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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79화 (179/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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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해법(2)

천마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아마도 몇 번은 망설였던 질문인 듯 보였다.

[나를 죽인 마지막 초식이 무엇이었나?]

과연 듣고 보니 왜 이리 조심스러웠는지 알 수 있었다. 자존심이라면 하늘을 찌를 천마였으니까 쉽게 묻기 어려운 질문이었으리라.

[대멸겁.]

나는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대멸겁, 대멸겁…….]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했다. 이것으로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가 비록 내 머릿속에 있지만, 내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한다는 것을.

[대멸겁 역시 추혼수라검술인가?]

[그렇다, 마지막 초식이지.]

[아깝군. 한수만 버텼으면 이길 수도 있었겠군.]

확실히 그랬을 것이다. 대멸겁조차 통하지 않는 상대라면, 내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였을 테니까.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자네가 마지막에 펼친 무공은 무엇인가?]

[흥!]

천마가 코웃음을 쳤다.

[왜 그러나?]

[동정 따윈 사양이네.]

[동정이 아니라네.]

[…….]

[자네와 함께라면 큰돈을 벌 수 있겠군.]

잠시 사이를 두고 천마가 물었다. 동정은 사양해도 궁금증은 사양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무슨 뜻이냐니까!]

[강호인들을 모아두고 돈을 받는 거지. 한 냥만 내면 천마가 삐친 모습을 보여주겠다! 수백만 냥은 벌 수 있을 텐데. 한 사람당 다섯 번씩은 다시 보러 올 테니 수천만 냥을 벌 수 있겠네.]

그제야 내 말뜻을 알아차리고 천마가 버럭 소리쳤다.

[이런 미친놈아! 그걸 말이라고!]

[하하하.]

한바탕 웃고 나서 내가 말했다.

[자네 무공은 정말 무서웠네. 그렇지 않았다면 대멸겁을 사용하지 않았겠지.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대멸겁은 잘못 사용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초식이라네. 그걸 사용했어야 했으니, 자넨 정말 강한 사람이었지.]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천마가 나직이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 * *

백표는 불루에서 갈사량을 만나고 있었다.

그로부터 급히 보자는 기별이 왔던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주군과 연락이 끊어졌네.”

“뭐라고요?”

백표가 깜짝 놀랐다. 갈사량이 대법에 대해 말해주었다. 벽리단이 흑시에 가면서 내부사정을 갈사량에게 기별했던 것이다.

한데 그 이후에 소식이 끊어졌다.

“무림맹 내부의 세작을 통해 만병고를 조사했지만, 외부에서 봐선 평소와 다를 바 없다고 했네.”

“으음.”

백표가 신음성을 흘렸다. 그 역시 오랫동안 조직생활을 해보았기에 오히려 더 좋지 못한 보고임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분명 문제가 터졌을 텐데, 내부적으로 은밀히 해결되었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지금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있다네.”

옆에 있던 천망회주 반서정이 한마디 거들었다.

“본회의 모든 정보망을 가동했어요. 곧 어떤 소식이 들어올 거예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죽립을 눌러쓴 사내 하나가 다루로 들어왔다.

그는 천망회 소속의 무인이 아니라 갈사량의 수하였다. 갈사량은 중원 곳곳 중요한 위치에 세작과 비선을 두고 있었는데, 지금 자신을 찾아온 세작은 무림맹 내부에서 활동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갈사량에게 뭔가를 전한 후 그곳을 나갔다.

“주군께서 현재 지하뇌옥에 갇힌 것 같네.”

지하뇌옥이란 말에 백표와 반서정이 깜짝 놀랐다.

“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만병고 지하에서 폭발이 있었다는군. 아마 그 폭발에 휩쓸렸던 것 같네.”

백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이 다치셨습니까?”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신 것 같다네.”

“휴우.”

백표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갈사량이 반서정에게 물었다.

“혹, 뇌옥에 심어둔 사람이 있습니까?”

“네, 있어요.”

“그 사람을 움직여서 주군과 접선해 주시오.”

“알겠어요.”

“이럴 때일수록 신중히 움직여야 합니다.”

갈사량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말은 그야말로 사족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녀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평생을 정보조직을 운영해오지 않았는가?

반서정은 갈사량의 다급한 심정을 이해했기에 오히려 더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명심할게요.”

명령을 내리기 위해 그녀가 주방으로 사라졌다.

갈사량과 둘만 남자 백표가 나직이 물었다.

“저희들이 들어가야 할까요?”

당장이라도 흑표대를 이끌고 뇌옥으로 구출작전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림맹 지하뇌옥의 경계는 상상을 초월했으니까. 아마도 흑표대 상당수가 희생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구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벽리단을 구해오고 싶었다.

갈사량이 차분히 대답했다.

“주군께서 무사하시다니 우선은 기다려보세. 대신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는 해두게.”

“알겠습니다.”

백표는 갈사량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가벼이 망령되게 행동해선 안 될 일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계획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벽리단을 믿어야 한다.

* * *

“……아버지.”

사내는 죽어가고 있었고, 노인은 그 모습을 복잡한 심정으로 내려 보고 있었다.

“…… 부디 소선이만은 잘 보살펴주십시오.”

손자를 부탁하는 아들의 마지막 부탁에도 노인의 눈빛을 차갑기만 했다. 노인은 스스로 자책했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나?’

아들과의 갈등은 너무나 깊었다.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아들이 미웠고, 그래서 괴로웠다. 아들을 외면했고, 미워했다. 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서로 차가워졌다.

아들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죄송했습니다, 아버지. 평생을 아버지와 다퉜지만…… 다음 생에서도 아버지 아들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아들의 숨이 끊어졌다.

노인의 입에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마지막 순간 아들이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망할 놈!”

죽을 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반칙이다. 더구나 평생을 갈등해온 상대에게는 더욱.

손자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잘 돌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나 가슴이 벅찼다. 진작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였다면.

노인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빌어먹을!”

이십여 년의 세월을 뛰어 넘은 노인은 동굴 구석에 앉아 있었다.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그의 마음속은 과거의 회한이 태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눈 하나 까닥하지 않고 수천 명을 죽여 버릴 수 있기에, 그래서 아들과 손자에 대한 감정은 진실하기를 바랐다.

이 감정마저 메마른다면…… 자신에게 인간의 감정 따윈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

그때 사내가 빠르게 다가왔다. 그의 가볍고 경쾌한 발소리에 노인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다행히 천공자의 목숨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노인이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분간은 무공은 사용하지 못할 겁니다. 천란에서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할 거고요.”

“살았으면 됐다.”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좀 더 쉬시지요.”

“혹시 술 있나?”

“제가 마시던 것이 있습니다.”

“가져오게.”

“안 드신 지 꽤 되시지 않으셨습니까?”

“오늘 같은 날은 한잔 마셔야겠네.”

“알겠습니다.”

사내가 동굴 가장자리에 가서 보관되어 있던 술을 가져왔다.

노인이 술을 마셨다.

“쿨럭!”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어서인지,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노인이 다시 술을 들이켰다. 이번에는 한 번에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이 마셨다.

사내는 걱정스럽게 노인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노인은 잘 알았다. 사내의 저런 표정은 진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모두 훈련된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직접 가르친 것이었다.

아들이 죽고 난 후, 노인은 정을 줄 상대를 만들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은 천소선마저 버겁게 느껴졌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것이 지금까지 천소선을 키워오면서 노인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것이 올바른 판단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천소선이 괜찮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팠다.

“가서 술 더 가져오게. 오랜만에 한잔 마셔야겠네.”

그리고 머릿속을 휘젓는 이 털어버리고 싶은 감정들은 복수심에 뒤섞어 날려버릴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말이다.

* * *

[이봐.]

천마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의 처지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에 갇혀 있기만 하다면 답답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것도 아닐진대.

[바빠.]

[바쁘긴 뭐가 바빠? 안 바쁜 것 뻔히 아는데. 잠깐이면 돼!]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천마가 반복해서 소리쳤다.

[천하진, 천하진, 무림맹주 천하진, 천하진, 사랑을 믿는 천하진, 천하진…….]

중간에 사랑을 믿는 천하진이란 말에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시끄럽다. 알았으니까 말해.]

[전에 네가 말했던 것,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무슨 말?]

[내가 사랑을 믿지 않아서 졌다는 말.]

[정확히 말해야지. 사랑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네가 이기적이어서 졌다고 했지.]

[내가 생각해봤는데…… 그게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다.]

[좋아, 인정한다. 내가 나만 아는 이기적인 놈이라고 치자. 왜 그것 때문에 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그냥 했던 말이었는데.]

[이 자식이!]

확실히 천마를 놀려먹는 재미가 있다. 아마 비슷한 연배에 죽어서 그럴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천마가 내게 죽었을 때가 몇 살이었을까? 내가 죽었던 때와 비슷한 연배였거나, 좀 더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봐, 천광이.]

[이 자식아!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했지!]

[그래, 그럼.]

내가 대화를 중단했다.

잠시 후 목마른 천마가 우물을 팠다.

[무슨 말인데?]

[…….]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말해. 이 자식아!]

더 자극했다가 오늘 내내 투덜거릴 것이기에 내가 하려던 말을 했다.

[당신과 나, 우리 무공은 굉장하지. 돌도 자르고, 쇠도 자르고. 마음만 먹으면 절벽도 무너뜨릴 수 있지.]

[잘도 제 입으로 그런 말을 하는구나. 그런데?]

[하지만 결국 우리가 상대하는 것은 사람이지 않나?]

[뭐?]

[우리가 쇠붙이나 돌멩이 자르려고 무공을 배운 것은 아니니까.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죽이려고 배운 것이잖아?]

[그런데?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고?]

[넌 전혀 이해를 못하는군. 바로 그 말이야. 우린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고.]

[그런데?]

[결국 믿음의 문제란 것이지. 우리가 서로를 죽일 수 있는 마지막 종이 한 장의 실력 차이는, 초식의 차이가 아니란 거지.]

[마음의 문제다?]

[그렇지.]

잠시 천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정공과 마공을 넘어서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었다. 또한 그나 나나 무공의 극의에 이르렀기에 가능한 이야기였고.

한참 후 천마가 물었다.

[정말 믿나? 궁극의 싸움에선 결국 이기적인 놈이 진다고.]

[아니.]

[뭐?]

[성격이 무슨 상관이야. 강한 놈이 이기는 거지.]

[이 미친 새끼가! 날 놀려?]

버럭 하는 천마에게 내가 말했다. 조금 전의 대답은 장난기가 섞여 있었지만, 지금부터 하는 이 말은 내 진심이었다.

[다만 바랄 뿐이다. 그 강한 놈이 조금은 인간적이기를.]

또 다시 흐르는 침묵. 과연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와 전쟁을 하던 시절의 그 천마와는 조금 달라졌음을.

당시의 그는 악인이었다. 마교의 절대자였기에, 그 자리가 주는 권위와 고상함이 어떤 매력으로 비쳤을 뿐, 그의 본질은 뼛속까지 마인이었고 악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때와 아주 느낌이 달랐다. 새로운 삶을 살면서 내가 달라진 것처럼, 그도 뭔가 달라진 것이다.

[무공에 그딴 쓸데없는 의미나 붙이니까 너희가 한심하고 멍청한 정파 놈인 거다.]

[어쨌든 이 한심한 멍청이가 당신을 이겼잖아?]

[빌어먹을! 젠장! 분하군. 너 같은 미래의 정파 꼰대 놈에게 죽다니!]

나는 피식 웃으며 단전의 내공을 푸는 데 집중했다.

사실 그를 귀찮게 여기는 듯 굴고 있지만 천마와 대화를 나누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누가 들으면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와의 대화가 솔직히 즐겁다.

그는 보살펴 주거나 지켜줘야 할 대상이 아니다. 굳이 잘 보일 필요도 없다. 게다가 그와 난 비슷한 무공 경지였고 과거에는 한차례 생사대전까지 펼쳤었다.

막연한 예감이 든다.

그와의 만남은 내 무공을, 내 인생을 또 한 번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아니, 어쩌면 이미 그 변화는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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