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대룡상단의 결단
대정회에는 꽤 많은 수의 문파가 소속되어 있었다.
모용세가와 형산파 같은 중원 규모로 알아주는 가문이나 문파를 주축으로, 각 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는 이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다 대룡상단이 있다. 그들은 중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상단으로 막대한 재산으로 권력을 휘둘러 왔다.
현 상황도 그러했다.
대룡상단은 만뇌문이 가진 옥보단과 혈금유의 제조법을 강탈하기 위해서 만뇌문을 공격했다. 그에 발끈한 만뇌문이 선전포고를 했지만, 당연하게도 대룡상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었다. 만뇌문이라는 문파는 대룡상단의 입장에선 휘파람으로도 날아가는 작은 문파일 뿐이었으니까.
물론, 대정회에 쓴 돈이 있던 대룡상단이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도움을 청한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돈 먹인 값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거기다 대룡상단을 건들면 대정회에서 대대적으로 나선다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계산이 깔려 있기도 했다.
그렇게 만뇌문과의 전쟁이 시작된 지 꽤 시간이 지났을 무렵.
언제든 만뇌문을 굴복시키고 그들의 제조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던 대룡상단의 생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만뇌문이 갑자기 이사를 한답시고 기물을 모두 챙겨 남창을 떠났을 때였다.
대룡상단은 만뇌문이 공포에 미쳐 버린 것이라 판단하고, 근처에 있던 문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당연히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황극린은 그들을 간단하게 제압하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문제점은 그 과정에서 만뇌문의 문도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점과 대정회에 소속된 무인들은 당분간 싸우지 못할 정도로 다쳤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대룡상단은 형산파와 모용세가에게 부탁했다.
그들이 나서 준다면 확실히 만뇌문을 끝낼 수 있으리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오늘 형산파가 어떻게 됐는지에 대한 결과가 대룡상단주의 귀에 들려왔다.
“황극린 혼자서 형산파를 제압했다는 말인가?”
“예, 상단주님.”
대행수 조괘가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옆에서 상단주를 지켜봐 왔었다. 딱히 표정의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상단주가 분노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아주 미묘한 분위기의 변화였다. 대행수는 긴장을 유지한 채로 보고를 이어 나갔다.
“천리순풍 장로는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최소한 반년은 요양해야 치료할 수 있고… 그건 형산파의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특히 이번에 용봉지회에 참가할 예정이었던 대제자 엄비창은 다리뼈가 부러졌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무사한 것은 양평중이라는 제자 한 명뿐입니다.”
상단주의 기분을 풀어 주고자 상황을 축소하고자 하진 않았다. 만약 추후에 그것이 드러난다면 대행수는 그에 상응하는 징계를 받게 되니까. 당장은 무섭더라도 확실하게 사실만 보고하는 게 좋았다.
“권룡이 그렇게나 강한가? 고작해야 후기지수 아닌가?”
대행수 조괘는 그나마 무림의 경험이 있었다. 그는 본래 낭인 출신으로 여러 임무를 해결해 가며 무림에서 명성을 쌓았었다. 그는 낭인으로 살아갈 적에 수많은 무인들을 보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황극린의 강함이 쉽게 이해되진 않았다.
“그러한 천재가 몇 있긴 했습니다. 후기지수지만 기성 무림인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실력의 소유자들이 말입니다. 구파일련이나 육대세가의 후계자들이 대부분 그러했지요.”
“그건 알고 있다. 하나, 형산파의 장로 한 명이 이끄는 20명이 넘는 제자를 제압한 건 다른 이야기가 아니던가?”
“예상보다 훨씬 무위가 뛰어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용봉지회에서 보였던 실력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을 듯합니다.”
상단주가 혀를 찬다.
“지금 꺾지 않으면 본 상회가 위험해진다는 소리로군.”
“예… 아마 시간이 지나면 더 강해질 것입니다.”
상단주는 여러 관점에서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황극린이 무서운 점은 지금이 끝이 아니라는 소리다. 만약 권룡이 이제 50대의 나이에 접어들었고 그의 전성기가 지났다면,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었다. 대부분 무인이 그러하듯 무공 실력이 정체되어 언젠가 도태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황극린은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
물론, 어릴 때 신동이라 불렸던 수많은 인재가 나이가 들어 그저 그런 범재로 전락하는 경우도 왕왕 있긴 했지만…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자네의 생각은 어떻지?”
“용살단(龍殺團)을 투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형산파는 이번 일로 소극적으로 나올 겁니다. 모용세가는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더 많은 무인을 요구한다면 대정회에서의 대룡상단의 입지가 줄어들 것입니다. 거기다 각 문파의 정예가 파견되는 데는 꽤 시간이 소요될 겁니다. 무림맹이 중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차라리 만뇌문이 어디에 있는지만 파악한다면 대정회의 정예를 끌어모아 그들을 일망타진할 수도 있다. 그것이 가장 간편하다. 하지만 문제는 만뇌문이 어딨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대행수 조괘는 용살단의 투입을 건의했다.
용살단.
대룡상단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운 무력 조직. 중소문파 하나쯤은 하루 만에 멸문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비밀리에 키우고 있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대룡상단의 무력이 얼마나 강한지 다 알고 있었다.
총 다섯 개의 대대로 이루어진 용살단이 나선다면 확실히 만뇌문을 끝장낼 수 있으리라.
“용살단이라……. 만뇌문을 치는 데 드러내기엔 조금 아깝긴 하군.”
“아니면 모용세가에 부탁하거나 외부의 세력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외부의 세력?”
“예, 예를 들자면 ‘흑살문’ 같은 문파가 있겠지요.”
“그것도 고려해 볼 만하군. 하지만 지금 당장 흑살문에 의뢰할 수는 없어. 우리와 전쟁을 벌이는 황극린이 흑살문에 당한다면 중원 무림이 우릴 의심할 테니 말이야.”
“예, 흑살문 말고도 사용할 수 있는 패는 꽤 있습니다. 정리하여 보고하겠습니다.”
오늘은 대충 이 정도만 정리하면 될 것이다.
황극린은 형산파와 싸웠으니 이제 당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여유로운 것은 아니니 빠르게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래, 지금 가서 바로 보고서를 작성하게.”
“예, 상단주님.”
그렇게 대행수 조괘가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상단주님, 행수 유종익입니다.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왠지 모르게 격앙된 목소리였다.
상단주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들어오게.”
유종익은 상단주와 대행수가 같이 있는 것을 보고 긴장했지만, 그렇다고 실수하지는 않았다. 그는 방금 도착한 서신을 그대로 읽었다.
“조금 전 백운파(白雲派)의 무인들이 모두 제압됐다는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더 보고할 게 남았나?”
상단주의 눈썹이 꿈틀한다.
백운파도 그리 부족한 문파는 아니었지만, 형산파 또한 당했다. 그들이 당하는 건 뭐, 당연했다.
행수 유종익이 잘게 턱을 떨었다.
행수급 인물들은 웬만한 일에 긴장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사소한 행동도 상단주의 눈에는 상당히 거슬렸다. 그런 상단주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이 유종익이 보고를 시작한다.
“북산파, 운산파, 벽화문, 천양문, 인의철가 또한 제압당했습니다.”
“…….”
상단주는 오랜만에 분노를 느꼈다.
만뇌문이 대룡상단 부당주의 팔을 잘랐을 때도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그럴 가능성을 계산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사천성에 파견된 대정회의 문파들이 죄다 당했다는 말인가?
형산파를 제압한 직후에?
“그리고…….”
“또 남았나?”
“모용세가 또한…….”
상단주가 눈을 감았다.
아무리 모용세가가 최정예 무인들을 보내지 않았다고 해도 그들은 육대세가의 일원이다. 그런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당했다고?
“만뇌문의 문주? 광견살검? 누구지?”
“황극린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허…….”
옆에서 듣고 있던 대행수 조괘가 입을 벌리고 말았다. 지금 들려온 소식은 무림에 경험이 많던 그마저도 처음 겪는 일이다. 혼자서 그 많은 문파를 죄다 제압했다고? 이게 말이나 되는 건가? 그놈의 체력은 강철이라도 된단 말인가?
“아, 그리고 거미 한 마리가 있었다는 내용의 서신도 있습니다.”
“장난치는 건가?”
“아, 아닙니다! 거미는 영물로 보였다고 합니다!”
“가지가지 하는군.”
상단주가 감았던 눈을 뜬다.
사천성에 파견된 대정회의 무인들이 죄다 당했다. 황극린 한 명에게 말이다. 여기서 확실하게 결정해야 한다. 더 앞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포기할지를 말이다.
과감하게 끊어 내고 포기하는 것도 상인의 덕목 중 하나다.
지금 들어온 상황으로 볼 때, 황극린은 만만히 볼 상대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또 있다는 건가?”
“죄, 죄송합니다.”
“말해 보게.”
“이건 만뇌문에서 전해 온 서신입니다.”
상단주가 서신을 받아 들었다.
그것엔 황극린이 보낸 전언이 있었다.
딱히 내용이 길지도 않았지만, 그마저도 요약하자면…….
- 금자 100만 냥과 상단주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전쟁을 멈출 용의가 있다.
단순하게 승리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대룡상단을 패자 취급 하고 있었다. 거기다 금자 100만 냥에 상단주의 무릎까지?
사실 황극린이 무엇을 할 계획인지 알고 있다면, 절대 과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대룡상단주의 입장에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을 뿐.
“조 대행수.”
“예, 상단주님!”
상단주의 음산한 목소리에 대행수가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용살단을 투입하게.”
용살단은 훗날 구파일련이나 육대세가와의 싸움에서 사용하려 고이 모셔 둔 병력이었다. 그런 강대한 전력을 만뇌문 따위에 투자하는 건 당연히 아까웠다. 하지만 상인은 과감한 결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대룡상단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건 황극린이 정한 선을 넘어 버리는 행위였음을 상단주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 * *
“어떠냐?”
“어떤가요?”
미래에 진법으로는 최고라 불리던 백수천왕(百獸天王) 제갈창해와 천음마녀(天音魔女) 제갈소희. 물론, 현재 별호는 백수천왕과 천음마녀가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중원을 혼란으로 빠트렸던 두 사람이 황극린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작해야 칠 주야가 지났지만 배교가 만들었던 진법은 한 단계 더 발전했다.
기존에 만들어진 진법을 수정하는 건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두 사람이 진법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능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통과할 수 있겠느냐?”
“저는 최소한 반 시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해요.”
황극린은 일다경 만에 와룡이 만든 진법을 통과했었다.
하지만 그건 깨달음을 주기 위해 만든 진이고, 사실 사람을 위협하는 요소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든 진은 다르다.
애초부터 침입자를 격살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법이다.
거기다 두 천재가 살상력을 더하였고, 더욱 은밀하게 개조했다. 아무리 황극린이라 할지라도 쉽게 통과할 수 없으리라.
“확실히 바뀌긴 했군.”
“진을 만든 나도 주의하면서 생문으로 향해야 한다. 진을 통과하는 방식을 모른다면… 통과하기란 불가능하지.”
“진을 힘으로 부수는 것도 불가능해요. 청성산의 대지가 품은 기운보다 더 많은 내력이 필요할 테니까요.”
두 사람은 은근히 가까워져 있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황극린은 진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두 사람이 자신하는 만큼 대단한지 말이다.
“그럼 들어가겠소.”
“조심해라. 위험하면 이 종을 울리고.”
옥으로 만들어진 종이다. 작게 흔들었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진 내부에서만 울리는 종이다.”
“만뇌문도들만 소지할 수 있도록 소수만 제작했답니다.”
황극린이 종을 챙기고 진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제갈소희와 제갈창해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음흉한 미소를 머금은 채 서로를 응시한다.
“크크크크.”
“후후후후.”
두 사람은 종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렸다.
아마 조금만 지나면 종이 마구 울릴 것이다. 제아무리 황극린이라도, 두 사람이 만든 희대의 걸작을 통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터다.
그렇게 일각이 지나갔다.
“확실히 와룡의 진을 통과해서 그런지 제법 오래 버티는군.”
“그래도 모든 기관진식을 통과할 수는 없을 거예요.”
“당연하지.”
이각이 지났다.
“으음… 그냥 당해 버렸을 수도 있나?”
“설마요. 황 공자님께선 제갈세가 대부분의 진을 경험하셨어서…….”
“쯧, 설마 진을 벌써 통과하고 반대편으로 간 것은 아니겠지.”
“그건 더 말이 안 되죠. 생문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해요.”
그때였다.
“응? 왜 여기로 나오는 거냐?”
제갈창해가 고개를 갸웃한다.
황극린은 처음 들어갔던 모습 그대로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제갈소희의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 갔다.
‘설마!’
하지만 그 추측이 사실이라면…….
아니다. 사실일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이 개조한 진은 그렇게 쉬이 통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제갈소희는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입만 열면 정답을 들을 수가 있다.
“황 공자님, 설마……?”
제갈창해가 제갈소희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다.
“설마 반대편까지 갔다 온…….”
황극린이 옥으로 만든 종을 제갈창해에게 돌려준다.
“이제 막 칠 주야가 지나지 않았소? 약조한 한 달은 꽤 남았으니 더 분발해 주시오.”
두 사람이 멍한 얼굴로 황극린을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