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하나
사실 뇌불은 황극린이 이마를 깐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황극린은 눈 아래만 보아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피부에 광채가 나는 것이 용모가 범상치 않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뇌불은 황극린의 진짜 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황극린은 뇌불의 의도를 대번에 알아차렸다.
“말을 돌리는 이유가 뭐요?”
“마, 말을 돌리다니? 내가 언제?”
“지금 그러고 있소만.”
“허허허허··· 이놈 보게? 내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 줄 아느냐?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어먹지 않는다. 열 살 때 내게 시비를 걸었던 흑도 놈을 20년이 지나서도 얼굴을 기억하여 혼꾸멍을 낸 적도 있다! 그러니···.”
“통비원이라는 짧은 별호도 기억하지 못했지 않소?”
“이놈아, 글자를 기억하는 것과 얼굴은 기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부류다! 쉽게 말하자면 이 어르신께서는 본능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황극린이 고개를 젓는다.
주화입마에 빠져 기억이 들쭉날쭉한 인간이었다. 거기다가 황극린의 부모는 이미 죽었다. 무림인도 아니었고, 응담(鷹潭)현 근처의 작은 마을에 살았던 소작농에 불과했다. 뇌불이 어찌 자신의 부모를 알고 있겠는가?
황극린이 들으려 하지 않자 난 뇌불이 버럭 외친다.
“진짜라니까!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게냐? 응? 설마 날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더냐!”
“······.”
“네 아버지 이름만 말해보아라. 분명히 기억해볼 터이니.”
“황용철.”
“······.”
고요한 침묵이 지나간다.
뇌불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생각하느라 입을 열지 못한 것이다.
‘황용철?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인데···.’
그런 뇌불을 보며 황극린이 혀를 찼다.
“당연히 모르겠지. 내 아버지는 무림인도 아니었으니까.”
“뭐? 무림인이 아니었다고?”
“그렇소.”
그러자 뇌불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생각해보니 보통 딸은 아버지의 외모를 많이 따라가고, 아들은 어머니의 외모를 많이 따라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황극린의 외모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 분명하다.
“네 어머니도 죽었느냐?”
“그렇소.”
사실 어머니의 주검은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주검은 어린 황극린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그가 직접 무덤을 만들어 산에 묻어드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는 어머니가 먼 곳으로 떠났다고 말했었다. 죽었다곤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황극린은 어릴 때부터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그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단지, 아버지가 상처받지 않도록 그걸 믿는 척했었다. 더군다나 황극린이 기억하는 어머니는 매일 병을 달고 사셨었다. 피부는 하얗게 질려 있었으며, 잘 일어서지도 못했었다. 병에 걸려 죽은 것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어머니의 이름은?”
“양설아.”
“으으음···.”
“이제 그만합시다.”
뇌불의 장난에 놀아주는 것도 잠깐이었다. 수련할 시간도 부족하다. 황극린이 초우 대장간에서 구매해온 강철로 만든 팔찌와 발찌를 끼고 산을 타는 수련을 해보려 할 때.
“잠시만!”
“뭐요?”
“네 얼굴을 한 번만 제대로 보자꾸나.”
황극린은 비동 내에서 격한 수련을 하지 않았다. 수련을 했다면 머리카락이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텐데, 그의 눈동자는 전혀 본 적이 없었다.
“아직 미련이 남았소?”
“아니, 미련이 아니라··· 후우, 그래. 솔직히 말하마. 처음에 말을 돌리려고 꺼낸 이야기가 맞지만··· 그렇다고 거짓은 아니었다. 한 번만 보여다오. 혹, 내가 기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느냐? 네 재능은 분명히 뛰어나다. 부모 중 하나가 무림의 고수일지도 모르지 않느냐? 너도 모르는 무언가가 말이다.”
솔직히 황극린은 부모에 대한 미련 따위는 없었다.
어머니는 5살 때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는 13살 때 황극린에게 짐만 안겨두고 떠나갔다. 그의 어린 시절은 아픈 부모님을 옆에서 간호하는 기억이 대부분이다.
부모를 미워하진 않는다.
그들이 있었기에 자신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였으니까. 살수의 훈련을 받은 영향도 있으리라.
“만약 모른다면 각오하시오.”
그래도 아주 약간의 미련이 남았기 때문일까?
황극린은 한숨을 폭 내쉬더니 뇌불의 앞에 섰다.
그리고는 이마를 깠다.
흑요석(黑曜石)과 같은 눈동자가 드러난다.
“······!”
아이와 가질 수 있는 눈이 아니다. 그의 눈동자엔 어둠과 심연이 깃들어 있었다. 뇌불은 수많은 고수의 눈동자와 마주해왔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뭐랄까.
공허하지만 역설적으로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 가득 찬 느낌?
단순히 외형으로 평하자면,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얼굴의 완성은 눈이라고 했던가? 황극린은 얼굴은 천하를 주유하며 봤던 이들 중 가장 잘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잘생김이라는 평은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하지만··· 적어도 뇌불의 눈에는 최고로 보였다.
하지만 그런 외부의 아름다움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다.
그의 눈동자에 담긴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깊도다. 참으로 깊어.’
헤아릴 수 없다.
마치 소림사의 전대 방장인 천통대사(天通大師)와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다.
멍하니 황극린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뇌불.
그가 깜짝 놀란다. 황극린이 머리를 내렸으니까.
“뭐, 뭐 하는 짓이냐?”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는 것이오? 그래서 알겠소?”
“그건···.”
뇌불은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는 황극린의 눈동자가 아닌 전체적인 얼굴을 떠올린다. 확실히 잘 생기긴 잘 생겼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예쁘게 생겼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황극린의 얼굴은 부모에게 물려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뇌불은 그리 생각했다.
‘확실히 눈에 익어. 내가 어디선가 본 누군가와 닮은 건 확실하다.’
뇌불은 흐릿한 기억 속을 헤엄치며, 과거의 편린을 찾아 나선다.
솔직히 장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중원이 얼마나 넓은데 닮은 사람이 또 없으랴? 하지만 뇌불은 저런 눈동자를 가진 황극린이라면, 부모가 범상치 않으리라고 장담했다. 한 세대를 풍미했던 고수 뇌불이라면 그의 부모와도 만난 적이 있으리라.
아니, 꼭 그의 부모가 아니라도 된다.
그 부모 또한 다른 누군가의 자식일 터. 피가 이어진 누군가가 또 있으리라.
‘백옥과도 같은 피부. 베일 듯 날카로운 콧날. 조각한 것처럼 완벽한 얼굴의 비율. 그리고···.’
흑요석 같은 눈동자.
황극린의 외모는 전형적인 미의 기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극에 달해 있다면 어떨까? 중원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무림인을 꼽아보자면···.
“알았다!”
황극린은 이미 뇌불의 앞에서 떠난 상태였다.
그는 팔찌와 발찌를 차고, 비동을 나서려던 참이다.
“뭐 떠오른 게 있소?”
“크크크크! 놀라지나 마라. 당장 돼지고기를 구울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럼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 하시오.”
“이놈아, 넌 긴장의 미학을 모르느냐? 자고로 조마조마한 감정이 극한에 다다른 순간에 드러나는 진실이야말로 진정한 쾌감을 선사···.”
황극린이 듣지도 않고 떠나려 하자 뇌불이 허겁지겁 입을 연다.
“벽력뇌제(霹靂雷帝)! 남궁세가의 가주 놈이 너와 비슷한 얼굴이었다! 너는 남궁가의 핏줄임에 틀림이 없다!”
황극린이 기억하는 남궁세가의 가주는 벽력뇌제가 아니었다.
황극린이 207호로 불리던 시절, 벽력뇌제는 남궁세가의 태상가주였으며, 금분세수(金盆洗手)하여 무림의 일에 관여치 않고 있다.
지금 황극린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남궁세가의 가주는 창천뇌검이다. 그는 황극린이 특급 살수가 되기 위해서 죽인 마지막 표적이었다. 그 표적을 사살하는 데에만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었다. 참으로 치졸하고 더러운 수법으로 그를 죽일 수 있었다. 그에 대한 대가로 단전을 잃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황극린인 확신할 수 있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남궁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5년 동안 안휘성에서 그들의 정보를 모두 캐냈었다.
“어떠냐! 맞지? 남궁세가 놈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느냐? 모두 너처럼 조각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특히 벽력뇌제는 강호에서 제일가는 미남으로···.”
“오늘 저녁은 없소.”
황극린의 말에 뇌불이 당황한다.
“뭐, 뭐라고? 왜!”
“내 아버지 황철용은 황씨가문의 장남이오. 황씨가문은 남궁세가와 연이 없지. 어머니도 마찬가지요.”
“그걸 어떻게 확신···.”
“확신하오.”
다른 육대세가를 언급했다면, 뭐 조금은 귀를 기울였을 수도 있다.
세상에 10할 확신하는 일이 어딨겠는가? 하지만 남궁세가는 절대 아니다. 자신이 벽력뇌제··· 남궁세가 가주의 핏줄이라? 웃기지도 않은 소리였다.
“어? 그, 극린아! 어딜 가느냐! 저 포동포동한 고기를 내버려 두고! 으응!? 극린아!”
황극린은 뒤에서 들려오는 뇌불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비동에서 떠나갔다.
한동안 뇌불의 절규가 들려왔지만, 철저히 무시한다. 애초에 부모님이 어떤 가문과 관련이 있든 황극린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냥 조금 궁금했을 뿐이다.
‘만약 어머니의 가문이 명문가라면···.’
어린 황극린을 그리 혼자 두지 않았을 테니까.
뭐, 그렇다고 해도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부모에 관한 미련을 모두 버렸으니까. 그가 흑살문의 살수로 지낸 시간은 참 길고도 길었었다. 어릴 때야 원망하기도 했었지만, 이젠 그럴 나이가 지났지 않은가?
황극린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뇌불.
그가 후회막심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저놈이 남궁세가 놈들과 만난 적이 있던가? 저토록 확신하는 걸 보면 분명 그런 것 같은데···.”
완전히 잘못짚었다.
뇌불은 당장이라도 손으로 자신의 머리통을 후려치고 싶었다.
‘차라리 북해빙궁을 먼저 말할 걸 그랬구나···.’
뇌불이 떠올린 두 가지 가능성은 남궁세가와 북해빙궁이었다.
남궁세가와는 다르게 북해빙궁은 사흑련에 속한 문파였다. 여인들이 주도하는 문파. 그곳의 궁주는 여인이다. 사실 그의 외모를 보면 북해의 사람과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와 마주치는 순간 상대를 얼어붙게 만드는 눈동자까지 말이다.
하지만 뇌불이 북해빙궁을 먼저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들은 중원인과 혼인하지 않는다.
그건 뇌불이 확신할 수 있을 만큼 북해빙궁의 절대적인 규율이었으니까.
뇌불이 한숨을 내쉰다.
돌아오면 북해빙궁을 이야기를 꺼내볼까도 싶었지만, 오히려 황극린의 역린을 건드릴 것이다. 눈앞에 돼지고기를 두고도 먹지를 못하니 저 강단 있는 소년의 감정을 거스르면 안 된다.
‘그러고 보니 말이 안 되는 건가? 빙궁 출신들의 피를 이어받은 사내들은 강력한 음기(陰氣)로 인한 절맥증(絶脈症)을 타고난다 했던 거 같은데···.’
북해빙궁이 왜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문파인가?
그건 그들의 핏줄이 가진 강력한 음기 때문이다. 과도한 음기는 사내들에게 독이 된다.
황극린이 북해빙궁의 핏줄이라면, 저 나이 때에 이미 죽었으리라.
더군다나 혈풍뇌전신공을 익힐 수도 없을 것이다. 혈풍뇌전신공은 양기(陽氣)가 충만한 무공이었으니까. 상반된 두 기운은 내부에서 충돌하고 자멸하리라.
“쯧, 괜한 소리를 해서 고기도 못 먹고··· 에잉!”
솔직히 뇌불은 황극린이 어떤 출신이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황극린이 또 어딘가로 떠나게 되면 혼자서 외롭게 비동에서 버텨야 한다는 게 두려울 뿐이다.
뇌불도 소림사에서 파문당했으며 심지어는 무림 공적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가?
솔직히 황극린이 혈마교주의 자식이라 해도 뇌불에겐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냥 반성하는 척하고 조용히 기다리자.’
황극린은 떼를 쓰면 쓸수록 더 냉랭하게 대한다.
차라리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고, 조용히 벽을 보고 참회하고 있으면 언젠간 고기를 구워줄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크으으음···.”
그리 해야만 했다.
* * *
“가격을 올렸다고?”
“죄송합···.”
“내가 다 사겠소! 몇 알이나 있소?”
생생 약방.
평소엔 파리만 날렸지만, 옥보단이 재입고되었다는 소문이 돌자 손님들이 몰렸다. 몇몇은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구경하러 온 이들도 있었다. 남창 일대에서는 내로라하는 거부들이다.
그렇기에···.
“이 형, 뭔 개소리요?”
“뭐? 개소리?”
고개를 돌리자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중년인이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공급이 한정된 귀물을 그리 쉽게 꿀꺽하면 쓰나?”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소.”
“뭐 얼마나 빨랐다고 그러시오?”
“내가 다섯 걸음은 더 빨랐소! 그러니 내가···.”
콧수염 사내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은 채 손가락 두 개를 펼친다.
“두 배.”
생생 약방주 초광생이 당황한다.
“예?”
“아니, 세 배에 사겠소.”
10알에 은자 열 냥도 꽤 비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 배라고? 좋은 상품이라 마진율을 최대한 낮췄는데 여기서 세 배에 판다면 앉은 자리에서···.
머릿속으로 금자의 개수를 세어보던 초광생의 입이 벌어진다.
약방의 주인이 쉬이 만질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허? 이 형, 나는 돈이 없는 줄 아시오?”
“해볼 테면 해보던가! 우리 가문은 돈이 썩어 넘쳐서 베개로도 쓰고 있소.”
“오, 그렇소? 그렇다면 난 네 배! 네 배에 사겠···.”
“다섯 배!”
두 사람이 경쟁이 붙으니, 구경만 하던 이들도 눈을 빛낸다.
또 몇몇 얼마나 효과가 좋기에 저리 경쟁하는 건가 싶어 신기한 눈으로 옥보단을 구경하며 쑥덕이고 있었다.
“다섯 배에 금자 석 냥!”
“받고, 금자 두 냥 더!”
처음처럼 배수로 가격이 막 늘어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계속 경쟁하여 가격이 오르고 있다. 솔직히 이젠 자존심 싸움이 된 것 같았다.
아무려면 어떤가?
생생약방주는 이번 거래로 엄청난 이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대박이다! 초대박!’
옥보단의 명성은 황극린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