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14화 (114/175)

# 114

비록 서 있는 쪽에 제갈수였다고는 하나 그날 제갈수는 처음으로 패배에 가까운 기억을 경험했다. 우천의 마지막 공격이 적중되었다면 패배하는 쪽은 제갈수가 되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제갈수에게 있어서는 꽤나 좋은 거름이 되어주었다.

기억을 말미암아 이렇게 고수가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오늘은 승리를 경험할 것이다.’

제갈수가 마음을 다잡았다.

“그날은 제가 패배를 했지요.”

우천의 말에 제갈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제가 졌습니다.”

당시의 일에 대해서 서로가 패배했다고 주장하는 웃기는 상황이 한동안 오갔다.

그리고 먼저 절충안을 제시한 쪽은 머리 좋은 제갈수였다.

“이렇게 서로 주장을 하다가는 결론이 안 날 것 같군요.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그가 해결책을 말했다.

“무승부로 하고, 오늘 결관을 보는 겁니다.”

우천이 그 해결책에 동의를 표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사 과거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오늘이 중요한 것을 말이다.

“지지 않겠습니다.”

제갈수가 그랬던 것처럼, 우천 역시 마음을 다잡았다.

동시에 그를 향해서 튀어 나간다. I

후욱-

공간이 둘로 갈라지며 우천이 단번에 제갈수의 앞으로 쇄도했다.

제갈수의 보법이 변한다.

제갈세가가 자랑하는 보법 중 하나인 일엽락(一葉落).

나뭇가지에서 잎 하나가 떨어져 내리듯 팔랑거리는 힘없는 음직임이었으나 우천은 그의 몸을 잡지 못했다.

일엽락의 움직임이 힘이 없어 보이는 이유는 유(流)가 강조 된 보법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우천의 공격을 부드럽게 피해낼 수 있었다.

동시에 손을 뻗는다.

“이 장법은 경험해 보셨지요.”

소천성심법의 기운을 이용해 사용하는 소천성장(小天星掌).

바람이 우천을 향해 다가왔다. 동시에 우천의 어깨에 제갈수의 손이 닿았다.

“이런!!”

우천이 황급하게 어깨를 틀었다. 하지만 제갈수의 손이 조금 더 빨랐다.

콰앙-

우천의 몸이 뒤로 날아간다.

소천성장이라고는 하지만 제갈수의 내력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천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하지만 우천의 내력 역시 그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오히려 영약을 먹은 우천의 내력이 제갈수에 비해서는 앞서고 있었다.

웅혼한 내력이 다리를 향해 이동하고, 다리에서 힘이 솟구친다.

단번에 두 다리가 땅에 못 박히듯 밀려나는 움직임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후우. 큰일 날 뻔했군요.”

우천이 장인이 선명하게 남은 어깨를 매만지며 말했다.

어깨를 틀어 이화접목을 운용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어도 어깨가 빠질 변했다.

그것은 아직도 저릿거리는 어깨의 통증이 중명해 주었다.

“그 정도에 당한다면 제가 실망했을 겁니다.”

제갈수가 씨익 웃으며 말했고, 우천 역시 덩달아 웃었다.

“실망시켜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이번에는 제갈 소협이 오시겠습니까?”

선공은 우천이 했으니, 이번에는 제갈수가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가지요.”

우천의 눈에 비친 제갈수의 모습이 단번에 커졌다. 보법을 이용해 순식간에 우천의 앞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다.

백학만리신(白鶴萬里身).

하얀 학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듯한 보법이 우천의 눈앞에서 펼쳐진다.

두 다리는 날개가 된 것처럼 제갈수의 몸을 우천에게로 밀었다.

우천이 단번에 몸을 뒤로 날린다.

“유운검입니다.”

제갈수의 검에서 하얀 빛이 솟구쳤다. 안개와 같기도 하고 구름과 같기도 한 기운이 검을 타고 흐른다.

우천을 둘러싸는 기운, 제갈세가의 검법인 유운검이 우천을 옭아매었다.

그리고는 단번에 우천의 전신을 때린다.

우천이 용린벽을 펼쳤다.

쾅쾅쾅-

용린벽이 연신 흔들리고, 우천이 용린벽의 역린에 모든 힘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단 한 순간의 틈을 노려!

제갈수의 움직임이 잠깐 멈추는 순간 용린벽에 쌓아두었던 충격을 모조리 해방시켰다.

콰과과과과-

사방이 흔들리고, 제갈수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입가로 피가 흐른다.

“크으.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받았군요.”

하지만 우천이라고 해서 유운검을 모두 방어한 것은 아니었다.

몇 개의 공격이 용린벽을 넘어 들어왔고 온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제갈수는 내상을 입었고 우천은 외상을 입었다.

어느 한쪽이 우세하다고 확답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제갈수가 품속에서 선(扇)을 꺼내 들었다.

우검좌선(右劍左扇).

기세가 변했다.

운산이 침음성을 흘리며 검을 움켜쥔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를 겁니다.”

제갈수의 말에 운산이 내공을 조금 더 일깨웠다. 또한 다른 손으로 검결지를 형성하며 제갈수의 공격에 대비한다.

제갈세가의 선은 예로부터 바람을 부리기로 유명했다.

그가 선을 움직였다.

하늘의 바람이 선을 통해 뿜어진다.

화악 하고 바람이 우천에게 닿는다 싶은 순간, 우천의 몸을 뒤로 주르륵 밀려나고 있었다.

“크윽!”

우천이 검을 앞세워 바람을 막으며 신음성을 홀렸다.

“천풍선법입니다.”

“과연, 제갈세가에는 검과 장 말고도 하나의 무기가 더 있다고 하더니, 선 역시 일절이군요.”

“과찬의 말씀.”

우천이 검에 내력을 가득 불어 넣어 바람을 갈랐다.

우천을 압박하던 바람이 단번에 길을 연다.

싸아아악-

바람 찢어지는 소리가 귀에 울리고, 우천이 그 사이로 몸을 날렸다.

검을 앞으로 쭈욱 밀어 넣는 단순한 찌르기. 하지만 그 하나에 앞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갈라졌다.

제갈수가 그 모습을 보고는 눈에 이채를 띄웠다.

“과연, 대단하군요.”

동시에 검을 움직인다.

소천성검법!

촤라라라락-

우천이 검결지로 바람을 헤집으며 공격을 막았다.

공수가 연속해서 전환되고, 우천의 몸과 제갈수의 몸이 한 발짝 밀려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쉴 새 없이 바람이 터져 나갔다.

쾅쾅쾅-

힘이나 내력에서는 우천이 훨씬 우세하다. 또한 기교까지 제갈수에 비해서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섬세함과 부드러움은 오히려 제갈수 쪽이 강하다 할 수 있었다.

강과 유의 충돌, 쉽게 결판이 나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결판은 한순간에 지어졌다.

콰앙-

제갈수와 우천의 몸이 위로 주르륵 밀려나며 바닥을 굴렀다.

연무장의 바닥이 움푹하고 패여 있다.

우천이 입에서 피를 주르륵 흘렸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졌군.’

우천이 이번에는 패배를 예감했다.

“제가 졌군요.”

하지만 제갈수에게서 들려온 목소리에 눈을 크게 뜨고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제갈수의 입에서 역시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둘 모두 내상을 입은 것이다. 이 정도 내상을 입고 움직이라하면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지금 이 자리는 상대의 목숨을 앗아가기 위한 생사결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비무일 뿐,

여기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가는 것은 좋지 않다.

우천이 일어나며 제갈수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졌습니다.”

말을 하며 옷소매로 피를 훔쳐 그를 향해 보여준다.

자신 역시 내상을 입었음을 보인 것이다.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모던 제갈수가 이번에도 결론을 내었다.

“그럼 이번에도 무승부로 해야겠군요.”

우천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존댓말을 해야 합니까?”

“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는데. 흠흠. 벌써 비무를 두 번이나 하지 않았습니까. 거기다 우리 나이도 동갑인 거 같은데…….”

제갈수가 슬쩍 운을 띄웠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던 우천도 동갑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가 하려는 말을 알아들었다.

“친구 먹을까?”

“흠흠흠.”

겸연쩍은지 제갈수가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 인다. 우천이 땀에 홍백 젖은 옷소매를 들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좋다. 오늘부터 친구하는 거다.”

“좋습니다.”

친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올리는 그를 향해 우천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먼저 시작을 해놓고 말을 높이면 어쩌자는 거야?”

그 말에 제갈수가 겸연쩍게 머리를 긁었다. 머리가 좋다고 소문난 제갈수에게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새삼 느낌이 달라졌다.

“그런가?”

우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것보다 저번에 봤던 대사형이랑 사형한테도 인사드리러 가자고.”

우천과 제갈수가 비무를 하고 있을 무렵, 운산 역시 꽤나 당혹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가롭게 저녁 산보를 마치고 와 문을 열고 보니 웬 여인이 앉아있는 것이다.

“누구십니까?”

운산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향해 질문을 했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돌려 운산을 바라본다. 조금은 백치미가 느껴지는 얼굴, 제갈세가의 금지옥엽이자 우천과 비무 중인 제갈수의 동생 제갈수련이었다.

“제갈소저!”

운산이 놀란 듯 눈을 크게 치켜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와는 일전에 있었던 일 이후로는 전혀 만남이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찾아오니 놀란 것이다.

운산이 방 안으로 들어서며 그녀를 향해 물었다,

“제갈 소저께서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그러자 그녀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한다.

“그냥. 차가 마시고 싶어서.”

“예?”

그녀의 말에 운산이 당황했다. 차가 마시고 싶으면 자신의 방에서 마셔도 좋을 것을 왜 이곳에 와서 마신다는 말인가 운산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자 그녀가 운산을 독촉했다.

“차 줘. 내가 할까?”

“예? 아, 예. 제가 드리겠습니다.”

운산이 능숙하게 차를 데웠다. 방 안에 있는 작은 화로를 이용해 차를 덥히자 금방 차가 따뜻해진다.

무슨 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림맹에서 구비해 놓은 차이니 꽤나 귀한 차임이 분명했다.

“차향이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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