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293화 (29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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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귀환(6)

이번에 시험을 치르면서 나는 두 번의 문을 열었다.

처음 노인이 열어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가 처음이고, 두 번째는 입신관의 문을 처음으로 열었을 때가 두 번째였다. 그때마다 나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깜짝 놀랐다.

시작부터 거칠게 몰아붙일 것 같아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문을 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술상이 차려져 있었고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바로 마신성의 그 노인이었다.

“왔나?”

“어르신?”

“이리 오게. 한잔하세.”

“네.”

얼떨떨한 마음으로 그에게 다가가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노인의 모습을 한 마군일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알 수 있었다. 정말 그 노인이 확실했다. 노인의 기도는 누군가 위장해서 꾸며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했네.”

“아닙니다.”

술을 시원하게 마셨다. 정말 피곤함이 한순간에 가시는 것만 같았다.

“어땠나?”

“솔직히 이 나이쯤 되면 더는 새로운 깨달음 같은 것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한데 반복해서 마군들과 싸우면서 여러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래, 배움은 끝이 없는 법이지.”

“네.”

“이제 자네는 결정을 내려야 하네. 저 위로 올라갈지, 아니면 저 문으로 걸어 나갈지.”

한옆에 위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그 반대쪽에는 그냥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저 위로 올라가면 마신이 되는 것이군요.”

“적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네. 지금까지보다 더 격렬하게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지. 하지만 자네라면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

이번에는 내 시선이 반대쪽 문을 향했다.

노인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저곳으로 나가면 마신이 되는 길을 포기하는 것이네. 하지만 저 길 역시 싸워서 살아남아야 나갈 수 있네. 선택에도, 포기에도 책임은 따르는 법이니까.”

“저는 무조건 마신이 되거나 죽거나 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비록 마신이 악신에 속해 있는 신이라 할지라도, 엄연한 신이라네. 등을 떠밀어서 강제로 만들 수는 없는 존재라네.”

죽음을 피하기 위해 마신의 시험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렇게 우유부단한 제가 마신이 될 수 있을까요?”

“자네가 죽인 암흑신에게서 어떤 대단한 점을 보았나?”

나는 잠시 대답을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암흑신에게서 영혼을 바쳐도 좋을 정도의 대단함을 발견할 것이네. 자네가 바라보는 쪽 반대편을 바라보는 이들이지.”

“제가 어떤지는 상관이 없다는 말씀이군요.”

“신과 인간과의 문제는 언제나…… 인간이 문제지.”

하지만 이 문제는 신이 될 나와 인간과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와 내 사람들과의 문제였다.

“자네가 마신이 된다면 현실의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을 것이네. 하지만 마신이 되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서 싸워야 하겠지.”

노인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이미 혈신이 강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또다시 신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제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어르신은 상관없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오직 자네가 판단해서 결정을 내리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간을 많이 준다고 고민이 풀릴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 삶에서 나는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그 변화에서 새로운 행복을 찾았다.

하지만 영원불멸의 삶을 살게 된다면, 변화가 아니라 정반대의 가치인 ‘반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미 결심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윽고 내가 노인에게 말했다.

“저는…… 이 한 번의 기회로 충분합니다. 이 한 번의 다시 사는 삶으로 만족합니다. 벽리단으로 살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 친구, 내 목숨 같은 수하들까지. 저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늙어가고 싶습니다.”

노인이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

“죄송합니다.”

“내게 죄송할 필요는 없네. 선택은 각자가 하는 법이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일이란 알 수 없는 일이지. 언젠가 세월이 지나 자네의 무공을 이어받은 사람이 마신의 시험에 들 수도 있겠지.”

“하하, 만약 그렇다면 그는 아홉 자루의 검으로 이기어검술을 사용할지도 모릅니다.”

내 무공인 환검천폭을 두고 한 말이었다. 허공에 아홉 개의 검이 떠오르면서 발출되는 무공이었으니까.

그러자 노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쩌면.”

농담처럼 말했지만, 농담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내 무공이 누군가의 손에 다듬어지고, 다시 내려가고, 제자가 제자를 키우고, 또 그 제자가 자식을 낳고. 정과 마를 초월하며 내려가다 보면 또 다른 이름이 되어 아홉 개의 이기어검술을 발휘하는 무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쩌면 그가 마신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저보다 더 용감하고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군요.”

“하하하. 그러길 바라자고.”

한바탕 웃으며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누가 더 행복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라네. 심지어 나조차도.”

아주 의미심장한 말이었지만 내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적어도 내겐 아주 먼,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이었으니까.

“자, 이만 가보시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노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부디 행복하시게.”

그가 손을 내밀었다.

노인의 손을 감사한 마음으로 마주 잡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전에 내공이 가득 차오른 것이다.

놀란 나를 보며 노인이 말했다.

“불멸불사의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평생을 두고 내공이 마르지 않을 것이네.”

“어르신?”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마신을 포기한 것 또한 큰 용기를 발휘한 것이라네. 그 용기에 대한 내 선물이네.”

노인이 준 것은 내공이 아니었다. 내게 목숨을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공이 마르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적에게 내가 지겠는가?

노인에게 큰절을 올렸다.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 노인은 이미 그곳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문 앞에 서서 나는 다시 심호흡을 했다.

이 문을 열면 또 다시 놀랄 광경이 펼쳐질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놀랄지언정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계속 문을 열고, 또 다른 문을 열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기도 할 테니까. 비록 나는 마신이 되어 돌아가지 않지만, 내 삶을 살피고 지키는, 또 다른 어떤 신이 되어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문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들은 놀람 그 자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광장.

그곳에 엄청난 숫자의 무인들이 있었다. 얼핏 봐도 수만 명이 넘는 인원이었다. 그들은 모두 피처럼 붉은 옷을 입고 있었다.

문 근처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수백 개의 시선이 한 번에 날아들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마군들과 달랐다. 복장뿐만 아니라 기운마저 혈기를 내뿜는 자들이었다.

눈에서 피어오르는 시뻘건 혈기.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고, 인간 형상을 한 괴수들이었다. 혈신의 수하인 혈군들임을 알 수 있었다.

비로소 마경의 시험장에서 나왔고 이제 내 현실이 펼쳐진 것이다.

나를 향해 날아드는 강렬한 살기와 살심들.

“어디를 가려고 이렇게 개떼로 모여 있느냐?”

나를 향한 살의가 더욱 짙어졌다.

내가 수라명왕검을 움켜쥔 채 나직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너희들 오늘 외출은 취소다!”

수라명왕검이 허공을 갈랐다.

쇄애애애애액.

검에서 발출된 검기가 눈앞에 있는 놈들을 휩쓸었다.

촤아아아아아아악!

수십 명의 혈군이 몸통이 갈라지며 쓰러졌다.

내공이 넘치는 한, 나는 아무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것이 설령 혈신의 수하들이라 할지라도.

뒤에 서 있던 혈군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그 수많은 놈들이 모두 달려들 수는 없었다. 아예 저 끝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쉬이이이이이익!

촤아아아아아악!

두 번째 검기에 다시 놈들의 몸통이 분리되며 휩쓸렸다. 세 번째, 네 번째 검기가 연속해서 날아갔다.

마신결의 대성을 이루고, 이곳 시험장에서 또 다른 깨달음을 얻고, 다시 극한의 내공으로 발휘되는 내 검기는 보통의 검기가 아니었다. 그 어떤 것도 막지 못했다.

놈들은 검으로도 막았고, 검기를 발출해서 막았다.

하지만 그 어떤 쇠붙이도 잘라냈고, 검기도 잘랐다. 갑옷을 입은 놈도, 외공을 익힌 자도 모두 다 잘려나갔다.

검기와 함께 마음껏 경공을 발휘했다. 그야말로 훌훌 날아다녔다. 마신의 시험을 치르는 내내 경공을 발휘하지 못한 한을 이곳에서 다 풀고 있었다.

내 평생 이렇게 시원하게 적들에게 검기를 날린 적이 단연코 없었다. 적은 많았고, 내공은 마르지 않았다.

주위를 완전히 휩쓸며 놈들과의 거리를 벌렸을 때, 이번에는 수라명왕검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스스스스스스스슷.

순식간에 검이 분열해서 아홉 개가 되었다.

슉슉슉슉슉슉슉슉슉!

꽝꽝꽝꽝꽝꽝꽝꽝꽝!

환검천폭이 발출된 것이다. 쉴 새 없이 회전하면서 검기의 검을 날렸고, 빠르게 만들어지는 검기는 그 공격속도에 보조를 맞췄다.

폭발력 또한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졌다. 적들은 사방에서 피떡이 되어 날아다녔다.

“아!”

나는 환희를 느꼈다. 내공이 마르지 않고 끝없이 넘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넘치는 내공으로 이런 가공할 무공을 끝없이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지를 느꼈다.

워낙 많은 혈군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기에, 한방에 수십 명씩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만약 저들이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악인이라도 이렇게 죽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인간이 아니라 혈신을 따르는 혈수(血獸)들이었다.

꽝! 꽝! 꽈아앙!

놈들의 숫자가 워낙 많았기에 환검천폭의 폭발에서 빠져나와 나를 공격하는 자들이 생겼다.

나는 다시 초식을 바꾸었다. 내공이 마르지 않으니 공격에 망설임이 없었다.

이번에는 주위가 어두워졌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

검기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놈들에게도 마검혈우는 지옥이었다.

푹푹푹푹푹푹푹푹푹푹!

수백 명의 혈군들이 동시에 몸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마신탄영으로 놈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신혈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인생이라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앞으로 영원히 이렇게 화끈하게 내 무공을 쓸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한 놈도 놓치지 않았다. 여기의 한 놈이 나가서 열 명의 강호인을 죽일 테니까.

쏴아아아아아아아!

진짜 비가 아닐진대, 그곳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피의 강이었다.

* * *

천란이 열리기 시작했을 때, 모두들 두려움에 떨었다.

갈사량은 눈을 질끈 감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이제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었다. 저 천소선이 어떤 자인지, 또한 혈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백표가 그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제 최후가 머지않았음을 느꼈다.

-지금까지 모실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자네와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네.

-끝내 맹주님을 뵙지 못해 아쉽군요.

-다음 생에 다시 뵙게 되기를 바라세.

-네, 군사님.

자신들이 죽는 것보다 남은 이들이 걱정되었다.

갈사량이 저 건너편에 붙잡혀 있는 송화린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뜻밖에 담담했다. 하긴, 벽리단과 함께하면서 여러모로 마음의 성장을 했던 그녀였다. 그녀 역시 이 마지막 순간을 나름대로 잘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갈사량은 아직도 신혼의 단꿈을 꾸는 아내를 떠올렸고, 백표 역시 아내와 아들 명이를 떠올렸다.

자신들이 죽어 그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았다.

백표는 송화린이라도 구해보려고, 내력을 다스렸다. 쉽진 않겠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군의 여인만큼은 구해야 했으니까.

쿠우우우우우우웅.

천란이 열렸다. 엄청난 피냄새가 쏟아져 나왔다. 모두들 공포에 질렸다.

천소선이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하하하하. 나와라! 나의 병사들이여!”

그 순간, 정적이 흘렀다.

원래라면 십만의 혈군이 발맞춰서 걸어 나와야 할 순간이었는데, 천란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대체 뭐하느냐?”

버럭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천란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수라명왕검을 들고 걸어 나온 사람은 바로 벽리단이었다.

마지막 문 너머의 광경은 놀람이 아니라, 너무나 그리웠던 이들이 자신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너는!”

천소선이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네가 어떻게 그곳에서? 혈군들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벽리단이 검을 치켜들었다. 수라명왕검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개수작 부리지 마라!”

천소선은 믿을 수가 없었다. 혈군의 숫자는 무려 십만 명이나 되었다.

한데 그들이 다 당했다니?

벽리단이 너무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송우경, 송화린, 갈사량과 백표, 그리고 다른 모든 수하들.

너무나 보고 싶었던 그들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 이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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