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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대법(3)
천소선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지만 나를 죽인 자들에 대한 정보는 알아낼 수 없었다.
그를 구슬려서 입을 열게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가 진실을 알고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있었다.
천소선 역시 누가 나를 죽였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천하진은 내가 이길 수 있다.”
“어림없소.”
“천하진에 대한 환상이 너무 크군.”
“환상이란 말로 폄하하기엔 그는 너무 대단한 사람이었소. 아, 오해는 하지 마시오. 그렇다고 그를 좋아한다거나 존경한다는 말은 아니니까.”
어쨌든 한 가지 결론은 나를 죽인 것은 이들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흘렀고, 이제 대법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법당에 설치된 여러 장치들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과격하게 작동하고 있었고, 온갖 약물이 내는 냄새로 내부가 진동했다. 대법에 사용되었던 수많은 침들이 한옆에 수북이 버려져 있었다.
“자, 이제부터가 중요해요.”
“집중합시다.”
임연정과 정소는 완전 지쳐 있었지만 정신은 맑았다. 그들은 대법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정소는 대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목적이 있었고, 임연정의 목적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자, 이제 마지막 단계예요.”
장치를 통해 두 아이의 몸으로 약물이 흘러들어갔다. 정소가 그 앞에 앉아서 주술과도 같은 말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준비된 모든 향들이 피어올랐다.
두 아이가 동시에 경련을 일으켰다.
“제발! 제발 힘을 내!”
방의 모두가 아이들을 응원했다. 모두들 각기 다른 목적과 마음이었지만, 대법이 성공하기를 기원하는 것은 같았다.
찰나가 억겁처럼 여겨진다는 말은 바로 지금 써야 할 말이었다.
아이들이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임연정의 마음이 어떨지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약물이 모두 들어가던 그 순간, 두 아이들의 몸이 동시에 활처럼 휘었다. 그 때를 정점으로 천천히 경련이 멈추기 시작했다.
임연정이 달려가서 두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긴장되는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이쪽을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성공이에요.”
열두 시진에 걸친 대법은 성공이었다. 장근에게 들어있던 영혼이 아이에게 무사히 옮겨진 것이다. 지난 다섯 번의 성공이 이제 여섯 번이 되는 순간이었다.
임연정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다행히 천소선이나 정소는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와 짤막한 전음이 오갔다.
문을 열고 나가자 밖에 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법이 마치는 시간에 와 달라고 미리 명령을 내려둔 상황이었다.
나는 다시 혈도를 눌러 잠들어 있던 칠호를 깨웠다.
“이 두 여인은 내가 데려가겠다.”
두 사람이 모두 여인이었기에 별다른 의심을 하진 않을 것이다. 인질로 삼을 것이라 여길 수도, 혹은 여인들을 탐해서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저들 두 사람이 내 사람이기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지금 천소선은 다른 사람의 생사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 집중했다.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빼낼 수 있었다.
-밖의 무인들 따라가서 기다리시오.
내가 두 여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임연정은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반드시 데려가겠소.
임연정은 똑똑한 여자였다. 자신이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아이를 위한 길임을 알았다.
-부탁해요.
-최선을 다하겠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이 두 사람을 인질처럼 끌고 갔다. 그들은 안가가 있는 섬으로 가서 나를 기다릴 것이다.
대법에 사용된 책자는 임연정이 챙기게 했다.
그 모습에 정소의 눈이 뒤집어졌다. 할 수만 있다면 정소는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고 싶은 눈빛이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열두 시진에 걸쳐 진행된 대법을 다 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나는 곧바로 정소의 수혈을 짚었다. 정소는 칠호가 누워 있던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두 여인이 진과 함께 떠나고 나자 장근이 짤막한 비명을 내질렀다.
“으윽!”
장근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거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대법이 끝나자 곧바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와 천소선이 장근에게 다가갔다.
“시작해라.”
“그러지요. 그 전에 한 가지만 묻겠소.”
천소선이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이 아이를 살려내면 나를 살려줄 거요?”
“아이가 살아난다면.”
“정말 나를 살려줄 거요?”
그가 재차 확인하자 내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말로 하는 약속이 뭐가 중요한가?”
“내겐 중요하오.”
“왜지?”
“적어도 당신은 약속을 어길 것 같진 않거든.”
그가 나를 어떻게 여기든, 내가 약속을 지키느냐 마느냐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천소선이 무사히 아이를 살려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만약 네가 너희 조직의 최고 수장이라면, 솔직히 살려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그런 인물인가?”
“아니오.”
“그럼 살겠군.”
천소선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기쁜 것 같기도 했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왜? 자존심이 상했나?”
“아니오. 솔직히 말해줘서 오히려 기쁘오.”
천소선이 아이의 혈도를 누르며 치료를 시작했다.
“얼마나 걸리나?”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요.”
나는 방해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잠든 두 사람을 제외하면 이제 이곳에는 나와 천소선, 그리고 아이 둘만 있었다.
그때 또 다른 아이가 눈을 떴다.
나는 아이의 눈빛을 보자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아니라 근이의 머릿속에 있었던 또 다른 영혼이라는 것을.
“기분이 어떤가?”
내 물음에 아이가 이마 양옆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말했다.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아주 별로야.”
“몇 번째지?”
“여섯 번째다.”
그는 솔직히 대답해주었다.
“많이도 했군.”
대체 이자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 정도의 대법을 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 것이다. 모르긴 해도 수십만 냥 이상은 들 것이다. 어쩌면 수백만 냥이 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대법을 벌써 여섯 번이나 했다? 정말이지 이 조직의 자금력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천소선이 장근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가 내게 물었다.
“저 아이를 구하면 나를 죽일 작정인가?
“어떨 것 같나?”
아이가 가만히 내 눈을 응시했다.
“잘 모르겠군.”
아이가 빠르게 덧붙였다.
“하나 적어도 불안하진 않는 것을 보니, 이 아이를 죽이지는 않겠군.”
‘나’를 죽이지 않는다가 아니라 ‘이 아이’란 표현을 썼다. 영리한 반응이다. 내가 함부로 아이를 죽이는 사람이 아님을 파악한 것과 동시에 자신이 아이의 몸속에 들어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그는 본능을 믿는 자였다. 아마 평생을 본능을 따라 살아온 자일 것이다. 바로 나처럼. 과연 누굴까?
대체 너는 누구의 영혼이냐?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당신이 누군지 알려줄 수 있나?”
“그건 곤란하군. 말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거든.”
“누구와? 저 애송이와?”
“그럴 리가.”
이내 아이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너도 애송이긴 마찬가지인데…….”
“그런데?”
“묘하단 말이지. 널 보고 있으면 닳고 닳은 뭔가가 느껴진단 말이지.”
‘마치 나처럼’이란 말이 생략된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는 천소선 정도 되는 인물을 애송이 취급을 하고, 내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힘을 지닌 자였다.
전생에 내가 상대했던 자들 중에 이 정도 통찰력과 존재감을 지닌 자는 없었다.
아니, 한 사람 있었다.
내가 가장 힘들게 상대했던 적, 대멸겁을 사용해서야 겨우 이겼던 상대, 바로 혈천신교의 교주 천마였다.
천마 백천광(伯天光).
혈천신교 역사상 가장 강했던 천마로 기록된 자였다.
설마?
내 시선이 다시 아이에게 향했다.
이 미친놈들이 정말 천마를 환생시킨 것인가?
아니겠지?
그때 아이가 법당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긴 너무 답답하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문득 오래전 그날이 떠올랐다.
“여긴 너무 답답하군.”
백천광의 말에 내가 부서진 창문을 바라보았다.
우리 싸움으로 건물은 성한 곳이 없었다. 내부의 집기들은 산산조각 났고,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비가 많이 오는데 괜찮겠소?”
쏴아아아아아.
건물 밖은 시원하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운치도 있고. 더 좋지 않겠나?”
“좋소. 이번에는 나가서 싸웁시다.”
나와 백천광이 건물을 걸어 나갔다. 그와 생사혈투를 시작한 지 이틀이 지났다. 미치도록 싸웠지만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우린 계속 장소를 바꿔가며 싸우고 있었다. 산에서 싸우다가 건물에서 싸우다가, 연무장에서, 길가에서.
서로를 진심으로 죽이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이 싸움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강한 상대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온갖 수법을 다 사용해도 그를 죽일 수 없었다. 물론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지닌 모든 마공에도 나는 죽지 않았다.
혈천신교의 마공은 강력했다. 그의 독문마공들은 마교에 앞서 상대했던 흑도십삼맹의 사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만약 지금이 내 무공 인생에서 가장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에게 패배했을 것이다.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이 싸움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싸움이 될 것임을. 이 같은 강자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임을. 아마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싸움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그를 그리워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그리워하게 될 것은 이 싸움일 것이다. 모든 것을 내던져서 싸웠던 그와의 이 싸움.
무인으로서 평생의 숙적을 만난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쏴아아아아아.
백천광이 잠시 처마 아래에 섰다. 내가 그 옆에 나란히 섰다. 우린 서로를 기습하지 않았다. 기습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적어도 이 순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격조 없는 기습은, 그와 전쟁을 시작한 지난 세월에서도, 또한 지난 이틀간의 싸움에서도 우린 충분히 시도했다.
우린 잠시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마지막 시간을 가졌다.
내가 무림맹주가 되고 마교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우린 서로를 미워했고 증오했다. 어떻게든 서로를 죽이려고 애써왔다.
그리고 이제 그 싸움의 마지막 순간이 왔음을 느끼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 역시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그는 패배를 예감하고 있었다.
“이제 나이 핑계를 대는 거요?”
내가 핀잔을 주자 그가 냉소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서로에게 날렸던 기분 나쁜 핀잔이나 냉소가 아니었다. 옅은 미소가 깔린 그런 대화였다.
“그렇지 않나? 십 년만 젊었어도 자넨 한 주먹 거리도 안됐겠지.”
“내가 열 살만 더 나이가 많았어도 당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요.”
“대신 십 년이 지나면 자넨 정파 꼰대가 되어 버려서 멋대가리가 없겠지.”
“아직은 멋있다는 칭찬으로 듣겠소.”
백천광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내리는 비 때문이었을까? 조금은 감상적인 생각도 들었다.
만약 우리가 적이 아니라 같은 진영에서 만났다면, 가령 그가 정파의 무인이었거나 내가 마인으로 태어났다면? 우린 꽤나 통하는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린 서로를 반드시 죽여야 하는 적으로 만났다. 마교와의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이들을 위해서, 나는 반드시 그를 죽일 것이다.
한참을 비 구경을 하던 우린 드디어 싸움을 시작했다.
내가 먼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자, 갑시다.”
“그러지.”
나는 이제 최후의 초식인 대멸겁을 쓸 작정이다. 진기를 다스리는 데 실패하면 내가 죽게 되는 위험한 초식이었다. 만약 성공한다면, 그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고 마교와의 긴 싸움도 끝나게 되리라.
쿠르르룽!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를 들으며 나는 천천히 수라명왕검을 뽑아들었다.
백천광이 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하늘을, 그보다 더 어두운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쏟아지는 빗소리 때문이었을까? 그가 뒷말을 흐렸기 때문일까? 혹은 이제 그만 이 긴 싸움을 끝내고 싶었던 내가 대멸겁에만 집중하고 있어서였을까?
나는 그의 뒷말을 듣지 못했다.
“저 아이와는 무슨 관계인가?”
아이의 물음에 회상에서 깨어났다.
“아무 관계도 없다.”
“한데 왜 구하려 하지?”
“그런 물음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안 드나?”
내 말에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정파 꼰대들이나 하는 말인데?”
정파 꼰대!
그 말에 나는 온몸의 털이 일제히 곤두섰다.
나와 싸우면서 천마 백천광이 여러 번 썼던 말이다.
내가 아이를 빤히 바라보자 아이도 나를 쳐다보았다.
백천광이라고 생각하고 보자, 나는 볼 수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에 담긴 숨길 수 없는 어둡고 깊은 심연을. 그 예전 마지막 싸움에서 비 오던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의 눈빛을.
천마구나. 이자들이 천마를 환생시켰구나.
이 미친 새끼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