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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7화 (17/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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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2)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양소방 소식이 전해진 후였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양소방주가 낭인을 동원해서 자신과 가족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착잡하신 모양이었다. 아무리 자식이 곤경을 당했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복수까지는 생각지 못하셨을 테니.

“그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악한 자였습니다. 혈견이란 자와 자중지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큰 화를 당할 뻔 했습니다.”

아버진 내 말에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반면 어머니는 기쁨을 감추지 않으셨다.

“하늘이 우릴 도왔어요! 정말 다행한 일이에요.”

“그렇습니다, 어머니.”

그때 아버지가 불쑥 말씀하셨다.

“그래도 양소방에 진 빚은 갚아야지.”

“네.”

당연히 그렇게 나오시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양기철에게 진 빚이 아니라 양소방에 진 빚이라고 여기실 테니까.

하지만 갚지 않아도 될 거다. 새 방주가 된 정여에게 빚은 받지 말라고 전하고 왔으니까.

양소방이 우릴 치려했기에, 그 죗값을 청산하는 의미로 돈을 받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거절방법까지 알려주고 왔다. 둔하지 않은 자이니, 이 방식이 아니더라도 적당한 핑계를 대고 받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 잘 읽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백월검법의 비급을 돌려드렸다.

“수련은 어떠했느냐?”

“조금 성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이구나.”

며칠의 수련이니 큰 기대는 하지 않았겠지만, 내가 변했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고 계실 것이다.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들.”

“네.”

“괜찮지?”

짧지만 많은 의미가 담긴 물음이다. 내 변화에 많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도 많이 될 것이다.

“그럼요. 그 어느 때보다 괜찮습니다.”

“됐다.”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돌아서 나오려다가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이번 일로 너무 상심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버지.”

오랜만에 아들에게 위로를 받아서였을까? 아버지의 얼굴에 감격이 스쳤다.

사실 진짜 감격스러운 사람은 나였다.

아버지란 말을 처음 꺼낸 순간이었으니까.

전생의 나에겐 아버지란 존재는 없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홀로 키우셨으니까. 그래서 누군가에게 아버지란 말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가서 쉬어라.”

“네, 아버지.”

한 번 입 밖으로 꺼내니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 * *

내가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다.

나를 보살피는 것과 집안을 보살피는 일. 그 중 당장에 할 수 있는 일부터 했다.

다음날 서중을 찾아갔다.

검대원들의 훈련을 마치고 나오던 서중이 나를 보며 뜻밖이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냐?”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전보다는 부드러웠다. 최근에 보여준 행동들로 그는 나를 새롭게 보고 있을 텐데 특히 양기강으로부터 광두를 구한 일이 결정적일 것이다.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이게 뭐냐?”

내가 건넨 것은 삼천 냥이었다. 양기철에게 받아온 삼만이천 냥 중 일부였다.

전표를 확인한 그가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돈이냐?”

“그동안 제가 모아둔 돈입니다.”

“뭣이?”

그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파락호 같은 내게 그런 돈이 있다는 것이 의심스러웠을 테니까.

“좋아하던 여자에게 주려고 모아두었던 겁니다.”

하지만 내가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말하자 서중은 반신반의했다. 게다가 워낙 집안의 돈을 많이 가져다 써서, 혹시나 이 정도 돈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할 것이다. 마음 같아선 더 주고 싶었는데 액수를 삼천 냥으로 잡은 이유였다.

“이걸 왜 내게 주는 것이냐?”

“이 돈으로 검대를 재정비해주십시오. 올려주지 못한 월봉도 올려주고, 새로 인원도 확충해 주십시오.”

서중은 돈을 받았을 때보다 더욱 놀랐다. 삼천 냥이란 액수도 놀라웠지만, 사용해 달라는 용도는 더욱 놀라웠던 것이다.

“우리가 돈 때문에 남아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 때문에 검대원들의 가족들까지 고통 받아선 안 되겠지요.”

“가주님께 드리지 않고 왜 내게 직접 주는 것이냐?”

“짐작하건대 대주님은 아버지가 주시는 돈을 받지 않으실 테니까요.”

서중이 흠칫했다. 내가 그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아차린 것이다.

그는 충성심이 깊은 사람이다. 아버지가 대를 정비하라고 돈을 줘도, 가문의 빚부터 갚으라고 거절할 것이다. 어떻게든 검대는 자신이 운영할 수 있다고.

“대주님과 검대가 본가의 중심입니다. 대주님과 검대가 무너지면 본가도 함께 무너지게 될 겁니다.”

“무슨 소리냐? 본가의 중심은 가주님이시다!”

엄하게 꾸짖었지만 서중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감격이 드러났다.

부모님이 그러하셨듯이 서중 역시 이 망나니 철부지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을 테니까.

“제 뜻을 받아주시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서중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돈을 반드시 오직 검대를 위해서만 쓰시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으십니까? 사내로서, 그리고 무인으로서.”

아버지에게 돌려줄까 봐 하는 말이었다.

“그러마.”

내가 진심을 담아 허리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주님.”

돌아서 가려는데 서중이 뒤에서 말했다.

“단아.”

“네.”

“고맙다.”

내가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광두에게처럼 굳이 그에게도 여러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많은 것을 보게 될 테니까.

다음날부터 검대의 분위기가 활기차졌다.

비록 검대에 속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느껴졌다.

마주치는 검대의 무인들이 미소까지 지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일전에 양기강의 일로 호감을 가졌다가 이번에 지급된 돈이 내게서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하긴 서중의 성격 상 그 돈의 출처를 정확히 밝히지 않을 리 없었다.

검대의 분위기가 밝아지자 집안 전체가 밝아졌다.

나에 대한 수군거림의 내용도 바뀌었다. 처음에는 내 변화를 대형 사고를 치기 전의 전조(前兆)라 여겼는데, 이제는 진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새로 검대의 무인을 뽑는다는 공고도 냈다고 한다. 삼천 냥으로 많은 인원을 확충하진 못하겠지만, 우선 이십여 명 정도는 늘릴 수 있다고 들었다.

전력이 늘어나는 것도 늘어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사기가 올라갔다.

오랜만에 벽씨검문에 활기가 돌았다.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내게 어디서 그런 큰돈이 났느냐며 한바탕 하셨지만, 결국에는 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처럼 마음에 드는 행동만 하고 있는데 어찌하시겠는가?

다음날 어머니는 가까운 무가의 부인들을 불러서 오랜만에 연회를 여셨다. 그간 못했던 자식자랑을 몰아서 다 하셨다고 한다. 물론 검대를 위해 돈을 풀었다는 자랑도 잊지 않으셨다. 여자를 위해 모은 돈이 아니라 검대를 위해 저축한 돈이라고 전해진 점만 달랐지만.

이렇게 집안을 챙기면서도 체력훈련과 무공수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혼신을 다한 수련으로 내 몸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물렁살이 빠지고 그 자리를 탄탄한 근육이 채워가기 시작했다.

역시 문제는 내공이었다.

내가 익힌 추혼수라검법의 백미는 마지막 세 초식에 있다.

문제는 사초식은 일갑자, 오초식은 이갑자, 육초식은 삼갑자의 내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선의 목표를 일갑자로 잡았다. 이갑자나 삼갑자는 바라지도 않는다.

사초식인 탈혼겁만 사용할 수 있어도, 비장의 한수는 가지게 되는 것이다.

보통의 고수들은 충분히 앞의 세 초식으로 상대할 수 있겠지만 혹시 모를 일도 생길 수 있으니까.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천무호심결을 운기하고 있지만 쌓이는 내공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천무호심결이 보통의 심법보다 세 배 정도 빨리 내력을 쌓을 수 있다.

그냥 수련만으로 일갑자 내공을 쌓는데 이십 년.

지금의 해법은 단 하나다.

“어떻게든 임독양맥을 뚫어야겠군.”

임독양맥이 타통하면 다시 내공이 쌓이는 속도가 지금보다 세 배 더 빨라진다.

그렇다면 일갑자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이십 년에서 칠 년으로 줄어든다.

지금 오 년의 내공이 있고, 임독양맥을 타통하려면 아무래도 영약을 복용해야 할 테니, 그렇게 추가로 얻는 내력까지 생각하면 빠르면 이삼 년 내로 일갑자의 내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임독양맥 타통을 도울 영약이 필요했다.

언젠가는 영약이 넘쳐나는 시대도 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당대에는 영약이 귀한 시대다. 내가 사갑자의 내공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무림맹주였기에, 그것도 사파와 마교와의 생사대전을 펼쳤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대환단(大還丹)이나 만년설삼(萬年雪蔘)같은 희대의 영약을 구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 돈으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저런 영약은 구하기도 어렵지만 설령 판다는 사람이 있다 해도 부르는 것이 값이기에 수십만 냥, 혹은 수백만 냥에 거래되기도 한다. 아예 시중에 나오질 않는 물건들이다.

이만구천 냥으로 필요한 영약을 구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필요한 영약은 임독양맥의 타통을 도울, 십 년 정도 내력을 채울 수 있는 영약이면 된다.

주는 것을 먹기만 해서 직접 사본 적이 없었으니 영약의 값을 알 수가 없었다.

이만구천 냥.

과연 살 수 있을까?

* * *

이틀 후 나는 제남(濟南)의 한 건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곳은 흑시(黑市)의 제남지부다.

강호에 이런 말이 있다.

흑시에 없는 물건은 이 강호에 없는 물건이다.

강호의 기물을 거래하는 시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예전에는 장물까지 취급하던 곳이라 흑시란 이름이 붙었는데, 당대에 와서는 출처가 확실한 물건만 거래하면서 양지로 나오게 되었다.

그것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총군사인 갈사량이었다. 그는 흑시를 감시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다. 때론 재화의 흐름이 사람을 통해 얻어지는 정보보다 훨씬 귀중할 때가 많았던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나는 흑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이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산동에는 모두 세 개의 흑시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곳이 바로 이곳 제남지부다.

이삼일 바람 좀 쐬겠다고 한 후에 이곳에 말을 달려 온 것이다. 광두를 데려오면 심심하진 않겠다 싶었지만, 일의 성격상 두고 오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입구의 무인에게 영약을 사러왔다고 말하니 내원의 잘 꾸며진 객당으로 안내했다.

시비가 와서 차를 내주고 갔는데, 차는 손도 대지 않았다.

맹주 시절 곧잘 이런 질문을 받았다.

강호에서 오래 살아남는 비결이 뭐냐고.

내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매사에 조심하라고.

조심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 살수들에게 끝도 없는 암습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최고 실력의 살수들은 인내심이 극한에 도달한 자들이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단 한 번의 방심이다. 아흔아홉 번 잘하다가, 설마하며 저지르는 백 번째 실수를.

오래 살고 싶다고?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마라.

방으로 화려한 장포를 입은 노인이 한 명 들어왔다.

“영약을 사러 오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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