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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47화 (246/293)

247화. 사선의 경계 ― 만나러 가야겠다 (1)

결정을 내린 천무진은 의선의 안내를 따라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원래의 장소 또한 무척이나 은밀한 곳이었지만 지금 도착한 곳은 더더욱 그러했다.

결코 외부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실험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백아린은 멀찍이 떨어져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최대한 감췄다. 자신이 그러고 있으면 천무진 또한 신경을 쓸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렇게 백아린이 걱정을 감춘 채로 마주 선 천무진과 의선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천무진의 앞에 자리한 의선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제 눈치 안 보셔도 됩니다. 생각하신 대로 한번 가 보죠.”

확신 어린 천무진의 발언에 의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쩍 장소를 벗어났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는 나무 상자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천무진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안에 검산파에서 가져온 그 붉은 보석이 있다는 사실을.

가까이 다가온 의선이 천무진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어떠십니까?”

“……아직은 괜찮습니다.”

뭔가 조금씩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에 무리가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천무진의 말을 들은 의선이 말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우시면 손으로 신호를 보내 주시면 됩니다. 그럼 곧바로 멈출 테니.”

말을 끝낸 의선이 닫혀 있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검은 물방울무늬가 박혀 있는 붉은 보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천무진은 그 보석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검산파에서 직접 이 보석을 훔쳤고, 품에 넣은 채로 그 비밀 장소를 빠져나왔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아무렇지 않았지만 이내 지독한 고통이 밀려왔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때보다 반응이 빨랐다.

“으음.”

천무진이 낮게 신음 소리를 토해 냈다.

당시엔 그래도 직접 손을 대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고통이 밀려들었었는데, 지금은 그때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묘한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씩 숨이 가빠 왔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 왔다.

마치 몸이 고통을 기억이라도 하는 듯이 빠르게 상태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천무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떨리는 손을 들어 올린 그가 말했다.

“그럼 곧바로 가 보죠.”

말과 함께 천무진은 그 붉은 보석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걸 허공으로 들어 올려 자신의 가슴팍에 가져다 댔다.

천무진의 거침없는 모습에 그저 멀리서 이 상황을 마음 졸이며 보고만 있던 백아린이 움찔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가 쥐고 있는 저 붉은 보석을 빼앗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참아야만 했다.

지금 천무진이 어떠한 각오로 이곳에 섰는지를 잘 아니까.

보석을 쥔 채로 서 있는 천무진의 모습을 보던 의선이 재빠르게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며 질문을 던졌다.

“괜찮으신 겁니까?”

그의 물음에 천무진이 보석을 쥔 손을 바라보며 말을 받았다.

“뭐 지금은 버틸 만합니다만 점점 아랫배가 아픈 게 곧 신…… 우욱!”

참기 힘들 정도로 큰 고통이 순식간에 찾아들었다. 천무진의 얼굴이 일순 새하얗게 변했고, 그는 힘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순간 혼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큰 고통이 전신으로 밀려왔지만 천무진은 정신을 붙잡았다. 그리고 오히려 떨리고 있는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꾸욱.

그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보석을 움켜쥐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천무진의 몸은 거의 마비가 된 것처럼 움직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천무진은 보석을 쥔 손가락에 최대한 힘을 집중시켰다.

예전엔 고통이 찾아옴과 동시에 쓰러지면서 품에 있던 이 보석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계속되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놓치지 않겠다는 듯 더욱 강하게 쥐고 있는 상태.

고통이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컥컥…….”

열린 입을 통해 연신 거친 소리가 터져 나왔고, 급기야는 숨이 넘어갈 듯이 몸이 비틀렸다.

놀란 의선이 서둘러 천무진의 손에 들린 보석을 빼앗으려고 할 때였다.

“조, 조금만 더!”

천무진의 외침에 움직이던 의선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천무진은 제대로 앞을 분간하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무진은 이 고통의 근원을 알아내기 위해 집중했다. 온몸에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렇지만 결국 모든 고통의 시작점은…….

그때였다.

“푸웃!”

입에서 한 사발은 될 법한 피가 쏟아져 나왔고, 천무진의 몸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계속 바라보고만 있던 백아린이 움직였다.

쉬익!

빠르게 날아든 그녀의 손이 천무진의 손바닥 위에 자리하고 있던 보석을 쳐 냈다.

보석은 곧바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 버렸고, 동시에 백아린은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천무진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감싸 안았다.

품에 안은 천무진의 몸은 크게 경련하고 있었고, 동시에 숨은 금방이라도 넘어가 버릴 것처럼 다급했다.

백아린이 소리쳤다.

“어르신!”

검산파에서는 의원에게 데려가기 위해 한참을 달렸던 그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옆에는 중원 최고의 의원 중 한 명인 의선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미 백아린이 부르기도 전에 의선 또한 천무진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다급히 도구들을 챙겨 천무진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옆으로 다가왔다.

부들부들 떨며 경련하고 있는 천무진의 손을 백아린이 꽉 움켜쥐었다.

그가 들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그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아린이 손을 꼭 쥔 채로 말했다.

“조금만 참아요. 괜찮아질 거예요.”

스르륵.

백아린의 그 말을 끝으로 크게 경련하던 천무진이 혼절했다.

천무진이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네 시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가 힘겨운 신음 소리와 함께 뒤척일 때였다.

“일어났어요?”

옆에서 한 시도 떨어지지 못한 채로 자리하고 있던 백아린이 침상에 누워 있는 천무진을 향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힘겹게 눈을 뜬 천무진은 순간적으로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지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온몸의 뼈마디가 쑤셨고, 장기마저 아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흡사 몸 안에 있는 장기들이 조각조각 난 듯한 고통이었다.

얼굴엔 핏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상태였고, 몸을 일으킬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천무진에게서 마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는…….”

“걱정 말아요. 의선 어르신의 거처에요. 시간은 네 시진 정도 지났고요.”

“어떻게 된 거지?”

“자모충 실험을 했던 건 기억나죠?”

백아린의 질문에 천무진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도중에 돌을 쥔 채로 혼절했어요. 그래서 곧바로 치료를 하고 이곳으로 데리고 온 거고요.”

백아린의 말을 듣고 있자 천무진은 점점 방금 전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저 고통에 몸부림치던 순간들.

검산파에서 처음 보석을 쥐었을 때도 큰 고통을 겪었었지만, 오늘에 비한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리에 누운 천무진이 힘없는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결국 못 버텼군.”

“그렇게 가볍게 말할 상태가 아니었어요. 조금만 더 진행되었다면…… 당신 죽었을지도 몰라요.”

천무진을 치료했던 것이 의선이 아니었다면, 또 조금만 늦었더라면…… 지금 천무진은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백아린의 걱정스러운 말을 들으면서 천무진은 잠깐 눈을 감은 채로 상념에 잠겼다.

엄청난 고통을 받으며 확신할 수 있었다.

예전에 했던 의심대로 몸 안에 자모충이 있다는 사실을. 온몸이 쥐어짜이는 듯한 고통으로 인해 한동안은 쉽사리 움직이기조차 힘들겠지만…….

슬그머니 눈을 뜬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고통을 받은 대신, 얻은 것도 하나 있어.”

“얻은 거라뇨?”

의미심장한 천무진의 말에 백아린이 놀란 듯 물었을 때였다.

그녀의 물음에 천무진이 답했다.

“그 고통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았거든.”

말을 끝낸 천무진이 자신의 손을 조금씩 움직여 아랫배에 가져다 댔다.

기(氣)의 시작점인 단전. 바로 그곳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여기.”

단전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바로 여기에 자모충이 있어.”

* * *

천운백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늦은 밤, 하늘에 뜬 달이 은은한 빛으로 세상을 감싸고 있었다.

그 달빛 아래에서 천운백은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마음 같아서는 천무진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환자를 데리고 술을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야.’

의선과의 실험으로 인해 천무진은 큰 내상을 입고 잠시 자리에 드러누운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술을 마시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나마 이곳에서 어울리는 의선 또한 무척이나 바빠서 부를 수 없었다.

그랬기에 천운백은 이렇게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난간에 기댄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허허, 이거야 원 혼자 술을 마시고 있자니 궁상맞기 짝이 없군그래.”

중얼거림과 함께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댄 천운백이 갑자기 허공에 대고 말을 이었다.

“아니면 자네라도 같이 한잔하겠는가.”

천운백의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새카만 그림자 하나가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럽게 누군가가 뒤에서 나타났지만 천운백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를 가져다주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죽립으로 얼굴을 가린 그가 답했다.

“잘 지내셨습니까? 건강하신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허허, 그래 보이는가?”

건강해 보인다는 말에 천운백이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웃고 있는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눈앞에 나타난 상대.

자신이 부른 것도 아닌데 그가 스스로 천운백의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의미였으니까.

천운백이 들고 있던 술잔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나타났다는 것은…… 결국 일이 벌어졌다는 걸로 봐도 되겠는가?”

천운백의 질문에 상대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그자가 말했다.

“걱정하신 것처럼 십천야가 결국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조만간 가짜 정보가 날아와 그쪽으로 움직이시게 만들 겁니다.”

“허허, 내 이런 날이 올까 두려워 그간 그토록 거리를 두었거늘…… 결국 그녀가 표적이 되었군그래.”

천운백이 말하는 그녀.

그건 바로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인 화산파의 조수아를 말하는 것이었다.

천운백은 천룡성의 주인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사랑하는 여인 조수아를 곁에 두지 못했다. 자신이 곁에 있으면 십천야의 표적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그녀 앞에 나타나지조차 않았었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지키고 싶었던 여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수아가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에 천운백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그런 천운백의 모습을 곁눈질로 확인한 상대가 조심스레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만 더 빨리 그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복잡해지지 않았을 터인데…….”

“아닐세. 자네가 그랬다 한들 크게 변한 건 없었을 게야. 이미 천지광은 십천야라는 든든한 방패 뒤에 숨어 있으니 말일세. 제아무리 나라도 그곳에 있는 천지광을 쓰러트릴 수는 없지.”

말과 함께 상대에게 다가간 천운백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자네가 그곳에서 활약해 준 덕분에 지금만큼이라도 대비를 할 수 있지 않았는가.”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는 상대를 향해 천운백이 재차 말했다.

“긴 시간 날 위해 고생 많았네…… 남윤.”

순간 천운백을 찾아온 상대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죽립을 풀어 젖혔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천룡성의 하나뿐인 가솔, 남윤이었다.

천룡성의 가솔, 그렇지만 배신자로 십천야의 수장인 천지광과도 연락을 주고받았던 남윤이 놀랍게도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배신자처럼 천운백과 천무진에 대한 정보를 십천야에게 넘기던 그다.

그렇지만 사실 그는 배신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남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들 사이에서 가짜 첩자 흉내를 내며 천운백을 돕는 조력자였다.

남윤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를 그냥 두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사랑했던 여인 조수아.

그녀를 오랜 시간 혼자 두었다.

그러니 이제…… 그녀를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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