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번뇌
천덕은 사부께 어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소림사에서 촉망받던 한 천재가 소림사의 수련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쳐 버린 이야기를 말이다.
- 그는 애초부터 소림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단다.
경각심을 주기 위해 소림의 고승들은 대부분 그를 비판했다. 소림은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제어함으로써 성장하는 문파였다. 번뇌를 잊기 위해서는, 번뇌와 직접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소림의 이상향이다.
하지만 그는 욕구를 억제하지 못했다.
동자승 시절에도 그는 몰래 수련을 빼먹고 게으름을 피웠다. 대부분 제자가 사부의 불호령이 무서워서 억지로 수련에 참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릴 적의 사부는 그가 부러웠다고 했다.
- 그는 결국 번뇌를 참지 못하고, 몸속의 번뇌를 폭주시키는 방향으로 무공을 익혔단다.
- 혹시 뇌불이라는 사내가 맞습니까?
- 그래, 너도 들은 적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 예, 사부님.
천덕이 무공을 한창 익히고 있을 때, 뇌불은 이미 무림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 대반야금강공을 기반으로 만든 뇌불의 무공은 파괴만을 위한 무공이었단다.
- 무공은 누군가를 제압하기 위해서 익히는 게 아닙니까?
어린 시절의 천덕은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 무공은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 위한 ‘기술’이 아니던가? 물론, 사형제들 앞에서는 이런 소리를 절대 내뱉지 못한다. 사부의 앞에서만 천덕은 솔직하게 의견을 내세웠다. 천덕의 사부인 해월대사(邂月大師)는 자신의 앞에서는 절대 거짓을 고하지 말라고 했으며, 천덕은 사부와의 약조를 지키고 있었다.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무공은 누군가를 제압하기도 하지. 하지만 진짜 무공은 그런 게 아니란다.
- 진짜 무공은 무엇입니까?
- 스스로를 지키는 것.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무공을 익히는 이유다.
천덕은 해월대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그것 아닌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제압해야 하지 않은가?
해월대사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 보아라.
콰지직!
해월대사의 손끝에서 노르스름한 뇌전이 터져 나왔다. 인간의 몸에서 벼락이 치다니? 어린 천덕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사, 사부님! 손은 괜찮으십니까……!
- 내 손을 만져 보아라.
천덕이 침을 꿀꺽 삼키며 해월대사의 손을 잡는다.
- 앗, 뜨, 뜨겁습니다!
- 이게 번뇌다.
- 번뇌…….
- 뇌불 무공은 확실히 강했었다. 그의 사형제와, 심지어는 그를 가르친 사부마저도 부러움을 느끼게 했지. 당시 숭산의 대지 위엔 번뇌가 가득했다. 모두의 머릿속엔 힘에 대한 욕구만이 가득했었지.
숭고한 소림사의 고승들이 번뇌에 흔들렸다고?
어린 천덕은 수십 년간 면벽 수련을 하는 고승들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살이 쏙 빠진 상태였지만, 그들의 어깨는 태산처럼 커 보였었다.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었다.
- 모두가 그의 무공을 탐냈었지. 뇌전을 다루는 무공이라니, 참으로 대단해 보이지 않느냐?
천덕은 직감적으로 사부님이 뭘 말하려는지 깨달았다.
- 전 번뇌를 그렇게 방출하는 게 문제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해월대사가 작은 미소를 띠었다.
- 그래, 번뇌로 만들어진 뇌전을 방출하는 무공. 그가 익혔던 무공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강력한 무공이었지. 하나, 강한 힘에는 대가가 따른단다. 번뇌를 견디지 않고… 방출만 하는 무공을 익히면 어떻게 되는지 뇌불이 직접 보여 주었지. 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뇌전으로 인해 스스로 자멸했단다.
해월대사는 대반야금강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뇌불의 무공 혈풍뇌전신공의 단점에 대해 나열하기 시작했다. 번뇌를 왜 방출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지, 뇌전의 기운이 인간의 몸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를 말이다. 욕심이 앞서 나가면 당장 앞서 나갈 수는 있어도 결국 패배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 기억해 두거라. 언젠가는 뇌불의 진전을 이어받은 이를 만날 수도 있단다.
해월대사가 황극린의 존재를 예견한 것은 아니다.
하나, 뇌불 정도의 고수라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무공을 남겨 놓았을 것이라 여겼다. 소림사의 절기 대반야금강공을 기초로 한 혈풍뇌전신공은 분명히 다시 한번 무림에 등장할 것이다. 해월대사는 천덕이 그것의 유혹에 빠지지 않길 바랐다.
- 난 네게 번뇌를 방출하지 않고 뇌불의 무공을 이기는 방법을 알려 줄 것이다.
- 뇌전을 막는 게 가능한 겁니까?
- 금강불괴체신공(金剛不壞體神功)을 익히면 가능할 것이다. 넌 그 무공을 익힐 최적의 자질을 갖추고 있단다.
금강불괴체신공은 소림사에서도 완성되지 않은 무공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체질과 자질을 갖춘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천덕은 가능하다.
그의 체질은 금강불괴를 이룰 수 있는 신체였다. 해월대사는 그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다.
- 이제부터 넌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천덕은 소림의 최고 무공인 금강불괴체신공을 익히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배분의 제자 중 유일하게 대환단도 취하게 되었다.
천덕은 소림사의 미래였다.
* * *
오래전 과거였지만, 천덕은 사부님이 보여 주신 뇌전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해월대사는 뇌불의 뇌전을 만들어 천덕의 수련에 이용했었다. 그의 육신이 번뇌로 만들어진 뇌전을 견뎌 낼 수 있도록 했었다.
아주 조금 느낌이 달랐지만, 황극린의 주먹을 몇 번 맞아 본 천덕은 그것이 뇌불의 무공이라는 걸 눈치챘다. 애초에 뇌불 혈풍뇌전신공은 소림사의 무공이 아닌가? 어릴 때부터 피부로 느꼈던 것을 눈치채지 못할 천덕이 아니었다.
“그 무공은 어떻게 손에 넣으셨습니까?”
황극린이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대답한다.
천덕이 알아챌 것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소림사라면 혈풍뇌전신공을 알아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었으니까.
“기연으로 얻게 되었소.”
“기연이 아닙니다.”
천덕은 깊은 한숨을 토해 내며 황극린을 바라본다. 그를 비난하는 표정은 아니다. 단지 그의 눈빛에는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다. 천덕은 어릴 때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혈풍뇌전신공의 단점을 말이다. 번뇌를 방출만 하게 되면, 결국 자멸하게 되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무공을 익히면 시주께선 스스로 무너질 겁니다.”
“…….”
스스로 무너진다?
혈풍뇌전신공은 뇌전을 다루는 무공이다 보니 육체에 부담이 크다. 하지만 체질 개선을 통하여 황극린의 세맥은 순수한 뇌전의 기운이 지나가더라도 딱히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뇌불이 주화입마에 걸린 이유가 혈풍뇌전신공을 익혀 스스로 무너졌기 때문일까?
‘아니.’
소림사에선 잘못 알고 있다.
뇌불은 혈풍뇌전신공을 익혔기에 주화입마에 빠진 것이 아니다. 그에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황극린은 그와 비무하며 여러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에 대한 기억이 조금 돌아왔다고도 했다.
“번뇌라는 건 그렇게 방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언젠가 뇌전의 기운은 시주의 몸을 잠식할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그것을 익히는 걸 멈추십시오.”
황극린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싫소.”
- 장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뇌불의 무공은 위험합니다.
천덕이 타인의 귀를 의식해서인지 전음으로 뇌불을 언급했지만, 황극린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황극린이 전혀 반응하지 않으니 천덕이 작은 한숨을 내쉰다.
그러고는 그에게 제안한다.
- 제가 이긴다면… 익히는 걸 잠시 멈추겠다고 약조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 사부님을 만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분이라면 분명 황 시주를 구원해 주실 수 있을 겁니다.
천덕은 자신이 당연히 이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초반에 황극린의 뇌전을 보고 당황하긴 했었지만, 이제 그가 익힌 무공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대응할 수 있으리라. 금강불괴체신공을 수련할 때, 사부가 만들어 낸 뇌전을 버티는 수련도 했었다.
- 내가 이기면?
- 무엇이든 황 시주의 부탁을 들어드리겠소.
- 좋소.
황극린이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관중석에선 야유가 들려오고 있었다. 잘 싸우던 두 사람이 갑자기 서로를 빤히 바라보고 입만 달싹거리고 있으니 답답한 것이다.
야유가 점점 심해지려는 즈음.
천덕의 기세가 돌변한다.
- 뇌불의 무공을 익힌 시주라면 이것도 아마 익힐 수 있을 겁니다. 소림으로 귀의하신다면… 시주께서도 금강불괴를 향한 여정에 발을 내디딜 수 있을 겁니다.
천덕의 온몸이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황극린도 살짝 놀랐다. 그의 무공의 위엄 때문이 아니라…….
‘내공을 저렇게 낭비하다니.’
아무리 내공이 많아도… 아니, 내공이 많기에 더 낭비하는 걸까?
물론, 내력이 충만한 만큼 아끼는 게 이상했지만, 내공이 부족한 황극린이 보기엔 참으로 쓸데없는 내력의 낭비였다.
“오십시오!”
양보하듯 말하는 천덕.
황극린이 피식 웃으며 앞으로 달려 나간다.
마치 순금의 불상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천덕의 육신. 그것은 팽여해의 도강을 막아 냈을 때와 같았다. 어떠한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엿보이고 있었다.
“또 금강불괴를 발동했다!”
“이제 황극린의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겠구만!”
모두가 그렇게 예상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천덕의 육신이 저리 찬란하게 빛날 때는 도강조차도 막아 냈었다. 사실 그것은 금강불괴의 육신이라기보다 막대한 내공에 기반한 반탄지기였지만, 관중 대다수는 그게 금강불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황극린의 주먹이 천덕의 복부에 닿은 순간.
관중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콰직!
마치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팽여해의 도강과 천덕의 반탄지기가 부딪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굉음. 거기다 부딪치는 순간 분명히…….
“황 소협의 손에서 광채가…….”
“광채가 아니야! 뇌전이라네!”
“뭐?”
콰지지직! 콰직!
황극린은 내공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의 내력은 천덕에 비해서라면 어린애 수준이라고 할 만큼 부족하다. 그렇기에 최대한 아끼고 아껴 사용해야 한다. 상대에게 부딪치기도 전에 내력을 마구 방출해 내는 천덕과는 달리 황극린은 주먹을 뻗을 때마다 내력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싸우는 건 대단히 어렵다.
검강이나 도강 따위를 다룰 때는 순간적으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차츰차츰 끌어내서 발현한 다음 휘두르는 게 정상이었다.
실전에서 도강이나 검강을 쉬이 사용할 수 없는 게 그 이유다.
인간의 세맥은 한계가 있었다. 천하칠대고수급의 실력이 아닌 이상에야 짧은 순간에 많은 내력을 세맥으로 융통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황극린은 다르다.
그의 세맥은 영약을 취한 체질 개선으로 단단해지고 넓어졌다. 사실 지금의 황극린의 세맥은…….
‘주먹 한 번에 내력을 모두 소모할 수도 있지.’
그렇기에 가능하다.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에만 단전에서 터져 나오는 내력을 집중하는 것이 말이다.
“컥!”
천덕이 복부에 전해지는 고통에 당황하여 황급히 몸을 뒤로 뺀다.
지금 문제는 황극린이 가진 뇌전이 아니다. 그것 또한 분명히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대체 얼마나 손을 단련했기에……!’
황극린의 주먹은 천덕의 상상 이상으로 단단했다.
거기다 어찌나 순간적으로 전해지는 힘이 강렬한지 천덕은 순간적으로 집중을 깨트릴 뻔했다.
타닷! 뒤로 물러서서 황극린의 움직임을 보려 했던 천덕이었다.
하지만 황극린의 보법은 천덕보다 한 수 위다. 극한의 쾌검을 익힌 모용가아의 공격도 모두 피해 냈던 속도였으니 천덕이 쉬이 따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뒤!’
어느샌가 황극린이 천덕의 뒤를 잡았다. 천덕이 황급히 몸을 웅크려 방어한다. 이제까지 활짝 열려 있던 자세와는 전혀 다르다.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중요 급소를 방어해야 한다. 이것은 고통을 줄이기 위한 천덕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쿵!
하지만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황극린의 주먹이 천덕의 옆구리에 꽂혔다.
천덕은 충격에 빠졌다. 황극린의 주먹은 처음보다 몇 배는 더 강해져 있었다. 옆구리에서 얼얼한 고통이 느껴진다. 그의 주먹이 맞닿은 순간, 뇌전의 기운이 남아 반탄지기를 깨트리고 있었다.
“하아압!”
천덕이 더욱 많은 내공을 끌어 올린다.
그의 뇌전을 막아 내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즈으으으-!
눈이 부실 정도의 광채. 비무장 가까이에 있던 관중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천덕 또한 자세를 잡고 주먹을 휘두른다.
백보신권(百步神拳).
백 보 밖의 바위도 부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주먹.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소림사의 방장 수준이 되어야겠지만, 지척에 있는 상대를 맞히기엔 적절한 무공이다. 여기에서 천덕은 한 단계 더 발전했다. 내력을 사방으로 분출해 내어 상대를 직접 타격하지 않더라도 피해를 입힌다.
황극린의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천덕의 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쿵!
공간을 때려 버린 천덕. 황극린의 움직임이 멈춘 것이 느껴진다. 재빨리 그에게 방향을 틀어 천덕이 주먹을 뻗는다.
사방으로 기운을 뻗어 낸 백보신권으로 황극린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렇다면 주먹에 담긴 거대한 기운을 일점에 방출하면 어떻게 될까?
천덕은 황극린에게 맞은 복부와 옆구리에 대한 고통으로 작은 분노가 생겨 있었다. 그에게 이 고통을 알려 주고 싶다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하고 있다.
“하!”
기합성을 내지르며 주먹을 뻗는 천덕.
권강이 담긴 천덕의 일격이 황극린의 육신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
황극린의 몸이 흐릿해졌다.
이형환위! 최상승의 보법이 비무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천덕이 타격한 것은 흐릿한 황극린의 형상이었다.
‘일부로 멈춘 척을… 컥!’
동시에 천덕의 옆구리에 또다시 살을 찢어 버리는 고통이 전해진다.
일차적으로 황극린은 단단한 주먹으로 그의 반탄지기를 뒤흔든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그의 주먹에서 흘러나온 뇌전이 흔들린 반탄지기를 찢어 놓으려 한다.
‘같은 곳을 또…….’
부웅!
천덕이 다시금 주먹을 휘두른다. 황극린은 또 피해 냈다.
콰직!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또 비무장에 울려 퍼진다. 황극린의 주먹은 다시금 천덕의 오른쪽 옆구리에 꽂혔다. 같은 곳만 일부러 때리는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
분노한 천덕이 마구잡이로 백보신권을 마구 펼친다.
그의 주먹에 스치기만 해도 내상을 입을 것이다. 그의 주먹에 담긴 내력이 심상치가 않았다.
쿠웅!
그런데 왜인지 이번에는 황극린이 그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막대한 내공이 실린 천덕의 주먹이 황극린의 어깨에 꽂혔다.
‘왔다!’
드디어 천덕이 기세를 잡을 순간이다.
잠시 동안 황극린은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고, 그 틈에 권격을 제대로 꽂아 넣는다.
한 번만 제대로 때리면 된다.
힘과 힘으로는 자신이 패배할 리가…….
팽여해를 쓰러트린 권강.
찬란한 금빛이 천덕의 주먹에 맺힌다.
그것이 황극린의 가슴을 강타하려는 순간.
콰직!
황극린은 이형환위로 그의 공격을 피했다.
똑같이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 넣은 것이다.
“커어억……!”
천덕은 참으로 오랜만에 피의 맛을 느꼈다.
목에서 치밀어 오르는 비릿한 맛에 숨이 막혀 온다.
콰직!
또다시 꽂히는 황극린의 주먹. 찬란한 금빛으로 빛나던 천덕의 육신에서 광채가 급속도로 자취를 감춘다.
퍼억!
이제는 타격음이 달라졌다. 이제까지 무언가를 부숴 버리는 소리가 들렸다면, 이제는 무언가가 살덩이를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으로 천덕의 허리가 크게 꺾였다. 흰자위가 드러날 정도로 강렬한 고통에 천덕의 하반신이 벌벌 떨린다.
“어떻게… 어떻게… 금강불괴의 반탄지기를 뚫을 수가……. 얼마나 내력이 많은…….”
천덕이 의문 어린 질문을 내뱉는다.
황극린은 그가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았다.
‘절세의 무공을 익히고, 절세의 영약을 취하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육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싸우는 법을 모른다.
자질과 재능 그리고 체급으로 찍어 누르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사실 그가 익힌 무공이 그렇게 싸우라고 만들어진 것이긴 했지만…….
황극린에겐 내공의 낭비였을 뿐이고, 답답한 움직임이었을 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냥 내가 더 강한 것이오.”
“……!”
내공이 많다고 강한 게 아니다.
보법이 빠르다고 강한 게 아니다.
주먹이 단단하다고 강한 게 아니다.
전생에 수많은 사선(死線)을 넘어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무공을 수련해 왔다.
황극린은 그냥 천덕보다 강했을 뿐이었다.
“제, 제가 졌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던 천덕의 광채는 모두 사라졌다.
그 때문일까?
관중의 시선에서는 왜인지 황극린의 육신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