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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304화 (완결) (3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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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그리고 천마(2)------[완결]

백련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바로 과거 자신이 몸담고 있던 비밀조직의 일호였던 것이다. 과거 천마의 이혼대법이 있던 날 헤어진 이후 보지 못했는데, 오늘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잘 지냈나?”

“살아 있었군요?”

“그래, 살아남았다.”

모든 적들을 처리한 후에 벽리단은 적들의 조직들을 대대적으로 청소했다.

하지만 점조직이거나, 실제 자신들이 누군가의 하수인인지도 모른 채 활약한 조직들이 많았기에, 모든 조직을 다 뿌리 뽑지는 못했다. 일호는 그 혼란의 와중에 용케 살아남은 것이다.

“칠호.”

칠호란 말에 백련이 희미하게 웃었다.

“오랜만이군요, 칠호란 이름.”

“그렇군.”

“전 이제 칠호가 아니랍니다. 백련이지요.”

“들었다.”

그랬을 것이다. 자신이 무림맹의 진법과 대법을 연구하는 조직의 책임무인으로 있다는 것도 알아냈으니까.

백련은 느끼고 있었다. 일호가 자신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다는 것을. 애써 그것을 모른 척했을 뿐이다.

일호가 물었다.

“행복해?”

백련이 대답했다.

“제가 태어난 이래로 가장 행복해요.”

찾아온 행위 자체가 그녀에 대한 구애였다면, 지금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일호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행복하다니까 좋네. 그럼 잘 지내.”

“가세요.”

일호가 돌아섰다. 그가 몇 걸음 걸어갔을 때, 뒤에서 백련이 말했다.

“아버지는 이제 잊으세요.”

일호가 흠칫 놀랐다.

이내 놀람은 기쁨으로 번져갔다.

그녀에게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말해준 적이 있었다. 물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아버지가 빠져 죽어서라고 말해주었던 것이다.

한데 칠호는 그것을 기억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일호는 너무 기뻤다.

“그러지.”

일호가 성큼성큼 그곳을 걸어 나갔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막상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면 지금의 이 좋은 기분이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어서였다. 아니, 확실히 나빠질 것이다. 이보다 더 기쁠 수는 없을 테니까.

일호는 그녀를 찾아올까 말까 수백 번을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서만큼은 단 하나의 기억과 단 한마디의 말로도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갈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래, 오늘 잘 왔다.

아버지도 잊고, 조직도 잊고.

그녀를 추억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일호는 그녀의 한마디에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백련이 돌아섰을 때, 임연정은 말하지 않아도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맹주님 소식 들었지?”

“네.”

“맹주님다우시더라.”

자신들뿐만 아니라 무림맹의 모든 무인들이 벽리단의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임연정이 불쑥 물었다.

“후회 안 해?”

난데없는 질문이었는데, 백련이 되물었다.

“언니는요?”

“애초에 내가 자격이 있었을까?”

“물론이에요.”

“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언니는 충분이 자격이 있어요.”

“만약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나 조금 후회해. 이 멋진 남자, 노력이라도 한번 제대로 해볼걸. 대신 아주 조금만 해.”

그녀가 손톱 만큼이라는 시늉을 했다.

“동생은?”

백련이 대답을 피하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 흥미로운 대답을 놓칠 리 없는 임연정이 그녀를 뒤따랐다.

“내게만 말해줘. 어서.”

“싫어요.”

“비겁하게 이러기야? 난 말해줬잖아? 어서, 빨리.”

그때였다. 달아나던 백련이 발걸음을 멈췄다.

“어? 눈 와요.”

“정말이네?”

두 여인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 * *

첫눈이 내린 다음 날, 나는 무림맹으로 돌아왔다.

송화린이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여행 어땠어?”

작별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서 일 년이나 여행을 하고 돌아온 남자에게, 이렇게 웃으며 반겨주는 여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내가 맹주라서? 내가 돈이 많아서? 그런 여자가 아니란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응, 재미있었어.”

“이야기 해줄래?”

“좋지.”

나는 그녀에게 여행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웃기도 했고, 함께 화를 내기도 했다. 너무 아름다운 곳은 다음에 꼭 가고 싶다고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이런 여인을 어찌 데려가지 않겠나?

같이 행복했던 사람과는 같이 고생하지 못하지만, 같이 고생했던 사람과는 같이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내게 그녀는 이미 조강지처와 같다.

그녀는 숱한 방황을 했고, 나와 함께 이겨냈다. 심지어 내게 얻어터지기까지 했다.

정말이지 이율배반적인 일이었다. 여자는 적이 아니면 거의 때려본 적이 없는데, 아무리 비무를 통해서라지만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때렸으니. 그녀와 나와의 인연이 보통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이 말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 약속을 지켜야지.”

“약속? 무슨 약속?”

“뱃속에서 우리가 한 약속.”

순간 송화린이 깜짝 놀랐다.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살면서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진짜로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서서히 번져나가던 기쁨이 그녀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다. 마치 지금까지 봤던 모든 기뻐하는 모습은 가짜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난 준비됐어.”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 * *

우리의 혼인이 전격적으로 발표되었다.

혼례식은 따스한 봄날로 잡혔다.

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진심으로 나의 혼인을 축하했다.

중원 곳곳의 강호인들이 내 혼례를 보기 위해 무한으로 출발했다.

그와 관련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축제가 벌어지고 있네.”

갈사량의 말에 백표가 깜짝 놀랐다.

“축제가 벌어지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무한으로 출발했다네.”

“하지만 청첩장을 받지 못하면 혼인을 참석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들도 알고 있겠지. 무작정 와서 같은 도시에 있는 것으로 축하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지. 그런데 그것이 축제로 바뀌고 있네. 거부들이 호북 곳곳에서 비무대회를 열었고, 전 중원의 상인들이 모여들어서 물건을 싸게 팔겠다고 했다네.”

“거부들과 상인들은 맹주님을 싫어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혜택을 줄이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으니까요.”

“처음에는 싫어했지. 한데 강호가 안정되고 사람들의 형편이 나아지자, 오히려 그들의 수입이 늘어났다네. 그들이 내놓은 돈보다, 결과적으로는 돈을 더 벌게 된 것이네.”

“아, 맹주님이 그것까지 계산하셨을까요?”

“그렇지는 않겠지. 하지만 강호인들을 위한 마음이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보인 것이네.”

“정말 놀랍습니다.”

“백단주.”

“네, 군사님.”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요즘 이런 생각이 한 번씩 든다네.”

“무엇입니까?”

“오래 살고 싶다네. 그래서 보고 싶다네. 맹주님이 어떻게 이 강호를 지켜나가는지, 계속 지켜보고 싶다네.”

“군사님께서는 오래 사실 겁니다. 그래서 제게 조카도 안겨주셔야죠.”

“에끼, 이 사람아. 이 나이에 무슨!”

하지만 갈사량의 눈빛에는 어떤 숨겨진 열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열망에 담긴 마음은 이것이었다.

이런 강호라면…… 자식 하나쯤 키워도 좋지 않을까?

* * *

늦은 밤, 태사의에 앉아 사색에 잠겨 있던 내가 입을 열었다.

“광단주.”

기둥 뒤에서 광두의 대답이 들려왔다.

“수하들을 물리고 잠시 나오게.”

“네.”

곧바로 광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수하들이 물러났다. 이제 광두가 이끄는 맹호단은 완전히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예전 백표가 이끌던 맹호단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광두야, 한잔하자.”

“네, 도련님.”

광두가 술을 챙겨왔다. 가끔 광두와 이렇게 술을 마셨는데, 오늘은 다른 날보다 특별했다.

“언제까지 나를 지켜줄 거냐?”

“제가 죽을 때까지 지켜드려야죠.”

“내가 먼저 죽으면?”

“드디어 해방이겠죠. 음하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 꼴 안 보려면 오래 살아야겠군.”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장수하실 것 같거든요.”

“당연하지.”

이번에는 내가 호탕하게 웃었다.

내 술잔을 채워주면서 광두가 말했다.

“어디 제가 지켜드리는 겁니까? 지켜드린다는 명목하에 도련님 울타리 안에서 쉬고 있는 거죠.”

“혹여 내게 섭섭한 마음이 있더라도 이해하거라.”

천마와 함께하면서, 송화린과 함께하면서 상대적으로 광두에게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자 광두가 불쑥 물었다.

“도련님, 혹시 양기강 생각나십니까?”

“양기강? 누구였지?”

“양소방의 양기강 말입니다. 거 있잖습니까? 초반에 까불다가…….”

“아! 생각난다.”

처음 벽리단으로 깨어났을 때, 우리 집에 와서 설쳐대다가 내게 작살났던 그 양소방의 철부지가 바로 양기강이었다.

“저는 마당이나 쓸다가 그런 쓰레기 놈에게 얻어터지던 것이 제 삶이었습니다. 한데 지금은 무림맹주를 호위하는 맹호단주로 살고 있고요. 도련님 덕분에 정말 신나는 인생을 살고 있지요. 그런 제가 어찌 섭섭한 것이 있겠습니까?”

“이 자식아, 그런 말 하지 마라. 잡은 물고기 취급당한다.”

“괜찮습니다. 대신 여러 마리 잡아서 넣어주십시오. 안 심심하게.”

“하하하.”

그날 광두와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빛날 광, 머리 두.

미칠 광자 아닌 이 녀석, 내 인생에서 언제나 빛나는 녀석이다.

* * *

드디어 혼례식 날이 밝았다.

그야말로 무한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중원의 모든 사람들이 다 모여든 것 같았다.

정말 중원 전체가 축제였다.

무한에서 시작된 축제는 처음에는 호북으로 번져나가다가 결국 중원 전체의 축제가 되었다. 역대 맹주들 중에서 이렇게 대단한 혼례를 치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역대 맹주가 아니라, 혼인한 모든 사람들을 통틀어 가장 많은 축하 속에서 혼례를 치르게 된 것이다.

신랑이 대기하는 장소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그곳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아버지, 어머니.”

두 사람을 보자 울컥하며 목이 메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처음 깨어났을 때, 어머니가 내 뒤통수를 날리시던 그 순간이.

“아들.”

“네, 아버지.”

“처에게 잘해줘라.”

“보고 배운 것이 있지 않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아버지가 미소를 짓더니 이내 귓속말을 했다.

“요리는 미리 좀 가르치고.”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다 들려요.”

아버지가 흠칫했다.

어머니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실력발휘를 좀 해야겠군요. 드시고 싶은 것, 말씀만 하세요.”

“오늘 같은 경사에 그건 좀 아닌 듯하오.”

“하하하.”

기분 좋게 웃으시며 어머니가 나를 와락 안았다.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그리고 고맙다.”

이제는 당당히, 그리고 진심으로 이 말을 해드릴 수 있었다.

“저를 낳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 *

천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왔어?”

“와야지. 밖은 지금 난리도 아니다.”

“식을 조용히 할 걸 그랬다.”

“두 사람 덕분에 다들 좋아하고 웃고 행복해하는데. 잘한 거지.”

사실 송화린을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나야 조촐히 가족끼리만 해도 상관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여인이니 제대로 혼례를 치르고 싶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판이 너무 커져버렸지만.

“이봐, 천광이.”

“왜, 하진이.”

“이번 내 삶을 가장 크게 차지한 두 단어가 있다네. 그게 무엇인지 아나?”

“송소저? 마신?”

“아니네.”

내가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무림맹주? 자네의 충성스러운 수하들?”

“그들도 중요하지만 아니네.”

“뭐지?”

천마를 응시하며 내가 말했다.

“환생, 천마.”

순간 천마가 움찔했다. 자신의 이름이 나올 줄 조금은 예상했나보다. 한데 막상 진짜로 나오니 놀라고 당황한 것이다.

“심지어 내가 천마가 될 뻔도 했지.”

마신이 되었다면, 어쩌면 천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천마는 자네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네.”

잠시 나를 바라보던 천마가 툭 내뱉었다.

“끝까지 꼰대처럼 구는군. 이 정파 꼰대 같으니.”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천마는 지금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천마가 고맙다.

그가 나에게 정파 꼰대란 말을 해주었기에, 나는 그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 노력이 나를 가장 크게 변하게 했다.

그때 갑자기 천마가 나를 와락 껴안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깜짝 놀랐다.

“혼인? 스스로 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쌍해서 안아주는 것이네.”

내가 피식 웃었다.

“꼭 아이 열 명 낳게. 관 뚜껑에 못이 열 개 박힐 것이네.”

“이 자식이!”

“하하하.”

천마의 기분 좋은 축하였다.

* * *

생각지도 못한 방문객이 있었다.

그는 방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바로 마신의 시험을 주었던 노인이었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어르신께서 오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자네가 혼인을 하는데 와야지.”

화린이에게 말을 해주진 못하겠지만, 우리는 하늘의 축하를 받은 것이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가 한 일이 뭐가 있겠나? 다 자네가 잘해서지.”

노인이 넌지시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가? 자네의 미래를 알려줄까? 자네가 원한다면 혼인 선물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데?”

솔깃한 제안이었다. 미래를 알려준다고 했을 때, 고민이 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하지만 그는 알았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대번에 거절할 것을.

“거짓말은 사절입니다.”

“거짓말이라니?”

내가 노인을 보며 웃었다.

“아직 미래는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니까요.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결정될 것이다.

노인이 활짝 웃었다.

“다시 한 번 혼인 축하하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타났던 것처럼 홀연히 노인이 사라졌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 앞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내게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안다.

이 문밖에는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그분들이,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내가 문을 활짝 열었다.

밝은 햇살이 눈부시게 빛났다.

나는 그 환한 빛을 뚫고 힘차게 내 미래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대미(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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