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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73화 (73/316)

73화 양기 폭발

황극린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인면지주의 내단을 처음 접했을 때와 같은 느낌. 내단을 만지지도 않았건만 열기가 화끈하게 전해져 온다. 화령단을 취했을 때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

“호법은 서 줄 필요 없지?”

두야랑의 말에 황극린이 고개를 젓는다.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했을 땐, 육신이 환골탈태 수준으로 바뀌었다. 물론, 환골탈태라는 개념은 황극린도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사파인 중 최강이라 불리던 흑살문주 암혼마제도 환골탈태를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무림인 중에선 분명히 환골탈태를 경험한 이들이 있다.

육체가 젊어지는 반로환동은 물론이거니와 무공에 최적화된 육신으로 변화한다고 한다. 어쩌면 인간의 진화(進化)라 칭해도 무방하리라.

황극린의 특성 흡수는 환골탈태와 같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한 뒤에는 초감각과 독의 내성이 생겨났다.’

양기를 가득 품은 만년화리를 취하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황극린은 기대를 품은 채 만년화리의 배를 갈라 내단을 손으로 잡았다. 화령단으로 생긴 내성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대번에 손이 익어 버렸을 것이다.

“야! 그거 맨손으로… 응? 그냥 잡네?”

두야랑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황극린을 바라본다.

“그걸 바로 취하려고? 식도가 다 녹는 것 아니야?”

특성이 명확한 영약은 함부로 취하면 약이 아니라 맹독이 된다.

가령 음기가 가득한 백 년 이상의 설삼(雪蔘)을 취하고 동사해서 죽은 무인에 대한 이야기는 무림에서 흔히 전해지고 있었다. 과한 욕심이 화를 부르곤 한다.

황극린도 다 생각이 있을 테지만 두야랑은 걱정되었다.

그래도 조금씩 나눠 먹거나 열기를 잠재우고 취하는 게 좋지 않을까? 성수신의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해 주었을 텐데 말이다.

“괜찮다. 열기가 흩어지기 전에 취해야 한다.”

“너 죽어도 난 모른다. 천기피독신주만 가져갈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두야랑의 얼굴엔 걱정이 떠올라 있다.

“그리고 호법을 부탁한다.”

“호법? 너 영약의 기운을 눈 깜짝할 사이에 취하는 것 아니었어?”

“아마 반나절은 걸릴 거다.”

하기야 그게 일반적인 거다.

10년의 공력을 지닌 영약을 취할 때도 반나절은 기본이다. 하물며 저 무시무시한 만년화리의 내단은 어떠리?

“걱정하지 마. 이 누님이 확실히 지켜줄 테니까.”

두야랑은 믿을 만했다.

애초에 천기피독신주만 가로챌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만년화리를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만독문주에게 말해서 황극린을 제거해 달라고 하면 된다. 천기피독신주는 만독문주가 애타게 찾는 신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황극린이 만년화리의 내단을 입으로 가져간다.

손으로 잡는 것과 삼키는 것은 다르다. 후끈한 열기에 입술이 후끈 달아오른다.

‘바로 삼킨다.’

고통은 잠시뿐이다.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했을 때도 그러했으니.

꿀꺽.

만년화리의 내단을 삼키자마자 황극린의 몸이 반응했다.

그리고…….

화르르륵!

그의 피부에서 막대한 열기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헙! 뭐야!”

두야랑은 난생처음으로 인간의 육신이 환한 빛에 휩싸이는 걸 목도했다.

우드득!

우드드득!

뼈와 뼈가 분리되고 다시 맞춰지는 소리. 환한 빛에 둘러싸인 황극린의 몸이 새로이 정립되고 있었다.

“이게 환골탈태……?”

* * *

꿈을 꾸었다.

거대한 용이 황극린을 마주하고 있다. 쭉 찢어진 눈동자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휩싸일 테지만, 황극린은 그게 가짜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다음에 일어날 일도 예상했다.

‘불을 내뿜겠지.’

예상대로 거대한 용은 지상의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불길을 토해 냈다.

황극린은 웃으며 푸른색의 화염을 마주할 뿐이다.

콰아아아아아-!

처음엔 몸이 녹을 만큼 뜨거웠다.

점차 고통이 줄어든다.

마침내 푸른 화염이 간지럽다고 느껴질 때쯤.

황극린의 눈이 번쩍 뜨였다.

“으악! 뭐야!”

다다다다닥!

두야랑과 인면지주가 오두방정을 떨며 방의 끄트머리에 가서 벌벌 떨었다.

붉게 빛나는 눈동자는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듯 이질적이다. 거기다 몸을 감싸고 있던 광채가 사라진 순간 터져 나왔던 살(殺)은 두야랑이 느껴 본 것 중 가장 두렵고 소름 돋는 종류의 것이었다.

마치 가장 취약할 때 접근하는 모든 것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살.

황극린은 가부좌를 튼 채로 자신의 몸을 살펴본다. 외형적으로 큰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양기가 끊임없이 넘쳐흐른다.’

양기는 생명의 원천이라고도 부른다.

활력이 샘솟고 있다. 어떤 것을 해도 지치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다 더 고무적인 것은…….

‘내공이…….’

늘었다.

만년화리라는 영물의 수준에 걸맞은 수준으로 늘어난 것은 아니다. 고작해야 2년 정도일까? 하지만 내력이 부족했던 황극린에겐 이 정도도 큰 발전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지?”

“헙……! 하, 하, 하루!”

두야랑이 황극린을 흘끔 바라보았다가 홱 고개를 돌린다.

마치 귀신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표정이다. 왜 이렇게 놀라지? 황극린은 이미 살기를 거두어들인 상태였다.

“고생했군. 고맙다.”

“그, 그래…….”

“천기피독신주를 빌려주도록 하지.”

“어어…….”

소매 속에서 꺼내 주려다가 황극린이 깨달았다.

‘이래서 두야랑이 당황했던 거군.’

황극린은 무심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행낭 속에서 의복을 챙겨 입었다.

양기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흐르는 게 문제였다.

그가 옷을 입자 두야랑이 슬그머니 다가온다.

어느 정도 진정된 모양이다. 그녀의 눈빛에는 평소의 장난기가 깃들어 있었다.

“어때? 환골탈태의 기분은?”

“나쁘지 않군.”

“그게 다야? 환골탈태를 했는데? 이건 무림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무인들만이 이뤄 낸 업적이라고!”

“오히려 내력이 늘어난 게 더 기쁘군.”

그의 말에 두야랑이 탄성을 내지른다.

과연 만년화리를 취했으니 최소한 1갑자의 내력을 얻지 않았을까? 황극린의 몸에서 빛났던 광채로 보건대 백 년 이상일지도 모른다.

“얼마나? 대체 얼마나 얻었는데? 백 년? 이백 년? 설마 삼백…….”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황극린을 치켜세우려 하는 두야랑이다.

“2년.”

“뭐?”

“아마 같은 특성을 취하는 데엔 한계가 있는 모양이군. 좋은 현상이야.”

“그게 무슨……?”

두야랑은 황극린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고작해야 2년? 만년화리를 취하고 그 정도밖에 얻지 못했다고?

물론, 환골탈태한 것이 더 대단하긴 해도…….

‘그런데 기분이 엄청 좋아 보이네.’

황극린의 표정 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왜인지 그가 설레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후후후… 그럼 이제…….”

“받아라.”

“좋아!”

두야랑이 천기피독신주를 거머쥔다.

사실 만년화리의 내단보다 그녀에게 더 중요한 것이 독의 내성이었다. 독공(毒功)의 극의로 나아가기 위해선 독을 지배해야 한다. 독에 내성도 없이 독공을 펼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럼 5년 뒤에 보도록 하지.”

“엉?”

천기피독신주를 들고 펄쩍 뛰던 두야랑이 멍한 눈으로 황극린을 응시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지금 뭐라고… 5년? 지금 간다고? 당장?”

어느샌가 황극린은 떠날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저 버릇없는 인면지주 놈은 이미 황극린의 봇짐에서 기괴한 얼굴을 살짝 드러내 놓고 있을 뿐이다. 마치 두야랑을 놀리는 것만 같아 기분이 팍 상했다.

“그래.”

“왜?”

“할 게 있으니까.”

“아니, 그래도 내가 독 내성이 잘 생기는지… 아니, 네 육신에 어떤 변화가 생긴 건지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야? 적어도 밥이라도 먹고…….”

황극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배가 고팠다.

“그러지.”

* * *

요리가 탁상에 올려지자마자 황극린이 그릇을 비운다.

대식가라 불리는 두야랑이 보기에도 그가 먹어 치우는 속도는 정상이 아니다.

‘환골탈태를 해서 그런가? 진짜 잘 먹네.’

질 수 없다는 듯 두야랑도 그릇에 얼굴을 박고 전투 식사에 돌입했다.

그렇게 반 시진이 되어서야 두 사람의 식사가 끝이 났다.

“후우, 배부르다. 너 이제 만뇌문으로 돌아가는 거야?”

“일단은.”

“일단? 또 어디 가? 영물을 찾으러?”

“여러 가지.”

“으음, 나도 너 따라가도 돼?”

“아니.”

“정말 너무하네! 우린 친우가 된 줄 알았는데.”

친우라…….

뭐, 두야랑과는 이미 여러 비밀을 공유하기도 했다. 굳이 따지자면 친우인가? 두야랑이 잘 성장하여 만독문의 소문주의 지위에 오른다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만독문이 사파인 것은 황극린에게 별 상관 없는 일이었다.

“어디로 갈 건지만 알려 달라고! 너 따라가려는 것 아니야. 혹시 내가 독에 내성이 생기면 이걸 돌려줘야 하니까 행선지는 알아야지.”

“일단은 화산을 생각하고 있다.”

“오, 화산?”

황극린의 대답에 불만 가득했던 두야랑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가 발랄한 목소리로 묻는다.

“오오! 나도 딱 거기로 가려고 했어! 목적지가 똑같네!”

“따라오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지! 따라가는 게 아니라 목적지가 같은 거지. 나도 용봉지회에 참가하려 했단 말이야!”

황극린이 작게 한숨을 쉰다.

어딜 가나 자신을 따르겠다고 하는 이들이 많았다. 문득 제갈세가에서 자신의 수하게 되겠다던 제갈수의 얼굴이 떠오른다. 두야랑 정도의 실력이라면 발목을 잡진 않겠지만… 그래도 움직일 땐 혼자가 더 편하다.

“그럼 따로 움직이지.”

“너 사람 맞아? 왜 이렇게 매정한 거야? 내가 만년화리를 훔쳐 오는 데 얼마나 마음을 졸인 줄 알아? 어제는 말 안 했는데 연못 앞에서 아빠를 만나서…….”

미주알고주알 어제의 일을 말해 주던 두야랑.

그것을 듣고 있던 황극린의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사람이라…….’

그러고 보니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문파도 만들었다.

자신을 따라오겠다는 것도 아니고, 용봉지회에 참가하겠다는 이유였다. 사실 황극린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성수신의와 함께 화산으로 가서 용봉지회에 참가했겠지.

“굳이 강호행을 할 필요가 있나? 만독문이 독 내성을 기르기에 더 좋은 환경일 텐데”

“난 형제자매들과 다르게 수련할 거야. 무림에서 직접 실전을 겪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 거기다 독을 다루는 문파는 만독문만 있는 게 아니니까. 다른 독을 경험하는 것도 좋지.”

의외로 그럴듯한 이유였다.

사실 황극린은 그녀가 조금 더 단순한 이유로 움직이는 줄 알았다.

“…뭐야, 그 침묵은? 내가 그냥 놀고 싶어서 강호행을 하는 줄 알았어?”

“그건 아니고.”

뭐, 황극린이 알기로 그녀는 무림맹에 들어가기까지 했으니 그 정도로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같이 가도 돼?”

“그건 상관없지만 계속 너와 함께 움직이진 않을 거다.”

황극린의 긍정에 두야랑이 미소를 머금었다.

“좋아! 솔직히 그것까지 바라진 않아. 그래도 허락해 준 거다? 용봉지회에 같이 참가하기로!”

두야랑은 신이 났다.

황극린의 곁에 있으면 자신도 성장할 수 있다. 그가 바느질하는 것만 봐도 깨달음을 얻었지 않은가? 그런 행운이 자주 찾아오진 않겠지만… 그래도 노력을 해 봐야 할 것 아닌가?

“후후후, 너랑 내가 우승을 두고 싸우겠군!”

두야랑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황극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될 거다.”

“뭐? 왜?”

대개 용봉지회엔 중원에서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참가하지만, 이번엔 조금 특별했다.

황극린은 이번 화산에서 개최되는 대회에서 원래 누가 우승했는지 알고 있었다. 거기다 개방의 정보로 참가 예정인지 예상 명단까지 확보해 둔 상태. 미래를 알고 있으니 현재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예상할 수 있다.

‘두야랑도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 비해선…….’

뭐, 그녀도 최근 성장했으니 확신할 수는 없긴 하지만 말이다.

“무시하는 건 아니지? 나 그래도 꽤 강하다고!”

“강호는 넓다.”

“…아빠랑 같은 소리를 하네.”

사실이 그러했다.

황극린 또한 강해졌다고 하지만 강호에 얼마나 많은 고수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재능을 개화한 천재들이 즐비하다. 과거 207호라 불렸던 황극린은 그런 천재들과 마주한 적이 있었다.

특히 넘을 수 없는 벽이라 여겨졌던 남궁세가의 창천뇌검이 떠오른다.

황극린이 죽이긴 했지만, 실력으로 앞선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마 지금 당장은 그에게 닿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넘어 주마.’

황극린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번 용봉지회에 참가하게 되면 그의 얼굴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 * *

“아버지, 둘째는 그것을 취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바닥에 수많은 뱀과 곤충들이 뛰어노는 넓은 공동.

그곳에서 높은 단상에 앉은 사내가 있다. 만독문주 독수마제였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약간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은 만독문의 대공자인 두가륵이다. 본래 만년화리는 자신이 취해야 할 영물이었다. 그런데 밖에서 허튼짓만 하고 다니는 둘째에게 왜 그것을 주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자격이 됐다. 그 아이는 두 손으로 만년화리를 잡았다.”

독수마제의 말에 두가륵이 깜짝 놀란다.

만년화리는 독공을 익힌 이들에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독공을 익힌 자들에게 열기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선사한다.

그런데 두야랑이 만년화리를 잡았다고?

맨손으로?

피식.

독수마제가 두가륵의 표정을 살핀다. 경쟁심과 살심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러한 감정은 강력한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둘째가… 성장했군요.”

“그 아이가 용봉지회에 참가한다더군.”

용봉지회.

정파에서 개최하는 최대 규모의 비무대회. 당연히 정파의 후기지수들과 겨루기 위해서, 경험을 쌓기 위해 참가하는 것이리라. 생각 없이 강호를 정처 없이 떠도는 줄만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다.

‘넌 아직 소문주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나 보구나.’

두가륵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저 또한 잠시 성을 떠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독수마제가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아까운 만년화리를 취했다고 하여 두야랑을 응원해 줄 생각도 없다. 모든 자식은 공평하게 기회를 얻는다. 쟁취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그러도록.”

과연 이번 싸움에서는 누가 이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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