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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13화 (21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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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혈상인 (5)

안가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공수찬을 불렀다.

“혹시 돈이 더 필요하십니까?”

“하하, 아니오. 지난번 돈으로 충분 했소. 오히려 돈이 남았소.”

그 돈은 공수찬에게 돌려주지 않고 따로 전장에 보관해 두었다. 근래 돌아가는 급박한 상황들로 볼 때, 갑자기 돈이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때마다 공수찬을 찾을 수는 없었으니, 내가 보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늘 공수잔을 부른 것은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공총관이 뭘 하나 팔아 주어야겠소.”

“말씀만 하십시오.”

공수찬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륙상단을 팔아주시오.”

너무 놀란 나머지 공수찬이 멍한 표정으로 눈만 껌벅였다.

“설마 중원삼대 상단 중 하나인 대륙상단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왜 아니겠소?”

“대륙상단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만.”

“오늘부로 우리 것이 되었소.”

“맙소사!”

공수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런 일로 내가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님을 잘 알았기에, 그는 경악했다.

잠시 마음을 추스른 후에 공수찬이 담담히 말했다.

“처음에 벽공자께서 저를 찾아왔을 때만 해도, 제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땐 나도 그랬소.”

“허허허.”

공수찬이 고개를 내저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공수찬에게 성왕보와의 관계에 대해 알려주었다.

“다시 말해 대륙상단은 그가 우리에게 전향하면서 바치는 일종의 선물 같은 것이군요.”

똑똑한 공수찬은 단숨에 이 대륙상단이 지닌 성격과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렇소.”

물론 제삼의 인물을 내세워 대륙상단을 뒤에서 운영할 수도 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대륙상단이 쌓아올린 역사와 상계에서의 위치까지 우리 것이 될 테니까.

하지만 이번은 상황이 특별했다. 암흑대상이란 자가 배후에 있는데다가, 성왕보 역시 호시탐탐 배신을 꿈꾸는 자였다. 최대한 빨리 쪼개서 팔아버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은밀하게 처리해야겠군요.”

“성왕보가 적극 도와줄 거요.”

애초에 그의 협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말해서 공수찬의 감시하에 성왕보가 팔아치우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또한 성왕보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극비리에 일을 진행시킬 테고.

“알겠습니다. 이후 일은 제가 알아 서 처리하겠습니다. 대신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무력조직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공수찬이 왜 이런 부탁을 하는지 이해했다. 대륙상단과 관련해서 온갖 이권들이 얽혀 있을 것이다. 성왕보가 돕는다 해도 분명 여러 껄끄러운 일들이 벌어질 터, 빠르고 손쉽게 일을 해결하려면 공수찬을 받쳐주는 힘이 있어야 했다.

사실 태성상단에도 광두가 이끄는 태성검대가 있었다. 실력만 따지면 그들로도 충분하겠지만, 태성검대는 외부에 알려진 공식적인 조직이었다. 이번 일은 비밀리에 처리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곧장 백표를 불렀다.

“흑표대가 공총관을 지원해주게.”

“알겠습니다. 이번에 흑표이대를 실전에 투입할 작정이었습니다. 공 총관 일은 제가 직접 흑표일대를 이끌고 돕겠습니다. 대신 흑표이대로 주군을 보필하게 하겠습니다.”

“좋네, 그렇게 하지.”

적당히 굴리면서 실전경험을 쌓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돈 걱정하지 말고 흑표삼대, 사대 계속 양성하도록.”

“네!”

누가 뭐래도 내 조직에선 흑표대가 무력의 중심이었다.

공수찬과 백표가 일처리를 위해 곧 바로 안가를 떠났다.

다음으로 갈사량을 불렀다.

성왕보와의 만남과 그에게 얻은 성과에 대해 상세히 말해주자 갈사량이 크게 기뻐했다.

“대륙상단은 생각지도 못한 성과입니다.”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그야 말로 상상도 못할 엄청난 액수가 될 것이다.

“성왕보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것이네. 하나 놈은 여전히 딴생각을 품고 있겠지.”

“우린 그 점을 이용해야 하겠지요. 비단 목숨만이 아니라 이번 일이 끝나면 암흑대상의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서.”

역시 갈사량은 제대로 사람을 다룰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와 함께 하는 일은 이래서 좋다. 한마디 하면 척척 다 알아들으니까.

“참, 갈군사. 혹시 매혈상인이라고 들어 보았나?”

그러자 갈사량이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인물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갈사량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었다.

“피로 사술을 부리는 여인인데 이번에 나를 상대하기 위해 나섰다고 하네.”

“만약 그렇다면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겠군요.”

“그렇겠지.”

“천망회에 기별해서 혹시 알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래주시게.”

갈사량이 방을 나가자 내가 천마에게 물었다.

[잠시 나 좀 볼까?]

[좋지.]

천기심환공으로 안가의 내 방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이제 나는 천기심환공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혹시 매혈상인에 대해 아나?]

[아니. 그런 이름은 처음 듣는다.]

천마라면 어쩌면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지하상계에서만 통용되는 이름인 듯 보였다.

[하지만 피를 이용한 사술에 대해선 좀 알지.]

[어떤 무공이지?]

[무공이 아니라 한 사람이 떠오르는군.]

[누구지?]

[혈락여제(血樂女帝).]

[혈락여제!]

혈락여제 주희소(周喜紹).

그녀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들어본 적은 있는 이름이었다.

[전대 인물이지?]

[전전대지.]

전전대의 인물임에도 이름을 알고 있는 이유는 그녀가 당시 강호를 피바다에 빠뜨린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따르는 수천 명의 사파인들을 이끌고 사도일통을 꿈꾸다 결국 정파연합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혈락여제가 피를 이용한 사술을 사용했다.]

[어떻게 그녀를 떠올렸지?]

[당시 혈락여제가 본교에 도전장을 보냈다고 들었다. 이 미친년이 같은 혈(血)자가 들어간다고 우리와 맞먹으려 든 거지.]

[하하하.]

[웃지 마!]

[아무튼 매혈상인이 혈락여제의 후예일 수 있겠군.]

성왕보는 매혈상인이 여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혈락여제의 후예일 가능성은 더욱 높았다.

천마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금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심상치 않아.]

[왜지?]

[혈락여제의 능력은 아주 특별하다고 들었다. 피를 이용한 사술은 우리가 상상도 못한 것들이라고 했지.]

나는 알 수 있었다. 천마가 그녀의 무공에 관해 좀 더 아는 바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자세히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이 사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긴, 오죽 자신이 있었으면 마교에게까지 도전장을 보냈겠는가?]

일반적으로 마공이 사공에 비해 한 수 위에 있었다. 무공의 상성에 있어 사공에 비해 마공이 유리하다는 뜻이다.

한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혈천신교에서 보낸 고수가 혈락여제를 죽이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실제 역사에서도 혈락여제를 죽인 것은 혈천신교의 고수가 아니라 정파의 고수들이었으니까.

뭔가 사정이 있었으리라.

어쨌든 그와 관련해서 물으면 자존심이 상해 천마가 방방 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더는 묻지 않았다.

평소와는 다른 천마의 걱정이 내 추측에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만약 그 매혈상인이란 여인이 혈락여제의 후예라면…… 이번 적은 정말 까다로운 적이 될 거다.]

과거의 일을 떠나 무공에 있어선 안하무인이라 해도 좋을 천마가 이렇게까지 조심하는 상대라면, 분명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혈락여제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녀를 아는 자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 없지.]

그때 한 가지 방법이 뇌리를 스쳤다.

[아, 어쩌면 거기 있을지도 모르겠군.]

[어디?]

[정의각 기밀문서보관소.]

[뭐해, 어서 안 가고?]

[거긴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서.]

[그래서? 못 간다고? 아니, 그 정도 실력도 안 되나?]

[무림맹 최고정보기관의 기밀이 보관된 장소다. 쉽게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이 자식아! 너희 무림맹에 들어가는 일을 왜 내게 묻는 거냐?]

[하하. 당신이 고수잖아. 한 수 가르쳐 달라는 말이지.]

[미친! 어림없다!]

나는 알고 있었다. 천마의 무공 중 잠입에 특화된 대단한 경신술이 있음을.

이번 기회에 그것을 전수받을 생각이었다. 굳이 노력하면 내 실력으로도 잠입할 수 있겠지만, 쉬운 길 두고 굳이 어려운 길로 갈 필요는 없었으니까.

[당분간 못 보겠네.]

[왜?]

[잠입할 방법을 연구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너무 외로워하지 말고 잘 견디고 있어.]

내가 천기심환공을 깨고 나가려 하자 천마가 다급히 나섰다.

[이 자식아! 잠깐!]

[왜?]

[얼마나 걸리는데?]

[나도 모르지. 한 달? 두 달? 어쩌면 더 걸릴 수도 있고. 암튼 나중에 봐.]

잠시 사이를 두고 천마가 버럭 소리쳤다.

[빌어먹을! 젠장! 내 밑천이 다 뜯기는구나! 악마 같은 놈!]

[후후, 무슨 말이야?]

[닥쳐! 다 알면서 모른 척하기는! 지금부터 전수할 무공은…… 빌어먹을!]

[하하하.]

* * *

그날 밤 나는 정의각 비밀문서보관소에 들어올 수 있었다.

갈사량이 최근까지 정의각의 총군사를 지냈기에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한 가지 무공이 더해졌다. 천마는 자신의 경신술인 혈천군림보(血天君臨步) 중에서 어딘가 잠입하는데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잠영보(潛影步)를 전수해 준 것이다.

갈사량의 정보와 잠영보 덕분에 손쉽게 이곳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시대별로 정말 많은 정보들이 보관 되어 있었다. 다행히 혈락여제과 관련한 내용은 가장 높은 등급의 극비문서가 아니었다.

만약 최고 등급의 극비문서였다면 이곳 문서보관실에서 다시 한 단계를 더 거쳐서 또 다른 보관소로 들어가야 했는데, 그곳은 아무리 잠영보를 익혔다 해도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매일 바뀌는 정의각의 고유암호를 알아야 했기 때문에, 단지 잠입만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때려 부수고 들어갈 수는 있어도 은밀히 들어갈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여기 있군.”

강호의 큰 혈사들이 정리된 책장에서 혈락여제와 관련한 문건을 찾아냈다.

그곳에 그녀에 관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어떤 협겁을 일으켰는지, 또 무공과 관련해서도 상세히 적혀 있었다.

[가족이 있나?]

[딸이 하나 있었다고 되어 있군.]

[당시 그 아이도 함께 죽었나?]

[딸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군.]

[그렇다면 살아남았을 수도 있겠군.]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혈락여제의 무공에 대해 읽었다.

혈종비연공(血宗秘練功).

혈락여제의 독문무공이었다. 정말 천마의 말처럼 수많은 사술을 부릴 수 있었다.

특히 피와 관련된 수법들이 많았다. 상대의 피로 상대의 몸을 조종하는 괴이한 수법부터, 피 한 방울로 상대의 목숨을 뺏어갈 수도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띄는 하나의 사술이 있었다. 특이하게 대법이라 이름 붙은 그것은 시혼대법이었다.

죽은 자의 피만 있으면 그를 죽인 상대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덧붙인 설명에 따르면 변장이나 인피면구까지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가 이 대법으로 내 진면목을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내가 그녀라면 반드시 이 방법을 사용했을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 * *

매혈상인은 여신상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거의 벌거벗다시피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여신상의 무서움과 그녀의 관능미가 묘하게 잘 어울렸다.

그때 그곳으로 잿빛 눈동자를 지닌 사내가 들어왔다.

“놈이 누군지 알아냈습니다!”

사내의 보고에 여인이 눈을 번쩍 떴다.

“누구냐?”

“산동 벽씨검문의 벽리단입니다.”

“벽씨 검문?”

생각지 못한 이름에 매혈상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일전에 정의각의 신입군사로 들어 왔다가 책임군사가 된 인물입니다.”

“갈사량 밑에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두웠군.”

“아주 똑똑한 놈입니다. 역으로 자신의 수하 밑에 있을 줄 누가 예상이나 하겠습니까?”

매혈상인이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가 훤히 드러났다.

사내가 붉은색 장삼을 가져와서 여인에게 걸쳐주었다.

“산동에는 지금 누가 있나?”

“그의 부모와 정혼자가 살고 있습니다.”

“정혼자?”

“네. 태중언약을 한 여인이 있습니다.”

“부모에 정혼자에. 주렁주렁 짐을 달고서 감히 우리와 맞섰단 말이지?”

“게다가 그 여인은 산동제일미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고 합니다.”

매혈상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내놈들 속마음이야 똑같지. 여자가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포기하기가 어렵지. 우리에겐 잘된 일이다.”

그녀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가자, 산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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