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67화 (167/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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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대법(4)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전생의 나였다면 쉽게 믿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믿는다. 나 역시 다시 살아났으니까.

이미 여섯 번의 이혼대법이 있었다는 사실로 볼 때, 나와는 달리 아예 아기로 태어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체 왜 천마를 다시 살려낸 것일까? 이 배후세력이 혈천신교의 잔당들이었단 말인가?

내 시선이 천소선을 향했다.

천소선은 배후세력에서 수뇌부에 속한 자다. 그것도 핵심적인. 그런 그에게서 전혀 마기를 느낄 수가 없다. 그는 혈천신교의 후예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천마를 이용해서 강호를 일통하기 위해서?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만큼 놈들은 충분히 강한데? 이미 무림맹주조차 자신들이 세워서 좌지우지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 의문의 해답은 찾을 수가 없었지만 한 가지를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마를 이대로 살려둘 것인가?

천소선의 치료가 끝나면 당장 천마를 베어버려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천마가 깃든 죄 없는 아이도 함께 죽게 된다.

벽리단이 된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지고 있었다.

저 천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이 조직이라면, 온갖 종류의 지원으로 아마 나보다 더 빠른 성장을 할지도 모른다.

이대로라면 그는 전생의 그보다 더 강해진다는 뜻.

그게 아니라도 어떤 불순한 의도로 천마를 다시 살렸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때 아이가 불쑥 말했다.

“나를 죽일지를 고민하고 있군.”

그는 정확히 내 마음속 갈등을 읽어냈다.

“헛된 고민하지 말게. 자네는 나를 죽일 수 없으니까.”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그건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그와 내 눈빛이 허공에서 얽혔다.

여유를 부리고 있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놈은 죽을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때 천소선이 이쪽을 보며 말했다.

“치료가 다 끝났소.”

내가 재빨리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정신을 차린 후였다.

“근이냐?”

“……네.”

장근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 천소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이는 천소선을 알아보았다.

“공자님?”

일 년 전에 왔다고 했으니 천소선을 여러 번 보았을 것이다.

나는 혹시나 천소선이 어떤 수작을 부렸을까 한 줄기 내력을 주입해서 아이의 몸속을 살폈다. 다행히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내가 장근의 귓가에 속삭였다.

-네 엄마가 기다린다. 나와 가자.

엄마란 말에 장근이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곧바로 등을 한번 쓰다듬자, 아이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지금 아이에게 긴말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눈을 떴을 때, 엄마를 만나게 될 테니까.

이제 남은 일을 처리할 때다.

내가 천소선을 돌아보았다. 그는 천마가 깃든 아이 옆에 서 있었다.

“약속대로 살려주시오.”

“네가 믿는 것은 뭐냐?”

“무슨 뜻이오?”

“설마 순진하게 내가 진짜 너를 살려줄 것이라 믿은 것은 아닐 테고?”

천소선을 죽이고, 일호와 정소까지 제거한 후, 천마가 깃든 저 아이를 데리고 이곳을 떠난다? 이후 아이에게서 천마를 분리해 낼 방법을 찾아낸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어차피 이 배후세력과의 싸움은 서로 끝장을 봐야 할 싸움, 굳이 천소선과 같은 후환을 남겨둘 필요는 없었다. 약속? 이 상황에서 아이는 못 죽여도, 약속은 어길 수 있지.

바로 그때였다.

조용히 법당 문이 열리며 한 노인이 들어섰다.

“나 때문일 것이네. 내가 이 시간에 맞춰서 오기로 했으니까.”

노인을 보는 순간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자구나! 배후세력의 수장이.

그만큼 노인은 대단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음으로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노인의 기도를 살펴서 내린 결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나와 동수이거나 반 수 위, 혹은 반 수 아래란 뜻.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가 장근을 데리고 싸울 수는 없는 상대.

다행히 저쪽도 지켜야 할 아이가 있었으니, 그건 피장파장이었다.

노인은 무공만 강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 자체가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분명 천마 백천광만큼이나 강한 사람이다.

하긴, 그 정도 되는 인물이니까 천마를 살려낼 생각을 한 것이겠지.

노인이 천소선에게 물었다.

“괜찮으냐?”

“네.”

노인이 성큼성큼 걸어서 천소선과 영혼이 옮겨진 아이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노인이 그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노인이 이번에는 아이에게 물었다.

“괜찮소?”

“지겹지 않았다네. 아주 흥미로운 친구 덕분에.”

그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노인의 시선이 그 뒤를 따라 내게 향했다.

“이제부터 우리들의 선택에 따라 수십 가지의 일들이 벌어질 수 있겠지. 그중 두 가지만 제시하겠네.”

“말씀하시오.”

“첫 번째는 나와 싸우는 것이네. 내 판단으로는 서로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싸움이 될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나 역시 같은 생각이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아이는 죽게 될 거네.”

“저 아이도 죽겠지요.”

우린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두 번째는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네. 오늘은 그 아이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게. 나 역시 우리 사람들을 데리고 조용히 떠나겠네.”

그가 등장한 이상 오늘은 여기까지란 생각이 들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질문이구려. 두 번째를 선택하겠소.”

“현명하군.”

내가 노인에게 말했다.

“약속 하나 해주시오.”

“뭔가?”

“다시 영혼을 옮기면 저 아이는 지금처럼 살려주시오. 살릴 수 있는데 죽인다면, 너무 쓰레기 같은 짓이잖소?”

“그 말은 뭔가? 동정심인가? 아님 난 이렇게 착한 사람이야, 뭐 그런 자기 과시 같은 것인가?”

“기준이오.”

“기준이라?”

“당신이나 나나, 지금껏 죽인 숫자를 생각하면 끔찍한 살인마들이지. 하지만 우린 그 살생의 기준이 다르지 않소? 우리가 한편에 서지 않고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이유기도 하고.”

“하하하, 결국 자네가 좋은 사람이란 말이군.”

그가 어디 몰라서 물었겠는가? 그는 내게 질문을 던지면서 나에 대해 파악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순박한 듯, 아까 천마가 말한 정파 꼰대처럼 다소 꽉 막힌 성격을 보여주었다. 다소 순진한 척 보이는 것이 앞으로 싸움을 해나가는 데 유리할 테니까.

“기왕 이렇게 만난 김에 한두 가지 더 물읍시다.”

“얼마든지 묻게.”

“왜 직접 무림맹주 자리에 앉지 않았소?”

아마도 전생의 나만큼이나 강력하게 무림맹을 다스릴 수 있었을 것이다.

노인이 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넨 맹주가 되고 싶나?”

아니었지만, 마치 그렇다는 듯 그에게 되물었다.

“당신은 아니오?”

“나는 아니라네. 내가 왜 그리 골치 아프고 힘든 자리에 앉고 싶겠나? 사람들의 존경? 그딴 것을 받아서 무엇하려고?”

하긴.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강호를 지키겠다는 진심과 확고한 대의명분이 있지 않다면, 맹주 자리는 힘든 자리다.

권력의 정점이지만 그렇기에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는 온갖 도전을 다 받아야 한다.

만약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맹주가 아니라 배후에 있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하나만 더, 저 아이 속에 깃든 인물은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저 사람을 데리고 무슨 일을 하려는 거요?”

노인이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아마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걸세. 그때 직접 보여주겠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기세를 느끼려고 했다. 적어도 한 가지는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을 하려는 것을.

“자, 그럼 먼저 가시게.”

“그러지요.”

내가 잠이 든 장근을 안고 그곳을 걸어 나왔다.

천소선이 나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살려줘서 고맙소.”

오늘 일을 잊지 않겠다는 따위의 무의미한 복수의 말 대신, 저런 말을 던지는 것만 봐도 천소선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내가 아니라 이 아이에게 고마워해야 할 거야.”

그래, 아이가 아니었다면 노인이 오기 전에 여기 있던 이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그러지요.”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세 사람.

노인과 천소선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적의가 가득했다.

앞으로 또 뭐가 튀어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저 셋만 해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 * *

임연정과 칠호는 섬의 안가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들은 갈사량의 안내로 진법을 통과했다.

이런 곳에 섬이 있는 줄도, 그곳에 장원이 있고, 또한 엄청난 진법이 설치되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진법을 벗어나자 장원이 나왔고 송화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반겨주셔서 감사해요.”

어색한 관계였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질시하진 않았다.

특히 송화린은 임연정에게 아들이 있고, 벽리단이 그 아들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가 반드시 아드님을 구해올 거예요.”

송화린의 진심 어린 격려에 임연정이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을 위한 객청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침상에 앉으며 임연정이 칠호에게 말했다.

“상대가 만만치 않네요.”

칠호는 그 상대가 송화린임을 알아차렸다.

임연정은 칠호 편이었다. 칠호가 잘되기를 바랐다.

너무 아름다웠고, 게다가 심성 또한 착하게 느껴졌으니까.

“그 사람 약혼자에요. 전 상대가 되지 않죠. 상대가 되어서도 안 되고요.”

“동생.”

“네.”

“진짜 좋아한다면 싸워서 차지해.”

칠호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사실 벽리단을 얻지 않더라도, 이런 벅찬 기분이 든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얼마 후 식사가 차려졌다.

어색할 수도 있었고, 아주 무거울 수도 있는 자리였지만, 이 자리엔 광두가 있었다.

“아시다시피 우리 도련님이 한 호색하시죠. 앞으로 절대 속으시면 안 됩니다!”

오히려 광두의 너스레를 받아준 사람은 임연정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밝게 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일편단심 순정파처럼 보이던데요?”

“호색한들의 독문무공이죠.”

송화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전 그것도 모르고 약혼까지 해버렸으니. 이 일을 어쩌죠?”

그때 칠호가 불쑥 말했다.

“혼인하시면 되죠.”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두 분 잘 어울려요.”

임연정은 알 수 있었다. 저런 말을 할 성격이 아닌 그녀가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벽리단에 대한 미련을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엄마!”

임연정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아!”

문이 열리며 장근이 뛰어 들어왔다.

“엄마!”

“근아!”

장근이 달려와 임연정의 품에 안겼다. 임연정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지만 그녀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예 엉엉 울었다. 아이도 함께 울었다.

지켜보던 이들의 마음도 함께 울컥했다. 송화린이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흘렸다.

반면 칠호는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내심 서글퍼하고 있었다. 남과 다름없는 송화린도 눈물을 흘리는데, 자신은 눈물샘이 말라버린 것인지 눈물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함께 울고 있었다.

뒤이어 벽리단이 들어왔다.

송화린이 그를 보며 말했다.

“해냈구나.”

“다행히.”

벽리단이 환하게 웃었다.

칠호가 그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숙였다.

“정말 고마워요.”

그녀 역시 마음을 많이 졸이고 있었다. 앞서 벽리단을 믿으라며 임연정을 설득한 사람이 자신이었으니까.

벽리단이 칠호에게도 환하게 웃어보였다.

끝으로 임연정이 눈물을 닦으며 장근과 함께 벽리단에게 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가 그 자리에서 큰절을 올렸다.

“이러실 필요 없소.”

벽리단이 그녀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벽군사님.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이제 정식으로 묻겠소. 그대는 나를 선택하시겠소?”

“물론이에요. 앞으로 벽군사님에게 제 충성을 모두 바치겠어요.”

자신의 목숨과 아들의 목숨까지 구해준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으면 대체 누구에게 충성을 바치겠는가?

“하하하, 고맙소.”

벽리단이 기분 좋게 웃었다.

이번에 장근을 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임연정과 칠호를 얻었고, 저들이 천마를 환생시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꾸민 노인까지 직접 만났다.

벽리단이 모두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자, 오늘은 모두 취할 때까지 마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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