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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142화 (142/316)

142화 환영 제압

권룡 황극린.

소림사의 천덕을 꺾고 용봉지회에서 우승했다. 당연히 그의 실력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다 모용세가나 형산파가 그에게 밀려 물러났다는 소문도 있었기에 중강현에서 황극린의 평은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황극린의 승리를 점치는 이들은 몇 없었다.

환영신창 이중산.

그가 누군가? 비주류라 불리는 창으로 수많은 업적을 세운 무인이다. 그의 창날 앞에 무릎 꿇은 마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는 황극린처럼 용봉지회에선 우승한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환영신창은 황극린이 가지고 있지 않은 걸 가지고 있다.

바로 경험이었다.

황극린이 아무리 많이 비무를 해 보았다 해도 이중산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환영신창은 현재 강호 제일의 고수라 일컬어지는 천하칠대고수와도 싸워 본 경험이 있었다. 비록 그 당시에는 패배했지만… 그는 더 성장했을 것이다. 60이 넘었는데도 저 장대한 기골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혹자는 이중산이 화경에 올랐다고도 했다.

아무리 황극린이 후기지수 중 특출 나다고 하지만 이중산에겐 이길 수 없으리라.

그건 무림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후기지수가 왜 후기지수인가? 왜 무림에는 배분이 있는가? 완숙한 무인일수록 더 강한 것이 일반적이다. 황극린과 이중산의 대결에서 누가 패배할지는 자명해 보였다.

이중산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주위에서 떠받들어 주니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겠지?”

이중산의 일침.

그의 목소리엔 살기가 담겨 있었다. 살의와 살기는 다르다. 살의를 기(氣)로써 응축하여 발현하는 것이 살기였다. 그는 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화경에 올랐다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늘 밖에 다른 하늘이 있다. 네놈은 오늘 그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천외천(天外天).

광오한 발언이었지만 누구도 이중산이 오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림의 선배로서 후배에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거기다 오만하기로 따지면 황극린의 발언이 더욱 그러했다. 용살단과 함께 덤비라고 했었으니까.

“환영신창은 입으로 싸우나 보오.”

황극린의 말에 이중산이 창을 들어 올렸다.

그의 창날에는 이미 짙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창강(槍罡)이었다. 강철도 꿰뚫는다는 창강을 숨을 쉬듯 간단하게 발현한다.

“오냐, 보여 주도록 하마.”

부우웅-! 부우-!

창을 휘두르자 사방으로 바람이 뻗어 나간다. 마치 백성들에게 뒤로 물러나라는 듯 협박하는 듯하다.

“환영일섬(幻影一纖)이다.”

“…….”

“네 목을 꿰뚫을 초식이지.”

얼마나 황극린을 얕보았는지 어떤 공격을 할 것인지도 알려 준다. 황극린은 무심하게 그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그런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더 말을 잇는다.

“아니지. 바로 죽여 버리면 재미가 없지. 네가 감히 내 수하들을 죽였다고 했나? 그것이 거짓인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머리통은 남겨 둬야겠군. 처음엔 어깨를 날려 주마.”

“말이 참 많군.”

환영신창은 황극린의 도발에도 분노하지 않았다.

어차피 조금만 있으면 그의 태도는 싹 바뀔 것이다. 감히 누구한테 도발한 것인지 깨닫고 목숨을 살려 달라 빌 것이다. 그 모습이 참으로 추하리라.

“환영일섬.”

이중산이 읊조리듯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그의 발이 튕기듯 움직였다.

탓! 탓! 탓!

고작 세 번의 뜀박질로 황극린의 앞에 도달했다. 그의 창끝에는 믿을 수 없이 찬란한 창강이 깃들어 있었다. 앞으로 쏘아지는 것만으로 마치 공간이 비틀리는 듯한 환영을 만들어 낸다. 환영신창이라는 별호가 어울리는 공격이었다.

푸른 창강이 공간을 꿰뚫었다.

스걱!

무언가 베이는 소리가 들렸다. 백성들이 비명을 질러 댄다. 순간 황극린의 어깨가 꿰뚫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꺄아아아악-!”

“차, 창이 저리도 빠르다니……!”

“역시 환영신창이다!”

하지만 왜인지 이중산의 표정이 어두웠다.

“뭐야? 권룡이 피했어?”

“저, 저것 좀 봐! 환영신창의 머리가!”

곧게 묶은 상투가 베여 머리가 산발했다. 위엄 가득했던 이중산이었지만 왜인지 머리가 풀어지자 묘하게 없어 보였다. 뭐, 좋게 말하자면 야성적인 느낌이 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놈…….’

이중산은 어정쩡한 무인이 아니었다. 그 또한 경지에 이른 무인이다. 황극린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건 조금 전의 격돌에서 깨달았다.

‘마지막 순간 환영일섬을 피함과 동시에 단검을 휘둘렀다.’

대개 황극린과 싸웠던 존재들이 그의 공격을 감지하지도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달랐다. 이중산의 기세가 달라졌다. 그는 바로 황극린과의 거리를 벌리고, 언제든 창을 뻗을 준비를 했다.

“…솔직히 감탄했다.”

하지만 이중산은 입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황극린이 자신의 공격을 피한 것은 대단하다. 이제부턴 방심하지 않고 제대로 전투에 임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명성이었다. 아이 다루듯 쉽게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상대를 인정하는 게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는다.

“환영신창이 널 인정한다, 권룡.”

“……!”

“환영신창이… 권룡을 인정했어?”

“방금 한 수로 실력을 깨달았나 봐!”

“저기 봐, 애초에 황 소협은 당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머리카락이 잘린 건 이 대협이잖아.”

“설마 권룡이 화경에 올라 있다는 건가?”

이중산의 말은 수많은 추측을 낳았다.

“이제부턴 진심으로 상대해 주마.”

황극린이 고개를 젓는다. 이중산은 자신을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아마 저리도 말이 많은 이유는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수하들을 잃은 것 때문일 것이다. 최대한 이번 싸움에서 많은 것을 얻어 가려는 것이다. 물론, 황극린도 이중산과의 전투에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것은 같았다.

“…….”

환영신창은 이제 아무 말도 없이 움직였다.

처음 환영일섬을 펼칠 때와는 전혀 다르다. 저돌적으로 돌격해 오는 게 아니라 찬찬히 거리를 좁힌다. 하지만 일정 거리에선 멈춰 선다.

“환영난무(幻影亂舞)!”

이중산이 환영신창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바로 환영난무 덕분이다.

창의 우월한 사정거리를 이용하여 먼 거리에서 창을 휘두른다. 뒤로 피한다고 하더라도 환영과도 같은 창격을 피해 낼 수 없었다. 창을 방어하고 피해 내다 보면 무엇이 진실이고 환상인지 구명하지 못한다.

쉬잇-! 쉬익-! 쉭! 쉭쉭! 쉭!

찌르고, 베고, 찌르고, 찌르고.

순간적으로 이중산의 거창이 수십 개로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 창날이 쇄도하는 정면에 황극린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황극린도 가만히 서서 피해 낼 순 없었다.

이중산은 처음 공격이 실패한 후 황극린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진심으로 초식을 펼치고 있었다. 창강이 공간을 수놓고 있었으며, 그 창강은 환영의 묘리를 담고 있었다.

콰짓-!

황극린의 육신에서 뇌전이 튄다.

“뇌전-!”

“황 공자가 벼락의 기운을 다룬다는 게 사실이었군!”

그리고 그가 사라졌다.

“어엇? 뭐야!”

“어디로?”

“뒤!”

관중도 알아챌 정도였으니 이중산은 오죽하랴? 갑자기 빨라진 황극린의 움직임에 기겁하며 보법을 펼쳐 뒤로 돈다. 황극린은 경악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으로 그의 뒤에 있었다.

‘어떻게 환영난무를 뚫고……!’

환영난무는 창강의 묘리 중에서도 특별한 힘을 다룬다.

보통 검강(劍罡)이라 불리는 건 단순히 검기를 응축하고 또 압축하여 만드는 조금 더 단단한 검기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초절정에 이른 고수들 중에서 몇몇만은 알고 있었다. 검강이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氣)라는 건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공간을 휘는 것처럼 보이게 환영을 만들어 낼 수도 있으며, 향을 만들어 상대에게 자신의 기운을 침투시킬 수도 있다. 기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낳는다.

더 쉽게 예를 들자면, 진법이 있다.

진법은 자연에 떠도는 기운을 활용하는데, 진법 내에서는 새로운 시공간이 만들어진다. 물론, 진법 안에서 실제 시간을 조절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진법 안에 있는 자가 시간을 착각하게 할 만큼은 만들 수 있다.

조금 전 이중산이 펼친 환영난무 또한 비슷한 기예라 할 수 있다.

사방으로 창을 뻗어 내는 일견 간단해 보이는 초식이었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의 창끝에는 환영의 창강이 맺혀 있었고 실제로 그것을 마주하면 무엇이 잔상이고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해 함부로 피해 낼 수 없다. 마구잡이로 움직이려 한다면 창에 꿰뚫리고 말리라.

하지만 황극린은 환영일섬을 피해 낸 것과 마찬가지로 피해 냈다.

거기다 이중산의 뒤를 점했다.

‘어떻게… 저리도 빠른…….’

이중산이 기겁한다.

그는 모르고 있었다. 황극린은 환영과 잔상 따위로는 속일 수 없는 감각을 가졌다는 걸 말이다. 어찌 보면 상성이 정말 좋지 않았다.

쉬이이이잇-!

이중산이 다시금 창을 뻗는다. 그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환영난무를 완벽히 피하고 뒤를 점한 시점에서 이미 황극린이 그와 비등하다는 증거였으니까. 이제 중요한 건 후배를 참교육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아니다. 무조건 승리를 가져와야 했다.

환영만천(幻影滿天).

창끝에서 마치 꽃이 피어나는 듯하다. 환(環)의 묘리를 담지는 못했지만, 그에 한없이 가까운 창강이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먼저 황극린의 다리를 노렸다. 움직임을 봉하는 게 창술의 기본이었다.

쉬익!

하지만 이번에도 황극린은 피해 냈다.

“이노옴!”

하지만 환영만천은 단순히 창을 찌르는 게 끝이 아니다. 피해 낸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폭발하는 창강의 기운이 황극린의 내부를 부숴 버릴 것이다.

콰아앙!

창끝에서 폭발음이 들린다. 내력을 폭발시키는 것은 상당한 내력이 소모되지만 이중산은 내력을 아끼지 않았다. 딱 한 번, 한 번만 황극린의 움직임을 봉한다면 그의 승리였다.

순간 황극린의 몸이 움찔했다.

이제는 호적수를 상대하는 것처럼 집중한 이중산이 그의 작은 흔들림을 잡아챘다.

‘이건 못 피해 낸다!’

쾅! 쾅! 쾅! 쾅! 쾅! 쾅!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여섯 번의 폭발음. 최대한 가까이서 두 사람의 전투를 눈에 담으려 했던 관중이 귀를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선다. 화경에 가까워진 초고수가 진심으로 내력을 발산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끝이다!”

비록 그의 창이 직접 황극린의 육신을 꿰뚫지는 못했지만, 막대한 내력을 소모해 가며 황극린의 움직임을 봉했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그가 회복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

‘환영일섬.’

처음엔 명중시키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했다.

황극린의 팔 따위는 노리지 않는다. 이중산은 그의 심장을 노리고 환영일섬을 펼친다. 그가 평생을 쌓아 왔던 내력이 창끝에 모였다. 눈을 깜빡하기도 전에, 이중산의 창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쉬… 익!

소리보다 빠른 것처럼 보이는 일격에 무언가가 꿰뚫리긴 했다.

“빠르군.”

“대체 어떻게……?”

당연히 황극린의 심장을 꿰뚫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중산의 창이 뚫어 낸 것은 황극린의 의복이었다.

“분명히 네놈은 흔들렸다. 피해 낼 수 없는 각으로 찔렀다. 그런데 어찌……!”

“간단하다.”

“……?”

뭐가 간단하다는 말인가? 창강을 폭발시켜 내상을 유도했다. 아마 황극린은 전력으로 호신강기를 펼쳤을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에 환영일섬을 찔러 넣었다. 피할 수 없는 각으로 말이다. 이중산은 자신의 연계를 천하칠대고수도 피해 낼 수 없을 것이라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더 빠를 뿐.”

“뭐라……?”

빠르다고 다가 아니다.

분명히 황극린은 창강의 폭발을 온전히…….

그 순간이었다.

이중산은 창을 타고 들어오는 뇌전의 기운에 순간 혀를 깨물고 말았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창을 놓칠 뻔했다. 황극린도 조금 감탄하긴 했다. 허를 찌른 뇌전의 일격이었음에도 그는 방비해 냈다.

‘그의 창술은 꽤 도움이 됐다.’

황극린은 솔직히 감탄했다.

영물의 내단과 영악으로 진화한 그의 육신으로 보기에도, 이중산의 공격은 몹시 예리하고 빨랐다. 평소 같았으면 적을 금방 제압했겠지만… 조금 전까지 그에게 틈은 존재하지 않았다. 황극린을 무시하는 듯하면서도 일정 거리 이상은 절대 내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이중산의 손에는 아직 황극린이 창날을 통해 흘려보낸 뇌전이 흐르고 있었으며, 그는 뇌전을 막아 내느라 황극린의 접근을 막아 낼 수 없었다.

“헙!”

이중산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려 한다. 창의 약점은 거리다. 검보다도 거리 조절이 더 중요한 게 창이었다. 그리고 가까이 갈수록 강해지는 게 권법이었다.

황극린의 주먹에 뇌전이 깃들었다.

이중산이 황급히 호신강기를 펼친다. 거리를 허용한 이상 몇 대 맞는 것은 각오했다. 피해를 줄이고 다시금 거리를 벌려야…….

“어… 억……?”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는 고통!

이중산은 뇌가 터져 버릴 듯한 느낌에 뜨악했다. 아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푹! 푹! 푹!

황극린의 주먹이 꽂힐 때마다 이중산의 호신강기는 종잇장처럼 찢겨 나간다. 그의 손에 담긴 뇌전이 이중산의 근육과 살점까지 찢어 버리고 있었다.

콰지직-! 콰지직-! 콰지지지직!

그의 주먹이 쇄도할 때마다 이중산의 육신이 크게 흔들렸다. 수십 년에 걸친 수련의 결과로 다행히 창을 놓치지 않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화가 되었다. 차라리 창을 버리고 나려타곤을 펼쳤다면…….

‘아, 아니… 그래도 이건…….’

이중산은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그랬다고 하더라도 황극린의 주먹을 피해 낼 수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황극린이…….

‘이, 이놈은 벽을… 벽을 넘었…….’

자신이 그토록 염원하던 화경의 벽을 뚫은 고수라는 사실을 말이다.

* * *

대룡상단주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다. 그의 앞에는 특급으로 도착한 서신이 있었다. 중강현에서의 전투 결과를 담은 서신이었다.

‘자, 어떻게 됐을까?’

만뇌문.

중소문파 따위가 감히 대룡상단을 건드렸다.

환영신창 이중산이 나섰으니 결과는 뻔했다.

천천히 대룡상단주가 서신을 펼친다. 그리고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씨발?”

평소 욕설을 거의 내뱉지 않는 대룡상단주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본능적으로 입에 상스러운 말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씨발,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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