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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그리고 천마(1)
달리던 마차가 갑자기 멈췄다.
그 바람에 마차에 타고 있던 왕팔보(王八寶)가 그대로 마차 벽에 이마를 부딪쳤다.
“어이쿠! 대체 무슨 일이냐?”
왕팔보가 이마를 매만지며 소리쳤지만 마부석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놈이! 왜 대답이 없느냐?”
왕팔보가 마차 문을 열고 나갔다. 자신의 마차를 모는 마부 장호(張好)는 마차 앞쪽에서 아이를 살펴보고 있었다.
다행히 마차에 치이지 않았는지 아이는 길가 노점상에게 뛰어갔다. 그제야 아들이 마차에 치일 뻔했다는 것을 알고 아비가 아이를 살폈다.
그제야 장호가 왕팔보에게 달려왔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아이가 갑자기 뛰어드는 바람에. 다행히 아이는 다치지 않았습니다.”
“다행? 나는 다쳤는데?”
왕팔보의 목소리는 더없이 싸늘했다.
“어르신, 어딜 다치셨습니까?”
깜짝 놀란 장호가 가까이 다가서려고 하던 그때.
짝!
왕팔보가 사정없이 장호의 뺨을 때렸다.
“이 새끼가,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알고 이 지랄이지?”
“어르신?”
퍽!
왕팔보가 사정없이 장호를 걷어찼다. 장호가 뒤로 나뒹굴었다.
그때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이쪽으로 왔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장호가 얻어맞자 해명을 해주려고 온 것이다.
그는 저잣거리에서 가판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이었다.
“마부님 덕분에 우리 아이가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왕팔보가 더욱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쳤다.
결국 그의 화가 폭발했다.
“너 이 새끼, 대체 뭐하는 놈이야. 사고가 났으면 나부터 안 살피고 애새끼부터 살폈단 말이지? 내가 다쳤으면? 말이 발목이라도 삐었으면? 저 말이 얼마짜린 줄 알기나 해?”
퍽! 퍽! 퍽!
왕팔보가 장호의 뒤통수를 연속해서 때렸다.
자신의 자식이 말보다도 못한 애새끼가 된 듯한 기분에 상인은 화도 나고 당황도 되고 어쩔 줄을 몰랐다.
두들겨 맞으면서 장호가 어서 애 데리고 저리로 가라고 손짓을 했다.
장호가 상인과 아이를 챙겨주는 모습에 왕팔보가 더욱 분노했다.
“이 새끼가 아직도? 저것들이 중요하면 당장 때려 쳐! 이 새끼야! 앞으로 저 애새끼 태우고 다녀!”
“어이쿠! 아닙니다, 어르신.”
말끝마다 애새끼, 애새끼, 화가 난 주위 상인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하지만 검을 찬 왕팔보의 호위무인들이 무섭게 노려보았기에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이 새끼야, 내가 더 중요해, 저 거지 새끼가 더 중요해?”
“어르신, 고정하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말하라니까!”
“아직 애 아닙니까? 다 제 잘못입니다.”
“이 새끼가 끝까지 저 놈들 편을 드네.”
“제 실수였습니다. 사람 다니는 길에서 너무 속도를 냈습니다.”
“오호라, 요놈 봐라. 이게 다 내 책임이다? 내가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고 내 책임이라는 거잖아?”
“어이쿠, 아닙니다.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주인이고 나발이고, 완전 개판이로군.”
“아닙니다. 저는 어르신을 존경합니다.”
“존경 좋아하시네. 넌 오늘로 끝이야. 짐 싸서 꺼져.”
“어르신! 저는 이 일을 해야 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 알고 있다. 아들놈이 공부를 잘한다지? 학관에서도 일등하고. 부모 말도 잘 듣는 정말 착한 아이라고 그랬지? 그런데 왜 이랬대? 아들 앞길을 그렇게 막고 싶었나?”
“어르신!”
“딴 어르신 찾아봐.”
장호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지역의 유지라 해봐야 몇이나 되겠는가? 마부를 쓸 사람쯤 되는 이들은 모두 왕팔보와 친분이 있는 이들이었다. 이렇게 쫓겨나면 앞으로 이곳의 다른 마차는 절대 끌지 못할 것이다.
장호가 무릎을 꿇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아들 생각해서라도 잘리면 안 될 일이었다. 못 배운 자신에게 그렇게 똑똑한 아들이 나온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아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일자리를 잃으면 아들이 학관을 다닐 수가 없다. 아비가 큰 공부는 못 시켜줘도, 남 다 시키는 공부마저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꺼져!”
상인까지 달려와서 함께 애원했다.
“좌우를 살피지 않고 뛰어든 제 아들놈 잘못입니다. 이분은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상인이 함께 무릎을 꿇었다. 제가 잘못을 한 줄 알고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왕팔보가 버럭 소리쳤다.
“이 거지새끼들아! 다 꺼지라고! 이 새끼들 다 쫓아버려!”
무인들이 움직이려던 그때 누군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앞으로 길을 건널 때는 좌우를 잘 살피고 건너야 한다.”
나긋한 목소리였는데,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몇 마디 말을 더해 아이를 달래고 난 후에 마차 쪽으로 걸어온 사람은 바로 벽리단이었다.
벽리단이 상인을 보고 말했다.
“애 데리고, 장사한다고 고생이 많소.”
나이는 젊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에 상인이 정중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애를 봐줄 사람이 없소?”
“애 엄마가 많이 아픕니다. 그래서 제가 데리고 장사를 해야 합니다.”
“마음 편히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도록 하겠소. 물론 돈은 내지 않아도 될 거요.”
“네?”
상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켜보던 다른 상인들도 옆사람을 돌아보며 의아함을 나눴다.
벽리단이 이번에는 마부를 일으켰다.
“아들이 공부를 잘한다고요?”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사내는 왕팔보의 눈치를 보았다.
벽리단이 그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급히 마차를 세우고, 아이에게 달려간 것은 잘한 선택이었소. 당연히 아이에게 달려가야지요. 아이에게 잘못을 미루지 않고 스스로에게 잘못이 있다고 한 것 역시 사내다운 마음이었소. 아들을 위해 기꺼이 무릎을 꿇는 것 역시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이었소. 그대 아들이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것도, 그렇게 착하게 큰 것도 그대가 이런 좋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오.”
순간 장호가 울컥하며 눈에 눈물이 고였다. 평생을 살면서 아무도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너무 분해하지 마시오. 분하더라도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시오. 대신 나도 약속하겠소.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살아도 되는 세상으로 꼭 만들어 주겠소.”
눈앞의 사내가 누군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그 말만 들었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오랫동안 힘들고 상처 입은 마음을 누군가 쓰다듬어 주는 기분이 들었다.
“어흐흑.”
장호가 울음을 터뜨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상인이 달려가서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벽리단이 왕팔보를 보고 말했다.
“네가 돈이 그렇게 많아?”
“뭐?”
“돈이 많다고 사람이 그러면 쓰나? 돈이 많으면 그렇게 큰돈을 벌게 해준 세상에 감사하고, 더 겸손하게 사람들에게 잘해야지.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
왕팔보가 호위무인들에게 호통을 쳤다.
“이 건방진 새끼를 잡아 족쳐라! 당장 내 앞에 꿇려라!”
하지만 그들은 제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마혈이 제압당해 있었던 것이다.
“저기 꿀떡을 사먹고 있는 내 친구가 그러더라.”
모두의 시선이 저 멀리 길거리 수레에서 꿀떡을 사먹고 있는 천마를 향했다.
천마가 떡이 들린 손을 흔들다가 꿀이 옷에 튀었다. 어이쿠 하며 옷을 닦는 모습이 더없이 경망스러워보였지만, 벽리단이 전하는 그의 말은 아주 무서운 것이었다.
“사람을 정말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그에게서 가장 귀한 것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라고.”
벽리단의 차가운 시선이 왕팔보를 향했다.
“네 비루한 인생에서 뭘 가장 귀하게 여기고 살았는지는 말 안 해도 알겠다.”
벽리단이 그곳을 떠나가며 말했다.
“이제 네 마차는 더 이상 달리지 못할 거다.”
벽리단의 말은 사실이 되었다.
다음 날 중원상인연합회의 내부감찰단이 왕팔보의 상단으로 들이닥쳤다.
물론 감찰단은 무림맹에서 내려온 엄명을 받은 상태였다. 지금까지 왕팔보의 상단이 저지른 모든 부정들을 밝혀냈다. 그에 따른 막대한 벌금이 부과되었다.
장사를 해오면서 자행했던 비리들과 잘못들, 심지어 실수들까지 칼같이 조사했다. 역대 조사들 중 가장 신속하고 철저하게 조사가 이뤄졌고, 정상참작은 일절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파산했다.
처음에는 왕팔보는 믿을 수가 없어서 눈만 껌벅였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평생을 모은 재산을 한순간에 모두 날리자 그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무림맹 감찰단에서 들이닥쳤다. 상단이 온갖 부정을 저질렀는데, 어디 사람이라고 깨끗했겠는가?
감찰단에서 그의 영혼까지 탈탈 털었다.
그의 죄가 모두 밝혀졌다. 온갖 죄들이 다 있었다. 시비들을 희롱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겁탈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폭력으로 사람을 협박해서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했고, 심지어 살인을 교사한 적도 있었다.
평생 뇌옥에 갇히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평생 호의호식하다가 뇌옥에서 평생 살게 되면 그는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의 마차를 몰던 장호는 좋은 주인을 만나 다시 마차를 몰았고, 그의 아들은 무림맹에서 내리는 장학금을 받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중원 전역에 아이들을 맡아주는 시설이 생겼다. 부모들이 일을 해서 돌봐주지 못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고 전액 공짜였다. 그 비용은 무림맹과 태성상단이 나눠서 책임졌다.
이 일의 뒤에 무림맹주 벽리단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강호인들은 환호했고, 왕팔보와 비슷한 생각을 지닌 이들은 공포에 떨었고 불만을 가졌다.
무림맹에서 벽리단의 말을 강호인들에게 전했다. 순화하지 않고 정확히 한 자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했다. 벽리단의 뜻이었다.
“왕팔보의 소식을 듣고 자기 일처럼 화가 나고 그가 불쌍하게 여겨지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 좋을 거다. 기회 줄 때 마음을 바꿔먹어라. 노력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인간 아닌 것들이 인간인 척 살다가 내게 걸리면 갈기갈기 찢겨서 뒈질 줄 알아라.”
* * *
다시 한 달 후.
찬바람 부는 절벽에 천마와 함께 나란히 서 있었다.
굳이 필요는 없었지만 우린 겨울 분위기를 내며 두툼한 솜옷을 입고 있었다.
봄에 시작된 여행은 겨울이 될 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우린 강호를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사람을 만났으며, 많은 것을 바꾸었다.
난 전생에도 좋은 맹주였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직접 보고 느끼며, 단지 마음이나 이상만이 아닌 정말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펼쳐나갔다는 점이었다.
모두들 나를 칭송했고, 내 인기는 점점 올라갔다.
하지만 애초에 이 여행은 나를 위한 여행이었다. 천마와의 관계 역시 나를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으니, 전적으로 나를 위한 여행이리라.
“이봐, 하진이.”
“왜, 천광이.”
“자넨 왜 마신이 되는 것을 거절했나?”
이 여행이 시작될 무렵부터 묻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러 이유를 들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 대답하라면 이것이 될 것이다.
“당신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 않네. 언젠가 나를 두고 모두가 떠날 것임을 알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네.”
“역시 그랬군.”
“그때 그 노인이 그러더군. 어느 쪽이 더 행복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나도 그렇다고 생각하네. 중요한 것은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 일이겠지.”
내가 천마를 바라보았다. 천마는 예의 그 다소 어색해하면서도 왠지 기분 좋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네의 결정을 존중하네.”
“고맙네.”
그때였다. 그와 나 사이로 뭔가가 내려왔다.
깃털처럼 새하얀 그것은 바로 눈이었다.
“눈이다.”
천마와 내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눈이구나.”
천마가 활짝 웃었다. 그가 새로운 몸을 가지고 처음으로 보는 첫눈이었다.
나와 천마는 손바닥에 내려앉는 부드러운 눈의 감촉을 느꼈다.
“내가 죽던 날에도 이렇게 눈이 왔는데.”
그날이 생생이 기억났다.
기억력이 엉망이 되고, 몸이 너무나 무기력했던 그날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었다.
나의 죽음은 하늘이 내린 죽음이었고, 동시에 삼신의 싸움으로 이끈 운명의 시작이었다.
“좋냐?”
“좋네.”
내 물음에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장난을 쳤다.
“이상하네, 눈을 좋아하는 사람은 순수하다던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자기를 감추기 위해 만든 말인가 보지.”
“하하하.”
이제 제법 장난을 장난처럼, 잘 받아주는 천마였다.
한바탕 웃고 난 후, 내가 천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만 돌아갈까?”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내 새로운 운명이 시작된 날처럼, 눈이 내리는 오늘 또다시 새로운 운명을 위해 무림맹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천마가 손을 내밀었다. 이곳에서 헤어지자는 뜻이었다.
내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술 한잔하고 싶으면 언제든 서화로 와라.”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제 천마는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그래, 다시 첫눈이 내리면 찾아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