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5화 (5/316)

공포에 물들다

“너··· 너··· 설마 그걸로 날 찌를 생각은 아니겠지?”

주서웅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황극린을 밀어버리고 우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당최 몸이 말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나마 입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 어른들이 알면 어떻게 될 거 같아? 황씨가문에서 쫓겨나는 걸로 끝날 거 같아? 응?”

그런 주서웅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황극린.

그가 천천히 허리를 숙인다. 칠흑과도 같이 검은 두 눈동자가 점점 가까워져 오자 공포는 더욱 극대화된다. 오히려 황극린이 분노한 얼굴이었다면 오히려 나았을까? 황극린은 정말 어떠한 표정도 없이 무신경한 눈빛으로 주서웅을 내려다보았다.

살수란 그런 존재였다.

표적에게 감정을 이입하지 않아야 한다.

비록 주서웅을 당장 죽이려는 마음이 없더라도, 그러한 태도가 변질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황극린은 주서웅을 고깃덩이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시종들이 대개 그러하듯 자신보다 높은 신분의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그렇게 사는 것을 보았으니 눈치가 없을 수가 없었다.

눈앞의 황극린은 무슨 행동을 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위협용으로 과도를 꺼낸 것인지 정말 자신의 멱을 따버리려고 꺼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모호함이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기.”

콕.

“그리고 여기.”

콕.

무신경한 눈동자와 마찬가지로 무색무취의 음색.

“여길 찌르면 적어도 이 각 정도는 살 수 있겠지만··· 출혈을 멈출 순 없을 거다. 아마 죽겠지.”

“···!”

“아플 거야.”

“왜, 왜···?”

공포와 당혹감에 제대로 말을 내뱉지 못하는 주서웅.

황극린은 그를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아래턱을 덜덜 떨며 주서웅이 겨우 말을 잇는다.

“제, 제발··· 제발, 하지 마··· 제발···.”

“···.”

“왜 그래야 하지?”

왜?

왜 내가 널 살려주어야 하는가? 원초적인 질문에 주서웅이 말문이 막힌다.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걸 배운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것이라 알고 있다. 당연히 그러면 안 된다. 하지만 왜 그러면 안 될까? 당연히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난 네가 죽는 게 더 편할 것 같은데.”

“아, 아니야. 그, 그렇지 않아···.”

“모르는 일이지.”

“저, 절대! 저,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거야. 날 죽이지 않는 게 더 편할 거야. 난··· 난 정말 죽고 싶지 않아. 부탁이야. 제발···.”

이제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애원하는 주서웅.

황극린은 겉으로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하군.’

살수는 필요에 따라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누군가를 고문하기도 한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상대를 정신적으로 몰리게 하는 부분에 익숙하다는 뜻이다.

허나, 지금 황극린은 어린아이의 몸이었다.

상대가 이렇게 쉽게 공포에 질렸다는 게 의외였다.

‘생각보다 주서웅이 정신력이 약하거나···.’

자신의 살기가 제대로 먹혔거나.

살기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황극린은 아직 단전을 만들지 않았다. 살기라는 것은 인간의 기세로도 충분히 발현할 수도 있지만, 내공이 없다면 그 효과를 극적으로 증폭시킬 순 없었다. 어느 정도 한계가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어쩌면 무영심결의 효과일 수도 있겠군.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겠지만···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살기는 독이 되기도 하지. 주의해야겠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황극린이 입을 연다.

찰나와 같은 침묵이었지만, 주서웅은 그 잠깐의 침묵에 공포심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믿어보지.”

“아, 안돼! 사, 살려···! 으응?”

당연히 죽일 것이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황극린은 선선히 믿어보겠다는 말을 했다.

거기다 웬걸?

발을 치워주는 것이 아닌가? 숨이 콱 막혀 호흡곤란의 상태였던 주서웅이 헐떡대며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는다. 거짓말처럼 몸을 짓누르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당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저, 정말 살려주는 거야? 정말로?”

“네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렸지.”

“···!”

당장은 살려주겠지만 또 칼을 들이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주서웅은 난생처음 ‘죽음’을 경험했다. 살면서 죽을 뻔했다라는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몇이나 될까? 황씨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란 주서웅은 진짜 강호를 겪어본 적이 없다. 또래 아이 중에서 우두머리 취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아직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고, 고마워. 정말···.”

“대신, 부탁할 게 있다.”

주서웅의 귀에는 황극린의 부탁이 사신의 명령처럼 들렸다.

황극린의 말이 끝날 때까지 그는 귀를 쫑긋 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 무신경하면서도 눈동자를 또 마주해야 할 것이기에.

* * *

“으헉!”

주서웅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발설하면 목에 칼침을 놓겠다는 말을 듣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냐아암.”

옆에선 다른 아이들이 세상 태평하게 잠에 빠져 있었다.

“꿈···?”

혹시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작은 체구의 황극린이 자신을 순식간에 바닥에 넘어뜨리고, 괴이한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았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 어른들이 분노한 얼굴로 자신을 혼낼 때도 그렇게 겁이 났던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 이건 뭐지···.’

차가운 무언가가 허벅다리 부근에 느껴졌다.

주서웅이 침을 꿀꺽 삼키며 이불을 들어 올린다. 대체 뭐지?

“···!”

예상치도 못한 물건.

그를 공포로 물들였던 것이 허벅다리 위에 얹어져 있었다. 어제 우사에서 황극린이 들고 있던 과도였다.

‘이, 이게 왜 여기에!’

전신이 오들오들 떨린다.

꿈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기분이다. 대체 언제 방에 들어와서 과도를 놓고 나간 거지? 설마 지금도 자신을 지켜보고···.

휙!

황급히 고개를 돌리니 끼이익, 살짝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에서 부는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황극린이 살짝 문틈을 열어놓고 자신을 감시하고 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 무섭다. 살이 떨릴 정도로 말이다.

‘꿈이 아니야···. 현실이었어.’

혹시나 품었던 기대를 접는다.

만약 오늘 일을 발설하면 무조건 죽는다. 황극린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다.

덜덜···.

주서웅은 당연히 다시 잠들지 못했다.

* * *

오랜만에 외부 업무를 끝마치고 돌아온 비 노인.

그의 품속엔 남창에서 유명한 반점의 만두가 잠들어 있었다. 당연히 불쌍한 황극린을 위해 사비를 털어 사온 것이다. 베푸는 것의 즐거움이라고 할까? 비 노인은 황극린의 혈색이 점점 좋아지고, 홀쭉했던 두 볼이 탱탱해지는 게 어찌나 좋은지 몰랐다.

함박웃음을 짓고 황씨가문의 장원에 들어선 비 노인.

그는 당장 우사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이라도 만두가 식기 전에 황극린에게 주고 싶어서였다.

‘매번 맛없는 주먹밥을 가져다주는 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그래도 맛있게 먹어주겠지?’

그런 비 노인의 기대는 금방 무너졌다.

황극린의 보금자리엔 비 노인이 가장 싫어하는 아이가 있었다.

또래 중 덩치가 크고 힘이 좋다고 하여 대장 행세를 하는 놈.

언젠간 혼쭐을 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오늘은 기어코 황극린의 우사 앞까지 찾아와서 그를 핍박하고 있었다.

“이노오오옴-!”

비 노인이 헐레벌떡 다가간다.

그런데 뭔가 상황이 묘하다. 비 노인은 황씨가문에서 오래도록 생활해왔다. 지금은 약재나 약초의 품질을 검수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처음에 황씨가문의 식솔이 되었을 땐 당연히 잡일부터 시작했다.

상급자의 비위를 맞추는 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상대의 표정을 읽는 것에 익숙해진다. 또한,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여 실수를 최대한 줄인다.

그런 비 노인이 보기엔 지금 주서웅은 당황하고 있었다.

잘게 떨리는 두 손. 어딜 향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동자. 찔끔 흐르는 식은땀까지.

거기다 웃긴 점은 주서웅이 비 노인 때문에 그렇게 당황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지금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황극린에게 겁먹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그런 비 노인의 시선에, 황극린이 싱긋 미소를 짓는다.

“주서웅도 비 노야처럼 절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으응?”

비 노인의 시선이 다시금 주서웅에게 향한다.

그는 긴장에 극에 달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왜···?”

당연히 좋은 일이었다.

매번 주서웅을 필두로 한 악질 소년들의 괴롭힘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몇 번 훈육도 하곤 했으나 그들은 비 노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황씨가문의 주인이 황극린을 핍박하고 있었으니까. 비 노인 또한 황씨가문 내에서 그리 힘없는 일꾼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더욱 의아하다.

대체 왜 주서웅이?

“주서웅.”

“예, 예엡!”

“···?”

“너무 긴장하지 마. 그러다가 둘째 도련님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으으응! 미, 미안.”

비 노인은 당연히 이해할 수 없다.

잠시 황씨가문을 나가 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허허허···?”

“비 노야, 이제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적어도 저 철부지들은 절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요. 괴롭히더라도··· 그러는 척만 하기로 했습니다.”

비 노인은 황극린의 말에 완전히 상황을 파악했다.

물론, 당최 어떤 방법으로 주서웅을 구워삶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비 노인에겐 황극린이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되었다는 게 중요했다.

“정말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참!”

헐레벌떡 비 노인이 만두를 꺼낸다. 열 개나 되는 만두가 종이에 감싸져 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지 김이 솟아오르고 있다.

만두를 전부 황극린에게 주려던 비 노인이 주서웅을 흘끔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타고난 체격만 믿고 까불거리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황극린의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

비 노인이 만두 하나를 주서웅에게 건네준다.

더 많이 주지 않은 것은 황극린을 괴롭혔던 기억 때문이리라. 하지만 주서웅은 선뜻 그것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황극린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주서웅의 기를 팍 죽여놓을 수 있었을까?’

당연한 의문이었지만, 굳이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그런 것보다 황극린이 괴롭힘을 벗어났다는 것이 더 기뻤으니까.

“어른이 주시는데 받아야지.”

“아, 응? 어··· 가, 감사합니다!”

만두를 받았지만,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황극린이 주서웅의 등을 톡 쳤다.

“으헉!”

하마터면 만두를 놓칠 뻔한 주서웅.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황극린의 얼굴을 바라본 후 바로 시선을 내리깐다.

“이제 가봐.”

“아, 알겠어!”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어제 우사에서의 사건 이후 황극린의 앞에만 서면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다.

후다닥!

황극린의 명령이 진리라도 되는 양 주서웅이 도망간다.

“비 노인,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정말 그 버릇없던 주서웅이 맞는지 모르겠··· 응? 그래, 내게 할 말이 있는 게냐?”

“예,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이제까지 도움의 손길을 모두 거절하던 황극린.

그는 한순간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변화했다. 비 노인은 분명히 그에게 계기가 있으리라 여겼지만, 그것을 묻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된 것이지 굳이 사정을 캐내어 황극린이 마음의 벽을 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뭐든 말해보아라.”

“제가 말한 약재를 구해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약재? 어디 다치기라도 한 것이냐?”

“아닙니다. 제가 쓸 건 아니고, 약재를 조합하여 시장에 내다 팔려고 합니다.”

적당히 비 노인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황극린.

살수는 잡지식이 풍부하다. 그들은 임무를 수행하며 의방에 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잘못하다간 먼저 발각되어 표적에게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급에 준하는 살수들은 동네에서 거들먹거리는 의원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

특히, 황극린은 미래에서 과거로 왔다.

20년이면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수준은 아닐지 몰라도, 많은 것들이 발전한다. 중원엔 무림인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발전된 지식을 일부만 활용하더라도 현재에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다.

“허허, 네가 그런 지식이 있었단 말이냐? 그런데 왜 가주께 말씀드리지··· 그래, 황씨 일가와 사연이 있으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뭘 구해다 주면 되겠느냐?”

솔직히 말하면 비 노인은 황극린의 말을 모두 믿지 않았다.

단지, 세상과 벽을 쌓고 곧 죽을 것 같은 눈동자를 했던 황극린의 눈빛에 이제껏 보지 못한 활기가 생겨났기에 최대한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단산과 울금 그리고 삼지구엽초와 야관문입니다.”

황극린은 이것을 조합하여 만든 환단이 특히 남자에게 좋아 소위 ‘영약’이라 불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