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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소방(2)
그때 광두가 나서서 그를 말렸다.
“공자님, 아직 어린애입니다.”
양기강의 눈빛이 대번에 사나워졌다.
“이 천한 놈이 감히 날 잡아?”
광두는 다급한 나머지 양기강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광두가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새 먹잇감을 찾았다고 여겼는지 양기강이 붙잡고 있던 송희를 풀어주었다.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광두는 안도했다. 반면 송희는 붙잡혔을 때보다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저 망할 놈의 눈에는 서로를 위하는 저 애틋한 감정의 교류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하긴, 보이면 저러지 않겠지.
“어라? 그러고 보니 넌?”
뒤늦게 양기강이 광두를 알아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바닥에 침을 뱉었다.
이어지는 불길한 물음.
“이 더러운 것은 뭐야?”
광두가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이자 양기강이 표독스럽게 노려보며 몰아붙였다.
“이 새끼야! 패죽이기 전에 대답 안 해? 이거 뭐냐니까?”
“침입니다.”
“마당에 왜 이런 것이 떨어져 있어? 내가 전에 말했지? 깨끗이 청소하라고.”
“당장 치우겠습니다.”
광두가 소맷자락으로 침을 닦아내려는데, 양기강이 광두의 손을 지그시 밟았다.
“아앗!”
“너 이 새끼, 뭐하려고?”
“네? 치우려는 중입니다.”
“인마! 입에서 나온 거니까, 입으로 치워야지.”
순간 광두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켜보던 본가의 무인들의 표정도 동시에 굳었다.
특히 서중은 차가운 한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언제 나서야 할지 고민 중일 것이다. 함부로 나섰다가 놈이 더 미쳐 날뛰면 어쩌나 하고.
어쨌든 놈의 행동에 양소방 무인들조차 인상을 찌푸렸다.
송희가 달려 나왔다.
“오라버니, 제가 치울게요. 제가 할게요.”
광두가 버럭 소리쳤다.
“무슨 소리냐! 어서 넌 가주님께 가서 필요한 것이 없는지 여쭤보고 오너라. 어서! 어서 가라니까!”
어떻게든 송희를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는 그였다.
송희가 어금니를 깨물며 내 쪽을 쳐다보았다.
광두의 시선이 송희를 따라 내게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다른 무인들의 시선도 따라붙었다.
이윽고 내가 말했다.
“더러운 건 치워야지.”
모두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특히 서중의 실망이 가장 컸다. 그에게서 시작된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 검대의 일반 무인들에게로 번져나갔다.
슬픔이 가득한 송희의 두 눈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말했죠? 전 도련님을 믿지 않는다고. 순진한 광두 오라버니만 속은 거죠. 이 나쁜 놈아!
당사자인 광두는 섭섭함에 두 눈이 붉어지더니 이내 차분히 말했다.
“네. 치우겠습니다.”
광두가 고개를 숙이고 혀를 내미려고 했다. 참다못한 서중이 나서려고 할 때, 한 발 먼저 내가 말했다.
“너 말고.”
“네?”
“뱉은 놈이 치워야지.”
내가 양기강에게 턱짓을 하며 말했다.
“너 말이야. 인마, 당장 치워.”
“이 새끼가?”
“어디서 못 배워 쳐 먹은 것이 남의 집에 침을 뱉고 지랄이야. 네가 치워! 그 주둥이로!”
서중을 비롯한 벽씨검문 무인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내가 대신 해준 것이다.
물론 양기강의 얼굴은 뭉쳐진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너 이 새끼, 계집에게 대가리를 쳐 맞았다더니 돌았나 보구나.”
놈의 말은 들은 체도 안하며 내가 가서 광두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으냐?”
“왜 이러세요. 됐어요, 제가 치우면 돼요.”
“이걸 네가 왜 치워?”
“도련님, 이러지 마시고…….”
다음 순간, 내가 목소리를 달리했다. 무공 다음으로 내가 잘하는 일이었다.
“벽씨검문의 후계자로서 명령한다. 뒤로 물러나도록.”
눈빛에도, 말투에도 무거운 위엄이 담겼다.
“네, 도련님.”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광두가 뒤로 물러났다.
서중에게도 같은 어조로 말했다.
“이번 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 끝까지 지켜봐 주십시오.”
잠시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서중이 고개를 숙였다.
“검대주 서중, 명을 받들겠습니다.”
검대 무인들이 깜짝 놀랐다. 지금껏 서중이 벽리단에게 이런 정중한 태도를 보인 적도 없었거니와, 명을 받겠다는 말은 더욱 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검대 무인들이 엉겁결에 서중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양기강이 내 목소리를 흉내 내며 이죽거렸다.
“벽씨검문의 후계자로 명한다. 어휴, 썅. 명령 두 번만 했다간 무서워 뒈지겠네. 이 유치한 새끼야, 꼴값을 떨어라. 하하하.”
그렇지 않느냐는 눈빛으로 양소방 무인들을 돌아보았다. 몇몇이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내가 최후통첩을 하듯 단호히 말했다.
“그 더러운 입으로 치워봐야 땅바닥만 더 더러워지겠지. 됐고. 기회를 주지. 정식으로 사과하면 없던 일로 해준다.”
사과할 리가 있겠는가? 알면서도 나중을 위해 일단 던져둔 말이었다. 난 분명 좋게 끝낼 기회를 줬다고.
“싫다면?”
“쳐 맞겠지.”
양기강이 코웃음을 치며 내게로 다가왔다.
“그럼 어디 대단하신 벽씨검문 후계자님의 실력 좀 볼까? 차라리 잘 됐네. 내가 이날이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거다. 이 돈도 없는 거지새끼야! 병신으로 만들어 줄 테니 저잣거리에서 구걸이나 해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습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물론 녀석의 주먹에 맞을 내가 아니었다. 굳이 내 무공을 쓸만한 상대도 아니었다.
가볍게 피하며 놈의 턱에 주먹을 꽂았다.
퍽!
턱이 돌아갔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주먹이 약했느냐고? 천만에. 한 방에 끝내지 않기 위해서다.
과연 양기강이 눈에 불을 켜며 달려들었다.
“이 새끼가!”
다시 주먹을 날렸다. 이번에는 내력이 깃든 주먹질이었다. 맞으면 죽을 수도 있는데, 마구 휘둘러 대는 것이다.
그래, 이래야 미친놈이지.
붕! 부웅!
내력이 깃든 주먹질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다.
놀란 서중이 뛰어들려다가 멈췄다.
내가 가볍게 놈의 공격을 피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피하는 것보다 더 경쾌하게 주먹이 날아갔다.
퍽!
다시 녀석의 턱이 반대로 돌아갔고.
퍽! 퍽! 퍽퍽!
연이어 배와 가슴에 연속해서 박혔다. 그냥 봐선 가볍게 때리는 것 같지만 시퍼런 피멍이 들 타격이었다.
퍽! 퍽! 퍽! 퍽! 퍽!
내 주먹은 인정사정없었다. 얼굴보다는 몸을, 겉으로 표는 덜 나지만 속으로 골병이 들 그런 주먹질이었다.
너는 알아야 한다. 네가 장난처럼 한 짓에 저 아이들은 평생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너는 백 날 말해봐야 모르겠지.
그래서 네가 맞는 거다.
퍽퍽퍽퍽퍽!
뒤늦게 양소방의 무인들이 달려 나와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을 때에는 이미 놈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혼자서 옷이라도 입을라치면 몇 달은 족히 요양해야 할 것이다. 마음 같아선 더 작살을 내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이게 무슨 짓이오!”
양소방측 책임자의 항의에 내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대도 처음부터 보지 않았소? 저 놈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제가 뱉은 침을 입으로 치우라고? 그게 인간이 할 짓인가?”
그 말에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양소방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조차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일이었다.
고통에 일그러진 채 양기강이 나를 노려보았다. 표독스러운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죽여! 저 새끼, 죽여 버리라고! 명령이다!”
명령을 받은 사내가 당황했다. 설마 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줄은 몰랐던 탓이다.
그때 우리 쪽에서 서중이 나섰다.
“양공자께서 흥분한 상태에서 내린 명령이니 무시해도 될 것이네. 저 명령이 낳을 결과를 생각해 보게.”
그러면서 자신의 검에 손을 올렸다. 헛된 짓을 했다간 이쪽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당장에라도 검을 뽑을 듯이 양쪽 무인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되었다. 실력은 비슷하다 하더라도 우리 쪽 기세가 훨씬 높았다. 명분도 이쪽에 있었고.
결국 사내가 한발 물러났다.
“선배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굳이 서중이 그런 경고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벽씨검문의 후계자를 죽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번 일은 가주들이 처리할 문제.
그때 양기강이 부축하고 있던 손을 뿌리쳤다.
창!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들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 돼!”
서중이 소리쳤을 때는 이미 놈의 검이 내 가슴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쉬이익.
보는 사람들에게는 일촉즉발이었지만 내게는 가소로운 몸부림이었다. 제 아무리 오 년의 내공만 지니고 있다지만, 나는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있던 사람이다.
이번 역시 가볍게 검을 피한 후.
꽈득.
놈의 팔을 사정없이 꺾어 버렸다.
“으아아악!”
팔이 부러지자 놈이 비명을 질렀다. 덜렁거리는 팔에 모두들 경악했지만 내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발로 놈의 무릎을 비스듬히 내리찍었다.
꽈직!
다리가 대나무처럼 꺾이며 부러졌다. 뼈가 튀어나오며 피가 튀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놈이 내지르는 처절한 비명에도 내 손속은 냉정했다.
짝짝짝짝짝!
연속해서 놈의 뺨을 때렸다. 부러진 이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한두 개가 아니라 십여 개가 와장창 다 부러졌다.
퍼억!
마지막 한방이 배에 꽂히자 놈이 그대로 쓰러졌다. 한두 달 요양해야 하는 부상에서 이제는 몇 년은 족히 요양해야 하는 부상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난 자비를 베풀고 있었다. 예전 성질이라면 죽여 버렸을 테니까.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양소방 무인들은 이 사태를 말리지 못했다.
뒤늦게 혈도를 짚어라, 의원을 불러라, 방주께 고하라, 사방 문을 지켜라 이리저리 허둥댔다.
가장 먼저 내게로 달려온 사람이 광두였다.
그가 내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내뱉었다.
“미쳤어요? 양소방을 건들면 어쩌시려고요? 대체 어쩌려고요!”
걱정 가득한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할 겨를조차 없이 다급한 녀석이었다.
“우선 몸부터 피해요. 뒷일은 가주님께 맡기고요. 여기 있다가 양방주 나오면 큰일 나요! 어서요!”
“싫어.”
“왜요?”
“그럼 나 대신 네가 작살날 테니까.”
순간 광두가 움찔했다.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자신이 당하는 모욕을 막아주는 과정에서 시작된 일이었으니까.
“너 지금 살짝 감동했지?”
“아니, 지금 농담이 나옵니까? 어서 가시라고요!”
“이미 늦은 것 같은데?”
내가 턱짓으로 뒤를 가리켰다.
저 멀리 건물의 문이 열리며 아버지와 양기철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걱정 마. 나 죽을 때 너도 꼭 같이 묻어달라고 할게.”
광두가 제자리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기억이 안 난다는 것도 다 연기였죠? 이런 대형사고를 치려고. 나 피 말려 죽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