해졌다.

* * *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빙궁주는 고민에 빠졌다.

부궁주가 왜 배신했을까? 왜 그런 의미도 없는 짓을 벌였을까? 빙궁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 이해한다. 하지만 결국 죽는다. 빙궁주만 하더라도 막대한 냉기를 단전에 품었기에 중원으로 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한계가 있다.

거기다 부궁주는 불안정한 상태. 조만간 죽을 가능성이 컸다.

이왕 죽을 것, 크게 배신하자는 생각일까? 그것도 말이 안 되는 게, 그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복수할 방법은 많았다. 오히려 한소연의 성격과 맞지 않는 행동이다.

그런 빙궁주에게 소궁주 한도린이 다가온다.

그녀는 사실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확신이 없어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지만 부궁주의 의중이 궁금하여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숨길 이유가 없었다.

“궁주님.”

“무슨 일이더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부궁주에 대한 것입니다.”

“부궁주?”

“예.”

한도린과 황극린의 첫 만남부터.

그가 왜인지 부궁주의 얼굴과 닮았다고 느꼈던 상황까지.

그리고 그에게 빙궁의 절기인 한빙백골소혼장을 펼쳤는데도, 무난하게 흘려 냈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아무리 뇌전의 무공을 익혔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소궁주의 말을 들은 궁주가 심각한 얼굴을 했다.

“설마 황극린… 그 아이가 내 손자라고?”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부궁주의 행동거지는 이상했지요. 하북팽가의 대공자라는 놈을 죽이지 않고 살려 준 것부터 이상했습니다. 인질로 삼는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팽가 따위에 그런 인질이 필요하진 않지요. 제가 따로 알아보니 팽여해는 황극린과 인연이 있던 무인이었습니다.”

빙궁주가 탄성을 터트렸다.

“그렇구나. 그래서……!”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사실 빙궁주는 사내를 혐오한다. 그 이유는 명확히 모른다. 그녀의 가슴 깊이 새겨진 본능이었다. 그런데도 황극린을 보면 왜인지 신경이 쓰였다. 처음 보는 그의 무공이 강하다고 하여 그런 호감이 생길 것이었다면, 혈마교주 또한 빙궁주의 마음에 들었으리라.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다.

그가 빙공을 수월하게 막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리고 부궁주가 그 순간 배신한 이유는.

‘북해의 피를 타고난 사내. 부궁주의 아들.’

그 어떤 사내아이도 북해의 핏줄이라는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빙궁주 또한 슬하에 꽤 많은 아이를 두었다. 절반이 사내였지만, 여섯 달을 채 버티지 못했다. 죽은 아이들이 늘어 갈수록 빙궁주의 독기는 깊어졌다.

“아아……!”

빙궁주가 무언가를 떠올린다.

그러고 보니 무림맹에서 황씨 가문이라는 놈들을 불러들인 적이 있다.

“설마!”

용황신가. 오래된 빙궁의 서고에도 용황신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주제를 모르고 설쳐 대는 파렴치한 놈들이라며 전대 궁주의 자서전에 언급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복마(伏魔)에 특화된 체질을 타고났다고 한다.

만약 그 용황신가의 핏줄과 북해빙궁의 피가 이어졌다면.

수많은 난관을 뚫고 절맥증을 가진 채 태어났지만 살아난 사내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가 황극린… 어찌 이런……?’

빙궁주는 타고나길 절대자로 태어났지만, 인간의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그녀 또한 처음 배 아파 낳은 아들이 죽는 것을 지켜보았을 때, 슬픔을 느꼈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그녀는 더 괴팍해져만 갔다. 인간의 목숨 따위는 파리보다 못하게 여긴다. 과거 몸을 섞었던 뇌불과 만났음에도, 솔직히 말하면 그 또한 ‘파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피를 이은 혈족은 다르다.

황극린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북해빙궁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사내아이였다.

‘황극린, 그 아이는 천운을 타고난 게다.’

만약 용황신가의 핏줄에 그런 힘이 있었다면, 예전에 마기를 정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마기로 고통받는 자들은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황극린이라는 아이가 특별하다는 말이 된다.

그 누구도 이룬 적이 없는 북해빙궁의 소망을 이룬 거다. 혹독한 북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는 아이였다.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건.

‘손자, 내 하나뿐인 손자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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