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74화 (74/316)

74화 1차 예선

황극린은 먼저 운남현에서 떠나 남창으로 향했다.

만뇌문으로 향해 성수신의와 만년화리를 취한 결과를 상의하였다. 그리고 백씨 형제나 비청하의 무공을 봐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뇌불이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문도들이 어느 정도로 성장했는지는 계속 확인해야 한다.

확실히 세 사람은 재능이 충만했기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만뇌문은 개파식 이후로 이렇다 할 외부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내부적으론 빠르게 안정되고 있었다.

만뇌문의 장문인실.

그곳에서 황극린과 뇌불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래서 용봉지회에 참가할 것이냐?”

“그렇소.”

용봉지회는 1차 지역 예선으로 시작하여, 개최지에서 열리는 2차 예선을 통과해야지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본선에 선발되는 인원은 총 64명으로 남녀가 따로 갈리는 게 특징이다. 왜 남녀의 구분을 두냐고 묻는다면, 용(龍)과 봉(鳳)을 선출하는 비무대회라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중원 전체에서 64명 안에 들어가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과거 단리세가의 단리총운이 2차 예선에 합격한 것만으로 으스댄 것을 봐도 알 수 있었다. 각 성에서 참가하는 무인들의 인원만 해도 수만 명에 달한다.

중원의 모든 성도에서 예선을 개최하니 최소 수십만 명의 후기지수가 한 번에 용봉지회를 노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중원에는 재능 있는 무인들이 넘쳐 난다. 그들이 좋은 사부를 만나 재능을 개화했다면, 저마다의 무기를 확실하게 품고 있으리라.

“하하하! 만독문이 개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용봉지회의 우승자가 나오면 관심이 쏠리겠구나.”

“그렇겠지.”

하나, 아무리 많은 참가자가 있다 한들.

황극린은 우승을 꼭 차지할 것이다.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면 애초에 참가하지 않으리라. 미래의 정보로 누가 우승할지 알고 있는 황극린이기에 조금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착실히 수련하며 나아가면 변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소.”

“뭐냐?”

“당신은 용봉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으시오?”

“…….”

순간적으로 뇌불의 얼굴이 굳었다.

천하에 악명을 떨친 대마두 뇌불. 분명히 그가 마지막에 보여 준 무림에서의 신위는 상당했지만, 소림사에 있던 시절엔 어떠했을까?

뇌불의 표정을 보아하니 알 것도 같았다.

“해 본 적이 없군.”

“이놈아! 내가 참가했을 땐 천화련주와 화산파의 장문인도 참가했다. 내가 어찌 우승할 수 있었겠느냐?”

“그럼 준우승도 하지 못했단 말이오?”

“아니, 그게 쉬운 줄 아느냐!”

뇌불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그들에 대한 정보를 털어놓는다.

얼마나 강한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뇌불이 저리 말할 정도면 대단하긴 하군.’

황극린은 그가 말한 정보를 잘 숙지해 놓았다.

이번 참가자 중에서는 천화련과 화산파의 제자들도 있었다.

“아무튼, 놈들은 당시에 괴물이었다. 난 그놈들을 이기기 위해서 혈풍뇌전신공을 만들었지.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됐을 것 같냐?”

“졌을 것 같군.”

“아니, 지진 않았다. 이기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뇌불의 표정은 진중했다.

“천화련주 놈과는 싸우지도 못했지만 화산파 그놈과는 싸울 수 있었다. 혈풍뇌전신공을 대성하더라도 쉽지 않은 놈이지. 그리고 아마 지금은 더 강해졌을 거다.”

전성기의 뇌불과 비슷한 수준의 노괴.

세월이 흘러 육신의 전성기는 지났을 테지만, 내공을 다루는 능력은 절정에 달했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황극린의 목표는 천화련주나 화산파 장문인이 아니었지만… 흑살문을 상대하려면 그들과 비견될 수준의 고수가 되어야 한다.

“아무튼, 극린이 너는 꼭 우승해야 한다. 이제 만뇌문의 전통은 용봉지회 우승으로 정했다. 만약 우승하지 못하면 다시는 가문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조건을 만들 것이야.”

황극린의 머릿속에 백건악, 백온후, 비청하의 얼굴이 떠오른다.

뇌불의 의지가 강렬하게 전해진다. 아마 그들은 용봉지회의 우승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야 할 것이다.

“고생길이 훤하군.”

“내 아이들을 가르쳐 보니 알겠더군. 분명히 그놈들도 우승할 자질이 있다. 노력만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뇌불은 툭툭대긴 하지만 성실하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고맙소.”

“…뭐?”

뇌불이 황극린의 고맙다는 말에 당황한다.

뜬금없이 고맙다는 인사에 뇌불이 입꼬리가 샐쭉거리고 있다.

“뜨, 뜬금없이 고맙다니 무슨 소리냐.”

“당신 덕에 문파를 만들 수도 있었고 제자들도 잘 성장하고 있소.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크흐으음…….”

뇌불은 묘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사실 재밌기도 했다. 재능 있는 후학을 양성하는 일은 대부분 사부가 흥미로워하는 일이었다. 하나, 황극린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들으니 몸이 하늘에 붕 뜬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오.”

“오냐. 넌 용봉지회 우승이나 하고 돌아와라!”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같은 문파라는 소속감이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 * *

황극린은 남창에 머물렀다.

당장 화산으로 가더라도 할 게 없었다. 그리고 남창에서 개최되는 예선을 통과해야 2차 예선에 참가할 수 있다. 강서성은 정파의 세력이 완전히 지배하지 못했다. 참가자의 수가 다른 현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

어차피 예선이야 지나가는 과정에 불과했고, 만뇌문이 터를 잡은 곳이 남창이었기에 황극린은 이곳에서 예선에 참가했다.

1차 예선은 총 열흘에 걸쳐 실시되었는데, 당연하게 황극린과 두야랑은 나란히 최종 200인 안에 들어 2차 예선 진출을 확정했다.

“어? 저기 그때 봤던 여자 아니야?”

1차 예선 통과자들에게 무림맹에서 파견 나온 무인이 합격패를 전달하고 있을 때, 두야랑이 한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후세가라고 했던가.”

“맞아. 하후세가의 진출자가 세 명은 되어 보이는데?”

남창은 그나마 다른 성도에서 개최되는 예선에 비해 경쟁률이 낮았다.

그렇기에 같은 가문에서 세 명이나 2차 예선에 진출하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거기다 하후세가는 육대세가의 반열에 들진 못하지만… 명문가로 치부되며 중원 전체를 따져 보아도 명망이 높았다.

그러던 중 하후령이 고개를 돌리다가 두야랑과 눈이 마주친다.

“안녕!”

두야랑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하후령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뜬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황극린에게도 향한다.

두려움이 섞인 눈동자.

하후령은 형동현에서 황극린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형산파의 제자들을 압도하는 실력을 보여 주었다. 그런 이가 용봉지회에 참가했으니 경쟁이 더 힘들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속닥속닥.

하후령은 같이 합격한 이들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황극린의 청각은 극도로 발달하여 그녀가 작게 속삭이는 말도 엿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황극린 저 사내는 이번 용봉지회에서 분명히 성적을 낼 것이에요. 남창에서 최근 개파한 만뇌문의 장로라고 했어요.”

“만뇌문? 처음 들어 보는 문파인데…….”

“저 사내가 형산파의 곽시우를 일격에 꺾었어요.”

“호오, 그래?”

하후세가의 시선이 황극린에게로 향한다.

그러자 두야랑이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째려보는데? 좀 있다가 손 좀 봐 줄까?”

“됐다.”

“그래.”

황극린의 말에 두야랑도 관심을 껐다.

하후세가 따위는 황극린은 물론이거니와 두야랑도 신경 쓸 수준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의 출신은 사흑련 중 하나인 만독문이었다. 만독문의 사파에서의 지위는 구파일련의 수준이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황극린과 두야랑을 호명하는 무림맹의 무사.

두 사람이 앞으로 나간다.

“만뇌문은 두 명이나 예선에 진출했군요. 황 소협, 야 소저, 축하드립니다. 2차 예선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두야랑은 원래 그러했던 대로 남장하고 참가하려 했지만, 황극린의 조언에 따라 남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용봉지회에는 고수가 즐비하다.

그건 비단 참가자만 말하는 게 아니다. 2차 예선부터는 각 문파의 장로나 무림맹 요직에 앉은 이들과 심심치 않게 마주친다. 황극린이 알기로 두야랑은 용봉지회 참가 도중 남장한 것이 걸려 고생깨나 했다고 들었다.

굳이 사내로 참가할 필요도 없었기에 두야랑은 만독문 출신이라는 모습만 지운 상태로 비무대회에 참가했다.

‘용의 대회가 아니라 봉의 대회라면 그녀 또한 높은 성적을 낼 수 있겠지.’

합격패를 받아 든 두야랑이 말한다.

“오, 만뇌문의 야린!”

두야랑의 가명은 만뇌문의 야린이다.

린이라는 글자를 어디서 따온 것인지는 황극린의 이름을 보면 예상할 수 있었다.

“기분이 뭔가 이상해. 만독문과 만뇌문… 이름도 비슷해서 더 그런가?”

“만뇌문의 이름으로 참가했으니 사고 치지 마라.”

“예이, 내가 사고만 치는 줄 알아?”

1차 예선의 합격패를 받아 들고 만뇌문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과거 뒷골목을 주름잡았던 흑도 문파 칠성방 출신들이 깔끔한 백의를 입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뇌문의 장원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만뇌문의 자랑, 황 장로님과 야 소저가 용봉지회 1차 예선의 험한 길을 뚫고 지금 막 이곳에 도착하셨습니다!”

“우오오오오! 축하드립니다!”

“장문인께서 베풀어 주신 연회에 마음껏 참가하십시오! 초대장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구운 고기를 마음껏 드시면 됩니다!”

“오오오오오오!”

“그리고 이번에는 만뇌문의 황 장로님께서 특별히 만드신 양념장이…….”

굶주린 백성들이 오랜만에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마구 몰려든다.

과거엔 공포의 대상이었던 칠성방원들이었지만, 눈빛에선 독기가 거의 사라졌다.

“오오! 이거 뭐야! 왜 이렇게 맛있지?”

“평범한 양념장이 아닌 것 같은데…….”

“천상의 맛이다!”

두야랑이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입을 벌린다.

연회가 열린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며칠 전부터 돼지와 소를 공수해 오는 모습도 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백성들과 나눈다고?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과거엔 베풀지 않았으니 해 보는 거다. 나쁘지 않아.”

“과거?”

“들어가지.”

황극린과 두야랑이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연회를 마치고 바로 2차 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섬서성으로 떠나야 했다.

두야랑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열심히 고기를 먹는 백성들을 바라보았다. 고작해야 구운 고기와 양념장에 불과했지만, 모두의 얼굴에 행복이 떠올라 있었다. 남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황극린 말대로 나쁘진 않네.’

두야랑이 미소를 띤 채 장원으로 들어가려 할 때.

“야 소저, 이걸 드셔 보시지요! 정말 맛있습니다.”

칠성방원 하나가 두야랑에게 불그스름한 양념이 발린 고기 꼬치를 내어 준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 한 입 베어 문 두야랑.

그녀가 번쩍 눈을 뜬다.

“이, 이거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

냠냠냠!

두야랑의 고기 꼬치가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

“흐흐, 황 장로님의 양념은 차원이 다르지요?”

“더 없어? 더 줘!”

“예예, 더 있습니다! 마음껏 드시지요!”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아왔던 칠성방도들.

그들은 또 다른 재미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타인이 행복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다른 사람을 짓밟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기분이었다.

남창의 분위기는 만뇌문의 존재로 인해 크게 바뀌고 있었다.

* * *

“……!”

등불 하나 없는 어두운 방.

잠에서 깬 여인이 작게 숨을 헐떡이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는 순간부터 여인은 악몽을 꾸곤 했다. 잠에서 깨어나면 꿈의 내용이 어떠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꿈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 그 꿈을 꾸고 아버지를 뵌 순간엔… 눈물이 흘렀지.’

예지몽인가?

그런 생각도 했다. 사람의 꿈은 미래를 알려 준다고 하지 않는가? 어쩌면 아버지가 죽는 건가? 그렇기에 아버지를 보고 눈물을 흘린 건가?

그런 걱정도 했지만, 천하칠대고수 중 하나인 아버지가 죽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 감정을 무엇일까?

끈적끈적하면서도 불쾌한 감각.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안함. 꿈을 꾸기 전엔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죽이고 싶어.’

살의가 치솟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 대상이 당최 누군지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예지몽이라는 건 확실하지 않아. 하지만…….’

이른 새벽이었지만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검을 들었다.

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검을 들고 있으면 심신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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