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13화 (11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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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략으로 답하라(2)

흰색 복도를 지나 넓은 방에 도착한 사람은 일호였다.

예전 칠호와 함께 왔을 때의 그 방이었다. 방 저 멀리에 사내가 앉아서 뭔가를 쓰고 있었다.

일호가 문 앞에서 보고했다.

“고노(高老)가 사라졌습니다.”

“뭐?”

사내가 손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눈빛으로 물었다.

일호가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고노가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임무 도중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죽었단 말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만, 확실하진 않습니다.”

“안 죽었다. 천궁단주 따위에게 죽었을 리가 없다.”

사내가 다시 적던 것을 계속 적기 시작했다.

“임무는?”

“실패했습니다. 천궁단주는 무사히 맹으로 복귀했습니다.”

그가 적고 있던 붓을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졌다. 날아간 붓이 값비싼 융단에 검은 먹칠을 하며 데굴데굴 굴렀다.

사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왔다갔다 자리를 오가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호가 서 있는 곳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천궁단주에게 고노가 죽었다고?”

다만 방안에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확실히 빨라지고 거칠어졌다.

“평소 그의 성격이나 지난 활동으로 볼 때, 이번 작전에서 희생당했을 가능성이 팔 할 이상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천궁단이 다 따라 간 거야?”

“따라간 인원은 삼십 명입니다.”

“아니지. 다 따라갔다고 해도 놈들에게 죽었을 리는 없지.”

“변수가 하나 있었습니다.”

“변수?”

“사마천이 딸려 보낸 군사가 갈사량이었습니다.”

“아!”

조금은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짓는 듯하더니.

“아무리 그래도 고노가 당해?”

“갈사량이 역함정을 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사람을 보내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당장 알아보고 보고하도록.”

“곧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을 보내. 이번 일 심상치 않으니까.”

일호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믿을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 * *

천궁단의 복귀에 놀란 사람은 또 있었다. 전멸당했다는 비보를 기다리고 있던 사마천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가?’

그가 힐끗 마봉기를 쳐다보았다. 태사의에 앉아 있는 마봉기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이번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어제 주무르던 여인의 젖가슴을 떠올리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사마천은 이번 임무는 죽음의 임무라 여겼다.

천궁단을 지목해서, 그것도 단주와 소수의 병력만을 보내는 비밀작전. 원래라면 정의각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그것이 맹주전에서 내려왔다.

당연히 모두 죽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반대편에 서 있는 무인들 중에서 주철룡과 눈이 마주쳤다. 맹주만큼이나 알 수 없는 속셈을 지닌 자다.

그 옆에 철기단주 옥당추(玉棠推)의 모습이 보였다. 광월단주 주철룡을 따라 갈사량을 배신한 자. 오히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보인다. 아주 악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타인이나 명예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부

류도 아닌, 전형적인 관료.

문제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주철룡이다. 분명 모종의 세력이 저자의 뒤에 붙어 있다.

그때 맹주전의 문이 열리고 기다리고 있던 천궁단주 종천락이 걸어 들어왔다.

붉은 융단을 따라 걸어온 그가 마봉기를 향해 정중히 예를 올렸다.

“천궁단주 종천락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고생했네. 이번에 문제가 좀 있었다지?”

“네. 약속한 장소에 갔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정보가 허위였다?”

“혹은 놈들에게 미리 제거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마봉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힐끗 주철룡을 쳐다보았다. 그는 묵묵히 종천락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마 가장 놀라고 화난 사람은 주철룡일 것이다. 그가 은밀히 이번 일을 주도했으니까.

‘대체 마교부활을 이용해서 무엇을 꾸미려는 것일까?’

마봉기는 놈들의 속셈을 알 수 없었다.

이번에는 사마천이 그에게 물었다.

“몇 차례 기습이 있었다고 들었소.”

“그렇소. 다행히 본단의 정예들이 잘 막아냈소.”

종천락은 절대 신입군사의 활약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꼭 해야 하면 갈사량의 도움이 있었다는 정도만 밝히기로 약속한 것이다. 수하들에게도 절대 말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린 상태였다.

마봉기가 모여 있는 무림맹의 수장들에게 말했다.

“아쉽게 이번 일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마교의 부활을 막지 못하면 강호는 큰 혼란에 빠져들 것이네. 모두들 촉각을 곤두세우고 조직 관리에 만전을 기하도록. 조만간에 놈들과 일전을 벌여야 될 수도 있

네.”

“네! 알겠습니다.”

수장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 회합은 여기까지 하지. 종단주는 먼 길 다녀오느라 고생했네. 이만 가서 쉬시게.”

“감사합니다, 맹주님.”

종천락이 인사를 한 후 맹주전을 걸어 나갔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행동했다. 자신을 죽이려 해놓고 저렇게 태연스럽게 굴다니.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지만, 아직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런 생각이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른 수장들도 모두 밖으로 나가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주철룡이었다.

사마천은 남아서 대체 이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듣고 싶었지만 모른 척 그곳을 나갔다. 이번 일에 묻어서 갈사량을 제거하려 했던 일이 있었기에, 굳이 얼쩡거리지 않으려는 것이다.

둘만 남자 마봉기가 차갑게 말했다.

“너희들의 더러운 수작이 실패했군.”

주철룡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 마봉기는 적당히 숨기는 것이 없다. 아무리 둘만 있는 자리라고 하지만, 비밀을 공유하는 자들만의 어떤 은밀함이 있을 법도 한데. 그는 대놓고 묻고, 대놓고 따진다. 그것도

저런 천박한 말로.

‘한심한 놈.’

정말이지 자신을 포섭한 이들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결코 마봉기를 맹주의 자리에 올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실패는 놈들이 했지요. 천궁단주를 죽이려 했으니 말입니다.”

마봉기는 이번 저들의 실패를 자신의 기회로 여겼다.

“자네들을 믿지 못하겠군. 가서 전하게. 나를 만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눈빛에서 단순한 협박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주철룡이 지금껏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을 꺼냈다.

“그냥 이대로 살면 되지 않소?”

“이대로? 그냥 꼭두각시 맹주로? 낮에는 너희들이 시키는 대로 도장이나 찍고, 밤에는 떡이나 치라고? 그럴 순 없지. 가서 전해. 다른 것 안 바란다고.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주철룡은 가타부타 대답 없이 정중히 인사를 한 후 그곳을 걸어 나갔다.

비로소 마봉기의 비웃음이 그의 등에 날아가 꽂혔다.

‘이 병신아. 잘난 척 마라. 너도 꼭두각시에 불과하니까.’

* * *

“갈군사!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네!”

사마천이 달려와서 갈사량의 손을 맞잡았다. 너무 과한 환대가 어색할 정도였다. 이 행동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마음에 켕기는 것이 있음을.

“천궁단 무인들의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방금 천궁단주를 보고 오는 길이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곧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천천히 올리게. 그나저나 많이 놀랐겠구먼.”

“이번 임무를 통해 한 가지 확실히 알아차렸습니다. 마교는 정말 부활을 획책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무서운 일이야. 우리가 반드시 놈들을 저지해야 하네.”

“혼신을 다하겠습니다.”

“피곤할 테니, 며칠간은 푹 쉬도록 하게. 보고서는 이후에 받지.”

“감사합니다.

사마천이 방을 나가기 전에 꽤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자네가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다면 난 평생 죄책감으로 살아야 했을 것이네.”

갈사량이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걱정해 주신 덕분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 * *

맹으로 돌아온 갈사량은 바빴다.

최우선으로 그가 신경을 쓴 것은 천궁단이었다. 자신 역시 제거대상이었지만 자신을 챙기는 것은 나중문제였다. 어떻게든 천궁단주를 이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줄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내가 챙겨야 했다.

사실 배후세력과 관련해서 그들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나였다. 그 모든 정보를 갈사량과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일단 사마천부터 처리해야했다. 놈이 갈사량을 죽이려 했고, 또 다른 시도가 있을 수 있었으니까.

어떻게 놈을 처리한다?

나는 놈을 죽일 작정이다. 비단 갈사량을 죽이려 한 복수 때문만이 아니다.

놈은 분명 종천락과 천궁단의 무인들이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갈사량을 딸려 보낸 것이고.

무림맹의 총군사의 자리에 있으면서 알면서도 수하를 사지에 내보낸다? 그냥 참형이 아니라 능지처참을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화가 난다고 무작정 무림맹의 총군사를 죽였다간 그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배후세력이 당장 이쪽의 정체를 알아낼 수도 있고.

이번에 그 노인을 죽이는 바람에 놈들은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내 회륜겁 한 수에 죽었지만 그 노인은 정말 대단한 고수였으니까.

어떻게 노인이 죽었는지 조사하려 들 것이다. 아직은 놈들에게 노출되어선 안 된다. 이런 상황이니, 기분대로 사마천을 베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뒤탈없이 죽일 수 있다면 죽이되, 일단은 맹에서 쫓아내 버리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인데.

이놈을 어떻게 처리한다?

그때 나는 사마천과 관련해서 한 가지를 떠올렸다.

아! 그렇지?

이때를 대비해서 예전에 준비시킨 것이 생각난 것이다.

나는 곧장 연락소를 통해 진에게 비밀전서를 보냈다.

* * *

“뭔가 있어.”

사마천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갈사량을 보내지 않았다면, 이번 일은 한 발 물러서서 구경해도 좋을 상황이었다.

어차피 맹주와 천궁단주의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그 일에 갈사량을 밀어 넣은 것이 못내 마음이 찝찝했다.

‘혹시 갈사량 때문에 실패한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겠다 싶었지만, 맹주와 그 배후가 이번 일을 실패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죽일만 했으니까 이런 음모를 꾸민 것이었을 텐데.

어쨌든 한 번 죽이려고 마음먹자 어떻게든 갈사량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인가?”

“접니다.”

들어온 사람은 책임군사였다.

“무슨 일인가?”

“맹주전에서 이번 일을 조사할 조사관을 보낸답니다.”

“조사관을? 갈군사에게?”

“네.”

보통 큰 임무가 실패하면 조사관이 나간다. 하지만 그 일을 담당하는 곳은 집법당이다. 한데 맹주전에서 사람을 보냈다는 것은?

맹주나 혹은 배후조직에서 이번 일을 조사하겠다는 뜻이다.

‘젠장!’

까닥 잘못했다간 자신이 의도적으로 갈사량을 죽이려 했다는 것이 밝혀질 수도 있었다. 그러면 자신이 배후세력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을 들키게 된다.

‘이걸 어떻게 한다?’

* * *

사흘 후 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과연 그는 내가 예전에 부탁한 것을 준비해 둔 상태였다.

그가 보내온 것을 가지고 갈사량에게 갔다.

그 사이 갈사량은 천궁단주를 구할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낸 상황이었다.

이번에 천궁단에서는 두 명이 죽고 여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마교타도의 명분을 걸고 특별훈련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

특별훈련은 보통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석 달까지 하는 훈련이었다.

일단 훈련을 위해 맹을 나가면 마봉기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고, 특별훈련에 돌입한 일천 명의 천궁단 무인들로 둘러싸이는 것이 암살을 피하는 가장 안전한 선택인 것이다.

과연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시 갈사량이 있어야 한다.

둘만 있는 자리에서 내가 갈사량에게 몇 장의 종이를 건넸다.

“이것 좀 봐주십시오.”

“이게 무엇인가?”

“총군사를 그냥 둬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해 은밀히 조사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 전에 그의 오른팔이었던 조벽이 어린 애를 데리고 기루를 열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아! 그 사건 생각나네.”

그때 무림맹 무인들에게 처분을 맡겼고, 당시 그곳을 이용했던 늙은이들은 모두 뇌옥에 갇혔다. 공식적인 사건으로 처리되었던 것이다.

“당시 사마천은 조벽을 모른다고 딱 잡아뗐습니다.”

“그랬었지.”

“이것은 조벽이 사마천의 명령을 받아 여러 일들을 수행한 증거들입니다.”

“뭣이? 이게 어디서 났나?”

당시 내가 수와 진에게 이와 관련해서 조사를 명령했었다. 조벽과 사마천과의 관련성에 대해 증거를 수집하라고.

나중에 필요한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인데, 그 때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

“정보단체를 통해 샀습니다.”

만약 갈사량이 끝까지 출처를 묻는다면 밝힐 수도 있다. 진과 수는 이미 전중원 규모의 정보조직을 만든 후니까. 그들에게 산 것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갈사량은 그에 대해 묻지 않았다. 만난 이후 내가 보여준 능력들을 생각하면 이 일 역시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나는 나름 한때 산동제일이라 불렸던 벽씨검문의 자제였으니까.

“이 증거라면 사마천을 총군사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네. 하지만 무림맹 전체가 그의 편이라 할 수 있으니…….”

갈사량이 눈빛을 반짝였다.

“이 증거를 확실하게 이용할 방법을 찾아야지.”

나는 믿는다. 그가 방법을 찾아낼 것임을.

사량아. 마음껏 머리를 써라. 네 뒤는 내가 지켜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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