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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88화 (188/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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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비술(1)

오랜만에 천문산에 올랐다.

나는 천천히 주변 경치를 즐기며 선학봉에 올랐다.

처음 왔던 그때가 엊그제처럼 느껴졌다. 이곳에서 나는 태양사초와 암왕사로 만독불침을 이뤘고 일갑자의 내공을 얻었다. 그리고 백골이 된 고인의 비급에서 선학비술을 얻었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기연을 얻었던 곳이다.

정상에서의 풍경은 여전히 멋지고 아름다웠다.

내가 크게 심호흡을 하자 천마도 함께 심호흡을 했다.

[후아아압, 좋다.]

[당신도 이 상쾌함이 느껴지나?]

[그럼. 네가 느끼는 것 그대로 나도 느낀다.]

그가 어느 정도 나와 감정을 교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교류라는 것이 똑같이 느낀다는 것인지, 아니면 내 감정을 알아차린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모호한 경계선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이런 경치는 정말 오랜만이군.]

천마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나만큼이나 그의 감정 역시 고조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는 왜 이곳까지 오고 싶었던 것일까? 선학비술에서 대체 어떤 느낌을 받았기에.

[이곳 정상의 바위가 두루미 모양이라 선학봉이라 불리는 곳이네.]

[선학봉, 그래서 선학비술이라 이름이 붙었군.]

[그렇지.]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성의 없이 무공 이름을 지었군. 그 대단한 무공을!]

[하하하.]

[이곳에서 선학비술을 얻은 건가?]

[두루미 꼬리가 알려줬지.]

[뭐?]

내가 천천히 바위의 꼬리 부분으로 걸어가 훌쩍 천장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보이지 않는 날개가 달린 것처럼 나는 허공에 둥실 떴다.

고수라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지만, 지금 내가 보여주고 있는 이 한 수는 굉장히 어려운 한 수였다.

보통 일반적으로 땅을 도약해서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보다 천천히 허공으로 걸어 올라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서, 이렇게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수법이다. 엄청난 내공과 경공술이 있어야만 가능한 한 수. 내공이 받쳐주니 이제 예전의 화려했던 실력들이 하나둘씩 발휘되고 있었다.

내 몸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서 꼬리 아래 부분에 숨겨진 동굴 입구로 허공을 걸어서 들어갔다.

[이 허세 가득한 신법이라니.]

[그럴 만한 곳에 동굴이 있지 않나?]

[과연 이런 곳에 동굴이 있었군.]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동굴이 있다는 사실에 천마가 깜짝 놀랐다.

[안에 들어가면 더 놀랄 거야.]

천천히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선 눈길을 잡아끄는 중앙의 연못, 그곳의 물은 여전히 맑았다.

벽에 난 작은 구멍들에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사방에 이름을 알 수 없는 풀과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 동굴 속의 선경에 천마가 깜짝 놀랐다.

[동굴 속에 이런 곳이 있다니! 내 평생 이런 곳은 처음이다.]

[정말 대단하지?]

[어떻게 발견했지?]

[운이 좋았지.]

그러자 천마가 한차례 자조적인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런 곳을 운으로 발견한다고? 말도 안 돼.]

[운이 아니라면?]

[단순한 운이 아니라 네 운명이다. 이곳으로 와야 하는 운명, 그 운명이 너를 부른 거다.]

[의외인걸? 천마가 운명론자라니.]

[넌 아닌가?]

너무나 당당히 되물어서 나 역시 운명론자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운명론자가 아니다.

오히려 젊은 시절에는 ‘운명 따윈 노력으로 극복하는 거다’란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천하제일을 꿈꾸며 수련하던 시절이었기에 그러했다.

[운명론에 대해선…… 나도 모르겠다.]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정말 사람에게 운명 같은 것이 있는 것인가?

만약 없다면 내가 벽리단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과연 난 왜 다시 벽리단으로 태어난 것일까? 천마의 말처럼 난 과연 이곳에서 선학비술을 익힌 것이 운명이었을까?

천마를 만나기 전까진 그것에 대해 아주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의문이 든다. 과연 이 모든 일에 어떤 운명 같은 것이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

[난 이곳에서 선학비술을 얻었다.]

나는 고인을 묻어준 곳에 가서 큰절을 했다.

“오늘은 다른 이와 함께 왔습니다. 인사받으시지요.”

그러자 천마가 말했다.

[본좌는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빼도록.]

물론 그의 말을 들어줄 내가 아니었다.

“함께 온 이도 뵙게 되어서 영광이라고 합니다.”

[이 자식아! 없는 말 지어내지 마라. 난 그와 상관없다!]

[그런데 왜 이곳을 그렇게 오고 싶었나?]

잠시 사이를 두고 천마가 말했다.

[이상하게 선학비술이 낯설지가 않았다.]

[낯설지가 않다고? 이 무공은 분명 마공이 아닌데?]

[그래서 나도 이해할 수 없다는 거다.]

[혹시 이 무공을 만든 사람이 당신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묻어준 사람 누군지 모르지?]

[발견했을 때는 백골이었으니까. 한데…… 어쩌면 알아낼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처음 이곳 천문산에 왔을 때, 산 아래 작은 객잔에서 하루 묵었다.

그때 객잔 주인장이 그런 말을 했었다.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들었는데 이곳 천문산에 굉장한 고수가 와서 수련을 했다고.

그때 무슨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 중 다른 누군가는 그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한번 알아보자.]

* * *

철기단주 옥당추가 총군사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노선생이 밝은 얼굴로 그를 맞았다.

“어서 오시오.”

“잘 지내셨소?”

옥당추 역시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오.”

“아닙니다. 한데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신 겁니까?”

“좋은 차가 선물로 들어와서 말입니다. 옥단주께서 차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옥당추는 노선생이 차나 한잔하자고 자신을 부를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오늘 자신을 부른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은 차를 좋아하지도 않았으니까.

두 사람이 시비가 가져온 차를 마셨다. 향부터 천천히 음미하는 노선생에 반해 옥당추는 단숨에 차를 마셨다.

“어떻습니까?”

“맛이 아주 좋습니다.”

“하하, 다행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다 노선생이 자연스럽게 멸마단 이야기를 꺼냈다.

“멸마단의 모집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강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조직이 만들어지고 있지요.”

현재 무림맹 중요 삼대 조직의 수장 중 일인인 그에게 듣기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것을 모를 리 없었건만 노선생은 모른 척 멸마단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주로 멸마단이 얼마나 강한 조직이 될 것이냐에 대해서였다.

“제대로 소속감을 가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요.”

옥당추가 넌지시 멸마단을 깎아내리자 노선생이 단호히 반박했다.

“소속감은 이미 어떤 조직보다 강력합니다. 마교타도의 기치 아래 모인 조직이니까요.”

노선생이 가만히 옥당추를 응시하며 말했다.

“저는 마교와 결탁한 세력이 맹의 배후에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모조리 색출해서 엄벌에 처할 겁니다.”

마치 자신을 향해 말하는 것 같아서 옥당추는 내심 불쾌했고 찝찝했다.

“그러셔야지요.”

“그러기 위해선 옥단주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저를 많이 도와주십시오.”

“혼신을 다하겠습니다.”

더는 그 부분에 관해 말하고 싶지 않았기에 옥당추가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참, 이번에 뇌옥에서 탈옥사건이 생겼다면서요?”

“네, 내부자가 도운 정황이 있어서 조사 중에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하지만 습격해온 자들은 모두 없앴습니다.”

노선생은 그들이 다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모조리 소탕한 것처럼 말했다. 옥당추 역시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할 것이란 확신이 있어서였다.

옥당추는 무림맹의 배신자다.

한번 배신한 자는 또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법, 흑막 조직이 배신자를 다룰 때는 배신자답게 다룰 것이라 여겼다. 따라서 그에게 모든 정보를 주고 있을 리가 없다.

옥당추가 자리를 뜨기 전에 노선생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사람이니 한 번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음에도 그 기회를 잡지 않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지요.”

옥당추는 이 말이 자신을 두고 한 말임을 알 수 있었다.

“하하,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그렇게 옥당추가 집무실을 떠났다.

노선생은 창가에 서서 옥당추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옥당추가 변절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당시 주철룡이 가장 강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였다. 자연스럽게 권력에 야합한 것이다.

노선생은 그에게 압박을 가할 것이다. 이쪽의 힘이 더 크다고 느끼면 그는 다시 이쪽으로 돌아설 것이다.

그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가 이런 사람이기에 앞으로 그를 이용할 수도 있을 테니까.

* * *

다행히 예전에 묵었던 객잔 주인이 나를 기억했다.

그가 마을 사람들을 소개해주어서 좀 더 쉽게 마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일을 아는 사람은 남아있지 않았다. 계속 허탕을 쳤고, 이제 그만 포기하려던 차에 마을의 약초꾼을 만났다. 멀리 약초를 캐러 갔다가 때마침 돌아온 것이다.

“당시 산에 있었던 무림인에 대해 알고 있네.”

“아! 드디어 그 일을 아는 분을 만났군요.”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들었지.”

“아시는 바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음, 그러지. 우리 집안은 대대로 천문산 일대의 약초를 캐며 살아왔네. 당연히 천문산에서 무공수련을 하는 무인들을 만나게 되지. 아버지에게 듣기로 자네가 찾는 그 무인은 선학봉 부근에서 무공수련을 했다고 했네. 처음에는 보통 무림인들이 가지고 다니는 도보다 훨씬 더 큰 도를 차고 와서 도법을 수련했다고 했지. 그 무인이 도법을 수련할 때면 산이 진동하고 뇌성벼락이 쳤다고 했네.”

“뇌성벼락이 쳤다고요?”

“그렇다네. 다섯 번의 천둥소리가 연속해서 들리면 곧이어 벼락이 쳤다고 했지.”

“다섯 번의 천둥소리라.”

다섯 번의 천둥소리?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무공 같은데?

“그렇게 몇 년을 도법수련을 하는 것 같더니 언젠가부터 천둥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고 했네. 아버지가 우연히 그를 만났을 때 도법이 아니라 권법을 수련하고 있었다고 했지. 내가 기억하는 바는 여기까지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네. 오랜만에 옛이야기를 했더니 아버지 생각이 나는군. 가서 술이나 한잔해야겠네.”

먼저 자리를 뜨는 그에게 내가 물었다.

“한데 지난 이야기를 어떻게 다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다시 선학비동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동안 천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동에 들어가자 천마가 비로소 말했다.

[다시 가서 정중히 절을 해라.]

나는 이유를 묻지 않고 다시 고인에게 절을 했다.

이윽고 천마의 입에서 놀랄만한 사실이 흘러나왔다.

[우리 조부이시다.]

[뭐라고?]

천마를 만난 이후 가장 놀란 순간이었다.

[다시 말해 전전대 천마이시지.]

[어떻게 알았지?]

[다섯 번 천둥소리가 들렸다는 무공이 바로 혈뢰도법(血雷刀法)이니까. 할아버지의 독문무공이셨다.]

[혈뢰도법!]

이제야 정확히 기억났다. 문헌에 남아 있는 마교의 기록에서 본 마공이었다.

내 몸에 깃든 천마의 주무공은 혈뢰천화공 중에서도 검술을 사용했다. 하지만 전전대 천마는 도법을 사용한 것이다.

[왜 자꾸 선학비술에 끌렸는지 이제야 알 것 같군.]

조부가 창안한 무공이었기에 뭔가 닿아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선학비술을 사용하다가 이것이 아주 패도적인 사람이 만든 무공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신네 마공은 전혀 느낄 수가 없어.]

[그렇겠지.]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나?]

하지만 천마는 그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뭔가 이와 관련한 사연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집안 문제란 생각에 나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언젠가 알려줄 마음이 생기면 내게 말해줄 것이다.

천마가 화제를 돌렸다.

[저건 뭐냐?]

선학비동 한옆에 쌓아둔 것은 만년한철이었다.

[만년한철이다.]

산동야상의 야천의 비밀창고에서 회수해 온 바로 그것이었다.

[무슨 낭비냐? 저 귀한 것을 저리 쌓아두다니.]

[딱히 사용할 곳이 없고 해서.]

[계속 여기 둘 거야?]

[아니면?]

[뭐라도 만들어야지. 생각해둔 것 없나?]

[있긴 한데. 알다시피 만년한철을 다룰 줄 아는 장인이 드물어서.]

잘 다루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중원에 만년한철 자체를 다룰 수 있는 장인이 채 열 손가락이 되지 않았다. 그중 내가 알고 있는 몇은 이곳에서 너무 먼 곳에 있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그들에게 다녀올 여유는 없었다.

[몽땅 다 챙겨라.]

[왜?]

[이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내가 아는 장인이 있다.]

[좋아.]

나는 군말 없이 만년한철을 챙겨서 짊어졌다. 천마의 말처럼 이것을 이대로 두는 것은 너무 큰 낭비였으니까.

나는, 아니 우리는 그길로 곧장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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