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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69화 (268/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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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주 벽리단(2)

나는 무공수련에 집중했다.

특히 마신영풍보를 집중적으로 수련했다. 팔 성인 그것을 마신결과 마찬가지로 구 성으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마신결은 구 성이 되면서 이전보다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대성을 이루면 마신이 되는 것과 관련해서 선택을 해야 한다고 했으니, 다시 말해 인간이 이룰 수 있는 마지막 경지가 구 성의 경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마신영풍보 역시 구 성에 도달해서 두 무공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수련하고 또 수련했다.

밥 먹는 시간,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무공수련에 매진했다.

쉬지 않고 땅 위를 내달렸고, 바다 위를 날았고, 산을 뛰어 넘었다. 숨이 터질 정도로 하늘 끝까지 올라갔고, 마신지로로 하늘을 누비다가 단 한 줌의 내공에 의지한 채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태어나서 이렇게 힘들게 수련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최선에 최선을 다했다. 강호에서 가장 수련을 소홀히 해도 되는 내가, 그 누구보다 힘든 수련을 한 것이다.

이러한 내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마신영풍보가 결국 한 단계 더 올라서 구 성에 도달한 것이다.

마신영풍보가 한 단계 성장한 것이 마신결에도 영향을 미쳤다.

마치 물통에 물을 채워 넣는 느낌이다. 이 통을 다 채우면 마신결의 대성을 이룰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더 많은 물을 부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물이 늘어난 것은 확실했는데, 그것이 몇 바가지나 쏟아부은 것인지, 얼마나 더 물을 부어야 가득 차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랬기에 방심할 수도 없었다.

나는 이 물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까닥 잘못 건드려서 물통을 넘어뜨리면 지금까지 모은 물을 한 번에 쏟아버릴 수도 있었다. 물통에 깔려 죽는 것이 곧 주화입마.

[축하주 한잔해야지?]

[좋지.]

천마와의 술자리는 언제나 환영이다. 그와 함께 마시는 술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물론 휴식의 측면만이 아니었다. 그와 나누는 무학에 대한 대화가 내게 큰 도움이 된다.

이제는 나와는 확연한 실력 차가 나버린 그였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내게 큰 영감과 깨달음을 주었다. 무공이 강하다고 꼭 더 좋은 사부가 되는 것만은 아닌 이치다.

[술맛 좋다.]

[당신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다.]

[고맙군.]

이제 그가 어떤 술을 좋아하는지, 어떤 곳에서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다.

무공이 상승해서 축하주를 마시는 날인데, 오히려 무공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오늘은 중원 각지에 어떤 술이 맛있고, 특히 자신이 좋아했던 술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야기했다. 주로 천마가 이야기했고 나는 들었다.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술 이야기에도 삶이 녹아 있었고, 무공에 깨달음이 될 만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나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진정한 조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검술과 권법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까에 대해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삶과 무공에 대한 조화를 생각한다.

언제 수련하고, 언제 쉬어야 하는지. 미친 듯이 수련할 때와 모든 것을 다 잊고 쉬어야 하는 것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를. 말을 할 때와 들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거기에 한 가지 더.

기존에 검술과 권법의 조화에 대해 고민하던 것을 좁은 시야에 빠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때대로, 그것은 그것대로 중요한 것이다.

조금 성장했다고, 현재를 있게 해준 과거를 우습게 여기는 것은 결코 올바른 태도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판단의 균형까지 갖추는 것, 그 역시 삶의 조화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깨닫는다.

삶의 모든 것에 무공이 담겨 있음을.

술 이야기를 마치고 천마가 불쑥 말했다.

[우리 많이 변한 것 같군.]

내가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다른 말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천마가 이런 말을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그래.]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만약 당신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살고 싶어?]

[새로운 기회라니?]

[가령 나처럼 다른 젊은 사람의 몸에 들어간다거나?]

[음…….]

천마는 잠시 대답을 아꼈다.

[그냥 편하게 물은 거니까 편하게 대답해.]

[솔직히 말하면 예전에는 그 몸으로 이번에야말로 강호일통을 하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나를 다시 환생시킨 자들까지 싹 다 처리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

그랬을 것이다. 예전의 천마는 정말이지 보통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은 깨끗이 접었다. 그냥 조용히 평범하게 살지 않을까 싶은데? 가끔 아들이나 손자 녀석들이나 보러가고.]

그 말이 진심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그를 믿을 수 있다.

[한데 왜 물어? 나를 내보내 주려고?]

천마가 장난처럼 묻자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려고.]

[뭐?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장난질이신가? 하하하, 난 속지 않는다, 이놈아!]

천마가 호탕하게 웃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지, 내 말이 사실임을 느끼고 웃음으로 이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갈사량이 방문했다.

수련기간 중에는 웬만해선 나를 찾지 않는 그였기에, 방문한 이유가 중요한 사안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곧장 천기심환공을 풀고 그를 만났다.

“무슨 일인가?”

“마철군이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신호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

“놈이 맹주님을 찾고 있습니다.”

“이유는?”

“돌아가는 상황으로 볼 때, 아마 제압당한 단전을 풀어달라고 부탁하려는 것 같습니다. 현재 맹주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니까요. 아무래도 힘부터 찾고 싶겠지요.”

과연 갈사량은 마철군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놈이 완전 궁지에 몰렸군.”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슨 기회?”

갈사량이 나를 응시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러우면서도 이 말은 꼭 해야겠다는 결의가 담긴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면 굉장한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오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맹주님이 다시 무림맹주의 자리에 오르시는 일 말입니다.”

갈사량이 다시 한 번 맹주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번에는 반쯤 장난스럽게 꺼냈는데, 이번에는 아주 진지했다.

“정말 자네는 내가 다시 맹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네, 그렇습니다.”

갈사량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의 태도가 이렇게 단호하다는 것은 이미 숙고 끝에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는 의미.

“좋네. 그렇다면 나를 설득해 보게.”

“우선 여전히 적들은 강력합니다. 사라진 천소선도 그렇고, 꿈에서 보셨다는 그 의문의 사내도 그렇고. 우린 그들의 행적을 놓친 데다가 정체 또한 모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또 다른 배후가 있을 가능성까지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무림맹이라는 강력한 조직을 장악한다면 놈들을 상대하는 데 훨씬 쉬울 겁니다.”

합리적인 이유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갈사량의 설득이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는 내부문제입니다. 마철군은 사적인 욕망이 강한 자입니다. 권력을 위해서 기꺼이 괴물이 된 자지요. 그는 이미 감찰단을 동원해서 자신을 맹주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주장하는 강호인들의 뒷조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장담컨대 저 미련과 욕심이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 것입니다.”

그건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림맹주는 누구보다 정의롭고 청렴해야 할 자리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그 자리를 욕심내선 안 될 일이다.

“놈을 없애고 다른 사람을 맹주로 삼으면 되지 않겠나?”

“지금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더구나 이런 식으로 마철군이 제거된다면, 무림맹은 더욱 혼란에 빠져들 겁니다. 정식으로 물러나게 하고, 맹칙에 따라 벌을 내려야 합니다.”

만약 내가 맹주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멀고 먼 일이라면 ‘그래, 일단 한번 움직여 보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갈사량이 나선다면 이 일은 먼 일도,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총군사 갈사량은 이십 대의 나를 능히 맹주의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기재였으니까.

무림맹주라.

내가 다시 무림맹주가 된다? 마음에는 천마를 품고, 마신결의 대성을 향해 나아가면서? 과연 그래도 되는 일일까?

창가로 걸어가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마신성에서 만났던 그 노인이 떠올랐다.

정녕 당신이 원한 것이 이런 것이오? 내가 다시 무림맹주가 되는 것이 내가 가야 할 운명이란 말이오?

정말이지 당장에라도 마신성으로 날아가서 그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에 간다고 그를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마신결의 대성을 이뤘을 때, 비로소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내가 여전히 창밖에 시선을 둔 채 갈사량에게 물었다.

“좋네. 내가 결심을 했다고 치세. 나는 이제 고작 이십 대 중반이네. 현실적으로 맹주가 될 수 있겠는가?”

“그냥 이십 대 중반이 아니라 천왕군을 죽인 이십 대 중반이지요. 자격은 충분합니다. 지금 상황이라면 오히려 젊은 것이 장점이 되겠지요.”

갈사량이 그리는 그림은 바로 이것이었다.

“마교와의 싸움으로 강호가 잔뜩 경직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불세출의 젊은 영웅이 등장한다면 모두들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겁니다. 과거에 맹주님이 무림맹주가 되셨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지요.”

갈사량의 이런 설득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나였다면 분명 일언지하 거절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내 판단과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왔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겠나?”

“물론입니다. 맹주님.”

돌아서 나가려던 갈사량이 문 앞에서 멈췄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이건 아주 사적인 이유입니다.”

“뭔가?”

“한 번 더 맹주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먼저 떠나게 해주십시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갈사량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향한 눈동자에는 오랫동안 숨겨온 격정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왜 이토록 내가 맹주가 되기를 바라는지 이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나를 먼저 떠나보낸 것이 마음속 깊은 한이 되었던 것이다.

“이 마음은 백표, 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백표도 그럴 것이다. 아니, 호위무인이었던 백표는 더 깊은 상처가 남아 있을 것이다.

갈사량이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가 이렇게 깊은 속마음을 드러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오랫동안 그곳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먼저 떠나게 해달라는 갈사량의 말이 계속 뇌리를 맴돌았다.

* * *

고민이 계속되었고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난 천마에게 물었다.

[당신 생각은 어때?]

이때까지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던 그였다. 내게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았기에, 결정을 전적으로 내게 맡겨둔 것이리라.

[내가 여전히 천마였으면 극구 말려야겠지.]

[이유는?]

[자네가 무림맹주인 정파는 정말 상대하기가 끔찍하니까.]

내가 피식 웃었다. 장난처럼 말했지만 나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담긴 말이기도 했다.

[천마가 아닌 지금 자네의 뜻은?]

[해봐도 될 것 같은데?]

[하라고?]

조금은 뜻밖이었다.

[강호 일은 애들에게 맡기고 나와 놀러가자고 해놓고선?]

[물론 그 제안은 여전하다.]

[한데?]

[그래도 할 것은 하고 놀아야지. 우린 애들이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내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자 천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가 망설여지나? 혹시 그 시절이 불행했었다고 생각하나?]

[불행까지는 아니고. 당시에는 열심히 잘 살았다고 생각하니까. 한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다보니 당시의 삶이 후회가 많이 되긴 했지.]

[어떤 사람이라도 마찬가지겠지. 다시 인생을 사는데 어찌 지난 삶이 만족스러울 수 있겠나?]

[그런가?]

[당연히. 그리고 이번 맹주는 다른 맹주가 될 거다.]

[다른 맹주라니?]

[자넨 지난번과는 많이 바뀌었으니까.]

[당신은 정말 내가 맹주가 되기를 바라는군.]

[그래, 자네가 어떤 무림맹을 만들어갈지 기대가 된다. 자네의 그 압도적인 실력으로 새로운 무림맹을 만들어 봐라.]

과연 내가 그런 맹주가 될 수 있을까?

또다시 후회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 날 갈사량을 불렀다.

내가 결정을 내렸음을 짐작하고 그는 잔뜩 긴장한 채 내 말을 기다렸다.

내 결정을 전하는 데 이 말이면 충분했다.

“이제는 나를 먼저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네.”

얼굴 가득 감격이 번져 나가는 그를 보며 미소로 덧붙였다.

“그래, 이만 우리 집으로 돌아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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